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단독 인터뷰]“지배구조 안 고치면 재벌 문제 반복돼”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단독 인터뷰]“지배구조 안 고치면 재벌 문제 반복돼”
 |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단독 인터뷰 | 요즘 경제계의 뉴스메이커는 단연 강철규(58) 공정거래위원장이다. 강위원장은 거의 매일 각종 간담회와 모임에 참석해 재벌개혁에 대한 현 정부의 기조를 밝히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할 생각 없다” “부채비율 낮은 기업도 출자총액제한제도에서 예외로 인정하지 않겠다” “SK㈜ 사태는 재벌구조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지주회사 전환시 일부 계열은 독립시키는 것이 좋다” 등. 연일 터져 나오는 그의 발언들은 하나같이 주요 그룹들이 가슴을 쓸어내릴만한 내용들이다. 공정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재계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난 십수년간 재벌에 대해 연구한 ‘재벌 박사’가 공정위 위원장으로 오면서 재벌을 향한 공정위의 칼날이 어느 때보다 예리하고 날카로와 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강위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원칙론을 내세우며 재벌개혁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바짝 긴장한 재계는 강위원장과 공정위의 생각이 어떤지 요로(要路)를 통해 탐색하고 있다. 심지어 그가 예전에 썼던 책을 구해 그의 생각을 탐구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 검찰’이라고 불리는 공정위의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강위원장은 취임 후 처음 가진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공정위가 직접 호루라기를 불기보다는 시장이나 기업 내부의 견제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직접 완장을 차고 돌아다니는 대신 시장 스스로 자율 감시하도록 만들겠다는 것. 경기침체기인 지금이 주요 그룹 부당내부거래 조사 시점으로 적당하냐는 질문엔 “큰 문제없다. 요즘 상황이면 충분히 조사할 여건이 된다”고 개혁의지를 다졌다. 강위원장은 특히 “재벌의 지배소유구조 개혁 없이는 대증(對症)치료 밖에 안 된다”며 지배구조 개혁이 재벌개혁의 중심 과제임을 내비쳤다. 기자와 만나자 마자 ‘바쁘다 바뻐’를 연발한 그의 표정은 소신에 차 보였다. -먼저 소위 ‘재벌’에 대한 강위원장님의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과거 고도성장기의 재벌의 공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적된 문제점이 투명하고 공정한 선진 경제 도약에 부담이 되는 점도 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기업구조개혁을 추진한 결과 규모보다는 수익성을 중시하고 주주를 존중하는 등 기업의 경영전략 면에서는 상당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업집단 소유지배구조의 본질적 부분에는 변화가 미약합니다. 특히 총수가 적은 자본으로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은 후진국형 지배구조입니다. 이러한 지배구조 하에서는 시장 변화에 대한 반응이 느리고 과잉투자 위험이 상존합니다. 때문에 대기업 집단의 투명·독립경영이 확립될 때까지 지배시스템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여러 간담회나 언론보도를 통해 볼 때 위원장께서는 소유지배구조의 개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의 거래행위와 기업행위에 대한 규제보다 소유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뭡니까? “소유지배구조는 일종의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토대를 가지느냐에 따라 어떤 행동이 나오느냐가 결정됩니다. 투명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소유지배구조하에서는 기업행위 역시 투명성 확보나 공정성 확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고치지 않고 그때그때 문제만 고치는 것은 대증요법이죠. 지금 일어나고 있는 SK 사태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소유지배구조 개혁이 공정위의 주 임무가 된다고 보면 됩니까? “(망설이다) 그렇진 않습니다. 행태규제와 토대구조 변화를 같이 해 나갈 겁니다. 다만 근본적인 구조개혁 없이는 문제가 반복된다는 얘깁니다.” -소유지배구조 개혁과 관련해 특별히 염두에 둔 이상적인 기업 형태가 있습니까? “아직 명확한 안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TF팀을 통해 검토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개별 독립경영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도 많이 걸리고 현재로선 가능성도 그렇게 크지 않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대안이 지주회사죠.” -지주회사의 장점은 뭡니까? “소유지배구조가 투명해 집니다. 지금처럼 얽히고 설킨 순환출자를 통해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회사가 자회사의 지분을 가지는 단순한 구조죠. 자회사간의 출자는 금지됩니다. 물론 지주회사가 경제력 집중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닙니다. 우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에 만족하는 거죠. 이럴 경우 경제 전체가 좀더 투명하고 공정해지리라 봅니다.” -현행 규정 하에서는 일부 재벌의 경우 지주회사 설립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갑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습니까? “현실적으로 그런 어려움이 있다는 건 압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계열사를 그대로 다 가지면서 전환하려고 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될 경우 계열사간에 수평적으로 얽혀 있는 순환출자구조를 모·자회사간 수직적 구조로 세워놓기만 하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지주회사의 진정한 의미는 정리할 회사는 정리함으로써 보다 단순·투명한 출자구조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소유·지배구조 개선의 의미가 있고요.” -계열분리를 하라는 말인가요? “하라, 마라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하고싶은 데도 못한다면 그런 방법도 있다는 것이죠.” -정부에서도 뭔가 지원책을 내놔야 하지 않습니까? “지주회사 요건 완화를 TF팀에서 검토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업 집단이 지주회사 체체로 가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정부도 원하는 기업이 쉽게 전환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부채비율, 자회사 지분율 요건(상장 30%, 비상장 50%) 등의 설립요건 구비를 위한 유예기간과 범위를 확대할 예정입니다.” 강위원장은 당장에는 이런 변화가 급격한 것처럼 보여도 길게 보면 한국경제는 이 방향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변화의 예로 LG그룹을 들었다. “LG그룹도 이미 4년 전부터 지주회사를 준비해 왔다”며 다른 기업들도 그런 변화의 흐름에 순응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외부에서 변화를 추동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실물경기가 최악이라고 합니다. 재계에서는 이런 이유 등으로 개혁속도 조절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경제가 다소 어려운 국면에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개혁을 멈추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농기계나 집수리도 농한기에 하듯이 이럴 때 개혁을 추진하면 비용이 덜 들 수 있습니다. 기업도 어려울 때 군살을 빼는 구조조정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듯이 경제도 어려울 때 개혁을 해야 회복기에 경쟁력을 발휘할 튼튼한 기초체력이 다져집니다. 경제가 다소 어렵다고 개혁을 미루게 되면 나중에 보다 큰 댓가를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상황이라면 조사해도 큰 문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강위원장의 일관된 반재벌 행보에 불안감이 있습니다. 본인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일관된 반재벌 행보를 보인건 아닙니다. 제가 마치 무조건 재벌을 반대해 온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는 합리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그동안 고도성장에 대한 재벌의 기여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요. 다만 소유지배구조 등 현안 문제점의 개선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재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왜곡된 소유지배구조로 인한 경영의 투명성과 공정성 저해가 문제죠.” -‘투명·독립경영, 공정경쟁체제가 될 때까지 재벌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하겠다’고 업무보고에서 밝히셨습니다. 어느 정도가 돼야 그 기준을 충족하는 것입니까? 일부에서는 계량화한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그거야 시장에서 얼마나 견제와 균형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달렸지요. 특히 자본시장등 기업경영의 외부감시시스템과 주주·이사회의 내부감시 시스템이 작동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메커니즘이 잘 정비되고 기업의 의식과 관행이 변화해야된다고 봅니다. 특히 총수중심의 소유지배 구조 개선도 중요한 잣대입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3분기쯤에 계량적 지표를 포함 다양한 평가지표를 개발해 제시할 것입니다. 지금 예상으로는 약 3년 후에 이 평가를 근거로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시책 전반을 개편할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집단시책을 개편한다’는 말에는 대기업지정제도 폐지 등 재계에서 요구한 사항도 들어갑니까? “아직은 확정된 건 없습니다. 그때 가 봐야 알겠죠. 다만 3년 정도 지나 어느정도 개혁이 이뤄진다면 그런 요구사항을 포함해 대기업집단시책 전반을 바꿀수도 있겠죠.” -출자총액제한이 강화될 경우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진다는 논리가 있습니다. “재계에서 그렇게 주장하지만 좀더 정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오히려 대기업집단 내부지분율이 45%에 이르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경영권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봅니다. 또 현재와 같이 총수가 현금지분에 비해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는 경영권 위협이 작동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장규율 확립이라는 면에서 바람직한 측면도 있습니다.” 강위원장의 일관된 문제의식 중 하나는 대기업의 소유지배구조다. 강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투명성과 공정성’ ‘소유지배구조 개혁’을 얘기했다. SK의 경우도 실질적인 지분에 비해 과도한 소유지배구조를 형성해 왔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축구나 농구에서 보듯 심판이 너무 경기를 엄격히 운영하면 경기에 활력이 떨어집니다. 경제에서 심판 역할을 하는 공정위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텐데요. “동감입니다. 공정위도 창의적 기업활동을 방해할 정도로 간섭할 생각은 없습니다. 공정위가 호루라기를 불고 싶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기업 내부에서는 주주가, 외부에서는 채권은행단이나 경쟁기업이 감시하는 시스템이죠. 즉 시장제도를 통해 규제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외부 감시시스템이 작동되기 위해서도 지배구조의 개혁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지금처럼 총수의 말 한마디에 이사회·주주·채권은행단이 좌지우지되면 시장에 의한 규제는 물건너 갈겁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는 필요합니다.”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가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그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여러 가지 검토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분리청구권이 필요하다는 학자도 꽤 많고요.” -재계에서는 이 제도가 실현될 경우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업무보고에서도 ‘신중히 추진한다’고 했는데 실현가능성이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따른 폐해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동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제도에 대해서는 책임주체와 행위주체의 불일치 등 법리적 문제와 관련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 현재 민관합동의 TF에서 이 문제를 포함해 여러 가지 대안들을 함께 논의 중에 있고, 공정위 차원에서도 심도있는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TF 논의 등 충분한 의견수렴을 통해 도입 여부를 최종 결정할 생각입니다. 다만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만큼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요건이나 절차를 명확하고 엄격히 설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분리돼야 기업외부의 감시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은행이나 2금융권 등 채권단이 기업 경영을 감시·감독해야 하는 상황인데 금융기관이 재벌계열사일 경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쟁점사안에 대해 민관 태스크포스팀을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재계의 인사도 참여시켜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까요? “몇몇 쟁점사안의 경우 재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재계인사를 참여시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 생각입니다. 이럴 경우 의견대립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객관적인 자료와 논리에 맞게 토론한다면 상호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겁니다.” -한시적이었던 계좌추적권(금융거래정보요구권)의 상설화를 추진한다고 했습니다. 기업 측면에서 보면 감독기관이 하나 더 많아지는 셈입니다. 계좌추적권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고 보지는 않습니까? “내년 2월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금융거래정보요구권은 부당내부거래의 효율적 조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때문에 공정위의 실질적 활동을 위해 상설화 또는 기간연장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금융거래정보요구권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요구권의 발동요건이 엄격히 제한되고 피조사 기업이 아닌 금융기관을 발동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죠.” 금융거래정보요구권은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대규모기업집단 소속기업으로 한정되고 ▶부당지원 행위를 하였다는 상당한 혐의가 있는 경우에만 발동 가능하고 ▶금융거래정보에 의하지 않고서는 자금 등의 지원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발동이 가능하다. 공정위는 또 99년 도입된 이래 14회 발동하였으나 운용과정에서 기업으로부터 동 요구권의 남용이나 정보누설과 관련해 문제가 제기된 사례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측 입장에서 보면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기관에게 문제를 제기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공정위를 운영하는 큰 기조에 대해 한마디 해주시죠. “우선 시장개혁에 정책역량을 집중해야죠. 단기적인 처방보다는 명확한 목표와 비전 아래 방향성을 갖고 추진될 수 있도록 3개년 계획을 금년 가을까지 제시하겠습니다. 이를 토대로 기업의 투명과 독립경영을 유도하고 공정경쟁체제가 확립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개혁 속도는 보통의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강위원장은 “국제 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하고 공정한 경제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공정한 경쟁의 규칙이 지켜진다는 상호신뢰가 없는 시장경제는 모래위의 성과 같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그간의 개혁 추진결과 일부 성과가 나타나고 있으나, ‘시장이 신뢰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과는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신뢰도는 기업과 국가가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강위원장은 아직 우리 기업이 바꿔야 할 것이 더 많다고 보고 있다. 그것이 그가 공정위원장으로 오게된 이유 중 하나다.
<약력>약력> 1945년 충남 공주 生 서울대 경제학과 卒 美 노스웨스턴대 경제학 석·박사 80년 한국은행 입행 86년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 89년 서울시립대 교수 96년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97년 공정거래위 경제규제개혁위원회 위원 2000년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2002년 부패방지위원회 초대위원장(장관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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