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골프문화
| 일러스트:김희룡 | 지난 9월 초 주말이었다. 필자는 아내와 함께 금요일밤 경기도 포천의 모 콘도미니엄에 1박 2일 투숙했다. 다음날(토요일) 우리 부부는 콘도 측의 배려로 부킹타임을 받았는데 아침 7시. 그야말로 ‘황금타임’이었다. 평일에는 도착순으로 라운드하지만 주말에는 부킹이 필요하고, 콘도에 투숙하는 손님들에게는 ‘특별히’ 몇 개팀 정도는 사전 부킹이 가능했다. 그 골프장은 ‘비 스키시즌’에 스키장을 놀리기가 아까와 스키장을 개조해 9홀 퍼블릭코스를 만들었다. 2인 플레이도 허용된다. 2인용 골프카가 있어 둘만의 라운드 분위기는 그만. 주말이지만 9홀을 두번 도는 18홀 라운드 경비가 둘이 합해도 20만원이 채 안 되고, 평일에는 더욱 싸다. 콘도를 이용하면 또 30%가 할인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날 따라 새벽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비가 오니 매우 밀릴 거야”라며 우리는 (콘도에서 걸어서 5분거리도 안 되지만) 30분 전에 코스에 도착했다. 웬일일까? 코스엔 아무도 없었다. 프론트 직원에게 물어보니, “6시대에 두 팀이 나간 뒤, 이후 모두 라운드를 취소했다”며 “(당신들도) 취소해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이게 웬 찬스냐”며 우비를 걸치고 ‘황금주말에 둘만의 대통령골프’를 즐기기 시작했다. 9홀이 끝나도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약간 센 가랑비 수준으로 그 정도 비는 정규 골프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두번째 9홀 플레이를 시작한 지 한 시간쯤 뒤인 오후 1시쯤 비가 개이면서 순식간에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지는 가을의 맑은 하늘로 변했다. 우리는 미스샷이 났을 때는 볼을 2, 3개씩 치기도 했다. 칩샷도 여러번 해보고, 그린에서는 10∼20분 동안 머물면서 둘이서 내기퍼팅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 홀 그린에 와서야 뒷팀이 보였다. 필자 아내는 그날의 라운드를 지금도 황홀해한다. 10월 셋째주 주말에도 아침나절에 비가 왔는데 궁금해서 그곳 골프장에 전화를 걸어 봤더니 “지금 오셔도 된다”는 말이었다. 필자는 골프장 부킹이나 내장객에 대한 기사를 그동안 수없이 다뤘지만,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이해하기가 힘들다. 요즘, 특히 9∼10월은 평일부킹만 돼도 ‘인생에서 성공한 케이스’라고들 부러워한다. 그만큼 부킹이 어렵다. 그런데 부킹지옥의 와중에도 비가 조금 내린다고 외면하는 골프장이 있는 이유는 무얼까? 몇 년 전 뉴질랜드에 이민간 친구가 있는데 일시 귀국해서 필자에게 자랑했다. “6개월 동안 난 이글을 32번이나 했어. 그러나 그 친구는 술자리 말미에 “매일 이글하면 뭐하나. 봐주는 ×들이 있어야지…”라며 서글퍼했다. 우리의 골프는 남이 알아줘야 하는 게 라운드 의미의 하나인 것 같다. “나 이번 주말에 ○○CC로 운동나간다!”고 으스대고, 그 자랑을 부러운 눈초리로 듣는 장면이야말로 한국형 골프문화를 이해하는 핵심포인트일 것이다. “난 이번 주말에 9홀골프장 간다”고 하면 어쩐지 초라하고 품격이 떨어져 보인다. 그곳(퍼블릭코스)을 찾는 상당수의 골퍼들 생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런데 비까지 내린다? 비를 맞으며 퍼블릭코스에서 청승맞게 골프를 친다? “에이, 안 가고 말지….” 이 대목을 실감한 필자는 요즘 ‘우리의 골프문화는 어느 수준인가’에 대해 매우 헷갈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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