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처럼 배우고, 배운대로 일한다”
“실전처럼 배우고, 배운대로 일한다”
미국 코넬대학교 존슨경영대학원(존슨 스쿨)의 ‘투자은행’ 과정에 지원한 학생은 누구나 펀드매니저가 된다. 250명의 학생들은 저마다 수백만 달러를 들고 학기 내내 이곳 저곳에 투자하느라 진땀을 뺀다. 9 ·11 테러로 증시가 폭락했을 때 울상을 짓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자 보잉과 노스럽 그루먼에 투자한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하지만 분식회계로 망한 엔론에 투자했다가 밑천을 송두리째 날린 학생이라도 빚더미에 앉는 일은 없다. 어차피 모의투자이기 때문이다. 대신 보기좋게 ‘F’ 학점을 받을 것이다. ‘투자은행’ 과정에 ‘이럴 땐 이렇게 투자하라’는 지침은 커리큘럼 어디에도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학생 스스로 직접 펀드를 운용해보는 것이다. 물론 학생 3명당 1명의 지도교수가 달라붙어 모든 투자과정을 체크한다.
‘경험을 통한 숙련(mastered through experience)’. 바로 존슨 스쿨의 모토다. 경영 현장에서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을 목표로 한다는 얘기다. 졸업생들이 학교를 나오자마자 바로 현업에서 일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1999년 시작된 프로그램인 ‘현장밀착 교육(Immersion learning)’에서 이런 시스템을 엿볼 수 있다. 학생들을 실제 상황에서 훈련시킨다.
ABN암로 은행의 김석현 차장은 “미국 제약사인 머크사에서 실습을 했다”며 “당시 머크가 관심을 보인 신약을 개발하는데 투자하는 것이 타당한가를 따지는 컨설팅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존슨 스쿨에는 펀드를 조성해 투자를 실습하는 투자은행 과정을 비롯해 창업가 과정, 브랜드 경영 등 모두 6개 프로그램이 개설돼 있다. 학교측에선 현업의 전문가들을 통해 수시로 교육 과정이 현실과 부합하는 지를 검증한다.
존슨 스쿨은 2년제 정규 경영학석사(MBA)과정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자연과학이나 공학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딴 학생들이 1년 안에 MBA를 받을 수도 있게 했다. 학생들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타전공과 연계된 부동산전문 MBA과정, 인적자원 전문 MBA과정도 개설했다. 물론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수요가 있는 분야만을 대상으로 이같은 과정을 도입한다.
코넬대는 아이비리그에 속한 명문이다. 뉴욕주 이타카 시에 위치한 캠퍼스 북쪽엔 카유가 호수가 있다. 호수 주변은 1960년대 TV시리즈 <타잔> 의 촬영지였을 정도로 숲과 계곡이 장관이다. 정운오 서울대 교수는 “재학 시절 카유가 호수에서 오랜만에 김치를 마음껏 먹고 밤새 물을 들이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한다. 캠퍼스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거리에 나이애가라 폭포가 있다. 학부모들은 코넬대를 방문했다가 나이애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되돌아간다.
코넬대 주변 명소 중에는 ‘스태들러’ 호텔이 있다. 150개 객실을 갖춘 이 호텔은 코넬대 호텔경영학과의 교수와 학생들이 직접 운영한다. 역시 현장학습이다. 학생들이 실습하는 호텔이라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거라는 추측은 오산이다. 호텔의 하루 투숙료가 150달러로 싸지 않지만, 평균 객실 점유율 82%를 자랑한다. 코넬대는 호텔경영학과를 미국 최초로 개설하고 1위를 고수해 왔다. 실용적 학문을 중시하는 코넬의 학풍을 잘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존슨 스쿨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기 위한 노력과 함께 여성 ·소수인종 참여에 대한 배려도 각별하다. 오래전부터 학생 선발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해왔다. 무엇보다 여성과 소수 인종의 입학이 쉽도록 적극 배려한다. 이들의 입학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를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김진원 크레디스위스 퍼스트보스턴(CSFB) 서울지점 상무는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을 느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오히려 학교가 의식적으로 학생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해 가르친다”고 말한다.
존슨 스쿨 출신의 한국 동문은 70명 정도다.서경배 태평양 사장, 김정 삼양제넥스 상무, 이호진 태광산업 사장 등이 존슨 스쿨을 나온 대표적인 2세 경영자다. 장득수 신영증권 압구정지점장, 미국 월가에서 활동하는 김병수 싯킴 인베스트먼트 고문을 비롯, 장득수 신영증권 압구정 지점장 등 금융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졸업생들도 여럿이다. 그 밖에 이만수 호텔 신라 사장, 차석용 해태제과 사장도 존슨 출신이다. 차 사장은 “코넬대 출신들은 주위에서 흔히들 말보다는 행동을 앞세우는 인물들로 평가받는다”며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존슨 스쿨 동문들의 학교 사랑은 유별나다. 코넬대의 전체 동문들이 현재까지 모교에 낸 기부금만 34억달러나 된다. 아이비리그 내에서 하버드와 기부금 순위 1,2위를 다툰다. 존슨 스쿨만 놓고 보면 1억1,500만달러가 넘는다. 코넬대 동문은 누구나 자신의 자녀들이 코넬대에 대를 이어 합격하기를 희망한다. 매년 많은 기부금을 내는 것도 혹시라도 자신의 자녀가 다닐 수도 있는 학교에 대한 투자라는 생각에서다.
경영대학원 이름도 동문인 S. C 존슨이 자신의 모교에 거액을 기부하자 그의 이름을 따서 바꾼 것이다. 이런 모교 사랑은 한국 동문들도 예외는 아니다. 동문회 이름으로 매년 상당한 돈을 학교에 기부한다. 존슨 스쿨과 한국 동문회와의 관계도 매우 유기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학장을 비롯한 학교의 주요 관계자들이 정기적으로 한국을 찾아온다. 우수한 인재의 유치나 존슨스쿨 졸업생의 취업 등을 부탁하고 서로의 관심사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이다.
존슨 스쿨은 1946년 설립된 과정으로 한 학년 정원이 250명 남짓밖에 안 된다. 이처럼 정원이 적은 것은 동문간 평생 지속할 수 있는 관계를 맺도록 하려는 의도다. 실제로 졸업 후에도 동문 모임은 활발하다. 한국 동문들 역시 분기마다 모임을 갖는다. 동문들끼리 추억도 되살리고 정보도 교환한다. 동기별로 골프 모임 같은 소모임 활동도 자주 벌인다. 존슨 스쿨에 입학하려는 한국인 학생들에게 인터뷰와 입학 사정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데도 적극적이다.
“몸집 줄이며 투자하는 법 배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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