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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정신 · 글로벌리즘으로 무장

창조 정신 · 글로벌리즘으로 무장

도요타와 혼다는 모두 잘 나가는 일본 자동차업체지만 서로 뚜렷이 대비되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 혼다는 창업 이래 기술과 창조, 그리고 글로벌화라는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다.다소 보수적이며 모험을 꺼리는 도요타와는 전혀 다른 행보다.
혼다 자동차는 몇 년 전 자사의 주요 공장이 있는 미에(三重)현 스즈카(鈴鹿)시로부터 한 가지 호의적인 요청을 받았다. 스즈카시는 혼다가 시민들의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도요타 자동차의 도요타(豊田)시처럼 아예 시 이름을 혼다(本田)로 바꿔주겠다고 제안한 것이었다. 도요타의 경우 나고야(名古屋)시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떨어진 도요타시에 본사와 메인 공장이 있다. 원래 이름은 고로모(擧母)였지만 1959년 개명했다.

혼다는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기술과 창조, 그리고 글로벌 기업을 강조하는 혼다정신(혼다이즘)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전체 자동차 판매 대수의 70% 이상을 해외에 파는 혼다가 특정 도시의 이름을 혼다로 쓸 경우 글로벌 기업이라는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시대는 달랐지만 도요타와 정반대 결정을 한 셈이다. 지난 5월 18일 도쿄(東京) 세루린 타워 도큐 호텔에서 열린 혼다 신차 발표회에 세계 자동차업계의 눈길이 쏠렸다.

차량 추돌 위험을 줄이는 새로운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전방 100m 이내에서 주행하는 앞 차와의 거리를 레이저 센서로 측정, 추돌 가능성이 있으면 1단계로 운전자에게 경고음을 울린다. 2단계에선 가볍게 제동을 걸어주고 2, 3차례 안전벨트를 조이며, 그래도 추돌을 피할 수 없을 경우 3단계로 들어가 강하게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건다. 이 시스템은 6월말 시판에 들어간 신형 고급 세단 인스파이어에 처음 장착됐다.

혼다 관계자는 “고속도로 주행 때 졸음이 올 경우 이 시스템이 사전에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한 뒤 “앞으로도 혼다는 신기술로 또 다른 시장을 만들어 소비자를 즐겁게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혼다는 또 1990년대 후반부터 로봇 개발사업에도 진출, 사람과 거의 비슷한 동작을 하고 사람 인식 능력까지 갖춘 신형 로봇 ‘아시모(Asimo)’를 개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을 고를 때 단연 도요타곂Ⅴ鳴?꼽힌다. 두 기업은 업종은 같지만 너무나 다른 면이 많다. 그래서 혼다를 말하려면 도요타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혼다는 지난 회계연도(2002년 4월~2003년 3월)에 매출 8조 엔, 경상이익 6,000억 엔을 올렸다. 도요타의 절반 수준이다. 생산 대수는 293만 대로 세계 자동차업계 7위다. 이 중 70% 이상을 북미 시장에 팔았다. 미국 승용차부문만 따져 보면 도요타와 점유율(약 9%)이 거의 비슷하다. 일본 내 점유율은 25%에 불과하다. 모터사이클분야에선 지난해 808만여 대를 팔아 세계 1위다.

도요타는 지난해 680여 만 대를 생산, 미국 GM겿宕恙?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이 중 일본 생산이 60% 정도다. 혼다의 창업자 혼다 쇼이치로(本田章一郞)사장은 73년 고문으로 물러났다. 이후 선임됐던 사장 5명은 모두 이공계 출신이었다. 최근 임기가 끝난 요시노 히로유키(吉野浩行) 전 사장이 도쿄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고 후임인 후쿠이 다케오(福井威夫)사장도 와세다대 응용화학과 출신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혼다에선 이공계 출신이 아니면 사장이 될 수 없다는 게 불문율”이라며 “일본에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은 많지만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면에선 혼다를 따라올 기업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혼다는 회사 이름에서도 기술 중시가 드러난다. 일본 이름으로 혼다기켄코교(本田技硏工業)를 쓰고 있다. 반면 도요타는 이공계보다 상경계 출신 사장이 많다. 조 후지오(張富士夫) 현 사장이 도쿄대 법학과 출신이고 전임 오쿠다 히로시(奧田碩)사장(현 회장)은 히토쓰바시대 상학부를 졸업했다. 80년대 이전만 해도 이공계 출신이 더러 있었지만 덩치가 커지면서 관리와 비용 절감이 주요 이슈로 등장한 이후로는 상경계가 강세다.

혼다의 이공계 우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수년 간 유명 취업 잡지들이 명문대 이공계 졸업생을 대상으로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면 혼다는 항상 도요타를 제치고 소니와 1, 2위를 다퉜다. 반면 도요타는 3, 4위권에 머물렀다. 혼다는 신입사원도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권한을 주는데다 도요타보다 층층시하(層層侍下)가 덜 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혼다가 글로벌 기업에 더 가깝다는 인식도 있었다. 혼다는 인사 시스템 역시 미국 스타일로 빠르게 변화시켰다. 92년 일본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연봉제를 시행했다. 직급과 직위도 분리했다. 혼다 직원들의 명함을 받으면 팀장(부 · 차장급 이하로는 모두 팀원이다. 과장이라는 명칭은 직급일 뿐이다.

디자인에서도 혼다이즘은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해 말 혼다가 새로 내놓은 스쿠터 신제품은 주고객층인 20대를 겨냥, 과감히 20대에게 디자인을 맡겼다. 기존 스쿠터 디자인을 완전히 뒤엎고 스포티한 감각을 더해 바람을 일으켰다. 이 제품은 디자인 덕분에 동급 스쿠터보다 가격이 50%나 비쌌는데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혼다는 97년 혁신적인 디자인과 새로운 개념의 ‘오디세이’를 내놓아 공전의 히트를 쳤다. 당시 9인승 밴이나 승용차가 인기였는데 7인승 오디세이가 나오면서 ‘가족용 레저차량’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졌다.

경쟁 자동차 회사들은 앞다투어 오디세이를 카피, 비슷한 제품을 내놓았다. 지금도 오디세이는 인기가 높아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 판매 신기록을 경신했다. 도요타의 경우 기술 혁신을 통한 새로운 시장 개척이라는 전략을 잘 쓰지 않는다. 경쟁사가 새 시장을 개척하면 바로 따라잡는 ‘미 투(Me Too)’식 경영으로 유명하다. 혼다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문제에서도 앞서갔다.

혼다 쇼이치로는 은퇴하면서 대부분 주식을 회사에 무상증여했다. 이후 혼다는 오너 집안의 입김이 배제된 이사회에서 사장을 선발해 혼다 임원 중 혼다 성(姓)을 가진 사람은 현재 한 명도 없다. 물론 오너가 없는 것이 약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급변하는 세계 자동차업계에 빠른 의사 결정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데 오너가 없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에 대해 혼다는 이사회에서 선출된 사장이 모든 권한을 갖고 투자 · 신제품 개발 결정을 할 뿐 아니라 사업부마다 의사 결정 과정이 완벽히 분권화 되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사장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역할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반면 도요타는 도요타가(家)에서 대를 이어 사장을 맡고 있다. 창업자인 도요타 기이치로(豊田喜一郞)가 50년까지 사장을 역임했고 이후 동생과 비(非)오너 출신들이 번갈아 사장을 맡았다. 창업자의 장남인 쇼이치로 현 명예회장은 82년부터 10년 간 사장을 맡았다. 도요타 일가는 주식 지분이 1% 정도에 불과하지만 비오너 출신 경영자와 조화를 이루면서 도요타를 발전시켰다. 66년 일본 자동차업체로는 가장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한 혼다는 해외 생산에도 더 적극적이다. 미국 · 캐나다 등에서 생산한 자동차가 비용이 더 싸게 먹혀 일본으로 역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요시노 전 사장은 “혼다는 특정 분야에선 강하지만 아직도 (도요타에 비해) 작은 회사”라고 말한다. 경쟁사보다 30여 년 뒤늦게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어 도요타 · 닛산(日産)처럼 풀 라인업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새로운 틈새시장을 계속 찾아야 하고 특화된 자동차를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오디세이의 후속 모델을 발표하는 올 10월에 진일보한 혼다이즘을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혼다는 글로벌 전략에 따라 90년초 세계 최고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원(F1)에 진출, 여러 번 우승했다.

1948년 오토바이와 각종 엔진 제작업체인 혼다를 창업한 혼다 쇼이치로의 꿈은 자동차가 아닌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군정이 들어서고 일본의 산업 구조조정으로 아예 항공기 산업은 봉쇄되었다. 이때문에 혼다가 67년 뒤늦게 시작한 ‘대타(代打)’가 자동차다. 그래서 혼다는 90년대 후반 중형 항공기 엔진을 생산하는 사업부를 새로 시작했다. 혼다는 끊임없이 꿈을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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