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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소득 2만불 못넘는다

이대로는 소득 2만불 못넘는다

현실을 외면한 원칙 없는 대응. 대통령 말을 아래에서 번복하는 해프닝. 노무현 정부의 노사정책에 기업들이 실망한 까닭이다. 정부도 지금과 같은 노사관계라면 산업공동화를 걱정해야 할 판임을 잘 안다. 하지만 방법론에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노사문화에 근본적 변화가 시급하다.
"노무현 정부의 문제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욕심에 있다. 지지기반인 노조를 만족시키면서 우리나라를 동북아 경제중심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는 어렵다. 노동자의 경영참여 활성화 등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노사관계 구상은 유럽식 모델인데, 이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독일 경제가 활력을 잃은 여러 원인 가운데 노사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독일 기업에서는 인수나 합병 등을 결정하는 데까지 노동자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독일 기업들은 경영환경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없었다.”(민경국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경영참여는 용어부터 대단히 위험한 얘기다. 유럽에서는 경영참여 대신 근로자참여라는 표현을 쓴다. 국내에서 거론되는 경영참여는 유럽에서도 매우 강한 모델이다. 유럽에서도 지난 10여 년 이 모델에서 탈피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또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 노조의 경영참여는 유례가 없을 정도다. 해외 노사관계 변화와 국내 노사관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경영참여를 논의하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표방하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 하지만 두산중공업과 조흥은행 등 노조의 파업에 대한 정부의 대응, 그리고 유럽식을 모델로 노사관계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구상은 기업들에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노조는 3월 중재에 나선 권기홍 노동부 장관으로부터 해고자 복직 등을 받아냈다. 부분적이지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깨졌다. 조흥은행 노조는 파업을 통해 고용 보장 등 요구를 관철했다. 정부는 뒤늦게 철도 노조 파업에 강하게 대응했지만 ‘원칙 없이 노조에 휘둘린다’는 인상을 해소할 수 없었다.

‘노조에는 좋아도 기업하기엔 좋지 않은 노사관계’는 산업공동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유럽계 A사의 최고경영자(CEO)는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즉각적이고 엄격하게 관련 법규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의 직장점거 등 불법행위가 발생할 때 해산을 요청해도 경찰은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고, 고소 ·고발도 처리가 지연된다는 것. 그는 또 “제3자 개입 범위가 명확지 않아 심지어 노조원보다 더 많은 외부인이 점거농성과 시위에 참여해 영업을 방해하는 데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투자기업들은 경직된 노사관계를 가장 큰 투자애로로 꼽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5월 외국인 투자기업 76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사관계가 가장 개선이 필요한 분야인 것으로 드러났다. 개선돼야 할 3개 분야를 선택해 1∼3점씩 배점하도록 한 조사에서 노사관계가 124점으로 가장 많이 지적됐고 정부정책 투명성 70점, 인건비는 67점으로 나타났다.
외국인투자 컨설팅회사인 SH장앤어소시에이츠의 장성현 대표는 “외국 기업들은 신규투자를 하기 전에 무엇보다 노사문제를 문의한다”고 전했다. 장 대표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노조는 과격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면서 “우리 시장에 판매하기 위해 들어오는 기업은 있겠지만 생산, 나아가 연구 ·개발(R&D) 기지로 삼겠다는 업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기피…국내기업은 ‘탈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이미 3분기째 줄어들었다. 국내 진출 기피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들어와 있는 외국인 투자기업도 지금과 같은 노사관계와 인건비라면 철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전경련은 “외국인 투자기업 중 6.6%가 앞으로 3∼5년 내에 투자를 철수할 계획이라고 답변했고, 제조업은 10%가 그럴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도 속속 한국을 뜨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7월 초 설문조사한 결과 수출 제조기업 264개 중 26%인 69개 업체가 이미 생산시설을 해외로 옮겼다. 또 48%인 126개 사는 앞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이들 기업은 해외이전 요인으로 비용절감과 노동력 확보 외에 불합리한 노사관계를 들었다.

노무현 정부는 게다가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둘러싸고 혼선을 빚었다. 그 결과 ‘정부가 노사관계의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할까’하는 의구심이 확산됐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7월 초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노조가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대신 사용자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윈-윈관계 형성이 유럽 일부국가 노사모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정책 실장은 이어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도 네덜란드 등 일부 유럽국가 모델과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5월 미국 방문 때 한 말을 뒤집은 것이다. 노 대통령은 “유럽식 노사관계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결론이 나서 영 ·미식으로 가야겠다”고 밝힌 바 있다.

네덜란드 모델이란 오일쇼크로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82년 노사 대표가 임금인상 자제와 일자리창출 등에 합의한 것을 말한다. 네덜란드식 모델 구상에는 기업과 노조 모두 반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전무는 “한국은 현재 새로운 노사관계 모델이 없어서가 아니라 법과 원칙이 실종돼 문제”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노사정 합의는 사회보장제도와 노사 간 힘의 균형이 갖춰진 상태에서 가능하다”며 “네덜란드 모델을 본뜬 노사정위원회가 지난 5년 동안 한 일이 뭐냐”고 반문했다.

모델의 원산지인 네덜란드 사람들도 한국에선 네덜란드 모델이 적합지 않다고 진단한다. 네덜란드 모델은 대화와 타협의 문화가 발달한 토양을 바탕으로 형성됐다. 7월 방한한 카린 반 헤닙 네덜란드 통상장관은 “노사가 서로 불신하며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모델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30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노사경쟁력은 꼴찌로 밀렸다. 정부도 현 노사관계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데에는 기업과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청와대 이 정책실장은 7월 4일 기협중앙회 강연에서 “현재의 임금상승률과 노사관계로는 수출경쟁력을 잃게 되고 외국인 투자도 유치하기 어려워 머지않아 한국호는 좌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사관계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가를 놓고는 아직도 이견이 많다. 정부는 독일 수준은 안 되더라도 노조의 경영참여를 활성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총은 이에 대해 “노조가 고용은 물론 해외투자 유치까지 동의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경영 참가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경총 김 전무는 “대기업 노조는 이미 경영권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노조의 경영개입과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는 현대자동차와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상용차 합작 건이다. 노조의 반대로 합작법인 설립이 지연되고 있다.



비즈니스형 노사관계로 거듭나야

박기찬 인하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노조는 회사와 공생을 꾀하는 비즈니스형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노조를 생계형 ·이념형 ·비즈니스형 ·지식공유형 등 4단계로 나눌 때 국내 노조는 2단계인 이념형에 머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은 올해 단체교섭 시 공동요구안으로 근로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을 내걸었다. 법과 제도가 마련돼야 하는 사안에서 정치적인 투쟁을 벌이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용자도 바뀌어야 한다. 심갑보 삼익LMS 부회장은 “기업인부터 법과 원칙을 지켜야만 노조에게도 그렇게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 부회장은 “경영의 정도를 지켜나가면 노사안정과 생산성 향상이 뒤따른다”고 강조했다. 노동연구원 조성재 연구위원은 “대다수 중소기업에서는 사용자가 일방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많은 경우 사용자가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나올 경우 노사문제가 악화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협상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협상은 줄 건 주고 얻을 건 얻어 내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양보가 흥정으로 매도된다”며 “이런 분위기에서는 협상 대표자가 타결을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내 노사협상에서 노조는 결과보다는 당초 목표를 밀어붙였다는 과정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대기업 노조의 행태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의 특혜를 해소하고 노동시장 유연성도 높이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하지만 ‘한 마리 토끼’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런 의지가 반영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듯하다.



노동정책 ‘코드’ 오락가락
“여론의 장(場)을 지배하는 사회적 힘의 균형에서 경제계가 노동계보다 세다. 앞으로 5년간 이런 불균형을 시정하겠다.”
(2003년 2월 13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방문에서)

“국제 수준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할 것이다. 앞으로 2년, 길게는 3년 안에 노사 문화를 종합적이고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
(5월 12일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월가 금융계 인사들과 만나)

“노동자들이 자율권을 갖고 활동할 자유가 주어졌으니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요구, 파업 기간 중 임금 요구, 해고가 쉽지 않은 점 등의 특혜를 해소해야 한다.”
(6월 27일 포브스의 스티브 포브스 사장 접견에서)

“나라가 있어야 노조도 있는 것이다. 노동자가 잘살기 위해서도 경제의 발목을 잡는 노동운동은 자제돼야 한다.” (6월 30일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에서 철도파업과 관련해)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헷갈린다. 노조 쪽을 감싸며 불법파업에도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다가 어느새 ‘법과 원칙’을 들이민다. 노사 모두 대통령과 코드 맞추기가 어렵다. 다만 겉모습만 보면 노 대통령의 ‘노조 사랑’이 예전만 못하다. 재계로부터 노조 편향이라는 반발을 샀던 노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 방문을 기점으로 노조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6월 철도 노조 파업 때는 언론과 노동계의 예상을 뒤엎고 단호하게 공권력을 투입했다.

노 대통령의 이런 변화는 크게 두 가지 배경에서 비롯됐다는 관측이다. 먼저 친노조 성향인 문재인 민정수석이나 이정우 정책실장 등이 노조문제에 대해 온건론으로 일관해 왔지만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는 것. 노동정책이 혼선을 빚었을 뿐 아니라 정부가 노조에 계속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 여론만 나빠졌다는 분석이다.

다음으론 그런 과정에서 경기마저 바닥을 기어 위기감이 더욱 고조됐다는 해석이다. 내년 총선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노 대통령으로선 우호 세력도 중요하지만 경제 살리기가 더욱 급했다는 얘기다. 이규황 전경련 전무는 “위기상황에 공감한다면 더 실용적으로 바뀌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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