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한 M&A로 바람몰이
왕성한 M&A로 바람몰이
꿈은 이뤄졌다. 대형 건설사를 경영해보고 싶었다는 최용선 한신공영 회장은 외환위기를 기회로 평생의 꿈을 이뤘다.다음 목표는 ‘한신’이란 브랜드를 더욱 알차게 가꾸는 것이다.
고래를 삼킨 새우. 건설업계에서는 최용선(59) 한신공영 회장을 이렇게 부른다. 불과 8개월 전까지 국내 토목건설업계 400위권의 하도급 회사를 운영했던 그가 시공능력 25위권의 대형 건설업체를 거머쥐었으니 그럴 만하다. 임직원은 모두 합해야 20명, 기껏해야 매출이 100억원대인 협승토건을 경영하던 그가 한신공영을 인수했다. 덩치로 치자면 20배도 넘는 회사다. 그러다 보니 뒤에서 수군대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 회장은 그러나 “털끝만큼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며 “외환위기 덕에 오히려 기회가 일찍 왔다”고 잘라 말한다. 최 회장은 늘 큰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는 외환위기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용케 기업 인수 ·합병(M&A)의 기회를 잡고 간절한 소망을 앞당겨 이뤘다. 최 회장은 그래서 자신은 애당초 ‘새우’가 아니라 ‘새끼 고래’였다고 말한다.
인수자금 마련 못해 음식점 팔기도
최 회장은 우성그룹을 이끌었던 최주호 회장의 조카다. 전북 임실 출신으로 전주고와 명지대 경영학과를 나와 우성건설에서 사업이사를 지냈다. 10년 넘게 일했던 우성건설을 나와 협승토건을 세운 그는 주로 우성건설의 하청공사를 맡았다. 우성건설은 최 회장의 사촌동생이자 최주호 회장의 장남인 최승진씨가 설립한 회사다. 1990년대초까지 주택건설부문 1∼2위를 다투던 우성건설은 유통 ·제조업 등으로 발을 뻗쳤다가 과도한 채무 때문에 주저앉고 만다. 96년 우성건설이 부도나자 최 회장은 ‘모기업 인수’를 시도했다.
2000년 2월 ‘우성건설 인수준비위원회’를 구성, 미수금을 현물로 출자해 우성을 인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테면 ‘하청업체 연합군’이 원청업체를 인수한다는 기발한 구상이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건설업계 풍토에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법원은 우성의 특수 관계인인 최 회장이 인수준비위원장으로 나온 데 대해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며 협상을 거부했다. 결국 우성건설 인수 건은 최 회장에게 ‘가슴 아픈 과거’가 됐다.
그렇게 1년여를 와신상담하며 보낸 최 회장은 한신공영 인수에 공을 들였다. 지난 50년 출범해 건설 1세대로 꼽히는 한신공영은 97년 5월 부도나기 전까지 아파트 건설 명문으로 이름을 떨치던 회사였다. 한신공영은 아파트라는 말조차 낯설던 50년대부터 아파트를 지어왔다. 단일 단지로는 가장 규모가 컸던 신반포 한신타운이 바로 한신의 작품. 지금까지 전국에 18만 가구가 넘는 아파트를 공급해왔다.
“우성건설의 역사는 한신공영보다 20여 년이나 뒤지지만 두 회사는 여러모로 닮은꼴이었습니다. 외형도 비슷했고 특히 주택부문에서 경쟁력이 탁월했어요. 한신공영 역시 우성건설처럼 건설과 유통 사업부문이 함께 묶여 있었는데 시너지 효과가 없는 결합이었지요.” 2001년 8월. 최 회장에게 기회가 왔다. 한신공영의 채권단과 법원은 한신공영의 건설과 유통부문을 분할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2001년 10월 유통부문은 우선협상대상자인 세이브존 컨소시엄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새 주인을 맞았다. 건설부문 역시 비슷한 시기에 최 회장이 대주주인 코암C&C개발 컨소시엄과 MOU를 맺었다.
“코암C&C개발이라는 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설립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하지만 인수할 돈이 모자라 채권단과 협상→중단→재협상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2001년 8월 시작된 인수 협상은 지난해 10월에야 끝났어요.” 최 회장의 표현대로 ‘면장 ‘빽’도 동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수 협상은 자그마치 16개월이나 걸렸다. 인수할 돈이 문제였다. 납입자본금 650억원을 포함해 4,000억원대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경영하던 음식점인 ‘한국관’ 10여 곳을 처분하기도 했다. 연간 300억∼500억원의 매출을 올려주던 쏠쏠한 사업을 포기한 것.
인수 과정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루머와도 싸워야 했다. 특히 한신공영 임원진의 반발이 심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나서도 기업가치 재평가를 두 번이나 더 해야 했다. 자산관리공사측에서도 “이렇게 심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한 번은 코암C&C측의 자문회사였던 아서앤더슨이 ‘우선협상대상 선정을 취소한다’는 공문을 보내왔어요. 대주주인 자산관리공사도 아니고 법원도 아닌, 우군(友軍)이 벌인 일이라니 믿기지 않았지요. 결국 한신공영 임원들의 ‘공작’으로 밝혀졌지만요.”
우여곡절 끝에 최 회장은 대형 건설사 인수라는 오랜 꿈을 이루었다. 뚝심 센 최고경영자가 사령탑을 맡으면서 한신공영은 가파른 상승 커브를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재무구조가 좋아졌다. 1조원대에 이르던 빚은 2,0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반면 임직원들의 임금은 올랐다. “말 그대로 ‘어게인(again) 한신’이 필요했어요. 그러려면 임직원들 사기부터 올려야죠. 건설업계에서 15%대 임금 인상을 한 회사는 한신이 유일할 겁니다.”
지금이야 ‘통 큰 경영’으로 유명하지만 지난해 12월 취임 초기 최 회장의 모습은 여간 깐깐하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바깥에서 식사 약속을 잡지 않았어요. 그때는 10원 단위까지 직접 결재를 했어요. 회사를 빨리 파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결재를 하면서 직원들의 고충을 직접 들을 수도 있었지요.” 물론 지금은 대부분의 결재 권한을 팀장급에 넘겼다. 최 회장은 그러면서 직접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지금도 수시로 지방 출장에 나선다. ‘건설회사는 수주를 먹고 자라니, 무엇보다 수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소신이다.
최 회장은 전주시 인후동 주공아파트 재건축 수주 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모두 929가구, 1,100억원대 규모의 공사로 지방치곤 꽤 큰 수주 건이었다. “한신을 포함해 모두 3개 회사가 경쟁했는데 한 경쟁업체에서 한신은 자본금이 45억원이고 부채비율이 530%인 부실회사라는 비난광고를 했어요. 그러면서 2002년 9월 현재 금융감독원 발표라고 짤막한 자막을 달았더군요.”최 회장은 총회장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어디까지나 2002년 9월까지 얘기”라며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현재 한신은 자본금 495억원, 부채비율은 154%에 불과한 우량회사로 변신했다며 제안서를 읽어 내려갔다. 조합원 총회는 12시간 동안 계속됐고, 527명 가운데 363표(68.8%)를 얻은 한신이 경쟁사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최 회장이 올해 목표했던 수주액은 8,000억원. 5개월도 되지 않아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5월말까지 공시한 금액만 1조500억원. 협상은 끝났지만 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까지 더하면 2조원에 육박한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귀띔이다.
최 회장의 당면 목표는 잠원동 한신아파트 재건축 수주다. 6월말 한신공영은 서울사무소를 현재 충무로 극동빌딩에서 잠원동 65-3번지 옛 본사 자리로 옮긴다. 수주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 “지난 72년부터 20여 년 동안 한신공영이 본사로 쓰던 곳입니다. 신반포 한신타운을 개발하면서 한신은 아파트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재건축 수주에 성공해 한신이란 이름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겠습니다.”
수주도 수주지만 최 회장은 ‘다음 M&A’에도 관심이 많다. 최 회장은 “그동안 민간 건축 위주로 수주하다보니 관급 공사나 토목공사가 적었다”며 “두 부문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 그는 남광토건 인수전에도 뛰어들었지만 가격 등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그러나 이런 끊임 없는 M&A를 통해 ‘어게인 한신’을 넘어 ‘한신 바람’을 일으킨다는 복안은 지금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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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삼킨 새우. 건설업계에서는 최용선(59) 한신공영 회장을 이렇게 부른다. 불과 8개월 전까지 국내 토목건설업계 400위권의 하도급 회사를 운영했던 그가 시공능력 25위권의 대형 건설업체를 거머쥐었으니 그럴 만하다. 임직원은 모두 합해야 20명, 기껏해야 매출이 100억원대인 협승토건을 경영하던 그가 한신공영을 인수했다. 덩치로 치자면 20배도 넘는 회사다. 그러다 보니 뒤에서 수군대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 회장은 그러나 “털끝만큼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며 “외환위기 덕에 오히려 기회가 일찍 왔다”고 잘라 말한다. 최 회장은 늘 큰 건설회사를 경영하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는 외환위기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용케 기업 인수 ·합병(M&A)의 기회를 잡고 간절한 소망을 앞당겨 이뤘다. 최 회장은 그래서 자신은 애당초 ‘새우’가 아니라 ‘새끼 고래’였다고 말한다.
인수자금 마련 못해 음식점 팔기도
최 회장은 우성그룹을 이끌었던 최주호 회장의 조카다. 전북 임실 출신으로 전주고와 명지대 경영학과를 나와 우성건설에서 사업이사를 지냈다. 10년 넘게 일했던 우성건설을 나와 협승토건을 세운 그는 주로 우성건설의 하청공사를 맡았다. 우성건설은 최 회장의 사촌동생이자 최주호 회장의 장남인 최승진씨가 설립한 회사다. 1990년대초까지 주택건설부문 1∼2위를 다투던 우성건설은 유통 ·제조업 등으로 발을 뻗쳤다가 과도한 채무 때문에 주저앉고 만다. 96년 우성건설이 부도나자 최 회장은 ‘모기업 인수’를 시도했다.
2000년 2월 ‘우성건설 인수준비위원회’를 구성, 미수금을 현물로 출자해 우성을 인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테면 ‘하청업체 연합군’이 원청업체를 인수한다는 기발한 구상이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건설업계 풍토에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법원은 우성의 특수 관계인인 최 회장이 인수준비위원장으로 나온 데 대해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며 협상을 거부했다. 결국 우성건설 인수 건은 최 회장에게 ‘가슴 아픈 과거’가 됐다.
그렇게 1년여를 와신상담하며 보낸 최 회장은 한신공영 인수에 공을 들였다. 지난 50년 출범해 건설 1세대로 꼽히는 한신공영은 97년 5월 부도나기 전까지 아파트 건설 명문으로 이름을 떨치던 회사였다. 한신공영은 아파트라는 말조차 낯설던 50년대부터 아파트를 지어왔다. 단일 단지로는 가장 규모가 컸던 신반포 한신타운이 바로 한신의 작품. 지금까지 전국에 18만 가구가 넘는 아파트를 공급해왔다.
“우성건설의 역사는 한신공영보다 20여 년이나 뒤지지만 두 회사는 여러모로 닮은꼴이었습니다. 외형도 비슷했고 특히 주택부문에서 경쟁력이 탁월했어요. 한신공영 역시 우성건설처럼 건설과 유통 사업부문이 함께 묶여 있었는데 시너지 효과가 없는 결합이었지요.” 2001년 8월. 최 회장에게 기회가 왔다. 한신공영의 채권단과 법원은 한신공영의 건설과 유통부문을 분할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2001년 10월 유통부문은 우선협상대상자인 세이브존 컨소시엄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새 주인을 맞았다. 건설부문 역시 비슷한 시기에 최 회장이 대주주인 코암C&C개발 컨소시엄과 MOU를 맺었다.
“코암C&C개발이라는 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설립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하지만 인수할 돈이 모자라 채권단과 협상→중단→재협상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2001년 8월 시작된 인수 협상은 지난해 10월에야 끝났어요.” 최 회장의 표현대로 ‘면장 ‘빽’도 동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수 협상은 자그마치 16개월이나 걸렸다. 인수할 돈이 문제였다. 납입자본금 650억원을 포함해 4,000억원대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경영하던 음식점인 ‘한국관’ 10여 곳을 처분하기도 했다. 연간 300억∼500억원의 매출을 올려주던 쏠쏠한 사업을 포기한 것.
인수 과정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루머와도 싸워야 했다. 특히 한신공영 임원진의 반발이 심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나서도 기업가치 재평가를 두 번이나 더 해야 했다. 자산관리공사측에서도 “이렇게 심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한 번은 코암C&C측의 자문회사였던 아서앤더슨이 ‘우선협상대상 선정을 취소한다’는 공문을 보내왔어요. 대주주인 자산관리공사도 아니고 법원도 아닌, 우군(友軍)이 벌인 일이라니 믿기지 않았지요. 결국 한신공영 임원들의 ‘공작’으로 밝혀졌지만요.”
우여곡절 끝에 최 회장은 대형 건설사 인수라는 오랜 꿈을 이루었다. 뚝심 센 최고경영자가 사령탑을 맡으면서 한신공영은 가파른 상승 커브를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재무구조가 좋아졌다. 1조원대에 이르던 빚은 2,0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반면 임직원들의 임금은 올랐다. “말 그대로 ‘어게인(again) 한신’이 필요했어요. 그러려면 임직원들 사기부터 올려야죠. 건설업계에서 15%대 임금 인상을 한 회사는 한신이 유일할 겁니다.”
지금이야 ‘통 큰 경영’으로 유명하지만 지난해 12월 취임 초기 최 회장의 모습은 여간 깐깐하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바깥에서 식사 약속을 잡지 않았어요. 그때는 10원 단위까지 직접 결재를 했어요. 회사를 빨리 파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결재를 하면서 직원들의 고충을 직접 들을 수도 있었지요.” 물론 지금은 대부분의 결재 권한을 팀장급에 넘겼다. 최 회장은 그러면서 직접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지금도 수시로 지방 출장에 나선다. ‘건설회사는 수주를 먹고 자라니, 무엇보다 수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소신이다.
최 회장은 전주시 인후동 주공아파트 재건축 수주 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모두 929가구, 1,100억원대 규모의 공사로 지방치곤 꽤 큰 수주 건이었다. “한신을 포함해 모두 3개 회사가 경쟁했는데 한 경쟁업체에서 한신은 자본금이 45억원이고 부채비율이 530%인 부실회사라는 비난광고를 했어요. 그러면서 2002년 9월 현재 금융감독원 발표라고 짤막한 자막을 달았더군요.”최 회장은 총회장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고 “어디까지나 2002년 9월까지 얘기”라며 조합원들을 설득했다.
현재 한신은 자본금 495억원, 부채비율은 154%에 불과한 우량회사로 변신했다며 제안서를 읽어 내려갔다. 조합원 총회는 12시간 동안 계속됐고, 527명 가운데 363표(68.8%)를 얻은 한신이 경쟁사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최 회장이 올해 목표했던 수주액은 8,000억원. 5개월도 되지 않아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5월말까지 공시한 금액만 1조500억원. 협상은 끝났지만 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까지 더하면 2조원에 육박한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귀띔이다.
최 회장의 당면 목표는 잠원동 한신아파트 재건축 수주다. 6월말 한신공영은 서울사무소를 현재 충무로 극동빌딩에서 잠원동 65-3번지 옛 본사 자리로 옮긴다. 수주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 “지난 72년부터 20여 년 동안 한신공영이 본사로 쓰던 곳입니다. 신반포 한신타운을 개발하면서 한신은 아파트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재건축 수주에 성공해 한신이란 이름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겠습니다.”
수주도 수주지만 최 회장은 ‘다음 M&A’에도 관심이 많다. 최 회장은 “그동안 민간 건축 위주로 수주하다보니 관급 공사나 토목공사가 적었다”며 “두 부문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 그는 남광토건 인수전에도 뛰어들었지만 가격 등이 맞지 않아 포기했다. 그러나 이런 끊임 없는 M&A를 통해 ‘어게인 한신’을 넘어 ‘한신 바람’을 일으킨다는 복안은 지금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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