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기업들 고민은...]지배구조 ·노사문제 ‘앗 뜨거’

[기업들 고민은...]지배구조 ·노사문제 ‘앗 뜨거’

지난 3월10일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 5단체장과 오찬을 위해 손길승 전경련 회장(오른쪽), 박용성 대한상의회장(왼쪽)과 함께 정부 과천청사 내 오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캡션:“웃을 때가 좋았지…” 지난 3월10일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 5단체장과 오찬을 위해 손길승 전경련 회장(우)·박용성 대한상의회장(좌)과 함께 정부 과천청사 내 오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요즘 기업의 고민은 뭘까?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이라크 전쟁이다. 전쟁의 향방에 따라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이 달라지고 한국 경제도 그 영향권 안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라크 전쟁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또 다른 안테나가 가동되고 있다. 안테나가 쫒아가는 신호는 다름 아닌 현정부의 경제정책 방향. 전쟁이야 세계가 다 겪는 경기적 어려움이지만 새 정부의 경제정책은 그 방향이나 강도에 따라 기업의 사활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혁을 국정의 중심축으로 삼는 새 정부의 성격상 재계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아직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취임 한달이 지났지만 재계는 아직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이 무엇인지 파악하느라 여념이 없다. 예전 같으면 정책방향이나 운용 방식을 파악해 대응책 마련에 여념이 없을 때지만 이번엔 다르다. 실제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9일에, 금감위원장의 경우는 지난달 24일에 결정됐다. 아직도 부처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내기도 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새 정부가 등장한지 한달이 넘었는데 경제를 어떤 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겠다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같이 급박한 상황에 경제정책의 방향이 아직 불분명하다는 것이 말이 되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실제 노무현 정부의 경제팀은 입각하자마자 SK그룹 부당내부거래와 분식회계 수사, 두산중공업의 노사분쟁 등 현안을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게다가 카드빚을 중심으로 한 가계부채와 경기 침체 등 전방위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 중 재계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SK그룹 사태와 두산중공업 사태다. SK사태는 최태원 회장의 구속과 대주주의 주식 담보 제공 각서 등 고강도 조치로 일단 진정국면을 맞고 있다. 하지만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번 사태의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가 SK 문제에 촉각을 세우는 이유는 지배구조 문제에 관한한 ‘털어도 먼지 안 난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한화 계열사들이 대한생명 인수를 위해 조직적으로 분식회계에 참여했다는 참여연대 고발에 따라 이미 한화 재무담당 상무를 소환 조사하기도 했다. SK사태로 재계가 바짝 긴장하자 정부 일각에서 ‘속도조절론’을 내세워 일단 한화그룹 수사를 유보시킨 상태다. 일시 유보되긴 했지만 검찰이나 금감위 등에서 다시 칼을 뽑을 경우 해당기업으로선 적잖이 부담 되는 일이다. SK와 한화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는 기업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일부 시민단체는 삼성그룹도 후계 구도와 관련, 이재용 상무와 임원들에게 계열사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통한 증여행위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본무 LG 회장도 회사가 1백% 보유 중인 LG석유화학 지분 중 70%를 자신과 일가 친척에게 적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어 언제든 본격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시기적으로 상속 문제가 현안이 될 수밖에 없는 일부 그룹의 경우 현정부의 개혁강도와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몇 대에 걸쳐 키워온 기업을 자식한테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을 오너가 받아들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아마 이번 정권과 재계의 최대 쟁점은 상속과 지배구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두산중공업 노사문제도 타결은 됐지만 재계로선 불만이 많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두산사태 타결 직후 “두산중공업이 일부 해고자를 복직시키고 불법 행위에 대한 가압류를 철회키로 한 것은 노조의 불법 투쟁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며 이번 사태 해결 방식에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경총은 또 노동계가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가늠하기 위해 이번 사태를 장기간 끌어 온 점에 주목한다며, 올 춘투에서의 노동계 움직임을 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은 막대한 경영손실을 입으면서도 법과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가 중재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사측의 양보를 이끌어 낸 인상을 받았다”며 정부의 성급한 개입을 꼬집었다. 그는 이어 “정부의 지나친 중재 행위는 노사관계에 혼란만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앞으로 노동계의 집단적인 불법행위 등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지켜 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배구조 문제가 대기업에 국한된 것이라면 노동문제는 중소기업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기불황으로 고전하는 중소기업들도 이번 사태 해결 방식을 예의주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도 일산에서 휴대전화 부품을 만드는 한 기업의 사장은 “대기업은 불법 노동행위가 벌어져도 견딜 만한 힘이 있는지 모르지만 중소기업들은 한 차례의 불법 분규가 경영에 치명적일 수 있다”며 “새 정부는 노조의 불법파업 등에 대해선 적절한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처럼 재계는 이번 두 사태를 보면서 일단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당분간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방향을 좀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아직 정책을 판단할 시기가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 대기업 구조조정본부의 한 임원은 “이제 막 한달이 지난 시점에서 정부의 정책에 대해 논한다는 건 무리”라며 “기업 활동에 큰 지장이야 주겠냐”며 희망섞인 관측을 했다. 하지만 일선 CEO들은 최근 우리 경제 상황에 대해 일단은 비관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국내 전문경영인 모임인 ‘한국 CEO포럼’이 지난 3월25일 저녁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2003년 경제와 기업환경에 대한 전망’에 참석한 61명의 CEO들 중 60%가 현 경제 상황을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보고 있었다. 한국 CEO포럼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현정부 하에서 기업환경이 전보다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신규 투자계획은 41%가 ‘시장상황에 따라 대폭 수정을 계획 중’이고 18%가 ‘전면 유보하겠다’고 답한 반면 ‘일단 계획대로 진행하겠다’가 41%에 달해 상당수가 최근 국내외 불안정성 증대에 따라 투자계획 조정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새 정부의 집권 초기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44%가 북핵 문제에서 대미 공조체제 약화와 대안 부재를 꼽았다.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정책의 발표가 23%로 뒤를 이었고 성장과 분배 정책에 관한 입장 정리 모호와 노사정책의 불분명성이 각각 15%로 조사됐다. CEO들이 정책의 일관성 부재와 정부의 경제철학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일단 새 정부에 대한 재계의 시각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일부에서는 “정권 초에 으레 반복되는 일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봤다. 한 대기업 계열사 사장은 “기업인들 사이에는 칼자루 쥐고 있는 정부가 또 기업 길들이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팽배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가스요금 7월 인상될까…정부 “전기와 가스는 달라”

2‘소유진의 남자’ 백종원, 30년 키운 회사 ‘4000억’ 잭팟 노려

3이복현 “공매도 빠른 재개 원해…전산시스템 내년 1분기에나 가능”

4금감원·한은 채용 시험 대리 응시 쌍둥이 형제 결국 “들켰다”

5DGB대구은행 미얀마 자회사 직원 2명, 무장 괴한 총격에 숨져

6통신 3사가 슬로건 전면에 ‘AI’ 내세운 까닭은?

7상주감연구소, 다양한 감 가공품 선보여..."오늘 감잎닭강정에 감잎맥주 한잔 어때요!"

8‘원신’ 4.7 버전 업데이트…새로운 나라 ‘나타’ 예고편 공개

9대구시, 정밀가공 종합기술지원센터 준공...로봇-장비 무인화 "가속화"

실시간 뉴스

1가스요금 7월 인상될까…정부 “전기와 가스는 달라”

2‘소유진의 남자’ 백종원, 30년 키운 회사 ‘4000억’ 잭팟 노려

3이복현 “공매도 빠른 재개 원해…전산시스템 내년 1분기에나 가능”

4금감원·한은 채용 시험 대리 응시 쌍둥이 형제 결국 “들켰다”

5DGB대구은행 미얀마 자회사 직원 2명, 무장 괴한 총격에 숨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