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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눈 돌려라!

해외로 눈 돌려라!

주식시장이 바닥인데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재테크 수단이 마땅찮다. 북핵 문제, 새 정부 출범 등으로 정세도 불안하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투자 상품들이 탈출구로 떠오르고 있다.
100억원대 재력가인 K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현금 자산의 포트폴리오를 새로 짰다. 세금·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제로 금리’라고 아우성이지만 30억원은 정기예금을 들었다. 부동산 사업까지 접은 터라 고정 수입이 필요해서였다. 한달 이자로 세금 떼고 1,000만원 안팎을 받는다. 증시가 바닥권이라고 보고 10억원은 국내 주식형 펀드에 넣었다. 아직은 불안해 그나마 가장 안전하다는 상품을 골랐다.
문제는 나머지 35억원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그는 외국계 금융기관에 들러 해외 채권펀드에 가입했다. 국내 금융상품에 현금을 모두 집어넣긴 왠지 불안했다. 정권 교체기인데다 북한 핵 문제 등도 겹쳐 꺼림칙했다. 더구나 수익률도 9% 가까이 기대할 수 있었다. 국내 정기예금 이자의 2배 가까운 수준이다.

K씨처럼 국내 개인 투자자들도 해외 상품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주식시장이 바닥을 기고 있는데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재테크 수단이 마땅찮기 때문이다. 특히 사상 유례없는 ‘0% 금리’ 현상에 당혹스런 모습이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제로 금리의 파급 효과와 시사점’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금리가 너무 낮아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당장 금리가 오를 조짐도 별로 없다. 북한 핵 문제와 이라크 전쟁 가능성 등으로 경기회복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임석정 JP모건 지점장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감안하면 금리가 좀더 올라야 한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론 (경기가 나아질) 3분기께나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투자가 대안이 될까.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투자는 ‘찬밥’이었다. 무엇보다 국내 금리가 미국이나 유럽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두 자릿수 금리에 익숙한 국내 투자자들이 연 5∼6% 정도의 해외금리에 만족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투자 수단도 거의 없었다. 물론 증권업 감독규정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 시장에 상장됐거나 상장 예정인 외국 기업의 유가·수익증권, 그리고 기업어음(CP)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 등에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에서 달러를 비싸게 바꿔야 하는데다 환율 리스크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요즘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인덱스 펀드도 원칙적으론 투자가 가능하지만 국내 증권사가 취급하지 않고 있다.

해외 투자는 도박에 가깝다는 과거의 경험도 걸림돌이었다. 몇 년 전 해외 투자 문호가 열렸을 때 금융기관들이 러시아·브라질 등으로 몰려갔다가 호되게 당한 기억이 생생하다. 더구나 해외 투자를 보는 시선도 그리 곱지 않았다. 해외투자는 돈을 나라 밖으로 빼돌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따라다닌다. 이에 대해 임영학 우리은행 제휴상품팀 차장은 “오해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만기가 되면 오히려 이자를 벌어 돈이 들어오는 것이란 얘기다. 일정 기간 동안 돈을 해외에서 굴린다는 것일 뿐 아예 빠져나간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 투자는 또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짜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가 단위로 보면 한국 시장은 여전히 위험도가 높은 이머징 마켓(신흥시장)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해외투자가 필요하다는 것. 주종규 HSBC 지배인은 “해외 시장은 기본적으로 높은 수익보다 국내 금융시장이 안고 있는 약점을 보완하는 대안으로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요즘처럼 불안한 경제 상황이 아니더라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투자위험 관리’라는 논리에서다.

이런 인식이 퍼져서일까.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부문의 해외 간접투자가 크게 늘었다(그림 참고). 지난 5년을 돌아보면 1999년에도 해외 간접투자가 급증했다. 그러나 이 때는 정부가 발행한 외평채나 한국 기업이 발행한 해외주식예탁증서(DR) 등의 ‘한국물’에 투자가 집중됐다. 반면 지난해의 경우는 좀 달랐다는 분석이다. 이순호 한국은행 외환수급팀 과장은 “개인과 민간 기업이 저금리 탓에 해외로 투자처를 옮겼다”고 설명했다.

해외 채권이나 주식 등에 돈을 굴리는 해외 펀드는 국내 금융기관을 통해 투자할 수 있다. 국내 증권사와 시중·외국계 은행이 판매를 대행하고 있다(표 참고). 우리·한미·씨티은행 등과 삼성·한투증권 등이 주요 창구다. 자산 운용은 피델리티, 메릴린치, 프랭클린템플턴, 슈로더 등 굴지의 투자신탁회사가 맡고 있다. 펀드 가입액은 금융기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최소 가입금액이 300만∼1,000만원이거나 아예 제한이 없는 경우도 있다. 반면 씨티그룹 프라이빗뱅크는 자산 50억원 이상(현금·주식 등 유동 자산은 10억원 이상) 고객만 받는다.
해외 펀드의 수익률은 연 5∼9% 사이다. 대부분 채권형 펀드라 수익률이 안정적인 편이지만 금리 변동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 판매 기관에 따라 선물환 계약을 맺어 세금을 물지 않는 환차익을 보너스 금리로 주기도 한다. 대개 원금의 1.3∼2.5% 수준이다. 물론 선물환 계약으로 보장되는 환율 리스크는 원금에 국한된다. 세금은 이자소득의 16.5%를 원천징수한다.

판매 수수료는 취급 기관과 투자 금액에 따라 원금의 0.8∼3%를 받는다. 수수료는 미리 떼고 나머지 금액을 펀드에 넣는다. 투자 기간은 해외 펀드가 대부분 개방형이라 제한이 없다. 고객이 원할 경우 언제든 투자할 수 있고, 수수료만 내면 필요할 때 환매가 가능하다. 다만 일정 기간 고객을 모아 투자하는 기획 상품의 경우 대개 1년 단위로 운영된다.

국내에도 금융 자산이 달러로 환산해서 100만 달러(약 12억원)가 넘는 ‘큰손’들이 5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 재산이면 언제든 해외투자에 나설 수 있는 잠재 투자자로 꼽힐 만하다. 그만큼 해외투자 대기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다만 해외 상품이라고 모두 안전한 건 아니다. 먼저 환율 리스크를 따져봐야 한다. 해외 펀드는 달러화나 유로화 등으로 운용된다. 펀드에 가입할 때와 인출하는 시점의 환율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투자수익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환율이 오르면 그만큼 이익이겠지만 반대의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펀드 가입 때 선물환 계약을 맺어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분산(헤지)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유 자금으로, 길게 보고 투자하는 것도 필수다. 해외 운용사들은 대개 중·장기적인 투자 전략을 갖고 있다. 단기 수익을 기대하는 건 다소 무리다. 판매사를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똑같은 해외 펀드라고 해도 판매사는 다양하다. 개인은 해외 정보에 취약하게 마련이다. 체계적인 정보를 주기적으로 줄 수 있는 금융기관인지, 담당자가 해외 상품에 정통한지 등을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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