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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도 대량 생산 시대

와인도 대량 생산 시대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세계 최대 와인회사 갤로의 포도밭 전경.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에는 유명한 고급 와인 산지가 있는가 하면, 값싼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지역도 있기 마련이다. 프랑스에서는 보르도나 부르고뉴 지방이 고급 와인 산지라면 랑그독 루시옹이나 프로방스 지방은 중저가 대량 와인 산지라고 할 수 있다. 와인으로 유명한 나라에서도 대개의 사람들은 평범하고 대중적인 와인을 마시고 특별한 날에나 고급 와인을 고이 보관했다 마실 정도다. 캘리포니아 와인도 나파나 소노마의 것이 고급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 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0%도 안 된다. 나머지 대부분의 와인은 중부 내륙 지방에서 나온다. 이 지역은 캘리포니아 최대의 와인 산지로 길이 3백20㎞, 폭 80∼1백60㎞의 광활한 평야지대다. 캘리포니아 포도의 80%를 생산하며, 건포도·귤·아몬드·올리브 등 지중해성 작물을 어마어마하게 재배하는 곳이다. 그래서 대규모 와이너리(와인양조장)가 많다. 이들은 병에 든 와인을 팔기보다는 주로 탱크에 와인을 넣은 벌크 와인(Bulk wine)을 만들어 수출한다. 병에 든 와인을 만들더라도 커다란 것만 쓰는데, 일명 저그 와인(Jug wine)이라고 한다. 이들 대형 와이너리에서는 드넓은 포도밭에 활주로를 깔고 비행기로 농약을 뿌린다. 포도밭 가운데에 저수지까지 두고, 수확할 때도 기계를 이용한다. 수확할 때는 물론 포도를 손으로 하나하나 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포도밭은 수확할 때 기계를 이용해 인건비를 절약한다. 기계 수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이 수확하다 보면 부족한 노동력 때문에 적절한 수확시기를 놓칠 수도 있고, 잎 사이에 숨어 있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포도송이를 그대로 두고 지나치기도 한다. 반면 기계수확은 익은 것, 안 익은 것을 모두 따버리기 때문에 고급 와인을 만드는 데는 부적합하다. 발효 역시 대형 탱크에서 자동장치가 부착된 첨단장치를 이용해 조절한다. 숙성에서 블랜딩, 병에 담기까지 그야말로 ‘공장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대량생산을 하니까 값이 싸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이런 와인이 맛없는 것은 아니다. 값에 비해 맛이 좋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기가 좋다. 이것저것 섞어서 항상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것도 고도의 기술이 있어야 가능한 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판매를 목적으로 만드는 식품은 항상 맛이 일정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맛있게 변하는 것은 별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한번 맛이 없어진 것은 금방 알고 다시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값싼 와인이라도 장기간 인기가 있는 것은 상당한 노하우가 쌓인 업체에서나 만든다. 어쨌든 이런 와인으로 유명한 업체가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인 ‘갤로’(Gallo)라는 곳이다. 캘리포니아 중부 내륙지방에 있다. 언뜻 보면 정유공장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대형 탱크와 파이프가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일찍이 어네스트(Ernest)와 줄리오(Julio)라는 이름을 가진 갤로(Gallo) 형제가 1933년에 설립해 현재 3대째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 회사의 연간 생산량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연간 마시는 양의 3백배 정도 된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요즘은 고급 와인에도 손을 대는데, 고급 와인 산지인 소노마에도 여러 개의 와이너리를 보유하고 있다. 연구개발 활동도 왕성해 대학에 연구비를 아낌없이 지원하고, 소규모 와인업자들을 교육시키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갤로는 “와인은 보다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우수한 와인을 값싸게 공급했다. 와인을 잘 모르던 미국 사람들이 쉽게 와인을 마실 수 있도록 한 갤로는 미국의 와인 저변인구를 확대한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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