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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경영권 안정” “오너 입김 강화”

[재계]“경영권 안정” “오너 입김 강화”

일러스트:박용석
“이제 국내 시중은행 중 해외 자본이 대주주가 아닌 곳은 우리은행밖에 없다. 머지않아 우리은행도 민영화되면 외국계가 대주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외국계 펀드나 은행이 국내 시중은행의 대주주가 되면 사실상 한국 기업들의 장부가 다 노출되는 것이다.” 최근 재벌기업 오너들이 주력 계열사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과 관련해 국내 그룹의 한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특히 몇몇 사모 펀드나 은행업 경험이 없는 해외 펀드마저 국내 은행업에 진출하면서 이런 위기감은 더해지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의 실질적인 대주주들이 외국계 은행이나 펀드들이고, 이들 중 상당수는 사모 펀드나 투자은행의 형태로 기업 인수·합병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최근 대기업 총수들이 앞다퉈 지분 늘리기에 나서고 있다.

“한국 기업들, 장부 노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8월에 현대자동차 주식 70만주(지분율 0.32%)를 산 데 이어 지난 10월27일 또다시 91만주(0.42%)를 매입했다. 이에 따라 정회장의 지분율은 4.82%로 높아졌다. LG전선그룹이 이미 지분상 계열분리 요건이 충족됐는데도 구자홍 전 LG전자 회장, 구자명 극동도시가스 사장 등 40여명의 특수관계인이 LG전선 주식 2백81만주(0.99%)를 추가로 사들여 보유지분을 28.11%로 늘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역시 올 들어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한화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입, 지난해 말 12.95%였던 지분율을 22.69%로 끌어올렸다. 이웅열 코오롱 회장도 지난 5월 코오롱 주식 59만여주를 매입, 지분이 13.15%에서 16.75%로 높아졌다. 아직까지 오너들의 지분 매입에 대해 기업들의 공식적인 반응은 “경영권 안정을 위한 일상적인 활동이다”는 정도다. 급박한 위험이나 구체화된 어떤 액션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한 예방 조치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동안 M&A의 무풍지대로 여겨왔던 대기업들도 소버린의 SK㈜ 지분인수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때까지 재벌 그룹은 재계라는 울타리 안에서 M&A의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전경련이나 재계 모임을 통해 대기업끼리 우의를 다져놓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내에서 M&A 이슈는 대부분 코스닥이나 벤처기업 같은 소규모 기업에 한정됐다. 대기업의 경우 상속 때를 제외하면 지분 변동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해외 자본의 국내 투자 여건이 개선되고, 증시가 개방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SK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 대기업의 요주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칼라일이나 론스타 같은 대형 펀드나, 골드만삭스나 UBS 같은 큰 투자은행이 아니라 소버린 같은 중소형 펀드들이다. SK그룹의 고위 인사는 “그룹 재무팀이나 국내 전문가들도 대부분 대형 펀드의 동향만 체크했지 소버린 같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펀드는 상상도 못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SK그룹은 소버린이 SK㈜의 최대주주가 된 것이 알려진 후에도 소버린이 어떤 회사인지, 본사는 어디인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34%는 돼야 안정권 때문에 재계는 요즘 좌불안석이다. 세계 도처에 수많은 펀드들이 한국 기업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자유로워진 금융거래로 국내 기업 인수에는 사실상 큰 걸림돌이 없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는 주식시장에서는 적은 돈으로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 대기업의 한 재무담당자는 “국대 대기업의 자금 담당 임원들의 하루 일과 중 1순위 업무가 외국인의 지분변동을 점검하는 일이다”고 털어놓았다. M&A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최소 우호지분을 합해서 지분율이 34%는 돼야 안정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주총에서 특별결의를 하기 위해서는 전체 지분의 3분의 2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주주가 34%만 소유하면 정관변경과 이사 수 변경 등 경영권을 흔들만한 조치를 막을 수 있다.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들도 오너와 특수관계인·계열사를 통해 최소 34% 이상씩은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출자총액 제한 등과 관련해 의결권 제한 등의 조항이 있어 계열사 지분은 안심할 수 없다. 또 앞으로 공정위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제한 조치를 실행할 경우 국내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는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오너들이 개인 지분을 꾸준히 늘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최근 재벌 오너들의 지분 늘리기에는 정부의 공세에 대한 방어적 성격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9월 의결권 승수(의결권 행사 지분/실제 보유 지분)를 들고 나왔다. 즉 실제 지분을 소유한 것에 비해 과도하게 지배권(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공정위가 출자총액 제한 등의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 6.1배인 재벌의 의결권 승수를 3배까지 낮추겠다는 것. 하지만 결과는 공정위의 의도와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공정위의 의도는 ‘소유에 비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마라’는 것이었는데 기업 측은 오히려 오너의 지분율을 높여 의결권 승수를 낮추고 있는 것. 이를 두고 대기업의 관계자는 “정부가 오너의 지분을 늘리라는 것인지 줄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이처럼 M&A 예방과 정부 정책의 예봉 피하기가 오너들의 지분 매입의 주요 동기이긴 하지만 이외에도 지분 매입을 통해 오너들이 얻는 이익이 더 있다. 일단 오너들의 지분매입을 통해 주가가 올라간다. 정몽구 회장이 매입한 현대차 지분이나 김승연 회장이 매입한 ㈜한화 모두 주가가 올랐다. 주가가 올라갈 경우 지분매입한 대주주에게는 시세차익이 발생한다. 더 중요한 것은 주가가 올라가면서 적대적 M&A의 유인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정광선 한국기업지배구조 개선지원센터 원장은 “적대적 M&A를 하는 주체들은 시세차익을 노리는데, 대주주가 주식을 매입해서 주가를 올려놓으면 적대적 M&A의 유인이 떨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할 돈 엉뚱한 데 쓰여 이외에도 대주주가 지분을 매입함으로써 시장에서 거래하는 유통물량을 줄이는 것도 경영권 방어에 큰 도움이 된다. 성보경 프론티어 M&A 회장은 “유통물량이 줄어들면 대주주가 주식의 움직임을 쉽게 체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당연히 일정량 이상의 물량이 움직일 경우 경고음이 울리고 대주주 측에서 조기에 대응할 수 있다. 이외에도 대주주의 지분율이 올라가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담보 효과가 높아져 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효과도 있다. 경영권이 안정된 주식이 담보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너들의 지분 높이기는 여러 가지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너들의 지분 매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정원장은 “오너의 지분이 높아지면 경영권은 안정되겠지만 이는 반대로 말하면 오너의 전횡을 견제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면서 “경영권 안정도 좋지만 사외이사 등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를 먼저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지원 JP모건 이사는 “자칫 기업투자로 들어가야할 돈이 오너의 경영권 방어에 들어갈 수 있다”며 “자본의 효율적인 분배를 위해 과연 어떤 지배구조가 바람직한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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