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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석유업체 토탈
“다음 차례는 이라크”

프랑스 석유업체 토탈
“다음 차례는 이라크”

이란 ·수단 ·미얀마에서 오랫동안 위험한 게임을 벌여 온 프랑스의 대형 석유회사 토탈이 이라크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다.
1927년부터 이라크에서 사업을 해온 프랑스의 석유회사 토탈(Total)은 요즘 이라크 석유사업을 재개하는 문제에 대해 별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이라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토탈은 이미 엑슨모빌(ExxonMobil)과 비공식 접촉을 갖고 이라크 신생 정부 출범에 맞춰 마즈눈과 나흐르 빈 우마르 유전개발을 위한 합작회사 설립 문제를 논의했다. 하루 100만 배럴을 채굴할 수 있는 마즈눈과 빈 우마르 유전은 저렴한 채굴비와 수익성 또한 매우 높은 양질의 원유를 생산한다. 이라크의 석유 매장량은 2,500억 배럴로 순익이 3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활동적인 토탈로서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먹잇감인 셈이다.

파리에 있는 세계 4위의 석유업체 토탈은 오래 전부터 이라크를 ‘텃밭’으로 여겨왔다. 과거 사담 후세인과 빈 우마르 유전 개발 협상을 벌인 적이 있고, 2000년 토탈이 인수한 엘프 아키텐(Elf Aquitaine)도 마즈눈 유전 개발을 두고 협상에 나선 바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후세인과 밀고 당기던 게임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러시아의 석유회사 루코일(Lukoil)은 다른 전략을 택했고 ‘바그다드의 백정’ 후세인으로부터 방대한 웨스트 쿠르나 유전 개발 사업권을 따낼 수 있었다.

루코일은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지금 사업권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합법적 사업권이 없는 토탈은 이라크에 다시 진출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 동안 이라크에서 축적해온 노하우로 합작회사에 참여할 경우 합작 파트너는 채유 시기를 1년 정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합작 대상기업으로는 꽤 괜찮은 셈이다.
영국 런던 소재 왕립 국제문제연구소(RIIA)의 석유 담당 수석 연구원 발레리 마르셀은 이렇게 분석했다. “토탈로서는 이라크에 다시 발부터 들여 놓는 게 중요한 만큼 불리한 합작조건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토탈과 엑슨모빌 사이에 모종의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고 있으나 토탈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이라크가 국제적 관심의 초점이 되다보니 예기치 못한 리스크를 떠안고 싶지 않은 것이다.”

토탈이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토탈은 벨기에의 페트로피나와 합병해 몸집을 불린 바로 다음해 2000년에 자신보다 더 큰 프랑스의 엘프 아키텐을 무리하게 인수했다. 지난해 매출 1,080억 달러에 순이익 66억 달러를 기록했한 토탈은 현재 시가총액 1,160억 달러로 프랑스 최대 기업이다.
하지만 토탈은 엘프 아키텐 인수과정에서 과거 부정사례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떠안고 말았다. 게다가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닫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엘프 아키텐의 전 회장 루아크 르 플로슈 프리장(Loik Le Floch-Prigent)은 프랑스 언론에서 떠들어댄 이른바 ‘시스템 엘프’ 스캔들의 주모 혐의로 현재 공판을 받고 있다. 시스템 엘프란 80~90년대 3억 달러를 빼돌린 회계부정 스캔들이다. 3억 달러는 엘프 임원진 호주머니에,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사회당으로 흘러들어갔다. 엘프에 대다수 사업권을 내준 서아프리카의 부패 관리들에게도 고급 선물이 돌아갔다.

공판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엘프의 부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91년 미테랑은 르 플로슈 프리장과 만난 자리에서 골프 친구인 로랑 라이야르 박사가 파리 외곽의 전원주택을 팔 생각이라고 우연히 내뱉었다. 엘프는 라이야르의 전원주택을 2,000만 프랑에 매입하고 뒷돈으로 600만 프랑까지 건넸다. 게다가 라이야르는 임대료 한 푼 없이 전원주택에 계속 거주했다.보도에 따르면 토탈은 문제를 조용히 마무리 짓겠다는 심산에서 엘프의 미지급 채무를 군소리 없이 꼬박꼬박 갚아왔다.

토탈이 외부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감사보고서를 의뢰해 지난 5월 발표한 것도 악화된 이미지 제고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티에리 데스마레(Thierry Desmarest) 토탈 회장은 “회사의 덩치가 커지면서 토탈에 대한 사회의 기대치도 한층 높아졌다”며 “그러나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면 다른 일자리나 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데스마레가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토탈을 자기 방식대로 이끌며 수렁에 빠뜨리기도 했다. 데스마레는 석유 탐사 ·생산부문에서 근무하며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그에게는 새 유전을 찾아내는 본능적인 후각과 위험도 불사하는 배짱이 있었다.

95년 그는 49세의 나이로 회장직에 올랐다. 한때 석유업계에서 토탈의 전신(前身)인 ‘콩파니 프랑세즈 데 페트롤(CFP)’은 ‘석유를 찾을 수 없음(Can’t Find Petroleum)’이라는 뜻으로 통하기까지 했다. 그 농담을 사그라지게 만든 이가 바로 데스마레다.
젊은 시절 데스마레는 시베리아 서부 카리야가(Kharyaga) 유전의 생산량 배분 협상을 담당한 바 있다. 당시 러시아는 관련 법규가 없어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거 모빌의 러시아 석유 탐사 ·생산부문 담당자로 현재 석유산업 컨설팅업체 경영자가 된 플로런스 피는 데스마레에 대해 “기회를 누구보다 먼저 포착해 내는 인물”이라며 “당시 협상은 배짱 두둑한 행동이었다”고 회상했다.

데스마레는 석유탐사에 주력한 결과 지금까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토탈은 지난해 토탈보다 규모가 큰 에너지업체의 생산량이 감소하거나 현상 유지하는 추세와 대조적으로 석유겷동О】?생산량을 하루 240만 배럴로 10% 늘렸다. BP의 증산율은 3%에 불과했다. 데스마레는 향후 6년에 걸쳐 생산량이 연평균 5%씩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토탈은 올해 보유자본 가운데 67%인 68억 달러를 석유 탐사 ·시추 ·개발 ·생산에 쏟아붓고 있다. 업계 평균 60%를 웃도는 비율이다.

토탈은 높은 실적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악의 화신’과 거래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토탈의 석유 탐사 ·생산팀은 많은 석유 ·천영가스가 매장돼 있는 이란 ·미얀마에서?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토탈의 한 임원은 어느 컨설턴트에게 “어쩌다 이토록 많은 석유가 범죄자들 손에 들어가게 됐단 말인가”라며 탄식했다. 그만큼 말썽 많은 곳이라는 의미다. 토탈은 석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토탈은 미얀마 안다만해(海)의 야다나 가스전에서 태국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 태국은 파이프라인으로 해마다 공급되는 천연가스 50억㎥의 대부분을 구매한다.

추악한 정권 중 하나인 미얀마 정부는 파이프라인에서 연간 4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얀마 군사정권의 든든한 돈줄인 셈이다. 그러나 95년 시작된 파이프라인 공사에 부녀자와 아이들이 강제 동원됐다는 비난이 빗발쳤고 토탈은 이에 대해 계속 부인해 왔다. 토탈은 파이프라인 주변 마을의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혐의로 제소돼 이 사건은 현재 프랑스 법정에 계류 중이다. 데스마레는 “석유 회사마다 분쟁지역 하나씩은 안고 있는데 셸은 나이지리아, 엑슨은 인도네시아, 그리고 토탈은 미얀마”라고 밝혔다.

강제노역에 대해선 “부녀자들이 수t에 달하는 거대한 파이프를 어떻게 운반한단 말이냐”며 일축했다. 그러나 토탈의 한 컨설턴트조차 변명이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다. “토탈은 그 동안 의심받을 때마다 ‘굴뚝에 연기가 난다고 우리가 불을 피웠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는 것이다.토탈은 97년 9월 22억 달러 상당의 이란 사우스 파스(South Pars) 가스전 운영계약에 서명해 미국으로부터 분노를 샀다. 미국이 이란 ·리비아의 제재조치로 이란에 대한 미국인의 투자를 금한 지 1년 뒤에 발생한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토탈은 자사가 보유한 미국 내 주유소망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토탈이 미국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의미였다. 토탈의 석유 탐사 ·생산 담당 크리스토프 드마르제리(Christophe de Margerie) 사장은 “선과 악에 대한 다른 나라의 기준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당시 토탈은 미국 워싱턴 소재 법률회사 패튼 보그스(Patton Boggs)의 로비스트들를 동원해 미국에 중요한 바나나를 일괄 무역협상 품목에 포함시켰다. 그 결과 사태를 무마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미 정부가 토탈의 행동을 용서하거나 잊어버렸다는 뜻은 아니다. 피는 토탈이 “이란의 사우스 파스 가스전과 관련해 경솔하게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토탈은 분쟁지역인 수단 남부의 B구역 석유채굴권을 20여 년 간이나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동족상잔으로 고통받고 있는 수단에서 납과 유황 성분이 많은 석유를 생산하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수단 석유부가 해마다 토탈에 계약대로 채유하도록 촉구하면 토탈은 채유할 수 없는 이런저런 불가항력적 이유를 들어 매년 개발 라이선스 갱신비 5만 달러만 지불하는 일종의 게임까지 벌이고 있다. 셰브론텍사코(Chevron Texaco)는 수단에 15억 달러나 투자하고도 기름 한 방울 뽑아내지 못하고 84년 철수했다. 토탈은 언젠가 수단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수단의 나쁜 이미지를 씻어 주기를 바란다. 피로 물든 수단 땅에는 최고 5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데스마레 자신도 “수단에서 과연 석유를 퍼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숨지었다.

토탈은 이라크에서도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하며 비슷한 게임을 벌였다. 후세인이 프랑스의 두 석유회사에 마즈눈과 빈 우마르 유전을, 러시아의 루코일에 광대한 웨스트 쿠르나 유전을 선물로 떠안긴 이유는 자명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에 유전개발권을 주고 그들 나라로부터 대(對)이라크 경제제재 철폐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의도”라는 게 드마르제리의 설명이다. 프랑스 기업들은 이라크에 대한 정치적 지지의 대가로 유엔 석유 ·식량 교환 프로그램 아래 35억 달러 상당의 상품을 수출할 수 있었다. 이로써 프랑스는 1996~2001년 이라크의 최대 서방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이후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프랑스의 수출은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데스마레는 대이라크 금수조치를 위반하지 않겠다면서도 주저없이 한계선까지 접근하곤 했다. 토탈은 후세인의 사위 후세인 카멜이 석유장관으로 재직 중일 당시 이라크와 협상했다. 하지만 카멜은 해외로 망명했다 꾐에 빠져 이라크로 다시 들어온 뒤 살해됐다. 문제는 이라크 측 협상단에 아무 실권이 없었다는 점이다. 토탈의 중동 담당 알랭 르슈발리에(Alain Lechevalier) 이사는 “한결같이 장관급 윗선에서 중요 결정이 내려지고 있었다”며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라크 대표들에게는 어떤 권한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토탈 측 법률 고문단은 드마르제리의 말에 따라 배후에서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과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데스마레는 충고를 무시했다. 드마르제리는 “어쨌든 협상이 계속됐고 이라크와 협상했다고 교도소에 간 사람도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라크가 정작 계약서에 사인을 요구하자 토탈은 기피했다. 제재법 승인 아래 개발을 시작한다는 단서부터 요구한 것이다. 드마르제리는 “이라크가 토탈로 하여금 제재법을 위반하도록 유도하려는 속셈이었다”며 “프랑스 정부도 토탈이 계약서에 사인할 경우 이는 위법임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데스마레로서는 제대로 체결된 계약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몇 가지 카드가 남아 있다. 그 중 하나는 토탈이 이라크의 석유 관계자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왔다는 점이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토탈이 이라크에 진출해 있는 동안 직접 교육시킨 인물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과도정부 아래서 당시 인맥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토탈의 인맥이 이라크 석유산업을 이끌게 될 것이므로 토탈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며 수단에 눈돌리고 있는 것이다.

데스마레는 이라크 유전개발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이라크에 안정된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전 한 곳을 개발하는 데 30억~40억 달러가 필요한 데다 석유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 5년도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토탈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익이 적더라도 기꺼이 이라크 유전개발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데스마레는 토탈이 미겳?석유회사와 다른 점은 ‘반이라도 좋다’는 식의 적극적인 태도라고 말했다. 그는 “토탈이 미국 기업보다 중동국가에 훨씬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수익만 보장된다면 계약조건도 융통성 있게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토탈은 이란의 광대한 사우스 파스 연안 가스전 프로젝트에 두 기업과 손잡고 22억 달러를 투자했다. 토탈의 지분은 40%이며 사우스 파스 가스전은 현재 가동 중이다. 이번 계약은 토탈을 동등한 투자업체에서 하청업체로 변모시켰다. 하지만 토탈은 하루 8만 배럴의 농축가스를 얻고 있는 데다 수익률도 20%에 육박한다. 토탈은 올해 초반 사우스 파스의 통제권을 이란 국영 석유회사에 양도했다. 그 과정에서 650명의 학생을 교육시키는 프로그램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 420명 가운데 350명이 사우스 파스에서 일하고 있다. 토탈이 이란의 방대한 석유 ·천연가스에 주목하고 있는 한 해로울 게 하나도 없는 사업이다.

이라크에서 새 계약이 체결될 경우 사우스 파스와 유사한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앞으로 들어설 이라크 정부가 석유개발권을 다른 나라 기업에 넘겨줄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드마르제리는 “직원들에게 ‘이라크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 말한다”며 “전에는 계약 한 건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했지만 이제 체결할 수 있게 됐다”고 자위했다. 토탈은 이라크가 아니더라도 현재 목표를 달성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 토탈에 당장 중요한 것은 카자흐스탄의 대규모 카샤간(Kashagan) 유전이다. 카샤간 유전은 확인된 매장량만 130억 배럴에 이른다. 토탈은 카샤간 지분 20.3%를 갖고 있지만 토탈의 목표는 사업권이다.

그 점은 제휴업체인 엑슨모빌과 로열 더치/셸(Royal Dutch/Shell)도 마찬가지다. 현재 카샤간에서 활동 중인 기업은 다른 제휴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이탈리아의 에니(Eni)다. 다른 제휴업체들은 에니가 카샤간에서 실패하기만 고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데스마레는 제휴업체들을 제치고 사업권 획득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한다 해도 생산목표 시점인 오는 2005년까지 정치분규에 얽히고 설킨 카스피해(海) 송유관으로 석유를 운송할 수 있을까. 피는 “여러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누군가 할 수 있다면 그는 바로 데스마레일 것”이라고 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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