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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무대뒤의 女傑들을 주목하라

[문화현장]무대뒤의 女傑들을 주목하라

제작자로 나선 배우 윤석화씨 / 윤석화씨가 제작한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
“시내에 40층 이상 건물이 어디어디 있는지 둘러보는 게 버릇이 됐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13층이라, 잘못 떨어졌다가는 죽지도 못하고 괜히 불구만 될 것 같아서… 내가 죽으면 불쌍해서라도 공연을 봐주지 않겠는가. 공연이 임박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져보는 생각이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제작·연출하는 윤석화씨가 주변 사람에게 하소연하며 하는 말이다. 총 제작비가 35억원에 이르는 이 작품의 공연을 앞두고 이라크전이 터져 갑자기 경기가 침체되자 윤씨는 요즘 울상이다. 비록 제작자로의 변신이 ‘눈부시게’ 이뤄지지 못하고 ‘눈물겹게’ 진행되고 있지만, 공연계 관계자들은 윤씨를 주목하고 있다. ‘명성황후’‘난타’‘지하철 1호선’을 잇는 국산 뮤지컬의 흥행신화를 이을 주자로 ‘토요일 밤의 열기’가 지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유령’‘레 미제라블’‘캣츠’ 등 대형 뮤지컬의 성공으로 영화계로 몰렸던 돈의 일부가 공연계로 유입되면서 모처럼 공연계가 활기를 띠고 있다. 변방으로 밀려났던 공연계가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공연계가 비주류에서 주류로 도약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여성 제작자들의 활약이다. 직배 영화에 처참하게 깨지던 한국 영화가 심재명(명필름)·김미희(좋은영화)·오정완(봄영화사) 등 여성 제작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전성기를 구가했듯이 공연계도 여성 제작자의 활약에 힘입어 도약을 꾀하고 있다. 공연계 관계자들이 꼽는 ‘무대 뒤의 야전사령관’은 배우 윤석화씨와 한국오페라단 박기현 단장·한국페스티발앙상블 박은희 음악감독·대구시립무용단 안은미 단장 등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리더십을 보여주며 무대를 호령하고 있다. 스타 배우였던 윤석화씨의 리더십은 ‘배우 지상주의’로 요약된다. ‘토요일 밤의 열기’를 제작하는 동안 그녀는 배우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토요일 밤의 열기’는 그 제작 과정이 바로 뮤지컬 제작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다. 수차례의 오디션으로 선발된 배우들은 1개월 동안 합숙하며 팀웍을 다졌다. 3개월 동안의 연습을 거친 뒤에는 2주 동안의 트라이아웃(시험 공연) 무대를 거친 후에 정식으로 막을 올렸다. 윤씨는 이 기간 동안 배우들과 동고동락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한국오페라단 박기현 단장의 리더십은 확실한 협찬사를 섭외해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정치력’이다. 구력 13년을 자랑하는 박단장의 섭외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비결은 크게 두 가지로, 장기 계획을 바탕으로 다른 기획사보다 먼저 협찬을 받는다는 것과 기업이 수긍할 만한 명분을 준다는 것이다. 제작자로서의 박씨 재능이 더욱 빛나는 것은 해외 무대에 공연을 올릴 때다. 2001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기념 공연을 일본 도쿄에서 연 그는 일본 문화재청의 지원까지 이끌어냈다. 일본 문화청은 3월2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한국오페라단이 일본 후지와라 오페라단과 공동으로 올린 오페라 ‘춘희’의 제작비를 지원했고 25억원에 이르는 무대도 무상 임대했다. 한국페스티발앙상블의 박은희 예술감독은 ‘탁월한 기획력’으로 리더십을 발휘한다. 1986년 박씨가 창단한 한국페스티발앙상블은 그동안 기획력이 탁월한 공연을 선보이며 실내악단의 교본이 됐다.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해설이 있는 음악회’‘못 말리는 음악회’‘춤이 있는 음악회’ 등 박씨가 기획한 공연은 그대로 공연계의 전범이 됐다. 대중에 다가가기 위한 음악회를 열지만 박씨는 함부로 대중의 수준에 영합하지는 않는다. ‘바흐를 재즈로’‘세익스피어 인 뮤직’‘어쨌든 튀는 음악, 현대 음악’‘니체의 사랑과 음악’ 등은 수준 있는 크로스오버 음악세계를 경험하게 해 줬다. 기획 공연의 성공으로 한국페스티발앙상블은 연간 1백 20회의 연주회를 소화하는 인기 악단이 됐다. 대구시립무용단 안은미 단장의 리더십은 조금 별나다. 그의 무기는 바로 ‘예술적인 끼’이다. 전위적인 현대무용 작품을 주로 발표했던 그가 지난 2000년, 가장 보수적인 도시 중의 한 곳인 대구시의 시립무용단장으로 임명되자 공연계 안팎이 술렁거렸다. 그가 뛰쳐나오든 대구시 공무원들이 그를 포기하든 둘 중 하나가 꺾이리라고 예상됐기 때문이다. 결과는 안씨의 완승이었다. 단장에 연임된 것이다. 예술가는 자기 세계에 빠져 있을 때 가장 큰 힘이 나온다고 생각했던 그는 기행을 고집했고 공무원들은 이에 굴복했다. 그는 여전히 빡빡머리로 돌아다녔고 공연 중에 가슴을 풀어헤쳤다. 평론가가 호평하고 관객이 열광하자 공무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3월 말과 4월 초, 이 공연계 여걸들은 일제히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이들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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