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보다 ‘벌처’ 뜬다
‘벤처’보다 ‘벌처’ 뜬다
경기가 더 암울해지고 있다. 요즘 벤처캐피털리스트(VC)들이 투자하는 회사를 보면 대개 회사정리법상 ‘강제조정(cram-down)’ 절차에 들어간 것들이다. 이럴 경우 사실 손해를 보는 쪽은 기존 주주다. 신규 투자자는 곤경에 처한 업체를 낮은 가격으로 평가하곤 한다. 오늘날 강제조정에 들어간 기업들은 대개 새 투자자 손으로 넘어간다. 인수하는 쪽은 공격적인 기업인수 전문업체다.
강제조정 기업들은 독일의 뮌헨, 영국의 런던, 인도의 뭄바이(옛 봄베이)보다 실리콘밸리에 더 많다. 하지만 폭락한 그들 업체의 주식 냄새를 맡은 ‘벌처들’(파산한 기업이나 경영위기에 처한 기업을 싼 값으로 인수해 정상화시킨 뒤 비싼 값으로 되파는 자금으로 썩은 고기를 먹고사는 독수리의 습성에 비유해 붙여진 이름이다)이 그야말로 독수리처럼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다.
일례로 통신분야 신생기업 가운데는 한창 잘 나갈 당시 가치의 10% 이하로 팔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기존 주주들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손해를 감수하고 손뗄 것인지, 더 투자해 주주로 남을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P2P’는 그나마 가능성이 남아 있을 때 ‘수익을 낼 수 있는 길’(path to profitability)이라는 뜻이었지만 이제 ‘게임하려거든 돈부터 내라’(pay to play)는 뜻으로 바뀌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것은 VC들이 현란한 은어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하다는 점이다.
강제조정에 들어간 기업들은 그래도 숨을 쉰다. 창업주에게 옵션 같은 특혜를 베풀기도 한다. 그 정도면 벤처투자를 받은 다른 업체들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다. 증시가 한창 뜰 때 등장한 어리석은 신생 기업들 대부분이 이제 사라지고 없다. 런던 증시와 나스닥에 상장된 영국 케임브리지 소재 인공지능 개발업체 오토노미(Autonomy)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이클 린치(Michael Lynch)는 “자금을 추가로 조달하거나 다른 기업에 매각될 수 있는 기업이 있지만 VC는 대개 그들을 갈 데까지 몰고 간다”고 귀띔했다.
벤처투자자들이 그런 신생 기업을, 결국 자신의 투자자금을 연기로 사라지게 만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런 기업의 경우 매각이나 재투자 유치 때 형편없이 떨어진 가격으로 기업가치를 재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벤처펀드는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현 시장가치를 알려줘야 한다. 대개 상식에서 벗어난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일부 VC는 2000년 수준으로 투자가치를 평가하면서 손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린치는 “곤경에 처한 기업이 아예 사라질 경우 VC는 타격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공개(IPO)로 끌어 모은 자본이 아직 남아 있는 신생 기업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벌처들은 공모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그들 기업의 주식을 사 모았다 기업 해체나 배당을 요구하기도 한다.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국의 인터넷 보안업체 엔사이퍼는 대규모 감자계획을 발표했다. 엔사이퍼는 시가총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금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줄 계획이다. 그렇게 큰돈을 돌려줄 경우 기업발전에 필요한 자금이 고갈될 수 있다.
요즘은 자금을 끌어오기가 어렵다. 현재 형성중인 신규 자본 규모가 2000년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그나마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떠돌고 있는 자본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아시아에서는 100억달러가 실제 사용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기침체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지 모른다. 해외로 진출할 생각을 갖고 있는 기업인이라면 국내 사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도의 경우 특히 그렇다.
인도는 현재 세계의 핵심 지원 기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요즘 노련한 VC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주로 아시아에서 활동한다. 단순히 투자할 곳을 찾으려는 게 아니다.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H&Q 아시아 퍼시픽(漢鼎亞太創投公司)의 쉬다린(徐大麟) 회장은 지난 3월 중순 중국 상하이(上海)로 향하던 중 본지와 가진 회견에서 자신에게 투자하는 사람들 가운데 아시아 출신이 많다고 귀띔했다.
쉬는 “요즘 그나마 장사가 될 만한 곳이 바로 중국”이라고 말했다. 중국에는 강제조정 기업도 없다. 쉬는 중국이 “기술 부문에 관한 한 용의 꼬리”라며 “병든 곳은 용의 머리”라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 사모투자펀드 시장인 미국의 경우 신규 자금 가운데 대부분이 신생 기업보다 기업 매점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 7월 블랙스톤은 65억달러라는 기록적인 기업 매점 펀드를 끌어 모았다.
이는 J P 모건 파트너스의 80억달러 다음으로 큰 규모다. 이런 펀드 가운데 대부분은 차입 기업 매점, 폭락한 자산, 파산기업으로부터 돈을 번다. 이는 벌처투자의 교과서적인 정의와 딱 맞아떨어진다.
잔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비즈니스 크리에이션 같은 벌처업체는 시장 청소 기능을 담당한다. 벌처업체들은 누구도 원치 않는 기업, 다시 말해 팔리지 않으면 파산할 수밖에 없는 기업을 매입한다. 그러나 벤처자본 역시 주기를 탄다. ‘메뚜기도 한철’이듯 벌처의 시기도 언젠가 끝나게 마련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제조정 기업들은 독일의 뮌헨, 영국의 런던, 인도의 뭄바이(옛 봄베이)보다 실리콘밸리에 더 많다. 하지만 폭락한 그들 업체의 주식 냄새를 맡은 ‘벌처들’(파산한 기업이나 경영위기에 처한 기업을 싼 값으로 인수해 정상화시킨 뒤 비싼 값으로 되파는 자금으로 썩은 고기를 먹고사는 독수리의 습성에 비유해 붙여진 이름이다)이 그야말로 독수리처럼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다.
일례로 통신분야 신생기업 가운데는 한창 잘 나갈 당시 가치의 10% 이하로 팔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기존 주주들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손해를 감수하고 손뗄 것인지, 더 투자해 주주로 남을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P2P’는 그나마 가능성이 남아 있을 때 ‘수익을 낼 수 있는 길’(path to profitability)이라는 뜻이었지만 이제 ‘게임하려거든 돈부터 내라’(pay to play)는 뜻으로 바뀌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것은 VC들이 현란한 은어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하다는 점이다.
강제조정에 들어간 기업들은 그래도 숨을 쉰다. 창업주에게 옵션 같은 특혜를 베풀기도 한다. 그 정도면 벤처투자를 받은 다른 업체들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다. 증시가 한창 뜰 때 등장한 어리석은 신생 기업들 대부분이 이제 사라지고 없다. 런던 증시와 나스닥에 상장된 영국 케임브리지 소재 인공지능 개발업체 오토노미(Autonomy)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이클 린치(Michael Lynch)는 “자금을 추가로 조달하거나 다른 기업에 매각될 수 있는 기업이 있지만 VC는 대개 그들을 갈 데까지 몰고 간다”고 귀띔했다.
벤처투자자들이 그런 신생 기업을, 결국 자신의 투자자금을 연기로 사라지게 만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런 기업의 경우 매각이나 재투자 유치 때 형편없이 떨어진 가격으로 기업가치를 재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벤처펀드는 투자자들에게 기업의 현 시장가치를 알려줘야 한다. 대개 상식에서 벗어난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일부 VC는 2000년 수준으로 투자가치를 평가하면서 손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린치는 “곤경에 처한 기업이 아예 사라질 경우 VC는 타격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공개(IPO)로 끌어 모은 자본이 아직 남아 있는 신생 기업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벌처들은 공모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그들 기업의 주식을 사 모았다 기업 해체나 배당을 요구하기도 한다.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국의 인터넷 보안업체 엔사이퍼는 대규모 감자계획을 발표했다. 엔사이퍼는 시가총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금으로 주주들에게 돌려줄 계획이다. 그렇게 큰돈을 돌려줄 경우 기업발전에 필요한 자금이 고갈될 수 있다.
요즘은 자금을 끌어오기가 어렵다. 현재 형성중인 신규 자본 규모가 2000년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그나마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떠돌고 있는 자본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아시아에서는 100억달러가 실제 사용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기침체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지 모른다. 해외로 진출할 생각을 갖고 있는 기업인이라면 국내 사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도의 경우 특히 그렇다.
인도는 현재 세계의 핵심 지원 기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요즘 노련한 VC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주로 아시아에서 활동한다. 단순히 투자할 곳을 찾으려는 게 아니다.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H&Q 아시아 퍼시픽(漢鼎亞太創投公司)의 쉬다린(徐大麟) 회장은 지난 3월 중순 중국 상하이(上海)로 향하던 중 본지와 가진 회견에서 자신에게 투자하는 사람들 가운데 아시아 출신이 많다고 귀띔했다.
쉬는 “요즘 그나마 장사가 될 만한 곳이 바로 중국”이라고 말했다. 중국에는 강제조정 기업도 없다. 쉬는 중국이 “기술 부문에 관한 한 용의 꼬리”라며 “병든 곳은 용의 머리”라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 사모투자펀드 시장인 미국의 경우 신규 자금 가운데 대부분이 신생 기업보다 기업 매점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 7월 블랙스톤은 65억달러라는 기록적인 기업 매점 펀드를 끌어 모았다.
이는 J P 모건 파트너스의 80억달러 다음으로 큰 규모다. 이런 펀드 가운데 대부분은 차입 기업 매점, 폭락한 자산, 파산기업으로부터 돈을 번다. 이는 벌처투자의 교과서적인 정의와 딱 맞아떨어진다.
잔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비즈니스 크리에이션 같은 벌처업체는 시장 청소 기능을 담당한다. 벌처업체들은 누구도 원치 않는 기업, 다시 말해 팔리지 않으면 파산할 수밖에 없는 기업을 매입한다. 그러나 벤처자본 역시 주기를 탄다. ‘메뚜기도 한철’이듯 벌처의 시기도 언젠가 끝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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