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내다 보는 경제학
미래를 내다 보는 경제학
An Experimental Mind
실리콘 밸리의 심장부에 있는 휼릿 패커드(HP) 사내의 디시전 테크놀로지 실험실. 이곳의 과학자들은 ‘실험 경제학’(experimental economics)을 활용해 이 회사의 미래를 예측한다. 예를 들면 미니시장을 만들어 상금을 내걸고 직원들에게 미래의 매출과 수입에 대해 베팅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같은 사내 선물시장들은 최고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보다 앞날을 예측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이 실험실에서는 새로운 마케팅 계획 또는 판매 전략들을 수백만달러를 들여 실행하기에 앞서 실험적으로 적용해보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인근 스탠퍼드대 학생들이 HP 중역·소매업자·납품업자의 역할을 맡는다. 피험자들은 단말기 앞에 앉아 컴퓨터 게임 ‘심시티’의 도시풍경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해지는 가상 기업세계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HP는 이 프로그램을 ‘심비즈니스’라고 부른다.
실험 경제학은 인습타파에 앞장서온 학자 버넌 스미스가 창시한 학문 분야다. 스미스가 50년 전 놀라운 예지력으로 개척한 실험 경제학은 “경제학의 방향을 전환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는 바로 지난해 스웨덴 왕립 과학원에서 스미스에게 노벨상을 수여하면서 한 말이다. 백발 꽁지머리에 인디언 장신구를 한 스미스는 모름지기 경제이론이란 머리 속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을 참여시켜 생생한 실험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제도권 경제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노벨상 수상 이전에도 스미스의 아이디어는 그나 후학들을 통해 널리 퍼져나가면서 정부의 정책에 일부 혁신적인 변혁을 가져 왔다. 1970년대 초반 이래 실험 경제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무선 주파수대 판매 방식, 우주선 공간활용 방식, 유가 규제 방식, 비행기 착륙시간 배정 방식, 그리고 스모그 발생 억제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올해 여름 미 국방부의 ‘테러선물시장’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면서 각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테러선물시장은 알 카에다의 대규모 공격을 예측하는 능력을 입증하기도 전에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 백지화됐다.
실험 경제학은 태동기부터 너무 급진적이라거나 단순하다는 이유로 완전히 무시당했다. 그러나 1990년대가 되자 실험 경제학자들이 대기업의 고문으로 자리잡으면서 미국 전역의 화물수송망을 효율화하고 부동산 경매를 실시하며 심지어는 프린터 매출과 아카데미상 수상자를 예견하는 더욱 효과적인 방법들을 모색했다. 그같은 실험들은 이미 실험실을 벗어나 경제학자들이 실물 경제의 의사결정에 그 어느 때보다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노벨상 수상은 스미스에 대해 남아 있던 저항을 모두 날려버렸다.
시어스·IBM 등 대기업들은 경영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험 경제학을 활용한다. HP는 심비즈의 성공을 기반으로 새로운 컨설팅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사업의 첫번째 고객사는 포드다. 포드는 HP 실험실에서 소비자들은 자동차 리스 기간이 만료되면 더 저렴한 다른 중고차를 구입하기보다 자신이 리스했던 차를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같은 결과들은 포드의 리스 관행에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포드 리서치의 간부 어브 샐민은 “우리는 실험 경제학이 매우 강력한 정책결정 도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스미스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문제로부터 노후한 미국 전력망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들에 대해 실험 경제학을 응용하고 있다. 심지어 이라크 석유 산업의 재건 아이디어도 갖고 있다. 이제는 주류 경제학자들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캘리포니아대(버클리)의 경제학자 핼 배리언은 “실험 기법은 미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스미스가 처음부터 기존 학설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1956년 그가 인디애나주 퍼듀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무렵 경제학자들은 특정한 가설들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시장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시장참여자들이 무한히 존재하지 않는 이상 시장은 구매자와 판매자가 합의하는 확정 가격인 ‘경쟁 균형’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밤 스미스는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학생들을 하나의 거래 게임에 투입시킬 계획을 세웠다.
구매자들은 불특정한 물품에 대해 자신들이 지불할 수 있는 최대 가격을 부여받았고 판매자들은 요구할 수 있는 최소 가격을 부여받았다. 전통적 이론에 따르면 그처럼 불완전한 정보만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구매자와 판매자들은 몇번의 입찰 끝에 최적의 가격을 찾는 데 성공했다. 스미스는 무언가 오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과거의 통념을 증명하려 실험을 계속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해서 실험 경제학이 탄생했다.
처음에는 실험 경제학이 학계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데 어려움을 겪은 그는 자신의 전공이던 환경 경제학 분야로 복귀하기 전 당시 퍼듀 대학의 교수였던 찰스 플롯과 함께 몇차례 낚시 여행을 떠났다. 스미스의 말에 귀기울이던, 얼마 안되는 동료들 중 한명이었던 플롯은 이렇게 말했다. “스미스는 함께 낚시를 하면서 모래 위에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 설명했다. 경제학자들은 국제 통상 관계와 세계 경제 등 주로 거시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이렇게 단순한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플롯은 1970년대 초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스미스가 모래밭에 그렸던 스케치들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는 스미스를 캘리포니아 공대로 초빙해 함께 연구를 해보자고 제안했고 거기서 실험 경제학이 재탄생하게 됐다. 스미스는 실험 기법을 경제 분석의 도구로 확립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탔지만 그 실험 기법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이었다.
자유 시장이 마치 마술처럼 가장 좋은 정보를 전면에 드러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한다는 그의 이론은 애덤 스미스의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가 실험에 옮기기까지는 그것을 실제로 증명해낸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실험 경제학자들은 실험 기법으로 주식과 그밖의 금융 상품들의 미래 가격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들의 연구 성과로부터 ‘아이오와 선거 시장’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그것은 1988년 이래 대선 결과 예측에서 여론 조사보다 항상 정확했다.
스미스와 동료들은 시장과 규제의 작동원리가 경제적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당연한 내용 같지만 실험 경제학자들이 등장하기 전에는 그것을 입증한 사람이 없었다. 1975년 미국 교통부는 해상운송 회사들이 매번 고객과 흥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 요금을 고지하도록 하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려 했다. 정부는 새로운 제도로 보다 더 투명하고 낮은 가격이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스미스와 플롯은 제도가 실행되기 한해 전에 이미 경쟁으로 인한 압력이 없는 경우 가격을 정해놓는 것이 오히려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고 플롯은 화물선 요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교통부는 당초의 계획을 취소했다.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이런 실험들도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졌다. 1994년 캘리포니아 남부에서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초기안인 RECLAIM이 시작됐다. 배출권 거래제란 여러 다른 산업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을 정해주고 이 양을 서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최근 플롯은 온라인을 통해 각국의 유엔 대표들을 참여시켜 유엔이 준비중인 배출권 거래제를 실험했다. 그는 “내 실험에는 정보기술(IT)이 끼치는 영향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사실 실험 경제학은 한 개인이 풀어낼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을 풀기에 안성맞춤이다. 1970년대 말 스미스에 의해 처음 시도됐던 ‘조합 경매’의 경우를 보자. 전통적인 경매에서는 입찰자가 한번에 한가지 항목에만 입찰할 수 있다. 조합 경매에서는 여러가지 입찰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으며 이 입찰들은 상호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992년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의 유효 탑재 공간을 둘러싸고 과학자들이 옥신각신하면서 발사가 지연될 위험에 놓이게 되자 미 항공우주국(NASA)은 문제 해결을 위해 조합 경매를 실시했다. 그 결과 카시니는 예정대로 발사됐으며 비용도 당초 예산보다 절감할 수 있었다.
2년후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첫 무선 주파수 스펙트럼(??? 대역(帶域)) 매각에서 통신 사업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합 경매를 실시했다. 시애틀 지역의 스펙트럼을 구매할 수 있을 경우에만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스펙트럼을 묶어서 사겠다는 사업자가 있을 수 있다. 이 사업자는 시애틀이 다른 사업자에게 넘어갈 경우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포기하고 보스턴과 뉴욕쪽에 입찰할 가능성이 크다. 플롯은 이런 식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산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테스트했고 경매는 성공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대기업들은 조합 경매의 가능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대규모 소매유통업체인 시어즈는 자사의 물류 시스템 개선을 위해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진들의 도움을 받았다. 기존에 수송업무를 한번에 한건씩 맡기다보니 배송 트럭이 다음 화물 수령지까지 빈 차로 가곤 했다. 그래서 시어즈는 배송업체들이 모든 운송업무에 한꺼번에 입찰하도록 했다. 이 방법을 통해 물동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고 오늘날에는 이런 방식이 업계 기준이 됐다.
1994년 HP는 세계 최초로 실험 경제 연구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년 후에는 할리우드 주식시장이 신설돼 사람들이 유력한 오스카상 수상자에게 돈을 걸고 MGM같은 영화사들에 관련 정보를 팔 수 있게 됐다. 이밖에도 학계 출신들이 창업한 회사들은 많다. 플롯은 고무부터 부동산에 이르는 다양한 품목에 대한 경매를 개발하는 인텔리마켓이라는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역시 캘리포니아 공대 출신인 존 레드야드와 찰스 포크는 조합 경매 전문업체인 넷 익스체인지를 설립했다.
이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대기업들도 늘고 있다. IBM 연구소는 실험경제가 더 나은 온라인 시장을 구축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연구 중이다. 몇주 전 마이크로소프트는 포크를 초빙해 사내 연구진들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열었다. 보스턴에 있는 인센티브 마케츠는 한 유수한 제약회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출시예정 약품들의 성공 여부를 점치도록 하는 모의 시장을 구축하는 중이라고 했다. 메릴랜드에 위치한 뉴스퓨처스라는 회사 역시 한 대형 보험사(이 회사 역시 익명을 요구했다)를 위해 사내 선물 시장을 구축 중이다.
기업들이 이런 가상 시장을 비밀에 부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기업 경영자들은 실험 경제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자신의 부하 직원들로 운영되는 모의 시장이나 풋내기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심비즈 게임에 회사 중대사에 대한 결정권을 맡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간부들도 있다. 플롯은 “가상 시장에서 나온 정보들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 기업 간부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 패러다임을 뒤엎는 엄청난 발상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도록 막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With MICHAEL HASTINGS in New York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리콘 밸리의 심장부에 있는 휼릿 패커드(HP) 사내의 디시전 테크놀로지 실험실. 이곳의 과학자들은 ‘실험 경제학’(experimental economics)을 활용해 이 회사의 미래를 예측한다. 예를 들면 미니시장을 만들어 상금을 내걸고 직원들에게 미래의 매출과 수입에 대해 베팅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같은 사내 선물시장들은 최고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보다 앞날을 예측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이 실험실에서는 새로운 마케팅 계획 또는 판매 전략들을 수백만달러를 들여 실행하기에 앞서 실험적으로 적용해보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인근 스탠퍼드대 학생들이 HP 중역·소매업자·납품업자의 역할을 맡는다. 피험자들은 단말기 앞에 앉아 컴퓨터 게임 ‘심시티’의 도시풍경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해지는 가상 기업세계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HP는 이 프로그램을 ‘심비즈니스’라고 부른다.
실험 경제학은 인습타파에 앞장서온 학자 버넌 스미스가 창시한 학문 분야다. 스미스가 50년 전 놀라운 예지력으로 개척한 실험 경제학은 “경제학의 방향을 전환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는 바로 지난해 스웨덴 왕립 과학원에서 스미스에게 노벨상을 수여하면서 한 말이다. 백발 꽁지머리에 인디언 장신구를 한 스미스는 모름지기 경제이론이란 머리 속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을 참여시켜 생생한 실험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제도권 경제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노벨상 수상 이전에도 스미스의 아이디어는 그나 후학들을 통해 널리 퍼져나가면서 정부의 정책에 일부 혁신적인 변혁을 가져 왔다. 1970년대 초반 이래 실험 경제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무선 주파수대 판매 방식, 우주선 공간활용 방식, 유가 규제 방식, 비행기 착륙시간 배정 방식, 그리고 스모그 발생 억제 방식을 변화시켰다. 그들은 올해 여름 미 국방부의 ‘테러선물시장’에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면서 각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테러선물시장은 알 카에다의 대규모 공격을 예측하는 능력을 입증하기도 전에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 백지화됐다.
실험 경제학은 태동기부터 너무 급진적이라거나 단순하다는 이유로 완전히 무시당했다. 그러나 1990년대가 되자 실험 경제학자들이 대기업의 고문으로 자리잡으면서 미국 전역의 화물수송망을 효율화하고 부동산 경매를 실시하며 심지어는 프린터 매출과 아카데미상 수상자를 예견하는 더욱 효과적인 방법들을 모색했다. 그같은 실험들은 이미 실험실을 벗어나 경제학자들이 실물 경제의 의사결정에 그 어느 때보다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노벨상 수상은 스미스에 대해 남아 있던 저항을 모두 날려버렸다.
시어스·IBM 등 대기업들은 경영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험 경제학을 활용한다. HP는 심비즈의 성공을 기반으로 새로운 컨설팅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사업의 첫번째 고객사는 포드다. 포드는 HP 실험실에서 소비자들은 자동차 리스 기간이 만료되면 더 저렴한 다른 중고차를 구입하기보다 자신이 리스했던 차를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같은 결과들은 포드의 리스 관행에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포드 리서치의 간부 어브 샐민은 “우리는 실험 경제학이 매우 강력한 정책결정 도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스미스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문제로부터 노후한 미국 전력망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들에 대해 실험 경제학을 응용하고 있다. 심지어 이라크 석유 산업의 재건 아이디어도 갖고 있다. 이제는 주류 경제학자들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캘리포니아대(버클리)의 경제학자 핼 배리언은 “실험 기법은 미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스미스가 처음부터 기존 학설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1956년 그가 인디애나주 퍼듀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무렵 경제학자들은 특정한 가설들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시장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시장참여자들이 무한히 존재하지 않는 이상 시장은 구매자와 판매자가 합의하는 확정 가격인 ‘경쟁 균형’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밤 스미스는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학생들을 하나의 거래 게임에 투입시킬 계획을 세웠다.
구매자들은 불특정한 물품에 대해 자신들이 지불할 수 있는 최대 가격을 부여받았고 판매자들은 요구할 수 있는 최소 가격을 부여받았다. 전통적 이론에 따르면 그처럼 불완전한 정보만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구매자와 판매자들은 몇번의 입찰 끝에 최적의 가격을 찾는 데 성공했다. 스미스는 무언가 오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과거의 통념을 증명하려 실험을 계속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해서 실험 경제학이 탄생했다.
처음에는 실험 경제학이 학계에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데 어려움을 겪은 그는 자신의 전공이던 환경 경제학 분야로 복귀하기 전 당시 퍼듀 대학의 교수였던 찰스 플롯과 함께 몇차례 낚시 여행을 떠났다. 스미스의 말에 귀기울이던, 얼마 안되는 동료들 중 한명이었던 플롯은 이렇게 말했다. “스미스는 함께 낚시를 하면서 모래 위에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 설명했다. 경제학자들은 국제 통상 관계와 세계 경제 등 주로 거시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이렇게 단순한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플롯은 1970년대 초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스미스가 모래밭에 그렸던 스케치들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는 스미스를 캘리포니아 공대로 초빙해 함께 연구를 해보자고 제안했고 거기서 실험 경제학이 재탄생하게 됐다. 스미스는 실험 기법을 경제 분석의 도구로 확립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탔지만 그 실험 기법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이었다.
자유 시장이 마치 마술처럼 가장 좋은 정보를 전면에 드러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한다는 그의 이론은 애덤 스미스의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가 실험에 옮기기까지는 그것을 실제로 증명해낸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실험 경제학자들은 실험 기법으로 주식과 그밖의 금융 상품들의 미래 가격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들의 연구 성과로부터 ‘아이오와 선거 시장’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그것은 1988년 이래 대선 결과 예측에서 여론 조사보다 항상 정확했다.
스미스와 동료들은 시장과 규제의 작동원리가 경제적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당연한 내용 같지만 실험 경제학자들이 등장하기 전에는 그것을 입증한 사람이 없었다. 1975년 미국 교통부는 해상운송 회사들이 매번 고객과 흥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 요금을 고지하도록 하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려 했다. 정부는 새로운 제도로 보다 더 투명하고 낮은 가격이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스미스와 플롯은 제도가 실행되기 한해 전에 이미 경쟁으로 인한 압력이 없는 경우 가격을 정해놓는 것이 오히려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고 플롯은 화물선 요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교통부는 당초의 계획을 취소했다.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이런 실험들도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졌다. 1994년 캘리포니아 남부에서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초기안인 RECLAIM이 시작됐다. 배출권 거래제란 여러 다른 산업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을 정해주고 이 양을 서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최근 플롯은 온라인을 통해 각국의 유엔 대표들을 참여시켜 유엔이 준비중인 배출권 거래제를 실험했다. 그는 “내 실험에는 정보기술(IT)이 끼치는 영향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사실 실험 경제학은 한 개인이 풀어낼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을 풀기에 안성맞춤이다. 1970년대 말 스미스에 의해 처음 시도됐던 ‘조합 경매’의 경우를 보자. 전통적인 경매에서는 입찰자가 한번에 한가지 항목에만 입찰할 수 있다. 조합 경매에서는 여러가지 입찰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으며 이 입찰들은 상호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992년 토성 탐사선 카시니호의 유효 탑재 공간을 둘러싸고 과학자들이 옥신각신하면서 발사가 지연될 위험에 놓이게 되자 미 항공우주국(NASA)은 문제 해결을 위해 조합 경매를 실시했다. 그 결과 카시니는 예정대로 발사됐으며 비용도 당초 예산보다 절감할 수 있었다.
2년후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첫 무선 주파수 스펙트럼(??? 대역(帶域)) 매각에서 통신 사업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합 경매를 실시했다. 시애틀 지역의 스펙트럼을 구매할 수 있을 경우에만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스펙트럼을 묶어서 사겠다는 사업자가 있을 수 있다. 이 사업자는 시애틀이 다른 사업자에게 넘어갈 경우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를 포기하고 보스턴과 뉴욕쪽에 입찰할 가능성이 크다. 플롯은 이런 식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산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테스트했고 경매는 성공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대기업들은 조합 경매의 가능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대규모 소매유통업체인 시어즈는 자사의 물류 시스템 개선을 위해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진들의 도움을 받았다. 기존에 수송업무를 한번에 한건씩 맡기다보니 배송 트럭이 다음 화물 수령지까지 빈 차로 가곤 했다. 그래서 시어즈는 배송업체들이 모든 운송업무에 한꺼번에 입찰하도록 했다. 이 방법을 통해 물동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고 오늘날에는 이런 방식이 업계 기준이 됐다.
1994년 HP는 세계 최초로 실험 경제 연구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년 후에는 할리우드 주식시장이 신설돼 사람들이 유력한 오스카상 수상자에게 돈을 걸고 MGM같은 영화사들에 관련 정보를 팔 수 있게 됐다. 이밖에도 학계 출신들이 창업한 회사들은 많다. 플롯은 고무부터 부동산에 이르는 다양한 품목에 대한 경매를 개발하는 인텔리마켓이라는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역시 캘리포니아 공대 출신인 존 레드야드와 찰스 포크는 조합 경매 전문업체인 넷 익스체인지를 설립했다.
이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대기업들도 늘고 있다. IBM 연구소는 실험경제가 더 나은 온라인 시장을 구축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연구 중이다. 몇주 전 마이크로소프트는 포크를 초빙해 사내 연구진들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열었다. 보스턴에 있는 인센티브 마케츠는 한 유수한 제약회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출시예정 약품들의 성공 여부를 점치도록 하는 모의 시장을 구축하는 중이라고 했다. 메릴랜드에 위치한 뉴스퓨처스라는 회사 역시 한 대형 보험사(이 회사 역시 익명을 요구했다)를 위해 사내 선물 시장을 구축 중이다.
기업들이 이런 가상 시장을 비밀에 부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 기업 경영자들은 실험 경제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자신의 부하 직원들로 운영되는 모의 시장이나 풋내기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심비즈 게임에 회사 중대사에 대한 결정권을 맡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간부들도 있다. 플롯은 “가상 시장에서 나온 정보들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 기업 간부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 패러다임을 뒤엎는 엄청난 발상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도록 막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With MICHAEL HASTINGS in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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