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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선발투수, 사위는 조커?

아들은 선발투수, 사위는 조커?

사위 경영인 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왼쪽부터 정태영 현대카드 부사장, 서정호 삼양식품 사장
안용찬 애경산업 사장, 남기태 KLS 사장 <일러스트:김회룡>
지난 6월13일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 밤 10시가 조금 지나자 오피러스 두 대가 미끄러져 나왔다. ‘아들과 사위’의 늦은 퇴근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의선(현대차 부사장 겸 현대카드 전무)씨와 둘째 사위 정태영 현대카드 부사장이 이제야 퇴근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요즘 신용카드 업계에서는 현대카드의 공격경영이 단연 화제다. 업계 전체가 부실채권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현대카드가 ‘M‘이라는 신상품을 출시하면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 이 회사 관계자는 “경쟁사들이 채권 회수한다고 해서 후발주자도 그렇게 하면 돈은 언제 버나. 이것이 후발주자의 어려움 아니겠느냐”며 소극적인 반응이지만 업계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골칫거리였던 증자 문제도 순조롭게 해결됐다. LG·국민카드 등이 그룹 계열사와 유상증자, 모기업과의 합병 문제로 고심하고 있을 때 현대카드는 이들보다 앞서 두 차례에 걸쳐 5천억원대 유상증자를 마무리했다.계열사인 기아자동차·INI스틸이 도와줘 큰 어려움 없이 정상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현대카드, 둘째 사위 부임하면서 '휘파람' 현대카드가 이렇게 휘파람을 부는 것은 이른바 ‘실세 경영인’이 옮겨오면서부터 일어난 일이다. 정태영(43) 부사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부사장은 정몽구(65) 현대차그룹의 둘째 사위다. 현대차 구매부본부장(전무)에서 지난 1월 자리를 옮긴 정부사장은 유상증자·신상품 출시 등 회사의 굵직한 현안을 주도하고 있다. ‘현대카드 M’을 출시할 때는 반투명 재질의 카드 디자인부터 “M도 없으면서”로 시작된 티저광고(회사나 제품 이름을 알리지 않은채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광고기법) 등 세세한 작업까지 직접 챙겨 화제가 됐다. 정부사장은 밤 9∼10시 퇴근을 일상사로 여기며 현대카드 정상화에 골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6개월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현대카드는 정부사장 중심체제를 갖췄다는 평가다. 전임 이상기 사장이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후 후임 사장이 임명되지 않은 데다, 정부사장에 대한 정몽구 회장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계열사들은 2년간 현대카드를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후문이다. 정회장이 사위 경영인들에게 애착을 가진 것은 ‘왕자의 난’ 이후부터라고 한다. 현대 계열사의 한 전직 임원은 “정회장은 이 때부터 ‘그래도 믿을 사람은 가족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회장은 1남 3녀를 뒀는데, 셋째 사위인 신성재(35) 씨는 현대하이스코 부사장으로 있다. 맏사위인 선두훈씨는 대전에서 선병원을 경영하고 있다. 두 사위는 지난 2001년 이후 정회장의 아들 의선씨, 조카인 일선씨(비앤지스틸 부사장)와 나란히 ‘1년에 한계단씩’ 승진했다. ‘사위 경영인’들이 뜨고 있다. 현대차그룹처럼 부실 계열사에 사위를 ‘구원투수’로 투입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들과의 의견 차이로 사위를 ‘조커’로 내세운 경우도 있다. 삼양식품이 이런 케이스다. ‘라면 1세대’로 유명한 삼양식품은 5월29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사장에 서정호(60) 삼양베이커탱크인터내셔널 회장을 임명했다. 대신 창업자 전중윤 회장의 장남으로 6년간 삼양식품 대표이사를 맡아온 전인장(40) 사장이 물러났다. 서사장은 전중윤(84) 회장의 맏사위다. 71년부터 삼양식품에 근무하면서 전회장 밑에서 삼양식품을 키워왔다. 그러나 부회장 근무 시절인 지난 89년 ‘우지라면 파동’이 나면서 회사를 떠났다. 따라서 서사장의 취임은 고향으로 ‘컴백’한 것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전회장이 아들 사장을 ‘자른’ 이유는 외자 유치를 놓고 갈등을 빚은 탓으로 알려졌다. 전사장이 화의를 겪고 있는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외자 유치를 추진하자 전회장이 “(외자 유치는) 국부유출이다. 그만큼 국가에서 돈이 새는 것이다”라면서 ‘자기편’인 사위를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서사장 취임 이후 내부적으로 회사가 오히려 더 활기차게 돌아간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신한은행 등 채권단과 협상을 벌여 4백억원에 대한 출자전환, 금리인하 등의 파격적인 지원을 받아냈다. 오너 입장에서 보면 사위의 경영 스타일이 아들보다 흡족했을 만도 하다. ‘장외시장의 대장주’로 각광받고 있는 코리아로터리서비스(KLS) 역시 사위의 활약이 돋보이는 회사다. 남기태(47) KLS 사장은 보잘 것 없던 종소기업을 ‘대박 회사’로 키운 인물이다. 남사장은 범양건영 집안의 사위다. 박시용(47) 범양건영 부회장이 남사장과 고교 동창이다. 나중에 남사장이 박부회장의 여동생과 결혼하면서 처남간이 됐다. 박희택(74) 범양건영 회장이 KLS에 투자하게 된 것도 이런 인연이었다. 로또복권 사업자인 KLS는 원래 즉석식 긁는 복권을 만들던 회사였다. 지난 1988년 설립돼 엑스포복권을 시작으로 은행·자치단체 등에 즉석복권을 독점 납품하면서 잘 나가는 듯했으나 즉석복권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회사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러던 것이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로또’의 사업권자로 선정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로또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KLS는 장외시장에서 6월 중순 현재 7만원대를 호가한다. 지분 19% 정도를 가진 남사장의 주식 평가액은 1천4백억원대. 범양의 지분은 이에 못 미치는 16%가량 된다. 아무리 장인과 사위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 금액이라면 남모를 갈등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KLS는 남사장의 회사”라고 못박는다. 그는 이어 “KLS가 어려울 때 ‘구두쇠 컬러’인 박회장의 도움을 별로 받지 못했다”며 “박회장은 사위를 통해서 복권사업을 한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실제는 남사장이 진두지휘하는 회사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재계에는 아들 못지 않게 활약하는 사위 경영인들이 많다. 질레트·쉬크 등과 맞붙어 면도기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홍주식(50) 도루코 사장 역시 사위 경영인이다. 토종 메이커인 도루코는 다국적 기업 브랜드가 시장을 평정하는 상황 속에서 ‘면도기의 대명사’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 8백억원대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99년 탁시근 회장이 작고하면서 최고경영자에 오른 홍사장은 기술 개발을 모토로 내세우면서 메이저 회사들과 험난한 싸움을 지휘하고 있다. 특히 남미·유럽시장에서 신제품 ‘윈3’ ‘터치3’ 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매출의 절반가량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경영엔 참여시키되 주식은 안 준다” 이들에 비하면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사위인 안용찬(44) 애경산업 사장은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았다. 안사장은 지난 95년 불과 36세의 나이에 국내 굴지의 생활용품 회사인 애경산업 대표이사에 올랐다. 지난 3월 장남에게는 그룹을, 차남에게는 유통을 맡기는 것으로 그룹의 후계 구도를 정리하면서도 애경산업은 계속 안사장에 맡기고 있다. 안사장은 2080치약·퍼펙트 등의 히트상품을 내놓으며 ‘믿음직한 사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 ‘사위는 회사 근처에 얼씬 못하게 하라’는 것이 대세다. 이동찬(81) 코오롱 명예회장은 1남5녀를 뒀지만 “사위가 회사에 들어오면 질서가 흐트러질 수 있다”며 딸들을 일찌감치 전문직업을 가진 의사·교수 등과 맺어주었다. 윤덕병(76) 한국야쿠르트 회장도 1남5녀를 두었지만 외아들인 윤호중(32) 전무만 회사 경영에 간여하고 있다. 대그룹 가운데 국내에서 사위가 대권을 이어받는 회사로는 동양이 유일하다. 작고한 이양구 회장은 슬하에 딸만 둘을 두었던 관계로 큰사위인 현재현(54)씨가 동양그룹을, 둘째 사위인 담철곤(48)씨가 제과를 중심으로 한 오리온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경영은 맡기더라도 주식까지 사위에게 맡기는(?) 오너는 거의 없다. 서정호 사장·안용찬 사장·정태영 부사장 등은 경영에 참여하면서도 회사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위 경영인 가운데 최대주주인 경우는 현재현 회장, 홍주식 사장 등에 불과하다. 그러난 이는 창업주가 작고한 뒤 받은 경우다. 부인인 이화경씨가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오리온그룹에서 담철곤 회장은 아직 ‘2대 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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