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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영웅들이 다시 뭉쳤다

어제의 영웅들이 다시 뭉쳤다


The Girls Are Back in Town

여름날의 특별한 사랑을 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의 스포츠 팬들에게 그같은 순간은 4년 전에 왔다. 무명 축구선수들에서 몇주 만에 미아·브랜디·브리아나·티페니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스타들로 변신한 젊은 여자들에게 홀딱 반했던 것이다. 1999년 로스앤젤레스의 로즈보울 경기장. 9만명의 관중과 4천만명의 TV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멋진 선방과 골인, 그리고 여자선수가 유니폼을 벗어던져 스포츠 브라가 드러나는 모습이 이어지면서 여자월드컵 결승전이 끝났다.

그때 미국은 우승컵을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큰 교훈을 얻은 분위기였다. 우승골을 넣은 뒤 골세리머니로 유니폼을 벗어 여자월드컵의 명장면을 연출했던 브랜디 채스테인은 “그 순간은 생각지 못했던 상징성을 지니게 됐다. 그 순간은 강인한 여자·엄마·딸들을 상징하게 됐다. 여성들이 무언가를 축하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나는 그 순간이 모두에게 신선함을 주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미국에 무언가 신선함이 필요해진 순간에 그 여름날의 여성들이 다시 활동에 나섰다. 미국은 9월 21일 워싱턴 D. C.에서 개막된 월드컵 경기에서 타이틀 방어에 나섰다. 미국팀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발생으로 대회 개최지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변경되면서 다시 한번 홈구장의 이점을 누리게 됐다. 게다가 미국팀의 진용은 4년 전에 비해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여자축구는 국민적 관심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을에 열리는 만큼 시즌이 겹치는 야구·미식축구 등과 인기 경쟁을 벌여야 한다.

지난번 월드컵에서 슈퍼스타로 부상한 미아 햄과 1980년대 말 이래 미국 대표팀에서 함께 뛰어온 그녀의 몇몇 30대 동료들에게 이번 월드컵과 내년 아테네 하계 올림픽은 고별무대가 될 것이다. 역경을 딛고 선 이 선구적인 여자 축구팀은 고된 훈련, 무욕(無慾), 동료의식 등 스포츠의 전통적인 미덕을 분명히 보여줬다. 1999년에는 관중석에서 여자월드컵 결승전을 지켜봤었지만 이제는 미국팀 수비수로 합류한 캣 레딕(21)은 “나는 이곳 미국에서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여자스타들과 함께 뛸 기회를 얻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내가 처음 연습에 참가했을 때 줄리 파우디가 내게 다가와서 ‘안녕, 내 이름은 줄리 파우디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내 자신을 꼬집어봤다. 그녀가 누군지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말이다”고 말했다.

이번 여자월드컵 대회에 걸린 것은 우승만이 아니다. 1999년 대회 이후 선수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활용해 새로운 프로축구 리그인 WUSA를 출범했다. 그런데 세시즌을 마친 지금 이 리그는 인기 하락과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다가 결국 지난 16일 리그 중단을 선언했다. 미국 여자축구팀의 최고령 선수인 수비수 조이 포세트(37)는 “우리는 경기를 할 때마다 여자축구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팬들의 관심을 다시 끌고 여자축구를 재활성화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새 규정에 따라 선수들이 유니폼을 벗어던지는 것이 금지되긴 했지만 우승은 관심을 끄는 최선책이다. 그렇지만 4년 전 우승은 쉽게 얻어지지 않았고(중국팀을 상대로 1백20분간 득점없이 진행되다가 승부차기로 신승을 거뒀다) 이번에는 더 어려울 수 있다. 여자축구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지난 월드컵 이래 미국팀의 성적에는 14패 15무승부가 포함된다. 지난 대회 준비기간에는 고작 6패 5무승부만을 기록했었다. 16개팀이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미국은 전통 축구강국 스웨덴과 아프리카 챔피언 나이지리아, 그리고 아시아 선수권 보유국 북한과 더불어 ‘죽음의 조’에 편성됐다.

미국은 지금도 막강한 베테랑들에다 젊은 축구 인재들의 수혈까지 받아 강력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 1999년 우승 직후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에이프릴 하인리히는 “우리는 4년 전에 비해 모든 포지션에 융통성과 깊이가 더해져 훨씬 더 우수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팀 주장 파우디는 “감독님은 ‘전체적인 틀을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참가 기회를 놓칠 뻔했던 두 선수가 미국의 희망인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지난해 미국팀의 ‘득점 제조기’로 활약한 섀넌 맥밀런(29)은 올해 5월 무릎수술을 받은 후 출전 전망이 어두웠지만 예정보다 두달 이상 앞당겨 복귀한 덕에 이번 대회에서 뛸 수 있게 됐다. 또다른 선수는 지난 대회에서 탁월한 선방으로 채스테인이 우승골을 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던 골키퍼 브리아나 스커리(32)다.

대회 이후 스커리는 체중이 불어 거의 두시즌 내내 대표팀을 떠나 있었다. 그러나 한 WUSA 경기 후 그녀는 최다출전 기록을 세운 크리스틴 릴리의 우정어린 설득과 재기 노력 끝에 대표팀에 복귀했다.
핵심 멤버들의 복귀, 재능과 경험, 그리고 홈구장의 이점을 두루 갖춘 미국팀은 월드컵 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우승 후보로 꼽혀 왔다. 그런데 팬들의 사랑과 관련해서는, 글쎄…. 선수들은 다시 한번 팬들의 사랑에 불길을 지필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두번째 사랑이 첫사랑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With MARTHA B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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