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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하이닉스냐? 삼성전자냐?

제2의 하이닉스냐? 삼성전자냐?

'우리도 삼성전자처럼.' 아남반도체(오른쪽)을 인수한 동부전자(왼쪽)가 계획대로 순항할 것인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왜 자꾸 하이닉스처럼 보느냐!”동부그룹의 한신혁 부회장은 결국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7월15일 롯데호텔에서 있었던 아남반도체 인수와 관련해 동부그룹이 개최한 기자간담회. 2시간 가까이 파운드리 업계의 산업전망과 동부전자의 아남반도체 인수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던 한 부회장도 끝내 커지는 목소리를 참지 못했다. 그의 계속된 설명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비관적인 질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기자들의 질문과 장미빛 일색의 동부그룹의 설명은 시종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요즘 동부그룹은 언론과 채권단에 불만이 많다. 산업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반도체 사업=하이닉스’라고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지도 않고 이번 합병을 두고 ‘위험한 도박’이니 ‘리스크가 큰 결정’이니 얘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3년간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하이닉스 때문에 반도체의 ‘반’자(字)만 꺼내도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는 형편이다. 한마디로 ‘하이닉스 학습효과’때문에 사람들이 반도체 사업을 사시(斜視)로 보고 있다는 게 동부그룹의 주장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부회장도 “삼성이 반도체에서 사상 최대 수익을 내는 것은 삼성이니까 가능하고, 다른 기업이 반도체를 하겠다면 지레 겁부터 먹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섭섭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완곡하지만 동부전자도 삼성전자처럼 될 수 있으니 믿어 달라는 뜻도 담겨 있는 말이다. 일단 동부그룹은 이번 합병을 위험하다고 보는 시각이 못마땅한 듯하다. 동부그룹의 계산은 이렇다. 지난 4월부터 생산을 시작한 동부전자의 파운드리 반도체 공장의 생산량은 0.18㎛급 월 5천장 정도(8인치 웨이퍼기준). 하지만 월 5천장 정도의 생산량으로는 파운드리 반도체의 수익성을 맞출 수가 없다. 파운드리 반도체의 주요 고객인 인텔·도비사·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 등과 거래를 하려면 최소한 월 2만장 이상은 생산해야 한다. 때문에 합병 전 동부전자는 내년까지 총 1조 3천억원을 더 투자해 월 2만장 생산 수준을 달성할 계획이었다. 파운드리 분야 세계 5위인 아남반도체와의 합병이 아니더라도 동부는 시설확장을 위해 돈을 쏟아부을 참이었다. 파운드리 반도체도 메모리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시시각각 변하는 기술에 따라 최신 설비를 갖춰야 경쟁력이 생기는 장치산업이다. 동부는 합병을 통해 현재 파운드리 업계의 주력 품목인 0.18㎛ 제품은 아남전자(월 1만8천장)와 동부전자(월 5천장)의 설비를 그대로 이용하고 합병법인은 차세대 품목인 0.13㎛과 0.10㎛ 제품에 단계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즉 이미 한물 간 기술인 0.18㎛에 투자할 돈으로 아남반도체를 사들여 미래의 기술인 0.13㎛, 0.10㎛쪽으로 시너지를 꾀하겠다는 것이다.합병을 통해 파운드리 업계 세계 빅3를 형성하고 있는 대만의 TSMC·UMC·싱가포르의 챠터드와 같은 수준의 설비 증설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또 현재 세계적으로 연간 10% 이상 성장하는 반도체 사업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룹은 물론이고, 한국 경제에 미래가 없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파운드리 분야는 그중에서도 성장 속도가 빨라 연간 30% 정도씩 성장하고 있다. 때문에 금융과 건설 등 비제조 분야외에 이렇다 할 주력업종이 없는 동부로서는 20년 전부터 반도체 시장을 열심히 노크해 왔다.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은 83년부터 미국에서 기술을 들여와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97년 2백56MD램 사업계획을 발표할 정도로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나 IMF 사태가 터지면서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 후 2000년 파운드리로 사업방향을 바꿔 오늘에 이른 것이다. 동부그룹의 한창석 전무는 “수출 주도의 경제 구조에서 세계적인 성장산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국가 경제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경기 사이클이 있긴 하지만 그런 리스크 때문에 반도체 사업하는 것 자체를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는 뭘 먹고사는지 생각해 봐야한다”는 얘기도 했다. 이번 합병에 대해 산업자원부에서도 일단 방향은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도 산업적인 관점에서는 ‘괜찮은 조합’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문제는 돈이다. 동부전자측에서는 이번 합병의 최대 목적이 ‘투자 소요금액의 절감’에 있는 만큼 합병으로 인한 재무상의 부담은 거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동부그룹이 밝힌 계획에 따르면 추가 소요되는 1조3천억원도 동부전자의 연간 캐시플로 4천억원 2년치와 지난 6월에 신디케이트론으로 지원받은 2천6백억원, 여기에 금융기관이나 해외로 4천억원을 조달해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한부회장은 “합병을 통해 회사의 성장 가능성이 더 커졌기 때문에 해외 채권발행도 더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아남반도체 인수에 들어간 2천7백40억원도 큰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1천1백40억원을 지원한 동부건설은 지난해 2천억원 이상 당기 순이익을 냈다. 또 5백억원과 1백억을 투자한 동부화재나 동부생명도 흑자회사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계열사 동반부실’은 한마디로 기우라는 것이다. 또 아남반도체 인수로 다른 계열사를 파는 일도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히려 한부회장은 기자간담회 도중 “0.25㎛ 이상의 범용제품도 여전히 수요처가 존재한다”고 말해 하이닉스의 파운드리 부문도 인수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금융권과 애널리스트들의 시각은 다르다. 산업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합병이지만 여전히 재무상의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다. 우선 양사가 모두 적자를 기록한 회사다. 동부측의 주장을 1백% 받아들여 투자소요 금액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합병으로 인한 적자폭 확대를 어떻게 감당할지가 문제다. 경기 변동이 심한 반도체업종의 특성상 흑자 회사도 비수기나 불경기 때는 견디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하이닉스도 반도체 경기만 좋았다면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는 기술력과 영업력이 있었다. 여기에 파운드리 업계의 공급과잉도 걸림돌이다. 현재 세계 최대 업체인 TSMC나 UMC조차도 가동률이 50%에 못미치고 있다. 평균적으로 가동률 60%는 돼야 수익성이 있다고 볼 때 세계1, 2위 업체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셈이다. 동부전자나 아남전자의 경우도 일부 라인을 제외하고는 가동률이 30% 수준이다. 동부측에서는 반도체 경기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고 있다고 하지만 향후 경기 예측은 어차피 불확실한 것이다. 이처럼 비관론자들은 파운드리 산업에 존재하는 가장 비관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고 동부는 가장 낙관적인 경우를 가정해 얘기하고 있다. 다만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이번 합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 동부측으로부터 합병이나 합병 이후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을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동부그룹을 담당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최용표 부부장은 “동부전자와 아남반도체의 합병에 대해 주채권은행으로서는 부정적이지 않다. 또 동부 계열사들의 지원도 채권자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다”고 했다. 합병에 대해서는 산업적으로 더 좋은 조건이 됐기 때문에 일단 회사 정상화를 목적으로 하는 채권은행으로서는 나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또 계열사 지원도 건실한 계열사에서 일정부분 책임을 지겠다는 것은 책임 있는 모습이라는 입장이다. 일부에서 ‘계열사들이 지원하지 않는 조건으로 금융지원 하겠다’는 얘기가 나온 것에 대해서도 “동부전자 신디케이트론에 참여하지 않은 채권 기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동부전자에 설비투자자금인 신디케이트론에 참여한 금융기관은 계열사의 지원을 원하고 있고, 여기에 참여하지 않은 채권은행은 계열사가 동부전자 지원에 엮이는 것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쪽에서도 썩 좋은 반응은 아니다. 하이닉스에 한번 혼이난 시장과 금융기관들은 최대한 보수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만약 이번 합병의 주체가 동부가 아니라 현금이 풍부한 삼성이나 LG였다면 증권가는 물론 채권 은행에서도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동부의 야심찬 도전이 결실을 맺느냐의 여부는 경제전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두고 두고 관심을 끌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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