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디지털’의 도전과 시련
‘미스터 디지털’의 도전과 시련
서울공대 3대 천재 진장관의 어린 시절은 별로 알려진 게 없다. 스스로도 사생활에 대해 거의 언급한 적이 없다. 다만 머리가 뛰어나 어렸을 때부터 대성할 조짐이 보였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경남 의령의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뛰어난 머리 덕에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서울 공대 사람들은 농담삼아 진장관을 ‘서울공대 3대 천재’로 꼽는다. 유학시절에도 넉넉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장학금을 꽤 받아 외국 대학에서의 학업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일부 국비장학금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인생에 큰 변화가 온 것은 고 이병철 회장과의 만남이다. 1985년 이병철 삼성 회장은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해외의 고급 인재를 스카우트했다. 진장관은 이회장과 동향인데다 재미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인재라 삼성에서 손을 뻗쳤다. 당시 미국 IBM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있던 그가 삼성전자로 옮길 때 IBM 직원들은 “미쳤다”고 했다. 장래가 보장된 회사를 떠나 당시 무명이었던 삼성전자를 택하는 그의 행동은 무모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메모리반도체를 만들겠다고 큰 뜻을 품고 준비하던 단계였습니다. 이 때 제가 뭔가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의 도전정신은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년간 미국법인에서 근무한 뒤 87년 귀국하면서 그의 개발은 시작됐다. 이 때 그와 이병철 회장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87년 9월 초에 귀국했는데 9월 말쯤 국내 모든 신문에 ‘한국의 반도체 기술은 다 모방이다’라는 기사가 났어요. 저는 굉장히 화가 나면서 갑갑해졌죠. 아침에 이병철 회장이 그 신문을 보셨어요. 그 때가 폐암 말기 상황이라서 거동을 거의 못하실 때였거든요. 그 분이 신문을 보고 화가 나 "남쪽으로 가자"고 하셨대요. 당시 회장님이 가시는 남쪽이라면 자연농원을 우선적으로 꼽았죠. 그래도 혹시 몰라 반도체·기술원·삼성전자 등에도 갈지 모르니 준비하라는 연락이 왔어요.” 이회장은 이날 다른 곳은 들르지 않고 바로 반도체 연구실을 찾았다. 그는 회장실 의자에 앉더니 10여분 동안 아무 얘기 안 하다가 모여 있던 연구원들에게 경상도 사투리로 “봤제”라고 한마디 했다고 한다. 평생의 사업으로 반도체에 애정을 쏟던 이회장이 언론에서 모방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화가 나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연구소를 찾은 것이다. 그 때 진장관은 그 자리에서 이회장에게 맹세를 했다. “반도체를 잘 개발해 절대로 남의 것을 모방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맹세였죠.” ‘16메가D램 쿠데타’주역 90년은 반도체 경기가 좋지 않을 때였다. 당시 삼성은 비밀리에 16메가D램의 개발을 완성했다. 당시 삼성이 주로 팔았던 제품은 2백56KD램이었다. 그는 16메가 제품 30개를 들고 세계 최대 정보기술 기업인 IBM을 찾았다. 하지만 IBM은 삼성 제품을 우습게 보고 있었다. 불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먼저 1메가D램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거절당했다. 4메가 제품을 사달라고 다시 부탁했다. IBM이 비웃었다. 1메가 제품조차 제대로 못 만드는 삼성이 4메가 제품을 사라고 하니 가소로웠다고 한다. 진장관은 이 때 승부수를 던졌다. 가방에 감춰 두었던 16메가 제품을 꺼내 들었다. “IBM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군요. 한 임원이 이 제품을 들고 임원들이 회의하는 옆방으로 갔어요. 먼저 성능을 테스트하더군요. 제대로 작동되는 것을 확인하자 그가 임원들에게 물었답니다. 어느 회사가 개발한 16메가D램이냐고요.” IBM 임원들은 대부분 히타치나 도시바라고 답했다. 그러나 개발업체가 삼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삼성 제품을 구입해 주기 시작했다. 당시 ‘일렉트로닉 바이어 뉴스’에서는 이 사건을 ‘삼성, 16메가D램으로 쿠데타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후부터 삼성은 64메가D램·1백28메가D램·2백56메가D램을 잇따라 발표,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사내에서 카우보이 모자 즐겨써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진장관은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일에 몰입,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출근 전에 인터넷으로 세계 시황을 보고, 전자우편을 체크한 뒤 출근하는 자동차 안에서 미국 등 해외법인 근무자나 해외 거래처와 통화한다. 하루 회의가 보통 3∼4건. 신제품이 나오면 항상 갖고 다니면서 체크한다. 퇴근 때는 유럽지역과 통화, 유럽의 상태를 체크한다. 그는 해외에서 더 유명해 세계최대 가전쇼인 2002년 라스베이거스 CES에서는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기조연설을 했다. 당시 같은 기조연설자가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회장)·칼리 피오리나(HP 회장) 등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진장관은 종종 서부개척 시대의 상징이었던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회사에 나타나기도 했다. 상당히 튀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는 “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행동에서 도전과 변화를 보여주자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SF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자주 얻는다. 반도체 분야에서 성과를 거둔 뒤 그는 디지털미디어 네트워크 사업부로 옮겨 디지털가전 등의 개발과 판매에 공을 들였다. 새로운 도전이었다. 여기서도 VCR과 DVD가 결합한 콤보플레이어 개발 등으로 히트를 쳤다. 그의 좌우명은 일일학일일신(日日學 日日新)이다. ‘매일매일 배우면 매일이 새롭다’는 뜻이다. 지난 99년 미국 뉴저지에서의 일화다. 당시 일부 삼성전자의 임직원들이 뉴욕에서 열리는 PC전시회인 PC엑스포를 관람하고 진장관과 저녁을 하기로 했다. 전시회를 전날 먼저 본 임직원들은 이날 외부 사람들과 골프를 쳤다. 진장관이 이 사실을 알고 저녁자리에서 호통을 쳤다.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혀 회사를 위해 뭘 할지 고민해야 할 사람들이 골프나 치고 있다”며 화를 냈다. 당시 자리에 있었던 외부인은 “공부하지 않는다고 직원들을 나무라는 모습을 보고 그의 사람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독단의식 강하지만 독단적”지적도 그러나 일부에서는 진장관에 대해 “도전의식이 워낙 강하다 보니 가끔 독단적으로 나갈 때도 있다”고 말한다. 그는 토론도 좋아하고 남을 설득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판단만 믿다 보니 종종 일을 그르칠 때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알파칩 인수다. 알파칩은 과거 미국 디지털이큅먼트사가 개발한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다. 삼성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1위이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인수한 것이 알파칩이다. CPU는 비메모리반도체의 대표적인 제품. 하지만 당시 많은 임원들이 알파칩 인수를 반대했다. 이들은 인텔·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과 같은 경쟁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특유의 도전정신과 설득력으로 알파칩 인수를 성사시켰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파칩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진장관은 관료 경험도 전무하다. 그는 취임일성으로 ‘시장주의’를 내세우며 정부기관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있지만 관료사회의 높은 벽을 넘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한 정보기술 관련 연구소 연구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진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새로운 시도 중 하나다. 정통부 장관으로 그동안 세 명의 민간기업 사장 출신 인사가 임명됐다. 이 분들이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 진장관의 임명은 민간기업 출신 장관을 시험하는 최종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그가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면 민간기업 인사들의 중용은 일반화할 것이다. 하지만 진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아들의 병역면제·자신의 이중국적 등의 문제로 외부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았다. 이런 불리한 여건에서 그가 관료사회를 장악하고 도전적인 정책을 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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