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처럼 높이, 매처럼 날쌔게
학처럼 높이, 매처럼 날쌔게
독일 루프트한자 경영진은 늘 한 발 앞서 생각하고 신속한 조치를 취하면서 당국의 엄격한 규제도 비켜가는 탁월한 능력까지 발휘한다.
요즘 항공업계의 키워드는 ‘할인’이다. 항공권 가격을 할인해주거나 주가 급락으로 주식이 ‘할인가’에 팔리는 것이 유행이다. 독일의 자존심 루프트한자항공은 후자에 속한다. 현재 독일의 고비용, 경기침체는 가뜩이나 어려운 관광 관련 업계에 더 큰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10달러 미만의 주가, 주가수익비율(PER) 9는 루프트한자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PER가 낮은 것은 수익성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루프트한자는 지난해 1∼9월 7억7,5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영국의 브리티시항공이나 미국의 선도적 할인 항공사 사우스웨스트보다 큰 액수다. 할인요금을 적용하지 않는 미국의 메이저 항공사들은 같은 기간 큰 손실을 기록했다.
루프트한자의 연간 매출은 15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매출에서 유럽 최대이며 세계 전체로 보면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다음이다. 메이저 항공사 가운데 루프트한자보다 사정이 나은 것은 싱가포르항공뿐이다. 그것도 싱가포르의 특수한 노동시장 여건상 저비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와 달리 엄격한 독일의 규제를 감안할 때 루프트한자가 경비절감을 그렇게 신속하게, 그리고 대폭적으로 단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경비절감으로 루프트한자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8억9,000만달러 이상의 유동자금을 확보했다. 올 들어 다른 항공사들이 감원을 단행했지만 루프트한자는 지난해 11월 시장 상황에 큰 변동만 없다면 2,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고 지금도 그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루프트한자가 항공업계를 선도하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다. 그밖에도 루프트한자는 최근 일부 대서양 횡단 노선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도입했다.
투자은행인 방크하우스 메츨러의 항공업계 애널리스트 위르겐 피퍼는 “루프트한자 경영진이 지난 10여 년 동안 어려운 시절이든, 좋은 시절이든 항상 비용절감과 서비스 개선, 융통성 있는 노선운영을 추구해 왔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가 지구촌을 강타했을 당시 다른 메이저 항공사들이 아시아 서비스를 대폭 줄였지만 루프트한자는 아시아 노선을 모두 그대로 유지했다. 피퍼는 “루프트한자가 아시아의 미래를 밝게 봤다”며 “그것은 경기가 회복되면서 루프트한자에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루프트한자의 항공부문 매출 가운데 14%가 아시아겾쩽贄?노선에서 비롯된다. 유럽 노선은 지난해 1∼9월 항공부문 매출의 68%를 차지했다. 루프트한자의 이런 성공 뒷면에는 비용절감 프로그램 ‘D체크’가 자리잡고 있다. D체크는 항공업계의 대위기를 촉발한 9?1 테러가 발생하기 몇 달 전인 2001년 4월 발표됐다. 2000년 후반 루프트한자 경영진은 항공화물이 줄기 시작하는 것을 간파했다. 루프트한자는 그것이 탑승객 수요도 곧 줄 것이라는 조짐으로 판단했다. 그것이 D체크가 나온 배경이다. D체크란 항공기 분해점검 용어에서 따온 경비절감 프로그램 이름이다.
D체크의 목표는 내년까지 유동자본 10억달러를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다. 목표는 현재 거의 달성됐다. D체크는 관광산업 붐의 막바지에 호황을 누리던 몇몇 경쟁사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그들 업체의 비웃음은 9?1 테러로 깨끗이 사라졌다. 루프트한자는 지난 1월 하순 항공기 9대를 계류시켜 단겵煞타?항공편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것 역시 루프트한자가 한 발 앞서 생각한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루프트한자는 대 이라크전이 임박했을 뿐 아니라 올 초 독일 내의 비즈니스 클래스 탑승객과 화물수송 수요가 다소 줄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상치 않은 또 다른 일은 세계 유수 13개 항공사의 범세계적 공동협력체인 ‘스타 얼라이언스’ 회원사 유나이티드항공이 낸 파산신청이다.
루프트한자의 비관적 전망에 대해 일각에서는 거센 노동조합의 발목을 묶어두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루프트한자측은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그러나 주요 시장이 다시 하강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루프트한자는 일부 사업부문을 아웃소싱했다. 100% 투자 자회사인 단거리 노선 전담 ‘시티라인’도 신설했다. 비즈니스 클래스 전용 노선은 스위스의 프리바트에어에 맡겼다. 루프트한자의 직원 5만2,000명은 집단 임금협상 대상이지만 시티라인과 프리바트에어 직원들은 그런 규정에 적용되지 않아 인건비 절감이 용이하다.
루프트한자는 신생 할인 항공사 저먼윙스의 모회사인 유로윙스 지분을 4분의 1 정도 인수함으로써 자체 브랜드 손상 없이 할인 항공부문에도 진출했다.
루프트한자의 진정한 새 출발점은 10년 전 찾아왔다. 루프트한자는 2차대전 종전 이후 독일 경제기적의 혜택을 입은 국영 독점기업으로 부활했지만 90년대 초반 파산지경에 이르면서 혹독한 시련을 당했다. 경영수지는 85년 이래 계속 악화됐다. 하지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 빚더미만 쌓여갔다. 그러던 중 걸프전으로 항공 여객수가 줄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그 결과 91년에는 18년만에 처음으로 순손실을 기록했다.
91년 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50세였던 위르겐 베버가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된 것이 바로 그 즈음이다. 평생 루프트한자에서 보낸 항공엔지니어 베버는 급진적인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는 광범위한 구조조정으로 8,000명 이상의 직원을 정리해고 했다. 부분적으로 민영화도 추진하면서 일부 사업부문을 독립 회사로 분리시켰다. 그 결과 루프트한자는 94년 적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3년 뒤 민영화가 완결됐다. 베버는 자회사들에 권한과 책임을 많이 부여할 경우 경영실적이 향상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회사인 루프트한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엄격한 노동 계약과 규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가장 좋은 예가 기내식 공급 부문 분리다. 루프트한자에서 분리된 그 자회사는 현재 세계 최대 기내식 공급 서비스 연합인 LSG 스카이 셰프스를 운영하며 연간 매출 35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정비겮嗤츃분해점검 서비스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루프트한자 테크닉도 빼놓을 수 없다. 항공업계가 매우 어려웠던 2001년 루프트한자 테크닉은 매출이 25%나 증가해 25억달러에 이르렀다.
독일 소재 셀 컨설팅의 항공경영 컨설턴트 토마스 톰코스에 따르면 루프트한자는 모든 업무를 직접 관장하지 않고도 꾸려나갈 수 있는 방법을 조용히 찾아냈다. 지난 10년 동안 루프트한자는 저비용 자회사에 아웃소싱할 수 없는 사업부문들의 경우 합작을 시도했다.
J P 모건 증권에 따르면 여객부문에서 루프트한자 그룹은 루프트한자라는 이름으로 운항되는 항공편의 40%만 운영하고 나머지는 운영비가 싼 협력 항공사에 맡긴다.
루프트한자는 자체 사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도 신속히 해결했다. 지난해 5월 루프트한자는 보유하고 있던 DHL 월드 와이드 익스프레스 지분을 5억1,400만달러에 도이체 포스트 월드넷으로 넘겼다. 지난해 후반 경영난으로 고전하던 스타트 아마데우스 여행사를 9,500만달러에 매각했다.
루프트한자는 모든 위험 요소와 규정, 비용을 철저하게 따진 뒤 새 사업에 신중히 접근했다. 지난해 6월부터 주 6회 운항되고 있는 뒤셀도르프∼뉴욕(뉴어크 리버티 공항) 직항 노선이 좋은 예다. 뒤셀도르프∼뉴욕 노선은 두 가지 점에서 매우 대담한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비즈니스 클래스 전용 대서양 횡단 노선(48석에 불과)인데다 왕래 승객이 많지 않은 두 도시 사이를 오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셀도르프는 오랜 산업 중심지로 보스턴 컨설팅, 매킨지 등 여러 컨설팅업체와 일본을 비롯한 많은 외국 은행의 독일 지사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한 컨설턴트는 “루프트한자가 뒤셀도르프∼뉴욕 노선 신설로 출발 시간에 임박해 항공권을 예약하고 요금은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는 고액 연봉자들을 노리고 있다”며 “리스크가 적게, 비용도 적게 들이며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2001년 봄 비즈니스 클래스 전용기 운항 자회사 애볼라를 100% 투자로 설립, 수백만달러나 쏟아부었다. 하지만 애볼라는 그로부터 1년도 못 돼 문을 닫고 말았다.
지금까지 베버는 어려운 고비마다 잘 견뎌왔다. 비용절감의 귀재라는 뜻으로 ‘계산기’라는 별명까지 지닌 그는 올 여름 이후 볼프강 마이뤼버에게 회장 겸 CEO 자리를 물려줄 계획이다. 90년대 초반 루프트한자의 구조조정팀을 이끈 마이뤼버는 현재 여객부문 책임자다.
이제 달콤한 나날은 기대할 수 없다. 루프트한자 경영진은 2001년 직원 임금인상을 연기했다. 따라서 이번 임금협상은 험란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독일노총(DGB) 산하 서비스산업노조와 가진 5차 임금협상마저 결렬됐다. 노조는 지상 근무 요원과 승무원의 임금을 9%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90년대 초반 감원 이후 경영정상화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되돌아보며 인건비를 과다 지출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루프트한자로서는 독일에서 막 출범한 할인 항공사들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게다가 이라크전이 장기화할 경우 거의 모든 국제 항공사들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과거 험한 시기를 헤쳐나온 경험이 루프트한자에는 큰 자산이다. 베버는 자신과 생각이 똑 같은 마이뤼버를 후계자로 삼았다. 그는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룹 감독위원회 위원으로 루프트한자에 계속 몸 담을 전망이다.
베버와 마이뤼버 모두 엔지니어로 시작해 루프트한자에서 평생을 보냈다. 두 사람 모두 언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베버와 마이뤼버의 유사점은 그룹 전체에 득이 될 듯 싶다. 항공업계 애널리스트인 우베 바인라이히는 루프트한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90년대 초반 구조조정팀의 일원으로 루프트한자 위기를 극복한 인물들이 계속 회사에 남는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루프트한자에서는 앞으로도 과거와 비슷하게 과감하고 신속한 조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루프트한자 경영진은 멀리서 위기가 닥치려 할 때마다 살코기를 본 사냥개처럼 날쌔게 움직일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요즘 항공업계의 키워드는 ‘할인’이다. 항공권 가격을 할인해주거나 주가 급락으로 주식이 ‘할인가’에 팔리는 것이 유행이다. 독일의 자존심 루프트한자항공은 후자에 속한다. 현재 독일의 고비용, 경기침체는 가뜩이나 어려운 관광 관련 업계에 더 큰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10달러 미만의 주가, 주가수익비율(PER) 9는 루프트한자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PER가 낮은 것은 수익성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루프트한자는 지난해 1∼9월 7억7,500만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영국의 브리티시항공이나 미국의 선도적 할인 항공사 사우스웨스트보다 큰 액수다. 할인요금을 적용하지 않는 미국의 메이저 항공사들은 같은 기간 큰 손실을 기록했다.
루프트한자의 연간 매출은 15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매출에서 유럽 최대이며 세계 전체로 보면 아메리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 다음이다. 메이저 항공사 가운데 루프트한자보다 사정이 나은 것은 싱가포르항공뿐이다. 그것도 싱가포르의 특수한 노동시장 여건상 저비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와 달리 엄격한 독일의 규제를 감안할 때 루프트한자가 경비절감을 그렇게 신속하게, 그리고 대폭적으로 단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경비절감으로 루프트한자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8억9,000만달러 이상의 유동자금을 확보했다. 올 들어 다른 항공사들이 감원을 단행했지만 루프트한자는 지난해 11월 시장 상황에 큰 변동만 없다면 2,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고 지금도 그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루프트한자가 항공업계를 선도하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다. 그밖에도 루프트한자는 최근 일부 대서양 횡단 노선에 초고속 인터넷망을 도입했다.
투자은행인 방크하우스 메츨러의 항공업계 애널리스트 위르겐 피퍼는 “루프트한자 경영진이 지난 10여 년 동안 어려운 시절이든, 좋은 시절이든 항상 비용절감과 서비스 개선, 융통성 있는 노선운영을 추구해 왔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가 지구촌을 강타했을 당시 다른 메이저 항공사들이 아시아 서비스를 대폭 줄였지만 루프트한자는 아시아 노선을 모두 그대로 유지했다. 피퍼는 “루프트한자가 아시아의 미래를 밝게 봤다”며 “그것은 경기가 회복되면서 루프트한자에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루프트한자의 항공부문 매출 가운데 14%가 아시아겾쩽贄?노선에서 비롯된다. 유럽 노선은 지난해 1∼9월 항공부문 매출의 68%를 차지했다. 루프트한자의 이런 성공 뒷면에는 비용절감 프로그램 ‘D체크’가 자리잡고 있다. D체크는 항공업계의 대위기를 촉발한 9?1 테러가 발생하기 몇 달 전인 2001년 4월 발표됐다. 2000년 후반 루프트한자 경영진은 항공화물이 줄기 시작하는 것을 간파했다. 루프트한자는 그것이 탑승객 수요도 곧 줄 것이라는 조짐으로 판단했다. 그것이 D체크가 나온 배경이다. D체크란 항공기 분해점검 용어에서 따온 경비절감 프로그램 이름이다.
D체크의 목표는 내년까지 유동자본 10억달러를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다. 목표는 현재 거의 달성됐다. D체크는 관광산업 붐의 막바지에 호황을 누리던 몇몇 경쟁사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그들 업체의 비웃음은 9?1 테러로 깨끗이 사라졌다. 루프트한자는 지난 1월 하순 항공기 9대를 계류시켜 단겵煞타?항공편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것 역시 루프트한자가 한 발 앞서 생각한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루프트한자는 대 이라크전이 임박했을 뿐 아니라 올 초 독일 내의 비즈니스 클래스 탑승객과 화물수송 수요가 다소 줄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상치 않은 또 다른 일은 세계 유수 13개 항공사의 범세계적 공동협력체인 ‘스타 얼라이언스’ 회원사 유나이티드항공이 낸 파산신청이다.
루프트한자의 비관적 전망에 대해 일각에서는 거센 노동조합의 발목을 묶어두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루프트한자측은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그러나 주요 시장이 다시 하강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루프트한자는 일부 사업부문을 아웃소싱했다. 100% 투자 자회사인 단거리 노선 전담 ‘시티라인’도 신설했다. 비즈니스 클래스 전용 노선은 스위스의 프리바트에어에 맡겼다. 루프트한자의 직원 5만2,000명은 집단 임금협상 대상이지만 시티라인과 프리바트에어 직원들은 그런 규정에 적용되지 않아 인건비 절감이 용이하다.
루프트한자는 신생 할인 항공사 저먼윙스의 모회사인 유로윙스 지분을 4분의 1 정도 인수함으로써 자체 브랜드 손상 없이 할인 항공부문에도 진출했다.
루프트한자의 진정한 새 출발점은 10년 전 찾아왔다. 루프트한자는 2차대전 종전 이후 독일 경제기적의 혜택을 입은 국영 독점기업으로 부활했지만 90년대 초반 파산지경에 이르면서 혹독한 시련을 당했다. 경영수지는 85년 이래 계속 악화됐다. 하지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 빚더미만 쌓여갔다. 그러던 중 걸프전으로 항공 여객수가 줄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그 결과 91년에는 18년만에 처음으로 순손실을 기록했다.
91년 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50세였던 위르겐 베버가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된 것이 바로 그 즈음이다. 평생 루프트한자에서 보낸 항공엔지니어 베버는 급진적인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는 광범위한 구조조정으로 8,000명 이상의 직원을 정리해고 했다. 부분적으로 민영화도 추진하면서 일부 사업부문을 독립 회사로 분리시켰다. 그 결과 루프트한자는 94년 적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3년 뒤 민영화가 완결됐다. 베버는 자회사들에 권한과 책임을 많이 부여할 경우 경영실적이 향상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회사인 루프트한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엄격한 노동 계약과 규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가장 좋은 예가 기내식 공급 부문 분리다. 루프트한자에서 분리된 그 자회사는 현재 세계 최대 기내식 공급 서비스 연합인 LSG 스카이 셰프스를 운영하며 연간 매출 35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정비겮嗤츃분해점검 서비스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루프트한자 테크닉도 빼놓을 수 없다. 항공업계가 매우 어려웠던 2001년 루프트한자 테크닉은 매출이 25%나 증가해 25억달러에 이르렀다.
독일 소재 셀 컨설팅의 항공경영 컨설턴트 토마스 톰코스에 따르면 루프트한자는 모든 업무를 직접 관장하지 않고도 꾸려나갈 수 있는 방법을 조용히 찾아냈다. 지난 10년 동안 루프트한자는 저비용 자회사에 아웃소싱할 수 없는 사업부문들의 경우 합작을 시도했다.
J P 모건 증권에 따르면 여객부문에서 루프트한자 그룹은 루프트한자라는 이름으로 운항되는 항공편의 40%만 운영하고 나머지는 운영비가 싼 협력 항공사에 맡긴다.
루프트한자는 자체 사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도 신속히 해결했다. 지난해 5월 루프트한자는 보유하고 있던 DHL 월드 와이드 익스프레스 지분을 5억1,400만달러에 도이체 포스트 월드넷으로 넘겼다. 지난해 후반 경영난으로 고전하던 스타트 아마데우스 여행사를 9,500만달러에 매각했다.
루프트한자는 모든 위험 요소와 규정, 비용을 철저하게 따진 뒤 새 사업에 신중히 접근했다. 지난해 6월부터 주 6회 운항되고 있는 뒤셀도르프∼뉴욕(뉴어크 리버티 공항) 직항 노선이 좋은 예다. 뒤셀도르프∼뉴욕 노선은 두 가지 점에서 매우 대담한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비즈니스 클래스 전용 대서양 횡단 노선(48석에 불과)인데다 왕래 승객이 많지 않은 두 도시 사이를 오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셀도르프는 오랜 산업 중심지로 보스턴 컨설팅, 매킨지 등 여러 컨설팅업체와 일본을 비롯한 많은 외국 은행의 독일 지사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한 컨설턴트는 “루프트한자가 뒤셀도르프∼뉴욕 노선 신설로 출발 시간에 임박해 항공권을 예약하고 요금은 회사 비용으로 처리하는 고액 연봉자들을 노리고 있다”며 “리스크가 적게, 비용도 적게 들이며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2001년 봄 비즈니스 클래스 전용기 운항 자회사 애볼라를 100% 투자로 설립, 수백만달러나 쏟아부었다. 하지만 애볼라는 그로부터 1년도 못 돼 문을 닫고 말았다.
지금까지 베버는 어려운 고비마다 잘 견뎌왔다. 비용절감의 귀재라는 뜻으로 ‘계산기’라는 별명까지 지닌 그는 올 여름 이후 볼프강 마이뤼버에게 회장 겸 CEO 자리를 물려줄 계획이다. 90년대 초반 루프트한자의 구조조정팀을 이끈 마이뤼버는 현재 여객부문 책임자다.
이제 달콤한 나날은 기대할 수 없다. 루프트한자 경영진은 2001년 직원 임금인상을 연기했다. 따라서 이번 임금협상은 험란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독일노총(DGB) 산하 서비스산업노조와 가진 5차 임금협상마저 결렬됐다. 노조는 지상 근무 요원과 승무원의 임금을 9%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90년대 초반 감원 이후 경영정상화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되돌아보며 인건비를 과다 지출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루프트한자로서는 독일에서 막 출범한 할인 항공사들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게다가 이라크전이 장기화할 경우 거의 모든 국제 항공사들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과거 험한 시기를 헤쳐나온 경험이 루프트한자에는 큰 자산이다. 베버는 자신과 생각이 똑 같은 마이뤼버를 후계자로 삼았다. 그는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룹 감독위원회 위원으로 루프트한자에 계속 몸 담을 전망이다.
베버와 마이뤼버 모두 엔지니어로 시작해 루프트한자에서 평생을 보냈다. 두 사람 모두 언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베버와 마이뤼버의 유사점은 그룹 전체에 득이 될 듯 싶다. 항공업계 애널리스트인 우베 바인라이히는 루프트한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90년대 초반 구조조정팀의 일원으로 루프트한자 위기를 극복한 인물들이 계속 회사에 남는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루프트한자에서는 앞으로도 과거와 비슷하게 과감하고 신속한 조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루프트한자 경영진은 멀리서 위기가 닥치려 할 때마다 살코기를 본 사냥개처럼 날쌔게 움직일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트럼프 2.0’에 빗장 푸는 中, 韓에 손 내민 속내는
2평행선 그리는 ‘의정갈등’...고래가 싸우자, 새우는 울었다
3‘검은 반도체’ 김 수출 역대 최고기록 달성…10억달러 수출 청신호
4이복현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합리적"
5롯데, 해외 부실면세점 철수 검토…케미칼, 자산매각 추진
611월 기록적 폭설에 車사고 60% 급증…보험료 인상 조짐
7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4년만에 승인…통합 LCC도 출범
8이재명 “‘국장’ 떠나는 현실...PER 개선하면 ‘코스피 4000’ 무난”
9롯데바이오로직스 설립 2년 만 수장 교체…신임 대표는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