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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간 日 고이즈미 총리‘음악 테마 외교’로 눈길

유럽에 간 日 고이즈미 총리‘음악 테마 외교’로 눈길

독일을 방문중인 고이즈미 총리. 고이즈미는 유럽 방문에서 <문화총리> 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정상외교는 본질적으로 비즈니스 외교다. 국익은 하나의 거대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상들의 외교가 최근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부분에 집중되고 있다. 무역장벽을 제거하라, 우리가 비교우위에 있는 이걸 좀 사라 등등 요구가 갈수록 구체적이어서 보는 이에 따라서는 ‘쫀쫀’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찌 하랴. 경제는 국민 생활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걸. 그리고 경제 안보는 곧 정권 안보이자 국가 안보인데. 그런 점에서 최근 유럽을 순방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보여준 외교 방식이 눈에 띈다. 고이즈미는 8월18일 첫 방문지인 독일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 함께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바이로이트에서 열린 리하르트 바그너 축제에 참석해 바그너가 작곡한 악극 ‘탄호이저’의 전막을 무려 5시간 동안 관람했다. 이날 연미복 차림으로 슈뢰더와 함께 바그너가 만든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그의 음악을 감상한 고이즈미는 “이렇게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듣는 게 일생의 꿈이었다”며 시종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고이즈미는 바그너의 CD를 모두 수집해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다. 그의 독일 방문 시기가 외빈들의 방문이 금기시되는 8월에 잡힌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에선 8월이 휴가 기간이다. 슈뢰더는 지난해 캐나다의 카나나스키스에서 열린 G8(주요 8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했다가 고이즈미의 전용기에 동승, 일본에 가 요코하마에서 열린 독일과 브라질의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했다. 이때 고이즈미가 독일 출신 작곡가인 바그너의 애호가임을 알고 이번 축제에 초청한 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월드컵 결승전을 보러와 한·일월드컵의 대미를 장식해 준 독일의 총리에 호감을 가졌을 것이고, 독일 국민은 일본 총리를 문화 총리로 봤음직하다. 게다가 독일은 얻는 게 하나 더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2차대전 후 독일 지도자로선 처음으로 바이로이트 축제에 참석한 독일 지도자가 됐다. 신화와 전설을 소재로 게르만족의 위대함을 강조한 바그너의 악극은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열광하는 바람에 일부에서 반유대주의의 상징으로 오해해 왔다. 그래서 독일 정치 지도자들의 바이로이트 축제 참석은 그동안 금기였다.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지난 8월19일 “고이즈미 덕분에 슈뢰더가 자연스럽게 바이로이트 축제에 가게 됨으로써 수십년간 바그너의 음악에 씌워진 반유대주의라는 굴레가 자연스럽게 벗겨졌다”고 지적했다. 고급문화 애호가로 유명한 슈뢰더는 그 다음 주말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함께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에서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의 ‘카르멘’을 감상했다. 베를루스코니는 7월 초 자신을 ‘마피아’라고 부른 독일 출신 유럽의회 의원을 ‘카포’(나치 수용소 간수)라고 비난했다가 양국간 외교 마찰을 빚었다. 슈뢰더는 ‘오페라 외교’를 펼친 것이다. 하지만 고이즈미가 한 수 더 높았다. 그는 폴란드에선 작곡가 쇼팽의 심장이 안치돼 있는 바르샤바 시내 교회를 방문했고, 체코에선 국민 작곡가 드보르작과 스메타나의 묘지가 있는 프라하 교외를 찾아가 헌화했다. 고이즈미는 “이 분들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작곡가들로 그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아름다운 이 곳을 떠올릴 것 같다”고 덕담을 했다. 동유럽 국민들이 감탄한 것은 물론이다. 고이즈미의 고차원 ‘음악 테마 외교’는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돈 많고 기술이나 좋은 나라’ 정도였던 일본의 국가 이미지를 ‘프랑스 뺨치는 수준 높은 문화국가’로 만들어 일본이라는 나라와 국민, 기업 나아가 상품의 가치를 몇 단계 높일 것이다. 그게 국가 이미지의 값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국인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동북아에 물의를 일으킨 그가 왜 일본에선 인기가 그리 높은지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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