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한국 금융시장의 ‘큰손’ 골드만삭스
[집중분석]한국 금융시장의 ‘큰손’ 골드만삭스
외평채 발행 주선에서 벤처 투자까지 골드만 삭스가 한국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이후부터다. 골드만 삭스의 존재를 세간에 널리 알린 고객은 대한민국 정부였다. 외환위기로 궁지에 몰린 정부는 달러 조달을 위해 외평채를 발행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천덕꾸러기로 몰린 정부를 위해 골드만 삭스는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40억 달러의 외평채 발행에 대한 자문에 응했다. 주요 다국적 기업들의 국내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에도 골드만 삭스는 자신의 얼굴을 빼놓지 않았다. 골드만 삭스는 지난 2000년 칼라일 그룹과 JP모건의 ‘콜세어 펀드’가 결성한 컨소시엄의 한미은행 지분 40.5%(미화 4억3천2백만 달러 규모) 매입, 다임러크라이슬러의 현대자동차 지분 10%(4억3천3백만 달러) 매입, 그리고 지난 1998년의 보워터 페이퍼의 한라제지(2억2천3백만 달러) 인수·합병 때도 자문역을 맡았다. 국내 기업간의 인수·합병 과정에서도 골드만 삭스의 행적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99년 정부의 빅딜 방침에 따라 LG반도체를 현대전자로 매각 작업을 했던 곳도 골드만 삭스였다. 서울은행의 매각 작업에도 참여해 주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인수·합병의 자문 역할과 더불어 국내 대기업들의 해외주식예탁증서(DR:미국 등 해외증시에서 다른 나라 기업의 주식을 직접 매매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덜기 위해 은행이 원주권(原株券)을 맡아놓고 그 대신 발행해서 유통시키는 증권) 발행에서 골드만 삭스는 독보적인 실적을 보였다. 지난 94년 삼성전자(1억 달러 규모)를 비롯해 SK텔레콤·LG칼텍스정유·현대자동차·삼성SDI 등의 해외예탁증서 발행을 주선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IMF 이후 국내 대기업들은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특히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가 강조되면서 해외에서의 자금 조달은 기업의 투명성 제고라는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며 “미국 시장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골드만 삭스가 주요 대기업들의 해외주식예탁증서 발행 업무를 따냈다”고 설명한다. 골드만 삭스는 우리나라의 금융위기를 이용, 적극적인 투자에도 나섰다. 투자는 단순히 금융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주식·부동산·부실채권 그리고 벤처기업 등 돈이 될 만한 곳에는 모두 투자했다. 사실 세계적 투자은행들의 사업영역은 전 영역을 아우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습을 골드만 삭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골드만 삭스가 직접 투자한 분야는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국민은행 등 금융 업종,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한 부실채권 매입과 부동산 투자, 그리고 벤처투자가 그것이다. 투자 시기는 대부분 IMF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 98년∼2000년 사이에 집중돼 있다. 99년에는 국민은행에, 98년부터 최근까지는 자산관리공사의 부실채권, 그리고 2000년에 주요 닷컴 기업에 투자했다. 이 중 성적표가 가장 좋은 것은 국민은행과 부실채권 투자였다. 지난 99년 주당 1만2백60원에 국민은행에 투자했던 골드만 삭스는 투자 4년 만에 최소 배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현재도 골드만 삭스는 국민은행의 지분 5.42%를 갖고 있다. 정부가 금융 구조조정을 위해 은행들의 부실채권을 자산관리공사에 넘기자 골드만 삭스는 모건스탠리 등의 투자은행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직접 투자하는 형식으로 부실채권을 적극 인수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자산관리공사 관계자들은 골드만 삭스가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한 전체 투자 규모는 4조원가량 되며 이 가운데 8천억∼1조원 정도가 골드만 삭스의 자금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부실채권 형태로 인수한 부동산 값이 올라 골드만 삭스는 짭짤한 투자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지난 2001년 4백78억원에 매입했던 대우증권 사옥을 호주 맥쿼리 부동산에 7백20억원 넘겨 3년새 무려 2백억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골드만 삭스 등 해외 투자기관들은 금융위기를 이용해 투자하는 데 탁월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 남아메리카·러시아·홍콩 등 위기가 발발했던 곳에는 늘 투자은행들이 있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반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에서는 코스닥 거품이 빠지면서 큰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만 삭스는 지난 99년부터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인터넷 기업에 대한 투자를 급속히 늘렸었다. 지난 99년에 중국의 3대 닷컴 기업인 넷이즈닷컴(Netease.com)·시나닷컴(Sina.com)·소후닷컴(Sohu.com)에 1천7백만 달러를 투자했지만 주가 폭락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다름 없었다. 골드만 삭스는 주당 8천3백원에 증권 포털 팍스넷에 투자했지만 팍스넷이 지난해 말 SK텔레콤에 인수될 때 주당 4천7백원을 받았다. 팍스넷에 투자했던 자금은 아시아지역에 투자하는 펀드 3곳이 담당했었다. 이외에도 골드만삭스는 리눅스원·배움닷컴 등의 벤처기업에 투자했지만 이미 대부분 손실로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기간 5년, 목표수익률 20%” 골드만 삭스의 투자는 매우 비밀리에 전개된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 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부실채권 입찰에 응하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때 회사 인원·자본금 등을 전혀 공개하지 않는다. 게다가 각 펀드별로 투자하는 탓에 펀드간에도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골드만 삭스 자금이라 하더라도 그 출처에 따라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본사가 있는 홍콩에서 들어오는 자금도 있고, 미국에서 직접 펀드를 구성해 들어오는 자금도 있다는 것이다. 골드만 삭스가 한국에 얼마를 투자했는지에 대한 통계도 없다. 골드만 삭스 측도 여러 형태로 투자를 하기 때문에 공식적 집계를 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투자한 부실채권에 약 1조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다는 게 어느 정도 드러난 윤곽이다. 골드만 삭스는 투자은행의 전형적인 투자 패턴을 한국에서 보여주었다. 일시적 위기로 가격이 싼 시점을 이용해 헐값에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들였다. 국민은행도 그렇고 부실채권을 통한 부동산 매입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적정 이익이 발생하면 곧바로 시장에 내다판다. 투자은행들이 조성한 펀드의 투자기간은 5년으로 20%를 목표수익률로 잡고 있다는 게 통설이다. 최근 골드만 삭스의 대우증권 빌딩과 국민은행 주식 매각 등을 보면 이런 통설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골드만 삭스 등 투자은행들의 행태를 두고 가치판단을 내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IMF 이후 부족한 외화를 조달하는 데 이들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공짜로 이런 도움을 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는 잘라 말하자면 돈을 좇는 것이다. 투자 패턴을 보면 탁월한 프로의 모습이지만 수익 달성 후 다시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국부(國富) 유출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골드만 삭스의 모습에서 개방화로 시작된 외국 자본 한국 진출의 명(明)과 암(暗)을 모두 읽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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