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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발이냐, 사업 확장이냐?

문어발이냐, 사업 확장이냐?

최근 롯데그룹의 잇따른 기업 인수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967년 롯데제과로 출발한 롯데그룹은 신격호 회장의 보수적인 경영으로 최근 수년간 재계 서열 10위권에 드는 내실 있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최근 롯데의 기업 인수 실적을 보면 임직원들조차 “이게 웬일이냐?”란 말을 할 정도로 사업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롯데는 지난 5월 말 5백억원에 외식업체 TGI프라이데이스를 인수, 패스트푸드 사업에 이어 먹는 장사에 본격 나섰다. 7월에는 미도파를 인수, 국내 유통업계 1위 굳히기에 나섰고, 경쟁업체에 밀려 실적이 부진한 롯데마트도 6개 점포를 추가로 개설, 할인점 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섰다. 하지만 역시 롯데그룹 사업 확장의 결정판은 지난 10월 동양카드를 인수한 것. 롯데는 지난 10월 말 동양그룹에 1천8백30억원을 주기로 하고 동양카드를 인수했다. 이로써 롯데는 90년대 후반부터 추진해 온 카드사업 진출의 꿈을 이뤘다. 재계에서는 롯데가 이처럼 사업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주력사업 강화와 후계구도 완성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롯데의 잇따른 기업 인수가 재벌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비칠 수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철저히 계산된 주력사업 강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롯데쇼핑 견제받아 롯데 관계자는 “미도파를 인수한 것은 롯데백화점의 영업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며, TGI프라이데이스를 인수한 것도 기존 롯데리아를 통한 패스트푸드 사업과 연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롯데마트의 점포망 확대와 동양카드 인수도 기존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호텔롯데가 신회장의 ‘혈육’으로 그룹 내 차지하는 위상이 높지만 롯데그룹의 간판은 여전히 롯데백화점의 운영법인인 롯데쇼핑이다. 롯데그룹의 후계자로 알려진 신동빈 부회장도 롯데쇼핑 지분 21.74%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다. 하지만 롯데백화점은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소공동 본점과 영등포점·부산롯데는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지만 강남점과 분당·부산세원·광주·대전·인천점 등은 경쟁업체에 밀려 실적이 저조하다는 것. 이 때문에 롯데백화점 경영진들은 매출을 늘리기 위해 영업을 강화했고, 이로 인해 공정거래법을 가장 많이 어긴 기업이란 오명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이훈평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시정명령을 가장 빈번하게 받은 업체가 롯데쇼핑이다. 1998년 이후 모두 17차례 시정명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부당 광고 등 불공정거래 행위가 15차례였으며, 불공정약관을 강요하거나, 업체간 부당공동행위를 한 경우도 각각 한 차례씩이었다. 롯데쇼핑은 지난 4월에도 백화점 매장 인테리어 비용을 입점업체들에게 떠안겼다가 시정명령을 받을 정도로 순이익을 남기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롯데관계자는 “시정명령을 자주 부과받은 것은 백화점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하고 소비자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업종의 특성상 업계 1위인 롯데쇼핑이 집중조사 대상이 돼 불이익을 받은 점도 있다”고 억울해 했다. 하지만 롯데쇼핑이 받은 시정명령이 소비자들과 직접 상대하는 현대자동차(15건)와 SK텔레콤(13건)보다 많다는 점을 보면 롯데 관계자의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롯데의 속을 태우고 있는 것은 할인점 사업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점포 수 기준 할인점 업계 2위인 롯데마트(30개)는 매출에서 최근 업계 4위인 삼성테스코의 홈플러스(20개)에 추월을 당했다. 할인점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올 들어 11월 초까지 매출액 2조원을 돌파하면서 매출액 2위이던 롯데마트를 앞질렀다. 효율적인 경영으로 자기보다 덩치가 큰 롯데마트를 따돌린 셈. 이승한 홈플러스 사장은 “성장 기반이 완성된 만큼 2005년까지 점포를 58개로 늘리고, 10조원의 매출액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롯데마트를 의식하는 것보다 이마트를 따라잡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카드사업 돌파구 될까 롯데그룹은 동양카드 인수는 롯데쇼핑의 복잡한 사정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돌파구로 보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신용카드 사업은 백화점 등 유통사업과 금융업, 호텔·면세점 등 서비스 사업, 외식사업·제과·음료사업 부문을 묶어줄 핵심축”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시너지 효과는 롯데백화점 카드 고객을 조만간 출범할 롯데카드 회원으로 전환하는 것에서부터 드러난다. 백화점 카드 회원이 5백50만명에 달하는데 이들이 모두 롯데카드 고객으로 전환되면 업계 선두인 LG와 삼성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부회장이 직접 롯데카드 출범 준비를 챙기고 있다는 전언이다. 롯데는 11월 말까지 동양카드를 실사한 후 오는 11월 말이나 12월 초 회사 이름을 롯데카드로 바꾸고 본격적인 신용카드 사업에 뛰어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백화점 카드사업부문을 통째로 동양카드로 넘길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업계에서는 롯데가 동양카드 인수에 총력전을 편 또 다른 이유는 동양카드의 매출채권에 대한 욕심도 한몫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는 최근 미도파를 인수하면서 5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쓴데다 할인점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추가자금 수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동양카드를 인수하면 동양카드의 매출채권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어 수천억원의 유동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동양카드는 지난 8월 말까지 누적적자가 2백20억원대로 이같은 부실기업을 롯데가 인수한 것은 매출 채권 회수와 신규사업 투자자금 조달 목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롯데의 신용카드 사업 진출 배경에 대해 최희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유동성에 대한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라며 “특히 카드업 진출은 당장의 현금박스 역할을 할 수 있어 대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5백50만 고객 확보 롯데의 신용카드 사업 진출에 대해 기존 카드사들은 롯데가 수익을 남기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LG와 삼성 등 선두업체보다는 중소형 카드사나 신규 카드사들이 훨씬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LG카드 관계자는 “회원 수가 3백만명을 넘어서면 수익 규모가 배 이상 나기 시작한다”며 “롯데가 막강한 자금력과 백화점 카드 고객 5백50만명을 사업 밑천으로 신규회원 유치에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기존 카드사들의 매출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LG와 삼성 등 대형사들은 롯데의 위협보다는 출혈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더 우려했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롯데의 카드업 진출이 기존 카드업계 지형을 뒤흔들 변수는 아니지만 롯데가 신규회원 유치 등을 위해 마케팅을 강화할 경우 기존 카드사들도 맞대응할 수밖에 없고, 이는 출혈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카드 업종이 이미 상승세가 꺾인 데다 연체율 상승, 수익성 악화 등 카드업계의 상황변화로 인해 자칫 롯데의 카드업 진출이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카드 발급기준 강화 등 정부의 각종 규제조치로 롯데가 신규회원을 모으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을 뿐더러 기존의 백화점 고객을 카드 고객으로 전환시키는 것도 만만찮을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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