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다시 외국 자본의 각축장
한국은 다시 외국 자본의 각축장
자본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은 시대다. 그보다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주소지’가 나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외국 자본의 ‘한국 사냥’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성행했다. 이들은 글로벌 자본 이동의 시대를 실감나게 만들 정도로 지금도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한국 물정을 잘 모르고 들어와 큰 코 다친 경우도 있지만 유수의 투자은행과 펀드 등은 대개 한 몫 단단히 챙겼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 지원은 미국 거대 자본의 미끼이자 덫이라는 음모론까지 나돌 정도였다.
한국 경제가 안정을 되찾은 요즘 들어선 매물 자체가 크게 줄어 이들 사이에도 경쟁이 격화됐다. 이들은 “한동안 나무 밑에서 따 먹기 좋은 과일을 골랐지만 이제는 나무에 올라가 애써 따야 한다”는 푸념까지 뱉고 있다.이들은 그러나 여전히 ‘남는 장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 경제를 밝게 본다는 뜻도 담겨 있다. 한미은행 지분을 인수한 영국계 스탠더드차터드 은행처럼 예전보다 비싼 값에라도 들어올 태세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사냥감’이 나타나면 잽싸게 낚아채고 있다.당장 제일은행을 손에 쥐고 있는 뉴브리지캐피털은 현재 AIG와 손잡고 하나로통신의 1대주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 부실 채권과 부동산시장에서 ‘큰손’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론스타는 “단일 투자건으로는 가장 많은 투자를 했다”는 자랑까지 곁들이며 외환은행의 1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지난 2~3년 사이 뜸했던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은 최근 들어 이른바 ‘사모(私募) 직접 투자펀드(Private Equity Fund)’가 주도하는 모습이다. 기업과 금융 시장에서는 매물로 나온 기업을 직접 인수하거나 지분을 사들이는 이들은 연기금이나 내로라 하는 큰손이 전주인 경우가 많다. 기업 ·금융 시장과 달리 요즘 부동산시장에서 외국계의 움직임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고위험 ·고수익 성향의 미국계 투자 펀드에서 저위험 ·저수익 선호하는 유럽계 펀드로 손바뀜이 일어나는 정도다.
외국계 펀드의 단골 사냥 메뉴였던 국내 빌딩의 가격과 임대료가 오를 만큼 올라 수익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론스타의 경우 강남 스타타워를 8,000억원에 내놓았지만 덩치가 큰 탓인지 마땅한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증시에서는 외국 자본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외국인이 사면 주가가 오르고 팔면 내린다. 이들은 특히 ‘이머징 마켓(신흥 시장)’의 투자 원칙에 따라 한국에서도 간판 기업만 사들이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편집자> 편집자>
기업 ·금융 ·부동산 시장의 외국 자본
한국 시장 전망 낙관
‘사모펀드’ 중심 거센 공세
외환위기 직후부터 숱한 외국계 투자은행과 펀드 등이 헐값이 된 한국 기업 사냥에 나섰거나 나서고 있다. 론스타 ·골드먼삭스 ·리먼 브러더스 ·서버러스등은 제값의 30%에도 못 미치는 부실 채권을 사서 되팔아 차액을 두둑히 챙겼다. 모건 스탠리갘P모건 등은 한국 기업의 매각이나 외자 유치 때 주간사로 나서 거액의 수수료 수입을 올렸다. 이들뿐 아니다. 매물로 나온 기업을 직접 인수하거나 지분을 사들이는 투자 펀드의 활약도 대단했다.
이른바 ‘사모(私募) 직접 투자펀드(Private Equity Fund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연 노릇을 톡톡히 했고, 지금도 버젓이 주연으로 남아 있다. 특히 제일은행을 손에 쥐고 있는 미국계 뉴브리지캐피털은 현재 AIG와 손을 잡고 하나로통신 1대주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 여기에 금호타이어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미국계 칼라일, 플래너스에 투자해 이익을 챙긴 미국계 워버그핀커스, 해태제과를 인수한 스위스계 UBS캐피털 등도 호시탐탐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
이들 펀드는 대개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지만 회생 가능성이 크거나, 벤처 단계 또는 안정 단계에 막 접어든 기업 등을 노린다.증시같은 공개시장에서 주식을 사고 파는 일반 펀드와 달리 투자 대상 기업과 개별적인(private) 협상을 통해 비공개 주식이나 전환사채(CB) 등을 사들인다. 연기금이나 내로라 하는 큰손이 전주인 경우가 많은 이들 펀드의 투자 기간은 보통 5년 안팎이다. 워버그핀커스와 골드먼삭스처럼 경영이 안정돼 있는 회사의 주요 주주로 참여해 차익을 노리기도 하고, UBS캐피털처럼 직접 경영개선 작업을 벌여 ‘몸 값’을 올려놓은 뒤 지분을 되팔기도 한다. 얼핏 워런 버핏식의 가치 투자나 상처입은 기업을 사냥하는 벌처 펀드의 투자와 비슷한 성향도 엿보인다.
지금까지 이들 펀드의 투자 액수는 금융권의 대출을 더해 적어도 60억 달러(약 7조2,000억원)는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 이익을 실현한 사례는 드물다. 이들이 손을 뻗은 대표적인 기업은 해태제과 ·위니아만도 ·㈜만도(UBS캐피털), LG카드 ·플래너스(워버그핀커스), 진로 ·국민은행 ·팍스넷(골드먼삭스), 제일은행(뉴브리지캐피털), 한미은행(칼라일) 등이다. 이 가운데서는 UBS캐피털이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평가다. UBS캐피털은 99년 9월 2,350억원에 위니아만도를 인수했다.
한라중공업에 지급 보증을 섰다가 흑자 도산한 만도기계의 아산 공장이 전신인 위니아만도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700억원에 이르는 이익을 냈다. 2001년 10월 CVC아시아퍼시픽갘P모건캐피털과 더불어 4,791억원을 투자한 해태제과도 2002년 회계연도(2001년 7월~2002년 6월)에 250억원, 2003년 회계연도에는 15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워버그핀커스는 희비가 엇갈린다. 지난 2000년 LG카드 주식 1,400여만 주를 주당 31,500원에 LG산전으로부터 넘겨받았지만 현재 주가는 2만원 초반대라 평가손 상태다.
지난 5월 LG카드 유상증자(주당 8,800원)에 참여해 ‘물타기’를 했지만 LG카드 주가가 3만원대는 가야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지난 5월 플래너스 지분 215만7,000주(15.20%)를 모두 처분해 꽤 많은 이익을 남겼다.뉴브리지캐피털과 칼라일은 ‘사냥감’을 놓쳐 발을 구를 때가 더러 있었다. 뉴브리지캐피털의 경우 조흥은행 ·하이닉스등을 노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또 지난 9월 9일 AIG와 컨소시엄을 이뤄 하나로통신과 11억 달러의 투자 계약을 맺었지만 현재 대주주인 LG 측의 반발이 심해 10월 21일 열릴 주주총회 때까지 속을 태우게 됐다. 칼라일의 경우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년 넘게 금호타이어 인수에 공을 들였지만 결국 군인공제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황성진 워버그핀커스 한국 대표는 “지난 2년간 거래가 소강 상태였다”며 “한동안 나무 밑에서 따 먹기 좋은 과일을 골랐지만 이제는 나무에 올라가 애써 따야 한다”고 말한다. 강훈석 골드먼삭스 상무도 “갈수록 경쟁은 격화되는데 매물은 거꾸로 줄고 있어 운신의 폭이 좁다”고 어려움을 전한다.
심지어 역차별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근승 IMM투자자문 대표는 “칼라일 측에서는 한국 정부가 국부 유출 비난 등을 의식해 금호타이어를 군인공제회에 넘겼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소버린식 투자’ 늘어날 가능성
기업 매물이 귀해지면서 새로운 ‘사냥 방식’도 나오고 있다. SK㈜의 1대주주에 오른 소버린자산운용과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사들여 적대적 기업 인수 ·합병(M&A) 논란을 일으킨 미국계 펀드 GMO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내실은 탄탄하나 지배구조가 취약하거나 경영권이 일시적으로 흔들리는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투자기관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후 미국의 아팔루사 같은 헤지펀드는 한국 물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와 별 재미를 못 보고 나갔지만 요즘은 한국 사정에 밝은 기관을 끼고 많이 들어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소버린식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한화 ·코오롱을 비롯해 오너 지분이 적은 중견그룹이 집중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걱정에서인지 지분을 늘리는 오너가 많아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한화의 지분을 종전 18.96%에서 22.86%로 높였다. 코오롱그룹의 이웅열 회장과 이동찬 명예회장도 지난 5월 코오롱 주식을 사들여 이 회장의 지분율은 13.82%에서 16.75%로, 이 명예회장은 2.75%에서 3.08%로 높아졌다. 박용만 두산 사장도 지난 7월부터 8월 말까지 자사주를 사들여 1.73%였던 지분율을 3.90%로 높였다.
소버린의 습격을 지켜본 최창원 SK글로벌 부사장과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도 얼마 전 SK건설과 SK제약의 대주주인 SK케미칼 주식을 매입, 지분율을 지난해 1.24%에서 6.93%로 올렸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다임러크라이슬러 계열의 미쓰비시상사가 보유한 현대차 주식 0.32%를 인수해 지분율을 4.40%로 높였다.
사냥 대상인 기업으로선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를 비롯, 외국계 자본이 들어오는 건 그만큼 한국 경제의 안정성이 커졌다는 방증이라는 주장도 있다. 외국계 펀드 관계자들은 “바닥이 없는 경제에 투자하진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근승 대표는 특히 “국부 유출 논란에도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 발전에 기여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예컨대 국내에도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와 같은 투자 수단이 있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건 너무하다는 얘기다. 서경국 UBS증권 이사는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는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사무소 등록만 하면 국내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며 “국내 프라이빗 에쿼티의 경우 육성은커녕 관련 규정조차 없다”고 꼬집었다.
외국 자본은 지난 2~3년 사이 뜸하다 올 들어 국내 은행 ·증권 ·카드사 매물을 활발히 거둬들이고 있다. 외환위기 뒤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첫 발을 디뎠고, 가계 부실과 카드 대란 등의 혼란을 틈타 2차 공세를 펴고 있는 것. 특히 이런 과정에서 은행권의 지형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 8개 시중은행은 이른바 ‘한국계 4강(국민 ·신한 ·조흥 ·우리 ·하나)’과 ‘외국계 3약(외환 ·제일 ·한미)’의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외국계 자본끼리 ‘손바뀜’도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다. 골드먼삭스를 비롯한 1세대 투자 펀드는 이익을 챙기고 떠날 채비인 반면 론스타 등은 새롭게 뛰어들고 있다.
외국계 진출로 은행권 지각변동
론스타는 8월 27일 독일 코메르츠방크와 수출입은행의 지분을 넘겨받아 외환은행의 1대주주에 올랐다. 12억 달러(1조3,834억원)를 들여 지분 51%를 인수했다.
이보다 앞선 8월 6일에는 영국계인 스탠더드차터드 은행이 삼성전자로부터 한미은행 지분 9.76%를 넘겨받아 칼라일(지분율 36.5%)에 이어 2대주주로 떠올랐다. 소매금융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스탠더드차터드 측은 “한미은행 지분 인수로 한국 시장 개척을 위한 거점을 확보했다”고 밝혀 또 다른 투자 의사도 비쳤다.
금융권에서는 칼라일 측에서 주식 처분 제한이 풀리는 오는 11월 이후 보유 지분 전체나 일부를 스탠더드 쪽에 넘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00년 주당 6,800원에 한미은행 지분을 인수한 칼라일은 이미 50%에 가까운 평가이익을 올린 상태다.
하나은행도 지분 인수자를 물색하고 있다. 옛 서울은행을 인수하면서 생긴 정부 지분을 되팔려는 것. 현재 일본 신세이 은행과 자사주 15%를 팔기 위해 협상 중이다.
2금융권에서도 외국계 자본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계 프루덴셜금융그룹은 지난 3월 현대투신증권을 인수하기로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본계약을 앞두고 있다. 프루덴셜 측은 제일투자증권도 인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계 GE캐피털은 지난 8월 초 서울보증보험 ·삼성캐피탈과 함께 신용정보회사 설립 예비인가를 신청했다. 우리카드 지분 49%도 인수할 예정이다. 특히 은행업 진출에도 의욕을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부실 우려 등이 여전히 크지만 금융권은 구조조정 마무리 단계여서 투자 가치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은행권의 경우 ‘국민 ·우리 ·신한+조흥 ·하나은행'4강 구도가 굳어지고 있어 더 늦기 전에 투자해야 한다는 절박감도 외국계 투자를 부추겼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움직임과 반대로 이익을 챙기고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나섰거나 나서려는 외국계 펀드도 눈에 띈다. 골드먼삭스와 얼마 전 JP모건에 인수된 H&Q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9월 4일(한국 시간) 뉴욕 증시에서 국민은행 해외주식예탁증서(ADR)를 판 골드먼삭스는 이익을 두둑이 챙겼다. 지난 99년 옛 국민은행에 5억 달러를 투자한 골드먼삭스는 지난해 6월에 이어 이번에도 국민은행 지분을 팔아 대략 11억 달러를 손에 쥐었다.
골드먼삭스는 게다가 아직도 국민은행 지분 1.22%를 갖고 있어 3.87%를 갖고 있는 ING에 이어 3대주주로 남아 있다. 골드먼삭스는 교보생명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 국민은행 지분을 서둘러 판 것으로 알려졌다.
H&Q는 98년 8월 옛 쌍용증권에 7,500만 달러를 투자했다(외국계 펀드로 한국 증권사에 투자한 첫 케이스였다). H&Q는 그로부터 4년 만인 2002년 4월 신한금융지주에 지분 42.8% 가운데 30%를 팔아 당초 투자 금액의 6배를 벌었다.
이들과 달리 아직 별 재미를 못 본 사례도 있다. 2000년 1월 제일은행을 5,000억원에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털은 아직 배당금을 못 챙겼고 주식 재상장 일정도 불투명하다. 9,948억원을 외환은행에 투자한 독일계 코메르츠방크의 주당 평균 인수 가격은 8,250원으로 평가손 상태다. 다만 론스타에 주당 5,400원을 받고 넘긴 우선주는 주당 5,000원에 산 것이라 약간의 이익을 봤다.국내 금융시장도 이들의 진출로 덕을 봤는지 아닌지 평가가 엇갈린다. 먼저 국내 산업자본이 정부의 규제 때문에 은행산업에 진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국 자본이 한국 금융의 자본 확충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제일은행 사례에서 보듯 기대만큼 선진 금융기법을 전수하기는커녕 경영권에 혼란만 줬다는 비난도 있다. 한편 외국계가 장악한 3개 은행을 중심으로 또 한번 합종연횡(合縱連衡)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뉴브리지(제일) ·론스타(외환) ·칼라일(한미)이 모두 현재 영업력으로는 토종 대형 은행을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에 대형화 바람을 일으킬 것이란 관측이다.
금융시장과 달리 요즘 부동산시장에서 외국계 펀드의 움직임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고위험 ·고수익 성향의 미국계 투자 펀드에서 저위험 ·저수익을 선호하는 유럽계 펀드로 손바뀜이 일어나는 정도다. 외국계 펀드의 단골 사냥 메뉴였던 국내 빌딩의 가격과 임대료가 오를 만큼 올라 수익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외국계 펀드가 국내 부동산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1998년 1월 외국인 토지법 개정 조치였다. 정부는 외자를 끌어오기 위해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매매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꿨다. 국내에서 업무용 자산만 취득할 수 있었던 외국인들은 이때부터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큰손’ 노릇을 하고 있는 외국계 펀드는 대략 20개다.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한국BHP의 최성준 부사장은 “외국계 투자자 가운데 13군데 정도는 한 건이라도 매매를 했고, 나머지는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라며 “이들은 대개 주거용 부동산보다는 오피스 빌딩을 선호하고 건당 5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시장 진출 1호는 네덜란드계 투자사인 로담코다. 로담코는 99년 12월 서울 역삼동 현대중공업 사옥을 1,250억원에 사들였다. 로담코가 첫 테이프를 끊은 뒤 서울 시내에서 500억원 이상 나가는 대형 빌딩들은 외국계 부동산 펀드의 표적이 됐다.
싱가포르 투자청(GIC)의 ‘치맛바람’이 대단했다. 싱가포르 투자청은 1999년 12월 한라그룹 소유의 서울 잠실동 33층짜리 주상복합건물 한라시그마타워 1~11층을 330억원에, 회현동 아시아나빌딩을 500억원에 각각 인수했다. 또 2000년 7월에는 서울 무교동 서울파이낸스센터 빌딩을 3,550억원에 사들여 당시 부동산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싱가포르 정부가 100% 출자한 싱가포르 투자청은 1년 운용 자금이 우리나라 예산과 맞먹는 1,000억 달러(약 130조원)로 알려졌다.
골드먼삭스 ·모건스탠리 ·론스타등 미국계 펀드도 만만찮았다. 이들 펀드 산하 부동산 개발팀이 앞장서 당시 헐값에 나와 있던 국내 빌딩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제너럴 일렉트릭(GE) 계열의 부동산투자 회사인 GE리얼이스테이트에 따르면 국내 사무빌딩 시장은 2000년 23건의 거래에 2조1,100억원, 2001년에는 19건에 1조5,770억원 등 연간 1조원이 넘는 규모를 기록했다.
유럽계 펀드가 미국계 빈자리 메워
당시 몰려든 미국계 펀드들은 대체로 고위험 ·고수익을 지향했다. 투자 기간은 5년에서 7년 정도로 대략 30%의 수익률을 달성하면 미련없이 떠날 채비를 했다. 이들은 비교적 임대료가 싼 빌딩을 발굴한 뒤 리모델링을 통해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했다. 론스타가 대표적인 사례다. 론스타는 2000년 명동의 청방빌딩을 200억원에 사들인 데 이어 역삼동 스타타워를 6,632억원, 여의도 동양증권과 SKC 빌딩을 각각 650억원, 660억원에 매입했다. 론스타는 이 가운데 동양증권과 SKC 빌딩을 호주계 투자은행인 매쿼리에 팔아 400억원 정도 차익을 남겼다. 반면 스타타워를 8,000억원에 내놓았지만 덩치가 큰 탓에 마땅한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들어 미국계 펀드가 주춤하는 사이 유럽계 자본이 국내 부동산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계 펀드와 달리 저위험 ·저수익을 지향하는 이들은 특히 미국계 펀드들이 팔아치우고 있는 빌딩을 사들이고 있다. 국내 기업의 경우 대형 빌딩을 매입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 이들이 독주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처럼 외국계 사이에서 1세대와 2세대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대부분 연기금을 쌈짓돈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수익률이 다소 낮더라도 위험도가 낮은 빌딩들을 사들이고 있다. 이들의 목표 수익률은 대략 10% 미만으로 시장에서 검증된 빌딩에만 입질을 하고 있다.
예컨대 프루덴셜 자금과 독일 연기금이 주축인 것으로 알려진 영국계 투자사 GRA는 서울 강남구 한솔빌딩과 서대문 에이스타워, 용산구 벽산빌딩, 종로구 알파빌딩을 사들였다.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국내 빌딩 가격은 ‘오를 만큼 올랐다’는 게 중론이다. 서울 시내 A급 빌딩의 평당 매매가는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에는 500만원으로 떨어졌다. 그러다 지금은 1,000만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고수익을 노리는 미국계 펀드들이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다.
전반적으로 볼 때 아직 ‘셀 코리아(Sell Korea)’가 아닌 차익 실현 단계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아시아 지역에서 투자 메리트가 있는 나라는 여전히 한국 ·중국 ·일본 정도를 꼽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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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안정을 되찾은 요즘 들어선 매물 자체가 크게 줄어 이들 사이에도 경쟁이 격화됐다. 이들은 “한동안 나무 밑에서 따 먹기 좋은 과일을 골랐지만 이제는 나무에 올라가 애써 따야 한다”는 푸념까지 뱉고 있다.이들은 그러나 여전히 ‘남는 장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 경제를 밝게 본다는 뜻도 담겨 있다. 한미은행 지분을 인수한 영국계 스탠더드차터드 은행처럼 예전보다 비싼 값에라도 들어올 태세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사냥감’이 나타나면 잽싸게 낚아채고 있다.당장 제일은행을 손에 쥐고 있는 뉴브리지캐피털은 현재 AIG와 손잡고 하나로통신의 1대주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 부실 채권과 부동산시장에서 ‘큰손’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론스타는 “단일 투자건으로는 가장 많은 투자를 했다”는 자랑까지 곁들이며 외환은행의 1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지난 2~3년 사이 뜸했던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은 최근 들어 이른바 ‘사모(私募) 직접 투자펀드(Private Equity Fund)’가 주도하는 모습이다. 기업과 금융 시장에서는 매물로 나온 기업을 직접 인수하거나 지분을 사들이는 이들은 연기금이나 내로라 하는 큰손이 전주인 경우가 많다. 기업 ·금융 시장과 달리 요즘 부동산시장에서 외국계의 움직임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고위험 ·고수익 성향의 미국계 투자 펀드에서 저위험 ·저수익 선호하는 유럽계 펀드로 손바뀜이 일어나는 정도다.
외국계 펀드의 단골 사냥 메뉴였던 국내 빌딩의 가격과 임대료가 오를 만큼 올라 수익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론스타의 경우 강남 스타타워를 8,000억원에 내놓았지만 덩치가 큰 탓인지 마땅한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증시에서는 외국 자본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외국인이 사면 주가가 오르고 팔면 내린다. 이들은 특히 ‘이머징 마켓(신흥 시장)’의 투자 원칙에 따라 한국에서도 간판 기업만 사들이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편집자> 편집자>
기업 ·금융 ·부동산 시장의 외국 자본
한국 시장 전망 낙관
‘사모펀드’ 중심 거센 공세
외환위기 직후부터 숱한 외국계 투자은행과 펀드 등이 헐값이 된 한국 기업 사냥에 나섰거나 나서고 있다. 론스타 ·골드먼삭스 ·리먼 브러더스 ·서버러스등은 제값의 30%에도 못 미치는 부실 채권을 사서 되팔아 차액을 두둑히 챙겼다. 모건 스탠리갘P모건 등은 한국 기업의 매각이나 외자 유치 때 주간사로 나서 거액의 수수료 수입을 올렸다. 이들뿐 아니다. 매물로 나온 기업을 직접 인수하거나 지분을 사들이는 투자 펀드의 활약도 대단했다.
이른바 ‘사모(私募) 직접 투자펀드(Private Equity Fund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연 노릇을 톡톡히 했고, 지금도 버젓이 주연으로 남아 있다. 특히 제일은행을 손에 쥐고 있는 미국계 뉴브리지캐피털은 현재 AIG와 손을 잡고 하나로통신 1대주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 여기에 금호타이어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미국계 칼라일, 플래너스에 투자해 이익을 챙긴 미국계 워버그핀커스, 해태제과를 인수한 스위스계 UBS캐피털 등도 호시탐탐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
이들 펀드는 대개 일시적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지만 회생 가능성이 크거나, 벤처 단계 또는 안정 단계에 막 접어든 기업 등을 노린다.증시같은 공개시장에서 주식을 사고 파는 일반 펀드와 달리 투자 대상 기업과 개별적인(private) 협상을 통해 비공개 주식이나 전환사채(CB) 등을 사들인다. 연기금이나 내로라 하는 큰손이 전주인 경우가 많은 이들 펀드의 투자 기간은 보통 5년 안팎이다. 워버그핀커스와 골드먼삭스처럼 경영이 안정돼 있는 회사의 주요 주주로 참여해 차익을 노리기도 하고, UBS캐피털처럼 직접 경영개선 작업을 벌여 ‘몸 값’을 올려놓은 뒤 지분을 되팔기도 한다. 얼핏 워런 버핏식의 가치 투자나 상처입은 기업을 사냥하는 벌처 펀드의 투자와 비슷한 성향도 엿보인다.
지금까지 이들 펀드의 투자 액수는 금융권의 대출을 더해 적어도 60억 달러(약 7조2,000억원)는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아직 이익을 실현한 사례는 드물다. 이들이 손을 뻗은 대표적인 기업은 해태제과 ·위니아만도 ·㈜만도(UBS캐피털), LG카드 ·플래너스(워버그핀커스), 진로 ·국민은행 ·팍스넷(골드먼삭스), 제일은행(뉴브리지캐피털), 한미은행(칼라일) 등이다. 이 가운데서는 UBS캐피털이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평가다. UBS캐피털은 99년 9월 2,350억원에 위니아만도를 인수했다.
한라중공업에 지급 보증을 섰다가 흑자 도산한 만도기계의 아산 공장이 전신인 위니아만도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700억원에 이르는 이익을 냈다. 2001년 10월 CVC아시아퍼시픽갘P모건캐피털과 더불어 4,791억원을 투자한 해태제과도 2002년 회계연도(2001년 7월~2002년 6월)에 250억원, 2003년 회계연도에는 15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워버그핀커스는 희비가 엇갈린다. 지난 2000년 LG카드 주식 1,400여만 주를 주당 31,500원에 LG산전으로부터 넘겨받았지만 현재 주가는 2만원 초반대라 평가손 상태다.
지난 5월 LG카드 유상증자(주당 8,800원)에 참여해 ‘물타기’를 했지만 LG카드 주가가 3만원대는 가야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지난 5월 플래너스 지분 215만7,000주(15.20%)를 모두 처분해 꽤 많은 이익을 남겼다.뉴브리지캐피털과 칼라일은 ‘사냥감’을 놓쳐 발을 구를 때가 더러 있었다. 뉴브리지캐피털의 경우 조흥은행 ·하이닉스등을 노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또 지난 9월 9일 AIG와 컨소시엄을 이뤄 하나로통신과 11억 달러의 투자 계약을 맺었지만 현재 대주주인 LG 측의 반발이 심해 10월 21일 열릴 주주총회 때까지 속을 태우게 됐다. 칼라일의 경우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년 넘게 금호타이어 인수에 공을 들였지만 결국 군인공제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황성진 워버그핀커스 한국 대표는 “지난 2년간 거래가 소강 상태였다”며 “한동안 나무 밑에서 따 먹기 좋은 과일을 골랐지만 이제는 나무에 올라가 애써 따야 한다”고 말한다. 강훈석 골드먼삭스 상무도 “갈수록 경쟁은 격화되는데 매물은 거꾸로 줄고 있어 운신의 폭이 좁다”고 어려움을 전한다.
심지어 역차별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근승 IMM투자자문 대표는 “칼라일 측에서는 한국 정부가 국부 유출 비난 등을 의식해 금호타이어를 군인공제회에 넘겼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소버린식 투자’ 늘어날 가능성
기업 매물이 귀해지면서 새로운 ‘사냥 방식’도 나오고 있다. SK㈜의 1대주주에 오른 소버린자산운용과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사들여 적대적 기업 인수 ·합병(M&A) 논란을 일으킨 미국계 펀드 GMO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내실은 탄탄하나 지배구조가 취약하거나 경영권이 일시적으로 흔들리는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투자기관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후 미국의 아팔루사 같은 헤지펀드는 한국 물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와 별 재미를 못 보고 나갔지만 요즘은 한국 사정에 밝은 기관을 끼고 많이 들어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소버린식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한화 ·코오롱을 비롯해 오너 지분이 적은 중견그룹이 집중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걱정에서인지 지분을 늘리는 오너가 많아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한화의 지분을 종전 18.96%에서 22.86%로 높였다. 코오롱그룹의 이웅열 회장과 이동찬 명예회장도 지난 5월 코오롱 주식을 사들여 이 회장의 지분율은 13.82%에서 16.75%로, 이 명예회장은 2.75%에서 3.08%로 높아졌다. 박용만 두산 사장도 지난 7월부터 8월 말까지 자사주를 사들여 1.73%였던 지분율을 3.90%로 높였다.
소버린의 습격을 지켜본 최창원 SK글로벌 부사장과 최재원 SK텔레콤 부사장도 얼마 전 SK건설과 SK제약의 대주주인 SK케미칼 주식을 매입, 지분율을 지난해 1.24%에서 6.93%로 올렸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도 다임러크라이슬러 계열의 미쓰비시상사가 보유한 현대차 주식 0.32%를 인수해 지분율을 4.40%로 높였다.
사냥 대상인 기업으로선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를 비롯, 외국계 자본이 들어오는 건 그만큼 한국 경제의 안정성이 커졌다는 방증이라는 주장도 있다. 외국계 펀드 관계자들은 “바닥이 없는 경제에 투자하진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이근승 대표는 특히 “국부 유출 논란에도 외국 자본이 국내 기업 발전에 기여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예컨대 국내에도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와 같은 투자 수단이 있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건 너무하다는 얘기다. 서경국 UBS증권 이사는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는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사무소 등록만 하면 국내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며 “국내 프라이빗 에쿼티의 경우 육성은커녕 관련 규정조차 없다”고 꼬집었다.
외국 자본은 지난 2~3년 사이 뜸하다 올 들어 국내 은행 ·증권 ·카드사 매물을 활발히 거둬들이고 있다. 외환위기 뒤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첫 발을 디뎠고, 가계 부실과 카드 대란 등의 혼란을 틈타 2차 공세를 펴고 있는 것. 특히 이런 과정에서 은행권의 지형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 8개 시중은행은 이른바 ‘한국계 4강(국민 ·신한 ·조흥 ·우리 ·하나)’과 ‘외국계 3약(외환 ·제일 ·한미)’의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외국계 자본끼리 ‘손바뀜’도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다. 골드먼삭스를 비롯한 1세대 투자 펀드는 이익을 챙기고 떠날 채비인 반면 론스타 등은 새롭게 뛰어들고 있다.
외국계 진출로 은행권 지각변동
론스타는 8월 27일 독일 코메르츠방크와 수출입은행의 지분을 넘겨받아 외환은행의 1대주주에 올랐다. 12억 달러(1조3,834억원)를 들여 지분 51%를 인수했다.
이보다 앞선 8월 6일에는 영국계인 스탠더드차터드 은행이 삼성전자로부터 한미은행 지분 9.76%를 넘겨받아 칼라일(지분율 36.5%)에 이어 2대주주로 떠올랐다. 소매금융업 진출을 공식 선언한 스탠더드차터드 측은 “한미은행 지분 인수로 한국 시장 개척을 위한 거점을 확보했다”고 밝혀 또 다른 투자 의사도 비쳤다.
금융권에서는 칼라일 측에서 주식 처분 제한이 풀리는 오는 11월 이후 보유 지분 전체나 일부를 스탠더드 쪽에 넘길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2000년 주당 6,800원에 한미은행 지분을 인수한 칼라일은 이미 50%에 가까운 평가이익을 올린 상태다.
하나은행도 지분 인수자를 물색하고 있다. 옛 서울은행을 인수하면서 생긴 정부 지분을 되팔려는 것. 현재 일본 신세이 은행과 자사주 15%를 팔기 위해 협상 중이다.
2금융권에서도 외국계 자본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계 프루덴셜금융그룹은 지난 3월 현대투신증권을 인수하기로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본계약을 앞두고 있다. 프루덴셜 측은 제일투자증권도 인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계 GE캐피털은 지난 8월 초 서울보증보험 ·삼성캐피탈과 함께 신용정보회사 설립 예비인가를 신청했다. 우리카드 지분 49%도 인수할 예정이다. 특히 은행업 진출에도 의욕을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부실 우려 등이 여전히 크지만 금융권은 구조조정 마무리 단계여서 투자 가치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은행권의 경우 ‘국민 ·우리 ·신한+조흥 ·하나은행'4강 구도가 굳어지고 있어 더 늦기 전에 투자해야 한다는 절박감도 외국계 투자를 부추겼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런 움직임과 반대로 이익을 챙기고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나섰거나 나서려는 외국계 펀드도 눈에 띈다. 골드먼삭스와 얼마 전 JP모건에 인수된 H&Q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9월 4일(한국 시간) 뉴욕 증시에서 국민은행 해외주식예탁증서(ADR)를 판 골드먼삭스는 이익을 두둑이 챙겼다. 지난 99년 옛 국민은행에 5억 달러를 투자한 골드먼삭스는 지난해 6월에 이어 이번에도 국민은행 지분을 팔아 대략 11억 달러를 손에 쥐었다.
골드먼삭스는 게다가 아직도 국민은행 지분 1.22%를 갖고 있어 3.87%를 갖고 있는 ING에 이어 3대주주로 남아 있다. 골드먼삭스는 교보생명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 국민은행 지분을 서둘러 판 것으로 알려졌다.
H&Q는 98년 8월 옛 쌍용증권에 7,500만 달러를 투자했다(외국계 펀드로 한국 증권사에 투자한 첫 케이스였다). H&Q는 그로부터 4년 만인 2002년 4월 신한금융지주에 지분 42.8% 가운데 30%를 팔아 당초 투자 금액의 6배를 벌었다.
이들과 달리 아직 별 재미를 못 본 사례도 있다. 2000년 1월 제일은행을 5,000억원에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털은 아직 배당금을 못 챙겼고 주식 재상장 일정도 불투명하다. 9,948억원을 외환은행에 투자한 독일계 코메르츠방크의 주당 평균 인수 가격은 8,250원으로 평가손 상태다. 다만 론스타에 주당 5,400원을 받고 넘긴 우선주는 주당 5,000원에 산 것이라 약간의 이익을 봤다.국내 금융시장도 이들의 진출로 덕을 봤는지 아닌지 평가가 엇갈린다. 먼저 국내 산업자본이 정부의 규제 때문에 은행산업에 진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국 자본이 한국 금융의 자본 확충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제일은행 사례에서 보듯 기대만큼 선진 금융기법을 전수하기는커녕 경영권에 혼란만 줬다는 비난도 있다. 한편 외국계가 장악한 3개 은행을 중심으로 또 한번 합종연횡(合縱連衡)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뉴브리지(제일) ·론스타(외환) ·칼라일(한미)이 모두 현재 영업력으로는 토종 대형 은행을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에 대형화 바람을 일으킬 것이란 관측이다.
금융시장과 달리 요즘 부동산시장에서 외국계 펀드의 움직임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고위험 ·고수익 성향의 미국계 투자 펀드에서 저위험 ·저수익을 선호하는 유럽계 펀드로 손바뀜이 일어나는 정도다. 외국계 펀드의 단골 사냥 메뉴였던 국내 빌딩의 가격과 임대료가 오를 만큼 올라 수익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외국계 펀드가 국내 부동산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1998년 1월 외국인 토지법 개정 조치였다. 정부는 외자를 끌어오기 위해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매매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꿨다. 국내에서 업무용 자산만 취득할 수 있었던 외국인들은 이때부터 투자 목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큰손’ 노릇을 하고 있는 외국계 펀드는 대략 20개다.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한국BHP의 최성준 부사장은 “외국계 투자자 가운데 13군데 정도는 한 건이라도 매매를 했고, 나머지는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라며 “이들은 대개 주거용 부동산보다는 오피스 빌딩을 선호하고 건당 50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시장 진출 1호는 네덜란드계 투자사인 로담코다. 로담코는 99년 12월 서울 역삼동 현대중공업 사옥을 1,250억원에 사들였다. 로담코가 첫 테이프를 끊은 뒤 서울 시내에서 500억원 이상 나가는 대형 빌딩들은 외국계 부동산 펀드의 표적이 됐다.
싱가포르 투자청(GIC)의 ‘치맛바람’이 대단했다. 싱가포르 투자청은 1999년 12월 한라그룹 소유의 서울 잠실동 33층짜리 주상복합건물 한라시그마타워 1~11층을 330억원에, 회현동 아시아나빌딩을 500억원에 각각 인수했다. 또 2000년 7월에는 서울 무교동 서울파이낸스센터 빌딩을 3,550억원에 사들여 당시 부동산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싱가포르 정부가 100% 출자한 싱가포르 투자청은 1년 운용 자금이 우리나라 예산과 맞먹는 1,000억 달러(약 130조원)로 알려졌다.
골드먼삭스 ·모건스탠리 ·론스타등 미국계 펀드도 만만찮았다. 이들 펀드 산하 부동산 개발팀이 앞장서 당시 헐값에 나와 있던 국내 빌딩들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제너럴 일렉트릭(GE) 계열의 부동산투자 회사인 GE리얼이스테이트에 따르면 국내 사무빌딩 시장은 2000년 23건의 거래에 2조1,100억원, 2001년에는 19건에 1조5,770억원 등 연간 1조원이 넘는 규모를 기록했다.
유럽계 펀드가 미국계 빈자리 메워
당시 몰려든 미국계 펀드들은 대체로 고위험 ·고수익을 지향했다. 투자 기간은 5년에서 7년 정도로 대략 30%의 수익률을 달성하면 미련없이 떠날 채비를 했다. 이들은 비교적 임대료가 싼 빌딩을 발굴한 뒤 리모델링을 통해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했다. 론스타가 대표적인 사례다. 론스타는 2000년 명동의 청방빌딩을 200억원에 사들인 데 이어 역삼동 스타타워를 6,632억원, 여의도 동양증권과 SKC 빌딩을 각각 650억원, 660억원에 매입했다. 론스타는 이 가운데 동양증권과 SKC 빌딩을 호주계 투자은행인 매쿼리에 팔아 400억원 정도 차익을 남겼다. 반면 스타타워를 8,000억원에 내놓았지만 덩치가 큰 탓에 마땅한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들어 미국계 펀드가 주춤하는 사이 유럽계 자본이 국내 부동산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계 펀드와 달리 저위험 ·저수익을 지향하는 이들은 특히 미국계 펀드들이 팔아치우고 있는 빌딩을 사들이고 있다. 국내 기업의 경우 대형 빌딩을 매입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 이들이 독주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처럼 외국계 사이에서 1세대와 2세대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대부분 연기금을 쌈짓돈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수익률이 다소 낮더라도 위험도가 낮은 빌딩들을 사들이고 있다. 이들의 목표 수익률은 대략 10% 미만으로 시장에서 검증된 빌딩에만 입질을 하고 있다.
예컨대 프루덴셜 자금과 독일 연기금이 주축인 것으로 알려진 영국계 투자사 GRA는 서울 강남구 한솔빌딩과 서대문 에이스타워, 용산구 벽산빌딩, 종로구 알파빌딩을 사들였다.
부동산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국내 빌딩 가격은 ‘오를 만큼 올랐다’는 게 중론이다. 서울 시내 A급 빌딩의 평당 매매가는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에는 500만원으로 떨어졌다. 그러다 지금은 1,000만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고수익을 노리는 미국계 펀드들이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다.
전반적으로 볼 때 아직 ‘셀 코리아(Sell Korea)’가 아닌 차익 실현 단계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아시아 지역에서 투자 메리트가 있는 나라는 여전히 한국 ·중국 ·일본 정도를 꼽는다”고 전했다.
“투자 기회 아직 많아…강성 노조 등이 걸림돌” |
박영택 UBS캐피털 한국 대표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유망한 투자처입니다.” 7억5,000만 달러 규모의 아시아 펀드를 모으고 있다는 박영택 UBS캐피털 한국 대표는 “한국 시장은 프라이빗 에쿼티 투자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제조업의 기술 수준이 높은데다 경영진과 노동력도 훌륭한 편이라는 것. 궁극적으로 투자 회수가 목적인 프라이빗 에쿼티 투자자로서는 빠져나올 여지가 많은 시장을 택하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박 대표는 또 론스타 등이 거액을 들고 왔다는 건 한국 시장 전망이 그만큼 밝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제는 어느 정도 제값을 받고 기업 ·금융 매물을 팔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됐다고 치켜세웠다. 그는 매물이 줄고 경쟁이 치열해져 예전 같은 이익을 남기긴 어렵게 됐지만 투자 기회는 충분히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 대표는 다만 어떤 외국 투자가건 한국의 노동문제에 민감하다고 전했다. 특히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투자해 경영 개선 작업을 벌여 가치를 높이는 UBS캐피털로서는 강성 노조가 큰 부담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기업 가치를 30% 가까이 깎아내리는 기업공개(IPO) 시장의 잘못된 관행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분야는 식음료 중심의 유통과 소매금융 시장 정도다. 물론 시장 기반이 튼튼한 제조업은 틈새만 보이면 언제든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9월 UBS은행 계열에서 분사한 UBS캐피털은 98년 12월 ACE테크놀로지에 투자하며 한국에 첫 진출했다. 지금까지 MK전자 ·위니아만도와㈜만도 ·해태제과 등에 투자했다. 이들 기업의 가치는 현재 3조원대다. 삼성전자 국제금융부장 출신인 박 대표는 2000년 10월 UBS캐피털에 합류했다. 그는 98년 와튼스쿨을 졸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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