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금융계 화두]자발적 합종연횡과 종합금융서비스
[2003 금융계 화두]자발적 합종연횡과 종합금융서비스
▶은행 중심 ‘종합 금융그룹’ 확산=국내 은행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형화에 그치지 않고 겸업화·복합화함으로써 종합금융그룹으로 변신하고 있다. 즉 은행이 예금과 대출 등 전통적 은행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을 중심으로 증권·보험·투신운용·신용카드·소비자금융·자산관리 등 모든 금융회사를 확보해 종합 금융업무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서비스의 종합화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덩치를 키워온 은행들이 주도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지난해 굿모닝증권과 조흥은행을 끌어들인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말 조흥은행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돼 최종 인수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신한은행은 금융지주회사(소속 자회사의 지분만 소유·관리하고 경영은 개별 자회사가 맡는 경영체제)를 내세워 은행·증권·캐피털·투신운용·신용카드 등 주요 금융업무를 모두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고객이 급증하고 있는 소비자금융에도 프랑스 BNP파리바그룹과의 합작을 통해 진출할 예정이다. 우리은행도 금융지주회사를 통해 금융서비스의 종합화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3월 국내 처음으로 은행 내 증권영업소를 개설해 한 곳에서 은행과 증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증권 부문과의 접목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은행 부문은 이미 옛 한일·상업·광주·경남은행 등 4개 은행을 거느리고 있다. 제2금융 업무로는 증권 외에 투신운용·종금·신용카드 등은 물론 전문자산관리회사와 금융정보시스템 회사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은행권에서는 금융의 종합화 과정에서 은행 이외의 취약한 부문을 보완하기 위해 증권·보험 등 비은행 금융회사를 경쟁적으로 인수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알리안츠그룹과 제휴해 보험업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10% 미만인 증권·투자신탁운용 등 비은행 부문을 30%로 늘려 2년 뒤에는 모든 금융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금융지주회사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2003년은 자발적 합병 원년=지난해까지의 금융산업 재편이 부실을 떨어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올 해부터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합병과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통합을 제외하면 지난해까지 성사된 은행 구조조정은 모두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으로 재편된 4개 대형은행은 금융업계의 블랙홀로 떠올랐다. 주요 은행들의 대형화·겸업화에 따라 공적자금 투입 은행과 경쟁력이 약화된 지방은행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 덩치를 키워온 것이다. 외환·한미·제일은행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은행들도 이 블랙홀에 빨려들어가지 않으려면 자발적인 금융회사간 합종연횡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당장 조흥은행을 인수한 신한금융지주에 밀려나게 된 우리금융지주와 하나은행이 가만히 안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의 민간 이양이 올 해부터 본격화하는 것도 은행권의 덩치 불리기 경쟁을 가열시키고 있다. 이중 최대 매물은 우리금융지주로 정부는 올 해 말까지 정부 보유지분을 50% 이하로 줄일 계획이며, 조흥은행의 정부지분 매각도 올 1분기 중 가닥이 잡히고 국민은행의 정부 지분도 추가로 매각된다. 은행 구조조정에는 이미 경제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유시왕 매각심사위원회 위원은 “인수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돈을 많이 주는 곳에 파는 데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흥은행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거 뒤 즉각 확정된 것도 경제논리가 어느 정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후보 시절 조흥은행의 매각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입장을 펴왔지만 금융산업 재편의 거센 물결 앞에 시장원리가 더욱 존중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이 자발적 재편을 가속화함으로써 제2금융권의 재편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중에서도 그동안 재편이 제대로 안 된 증권업계의 구조조정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 거래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는 수익구조가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의 종합화 과정에서 일부 증권사는 대형 은행에 인수될 가능성도 높다. ▶내부 구조 여전히 취약한 은행=국내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았던 은행들이 4개 대형 은행 중심으로 재편됐지만 내부 구조는 여전히 취약하다. 무엇보다 우리은행의 경우 금융지주회사로 거듭났지만 부실화된 은행들끼리의 결합이었기 때문에 아직 완전히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우량은행간 합병으로 출발한 국민은행도 올 해부터는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소매금융에 강한 은행끼리의 합병으로 시너지를 내왔으나 올 해부터는 가계대출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해까지 기업 부문의 부실은 상당 부분 정리되면서 은행 영업의 중심도 소비자 금융에서 다시 기업금융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미 시중은행들은 소규모 자영업자인 소호(SOHO)와 중소기업 가운데 우량한 곳으로 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 새로운 경쟁에서 어느 은행이 앞서나갈지는 신용조사 능력이나 기업대출 노하우가 우수한 은행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은행 도약에 눈 돌릴 때=국내 은행들이 글로벌 경쟁에 취약한 것은 더욱 큰 문제다. 국민은행이 처음으로 1백대 은행에 들어간 것을 제외하면 국내 은행은 여전히 규모가 작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은행이 덩치는 커졌지만 대출을 주요 업무로 다루는 상업은행(커머셜 뱅크)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형은행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인수업무·유가증권 투자·인수합병(M&A) 업무를 하는 투자은행(인베스트먼트 뱅크)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이나 해서는 금융산업이 낙후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은행들이 모두 부실화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도 부동산 담보대출에 치중한 탓이다. 따라서 국내 금융산업이 장기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자은행으로 성장해야 한다. 국내 금융업계에는 아직 투자은행이 없다보니 국제 금융거래 서비스는 주로 외국계 투자은행에 의존하며 막대한 수수료를 제공하고 있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외국 금융회사의 안방 공략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골드만삭스·알리안츠·JP모건·ING 등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이 국내 금융회사의 지분을 확보했다.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진출은 국내 금융산업의 재편을 가속화시키고 금융상품의 발달을 촉진하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외국자본을 국내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촉진하고 있다. 이제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자체적 경쟁력이 필요한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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