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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리가 아닙니다’…작지만 아름다운 기업

‘이 소리가 아닙니다’…작지만 아름다운 기업

김승호 보령제약 회장
서울 종로구 원남동에 위치한 보령제약 빌딩의 18층 베란다에 올라서면 “이 자리 참 명당이네”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사방을 둘러봐도 걸리는 게 없이 시야가 확 트인다. 아래로 펼쳐진 창경궁과 종묘, 그리고 비원. 이들 고궁의 완만한 기와의 선이 만들어낸 스카이라인과 아름드리 숲, 또 숲을 에워싼 돌담길 등을 바라보면 사유(思惟)에 빠져들지 않을 이가 없을 것만 같다. 명당 탓일까? 보령제약은 최근 잇따라 회사의 성가(聲價)를 올리고 있다. 보령제약은 지난 5월 한국능률협회에서 선정하는 대한민국 마케팅 대상에서 전사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는 ‘겔포스엠’으로 마케팅 활동사례 부분 최우수상을 수상, 이미 국내 제약업계의 마켓리더로 그 면모를 보여준 바 있다. 최근엔 한국경영생산성 대상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지난 1957년 서울 종로 5가에서 소매약국으로 출발해 6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제약전문그룹으로 성장한 보령제약의 45년 업력을 취재하러 간 기자에게 김승호(70) 회장은 대뜸 ‘수해가 걱정’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수마 극복과정서 보람·의무 느껴 최근의 폭우로 인한 각 지방의 피해사례를 보는 김회장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회사 어느 곳을 둘러봐도, 또 제품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지만 ‘집중호우’는 떨쳐버릴 수 없는 단어입니다. 사옥을 원남동으로 이전하기 2개월 전인 지난 77년 7월의 일이었죠. 그때는 용각산·겔포스엠 등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한창 성장가도를 달리던 때였습니다. 이런 발전에 가속이 붙어 새로운 공장을 준공하고, 전 라인을 자동화 설비로 교체한 곳이 바로 안양공장이었죠.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해야 할까요. 당시 기준으로 30년 만의 폭우로 인해 호계천이 한밤에 범람하면서 바로 그 앞에 위치한 안양공장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금액으로 직접적인 피해액만 5억원, 완제품과 영업공백의 손실까지 합하면 12억원 이상의 손해가 났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그 당시 중고등학생들의 버스비가 15원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직원들은 모두 안양으로 달려와 휴일도 반납하고 공장의 복구에 매달렸습니다. 1년으로 예상되던 복구기간을 8개월이나 단축, 4개월 만에 정상으로 돌려놓았으니 그 당시 저희 직원들이 공장복구를 위해 어떻게 일했나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회장은 15년 전의 수해를 통해 보령이 제약업을 하면서 진정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무슨 공공단체도 아니고 일개 제약회사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인데 수많은 소비자들이 보령의 수해를 안타까워하면서 격려의 편지와 성금을 보내주시는 것을 보며 저는 제약인으로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그때의 감격이 저를 지금까지 다른 곳으로 눈 돌리지 않고 오직 제약 한길로 이끌어온 한 요인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얘기가 이쯤 되자 주제는 자연스럽게 기억에서 잊지 못할 일로 더 이어졌다.

美 스퀴브사와의 특허분쟁 넘어 “세계적인 기업, 미국의 스퀴브사와의 국제특허분쟁은 수해 다음으로 잊을 수 없는 일이었죠.” 이른바 ‘캡토프릴 분쟁’으로 일컬어졌던 이 특허분쟁에서는 결국 보령제약이 이겼다. “물론 승소를 했지만 당시로서는 보령의 사활을 걸었던 소송이었습니다. 1년여 동안 진행된 소송에서 힘들 때마다 제가 생각했던 것은 ‘정도를 걷고 있는가’였습니다. ‘슈퍼301조’라는 미국의 통상법까지 우리나라를 괴롭혔던 시점이었던 터라 보령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정말 힘겨운 싸움을 벌여나갔었습니다. 결국 스퀴브사는 88년 5월 301조 청원을 스스로 취하하고, 90년 4월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제출했던 특허침해소송마저 스스로 취하했습니다. 이로써 참으로 길고 지리한 특허분쟁은 종지부를 찍었죠.” 김회장은 “이외에도 지난 일을 생각하면 어렵고 힘든 시기야 많이 있었지만, 특히 IMF 시기를 잘 극복한 결과가 최근의 성가로 이어진 게 아니겠느냐”며 “그러나 한편으로는 앞으로에 대한 사명감이 더욱 커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제약업이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사업이란 점에서 제약업계 종사자들은 남다른 사명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령제약이 경영이념을 ‘인류건강에 공헌하는 기업’으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도 가정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도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의 건강이 중요하듯 기업도 모두의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임직원들의 건강한 육체는 물론이요, 정신까지도 말입니다. 그 다음엔 기업 자체가 건강해야 됩니다. 기업의 건강에는 튼튼한 재무구조와 건전한 기업정신, 그리고 기업이 지켜나가야 할 마땅할 사회적 역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건강한 기업을 꾸려나가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 구성원들이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제 몫이죠.” 김회장은 보령제약그룹을 외형을 중시하는 거대한 그룹의 반열에 올리는 것보다는 작지만 아름다운 기업으로 키워나가겠다고 밝히는 것도 이런 그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김회장은 요즘 회사의 틀을 다시 짜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들려준다. 오는 2010년을 대비하는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구상 중인 그는 “큰 틀은 선진국형으로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도전 “선진국이란 상식이 통하고, 원칙이 있고, 시스템이 있는 사회입니다. 이에 걸맞는 기업으로의 어프로치가 필요합니다. 21세기는 우주산업·정보산업·생명공학산업의 시대라고 합니다. 생명공학산업 중의 하나인 제약산업을 주도하면 곧 21세기를 주도하게 되는 것이죠. 제약산업도 제철이나 조선·자동차산업 같이 ‘기간산업화’하고 영세성을 벗어나 ‘대형화’로 체질을 개선해 21세기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보령제약은 김회장의 이런 지론에 따라 의약품 분야에서는 ‘겔포스엠’을 중심으로 한 소화기계용제·항암제·항생제·순화기계용제·피부알레르기용제·수액제 등 6대 약효군의 전문화를 통한 경쟁력 있는 전문기업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밖에도 의료기기·건강식품 등을 다루는 ‘종합생명과학 산업체’로의 이미지 변신을 추진 중이다. 생명공학분야에서는 유전자조합기법을 이용한 면역억제제·백신류·진단키트와 환경보호제품을 개발하고 임상의과학적인 유아용품 및 생활용품을 바탕으로 시장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보령제약의 이같은 새로운 도약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NEO21운동’과 종합정보화 시스템인 ‘디지털엑스프레스(DIGEX)’이다. 지난 99년 10월1일 보령제약의 1천여명의 직원이 올림픽 역도경기장에 모여 선포식을 가진 ‘NEO21운동’은 이 회사의 21세기 비전인 동시에,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추진계획을 담은 것이다. NEO는 Newly(새롭게), Early(빠르게), Only(으뜸으로)의 영문 이니셜. “당시는 새천년을 앞둔 시점이기도 했지만 과거의 기준으로 볼 때 10년 또는 20년간에 일어났던 변화가 불과 1, 2년에 이루어지는 등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한편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하는 시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인식의 변화를 요구했고 보령은 이렇게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NEO21을 선포한 것입니다.” 김회장은 “회사 로비에 선포식 때 각 직원들의 희망과 보령의 비전을 담은 쪽지를 넣어둔 타임캡슐이 놓여져 있다”고 소개하면서 “출근할 때마다 타입캡슐을 보며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보령의 21세기가 더욱 희망찰 것임을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보령제약은 기술혁신·관리혁신·생산혁신·기업문화혁신 등 각 부문별 혁신운동으로 세분화되어 기반조성기(99년), 도약기(2000년), 성숙기(2001년), 정착기(2002∼2005년) 등 4단계로 진행되고 있는 NEO21운동을 통해 실제로 가시적인 성과도 거둬들이고 있다. 김회장은 “현재까지의 성과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창조적인 기업문화 형성, 스피디한 경영 시스템 그리고 핵심역량 강화라는 성과를 기반으로 99년부터 2년 연속 15% 이상의 고성장을 보였고 올해도 생산성이 크게 향상된 데 힘입어 올해 보령제약의 매출목표 1천6백억원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보령제약은 지난 2000년 대지 4천9백평, 건평 1천6백여평 규모에 최신 전자동 발효 시스템과 대량 합성시설을 갖춘 항암제공장을 준공, 지난해 10월 BGMP(합성·발효원료 우수의약품 제조관리기준) 인증을 받았다, 또 올해 초엔 EDQM(유럽의약품 품질관리위원회)가 인증하는 COS(유럽의약품품질적합인증서)를 획득하여 유럽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항암제 발효시설은 연간 30톤 규모의 국내 최대의 전자동 항암제 발효 생산 시설로 독소루비신의 생산 공정 중 부산물로 나오는 물질을 반합성법을 이용하여 안쓰라사이클린계 항암제인 에피루비신의 개발을 완료하여 현재 시설투자를 완료하고 대량 생산에 나서고 있다. 또 이들 항암제를 독일 의약품원료공급업체인 헬름사를 통해 유럽쪽을 대상으로 연간 1천만 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올릴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인 탐술로신 대한 신공정을 개발을 완료, 현재 대량 생산 공정을 확립하는 한편, 유럽지역 공급책인 스위스계 회사와 1천만 달러어치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김회장은 “이 모든 것이 NEO21의 기치 아래 이루어진 중앙연구소의 R&D에 새롭게 도입된 팀별(프로젝트별) 조직 개혁의 성과”라고 말했다. 신약개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승부수로 내건 신약개발 “신약문제는 회사기밀사항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는 없지만 현재 보령의 중앙연구소 연구개발의 방향은 크게 신물질개발·신제품개발·신공정개발 등 3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신물질개발 부문에서는 새로운 안지오텐신II 저해제인 BR-A-657 과 새로운 면역억제제인 CTLA4에 대한 개발이 이뤄지고 있어요. 안지오텐신II 저해제인 BR-A-657은 임상 및 전임상 전문기관인 영국의 Quintiles사에 의뢰해 전임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유전독성실험이 완료되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급성독성·반복투여독성이 진행 중인데 금년 10월께 전임상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돼 바로 임상1상이 실시될 예정입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0월부터 인하대학교와 차세대핵심기술과제인 식물세포를 이용한 유용단백질 생산기술에 관한 공동연구를 추진 중에 있으며, 향후 생명공학분야에 지속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신제품개발 부문에서는 수두백신·항생제 중간체 생성균주개발, 항암제·소화기계 신제품 등의 개발이 진행 중이며, 일부 제품은 곧 출시될 예정이다. 또 신공정개발 연구는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한 항암제·합성기술을 이용한 항암제·항생제·골다공증치료제 등이 진행되고 있다.

용각산과 겔포스엠으로 승승장구 제약기업은 그 산업의 특성상 단일품목에 의존하지 않는다. 다양한 제품군을 생산하지만 업체마다 주력상품이 있기 마련이다. 보령제약의 경우 누가 뭐래도 간판상품이자 주력제품은 ‘용각산’과 ‘겔포스엠’으로 각인되어 있다. 물론 맨소래담도 한몫 거들기는 하지만 용각산과 겔포스엠은 소비자들의 인식에 워낙 뿌리깊은 자리잡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령제약이 자부하고 있는 품목은 이들 두가지 외에 더 있다. 그 중 하나가 항생제 부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 78년 엠피실린 합성 공장 준공과 더불어 독자적으로 항생물질의 합성에 성공,치료 의약품 제조업체로서의 위상을 정립한 이래 항생제 사업부문을 꾸준히 확대시키고 있다. 항생제와 더불어 자랑할 만한 품목으로 꼽는 것이 바로 신장병 약 ‘페리시스’다. 최근 들어 성인병 증가와 더불어 만성신부전 환자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치료법으로 혈액투석과 복막투석법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혈액투석 기계나 소모품은 1백%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으며, 복막투석액도 수입약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령제약은 이에 따라 지난 88년부터 다국적 기업과 제휴하여 국내에서 복막투석액을 생산해 오다가 98년에 가장 한국인 체형과 체질에 맞는 합리적인 처방투석액 ‘페리시스 투백시스템’을 순수 국내기술로 생산하여 공급하기 시작했다. 보령제약측에 따르면 투석액의 국산화로 환자 개인적으로 따지면 1인당 연간 투석액 약값을 3백만원 정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현재 전체 시장인 5천5백명에 이르는 복막투석환자가 사용할 경우 연간 1백70억 정도 보험재정이 줄어들 전망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만성신부전 환자가 매년 12% 정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또 하나의 효자 ‘경영정보 시스템’ 보령제약의 효자노릇을 하는 것은 이들 약품 외에 또 하나가 있다. 지난해 구축을 완료한 지식경영정보 시스템인 ‘DIGEX’이다. 김회장도 “이제부터는 DIGEX가 본격적인 결실을 맺을 것”이라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보령제약은 이 정보전략 기반을 통해 정보의 효율적인 관리 및 활용은 물론 이를 통한 비즈니스 전체의 가시화, 업무의 전사적 통합 및 네트워크 구축의 온라인화를 실현해 보다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제약업계의 마케팅 리더로 입지를 구축한 것도 사실은 이 시스템 덕을 독톡히 본 것이다. 보령제약은 이 지식경영정보 시스템을 통해 마케팅 영업부분의 판매계획 적중률을 종전의 65%에서 85%로 대폭 향상시키는 한편 수주에서 출하에 이르는 리드타임을 3일에서 1.5일로 단축시켰다. 게다가 생산부문에서도 ABM(활동기준원가관리)가 가능해지면서 품절률을 5%에서 제로화시키는 성과를 거뒀고, 회계부문에서도 1일 결산을 실현, 자금결제 과정의 손실비용을 최소화시키는 효과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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