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러스트 조태호 |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인간은 역시 동물의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따라서 본능의 지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논리에서 인간과 동물의 섹스는 서로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그러나 인간과 애니멀 사이에는 성행동에 있어서 분명한 경계선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에로티시즘의 유무다. 우리들 인간문화 속에 깊이 배어 있는 에로티시즘은 인간 고유의 복잡한 성적 활동이고 동물에게는 그런 요소가 없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는 에로티시즘이 풍부하고 동물세계에는 그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동물의 단순한 성적 활동은 발정기에 후손을 이어간다는 차원의 생식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거기에 쾌락이 존재한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일부의 고등동물에서는 성교에 동반되는 쾌감이 있는 것처럼 목격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 섹스를 통해서 얻는 오르가즘과 동질의 것이냐 하는 데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오르가즘은 대뇌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과 접촉을 통한 성적 자극을 쾌감으로 변화시키는 신경호르몬의 유무에 의해서 형성되는 고등한 정신작용인데, 동물에게는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동물의 성교에는 간혹 커다란 고통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에 관한 몇 가지 실례를 들어본다. 인간과 더불어 10만년 이상을 살아왔다는 개라는 동물은 교미 후 반드시 항문거근(肛門擧筋)의 강직성 경련에 의한 ‘페니스 감금현상’이란 생리현상이 일어나서 15분 내지 30분 동안 암수가 서로 떨어지지 못하고 서로 반대방향을 향해서 붙어 있게 된다. 또한 고양이의 페니스에는 고슴도치 가시털과 같은 강모(剛毛)가 나 있는 까닭에 교미 후 수놈이 페니스를 빼어낼 때 역모(逆毛)가 일어서서 암놈의 질은 바늘로 찔린 숱한 상처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좀더 하등한 동물의 경우에는 생식본능의 만족은 또한 커다란 고통의 기회가 되는 것을 본다. 예를 들면 암놈 두더지의 질은 두꺼운 막으로 완전히 봉쇄되어 있어서 착공기(搾孔機)처럼 생긴 페니스를 가진 수놈이 요리조리 도망다니는 암놈을 쫓아서 그 처녀막을 찢어놓지 않으면 생식행위를 할 수조차 없게 되어 있다. 또한 어떤 종류의 바다거북의 교미는 시종일관 새디스틱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즉 수놈 바다거북이 암놈의 위에 말 타듯 올라타고서 흔들흔들 좌우로 신체를 흔들어대고, 위아래로 겹쳐진 2개의 귀갑(龜甲)을 비벼대면서 암놈이 등껍질 밖으로 머리를 내밀려고 하면, 그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어 그 머리를 다시 등껍질 속으로 집어넣게 만들면서 교미한다. 이런 상태로 계속해서 있게 되면 암놈은 수놈의 사정이 끝난 뒤 기도가 막혀서 가련하게도 질식사하는 예가 적지 않다. 어떤 종류의 거미나 사마귀 수놈이 교미 후 암놈에 의해 머리부터 으드득 으드득 깨물어 먹어치우고 만다는 사실은 독자 여러분도 숙지하고 있는 생물학 지식일 것이다. 여기에서는 사랑의 행위가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을 본다. 또 하나 동물의 교미에서 중요한 것은 교미시간을 연장시키려는 노력이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동물이 어이없게도 삽입과 동시에 사정하고 마는, 이른바 조루 경향을 보여준다. 특히 도마뱀의 교미는 닭들의 그것만큼 매우 간단한 순간에 끝이 난다. 마치 카메라 셔터의 움직임을 보는 것과 같다. 만약 성교의 목적이 생식에 있다면 어떻게든지 무리해서 시간을 연장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며, 정상적인 동물들에 있어서는 인간의 에로틱한 노력은 눈물겹게도 바보 같은 행동으로 비춰질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요컨대 인간의 성생활은 동물의 그것과 전적으로 달라서 에로틱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메이크 러브’에 있어서도 생식본능하고는 별개의 충동, 즉 쾌락의 욕구에 의해서 작동되는 성적 충동을 가졌다. 인간이 사회는 늘 시끄러운 일들이 벌어진다. 멜라네시아 미개민족을 연구 조사한 바 있는 문화인류학자 마리노프스키 교수의 보고에 따르면 트리브리안트 제도의 원주민들은 성교와 출산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근친상간이 금기로 되어 있는 종족 사이에서 이런 무지는 놀라운 것이지만, 인간을 충동질하는 에로틱한 쾌락의 욕망이 결코 종족보존의 본능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실례라 하겠다. 이처럼 본능적으로 지닌 에로티시즘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동정 혹은 순결을 고수한다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컬한 면이 없지 않기에 서구사회에서 프리섹스가 초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인간을 성의 쾌락 쪽으로 몰아세우는 육체적 욕망이 자연적인 것인 이상, 현대인의 쾌락 추구 트렌드를 부도덕한 것이라고 나무랄 것은 못 된다 하겠으며, 천부의 그 능력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 인간 역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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