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가슴에 호소하니 금세 벽 허물어져”

“가슴에 호소하니 금세 벽 허물어져”

일러스트: 김회룡
“작지만 강하고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것이기에 힘내시라고 여러분께 드립니다.” 지난달 중순께 이웅열 코오롱 회장은 감사의 편지와 함께 초콜릿 2천 상자를 계열사 직원 1만여명에게 선물했다.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직원들에게 격려과 감사의 뜻을 전한다는 취지에서였다. 1996년 취임한 이회장은 몇 년 전부터 임직원들에게 「겅호」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같은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크고 작은 이벤트를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회장 외에도 많은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직원들의 감성을 사로잡는 이벤트나 제도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불황으로 체감경기가 나빠지면서 ‘감성경영’이 조직 분위기 쇄신을 위한 방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대상이었던 ‘사장님’들이 먼저 직원들과의 대화를 갖기 위해 노력하거나 선물이나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벽 허물기’에 나서고 있는 것. 감성경영 도입이 늘면서 그 방법도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솔선수범형=감성경영의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최고경영자가 직접 직원들이나 가족을 만나는 것. 요즘은 단순히 현장방문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5월 박정인 회장의 주도로 38명의 임직원들이 울산과 경인지역 등에서 현장체험을 했다. 박회장은 공장에서 직접 모듈생산 작업을 하는 한편, 수출물류센터에서 부품 포장을 하기도 했다. 직원들과 접촉해 어려움을 나누면서 노사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회사 전략사업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는 취지에서다. 박회장은 매주 한번씩 그 주에 생일을 맞은 20여명 내외의 직원들과 일일이 사진촬영을 하는 행사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랜드는 지난달 21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박성수 회장이 과장급 직원들의 전업주부 배우자들을 초대한 연수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 자리에 박회장이 직접 나서 회사의 경영이념·비전·문화 등을 소개했다.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도 지난달 해외 근무자들의 가족 2백여명을 호텔로 초대해 오찬을 함께했다.

▶허심탄회형=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이메일과 홈페이지 등을 이용한 친근감 형성도 러시를 이루고 있다. 김인 삼성SDS 사장은 매주 월요일마다 이메일로 ‘CEO의 월요편지’를 6천7백여명의 직원들에게 발송한다. 이 편지는 김사장의 가족이나 개인 이야기부터 회사 차원의 정책과 포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주방용 밀폐용기 ‘락앤락’을 생산하는 하나코비의 김창호 사장과 김광호 포스데이타 사장도 각각 ‘행복편지’ ‘내마음의 편지’ 등을 정기적으로 발송하고 있다. 일상적인 이메일 이외에 경영난과 관련한 솔직한 심경 고백을 통해 직원들에게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자본잠식에 빠진 현대종합상사의 박원진 사장을 비롯해 김승정 SK글로벌 부회장,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 등이 이메일을 통해 직원들 마음 잡기에 나섰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방법도 인기다. 이메일과 달리 직원들의 ‘자발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대외 홍보효과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신호주(www.shinho joo.pe.kr) 코스닥증권 사장, 허태학(www.hertahak.pe.kr) 신라호텔 사장을 비롯해 구자홍(www.kujahong.pe.kr) 동양시스템즈 사장, 안복현(www.ahnbokhyun. pe.kr) 제일모직 사장, 오상수(www.ohsang soo.pe.kr) 만도 사장 등이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개인사나 경영철학 등을 털어놓거나 직원들의 건의사항을 받고 있다.

▶복지증진형=컴퓨터 백신개발 벤처기업인 하우리의 직원들은 7월 초부터 회사가 지정한 호프집에서 무료로 술을 마실 수 있다. 권석철 사장이 직원들을 위해 준비한 일종의 복지 혜택인 셈. 송진성 하우리 마케팅팀 대리는 “벤처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고려한 것”이라며 “직원들끼리 생일파티나 회식 등을 마련해 가끔씩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외국계 보험사인 PCA생명의 마이크 비숍 사장은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 좋은 아이디어를 회사 경영과 복지에 도입하는 ‘제안카드’(Suggestion Card)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한 달에 한번 제안카드를 박스에 모은 결과 ‘금요일은 야근과 회식을 엄금하고 30분 일찍 퇴근해 가족과 시간 보내기’와 ‘토요일 캐주얼 복장 출근’ 등이 채택됐다. PCA생명의 관계자는 “한번은 사장님이 직접 나서서 퇴근하지 않는 직원들을 회사 밖으로 몰아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머슴형=최근 들어 ‘섬기는 리더십’(Ser vant Leadership) 개념이 각광받으면서 몸을 낮추는 CEO들도 등장하고 있다. ‘섬기는 리더십’의 핵심은 직원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리더가 ‘머슴’처럼 직원들을 섬기고 봉사해야 한다는 것. 대표적인 예가 삼성전자 국내영업부의 이현봉 사장이다. 이사장은 지난 6월 오대산에서 가진 불황극복 전직원단합대회에서 영업사원들의 양말을 신겨주는 상징적인 행사를 가졌다. 이에 대해 “발로 뛰는 직원들에게 봉사하는 경영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고객에 대한 철저한 봉사정신을 강조한 것”이라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월마트·HP·3M 등 유명 기업이 이러한 ‘섬기는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삼성전자·LG그룹·하나은행 등이 임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분위기 바꿔-직원들은 ‘글쎄’ 이렇게 경영자들이 적극적인 몸 낮추기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지난해부터 지속되는 불황의 여파로 경직된 조직 내 분위기를 풀어보겠다는 의도가 강하다는 것이 회사 측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사장이 직접 나서서 수평적인 대화, 직원들이 즐거워할 만한 이벤트 등을 마련해 직원들로 하여금 ‘일하고 싶은 회사’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것. 더불어 조직원들의 기를 살려서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취지도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우수 인력들의 유출이 활발한 상황에서 직원들의 인심을 얻는다는 의도도 있다. 특히 이직률이 높은 IT 업종이나 벤처기업의 경우 이러한 ‘인력 잡기’ 목적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구자홍 동양시스템즈 사장이 취임사에서 감성경영을 통해 이직률을 낮추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는 토착화와 직원 융합의 목적이 강하다. 이질적인 기업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하고 외국인 임직원에 대한 거리감을 줄인다는 것. 특히 인수·합병을 통해 국내에 진출한 외국 회사들은 감성경영에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 국내 보험사를 인수해 지난해 사업을 시작한 한 외국계 보험사의 관계자는 “인수당한 업체 직원들은 피해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적대감을 줄이기 위해 사장이 직접 나서서 감성적으로 접근한 결과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자체 평가했다. 최고경영자들의 감성경영 노력에 대해 직원들의 반응은 엇길린다. 이메일 편지를 받아본 한 직원은 “평소에 사장님 얼굴 보기도 힘든데 편지를 통해 인간적인 면이 부각돼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회사의 또 다른 직원은 “구조조정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심란한 상황에서 이메일이 얼마나 위로가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심지어 “아직까지 사장님은 불편한 사람”이라며 “함께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달갑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감성지수와 인덕지수 등이 리더의 능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면서 최고경영자들의 고민은 더 늘어나고 있다. ‘홍보성 액션’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과 경기침체라는 악조건 속에서 직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최고경영자들의 노력은 더욱 다양화될 전망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한은, 기준금리 0.25%p ‘깜짝 인하’…“경기 하방리스크 완화”

2IBK기업은행, 폴란드법인 설립 인가 취득

3편의점 깜깜이 대금공제 방지…10개 표준거래계약서 개정

4AI·클라우드 집중하는 삼성SDS, 신임 대표로 이준희 삼성전자 부사장 선임

5옛 국립보건원 부지, 창조산업 중심지로 육성

6음란물 단속하다 그만…박지현, 억대 빚에 '19금' 손 댔다

7비트코인, 9만 7000달러선 회복…10만 돌파 할까?

8 한국은행 기준금리 0.25%p 인하…연 3.00%로

9미래에셋증권, 인도 현지 증권사 미래에셋쉐어칸 출범

실시간 뉴스

1한은, 기준금리 0.25%p ‘깜짝 인하’…“경기 하방리스크 완화”

2IBK기업은행, 폴란드법인 설립 인가 취득

3편의점 깜깜이 대금공제 방지…10개 표준거래계약서 개정

4AI·클라우드 집중하는 삼성SDS, 신임 대표로 이준희 삼성전자 부사장 선임

5옛 국립보건원 부지, 창조산업 중심지로 육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