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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털 꿈꾸는 ‘디지털 승부사’

글로벌 포털 꿈꾸는 ‘디지털 승부사’

올해는 이 사장의 승부수가 유난히 많이 적중한 해다. 올 초부터 전략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지식 검색이나 블로그가 수익으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해외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김범수 사장 몫까지 독식하는 것 같아 쑥스럽네요." 국내 간판 닷컴기업인 NHN의 이해진(36) 공동대표에게서 근엄함을 찾기는 어렵다. 나긋나긋 말하는 스타일이어서 유약한 느낌마저 준다. 회사의 말단 직원에게도 존대말을 쓰며 한없이 부드럽게 대한다. 하지만 뭔가 중대한 결단을 앞둔 이 사장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다.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나면 과감하고 신속하게 담판을 짓는다.

이 사장의 이런 특징은 지난 2000년 결렬된 새롬기술과 네이버컴의 합병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직원들의 반발을 겨우 무마하고 합병을 강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작 합병 효과가 별로 없다고 판단하자마자 즉시 원점으로 되돌렸다. 이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올해는 이 사장의 두 얼굴 가운데 ‘승부사’ 기질이 더욱 많이 발휘된 해다. 올해의 CEO로 이 사장이 호평을 받은 것도 뛰어난 실적뿐 아니라 연이은 합병 성공, 그리고 과감하게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결단력이 뒷받침됐다. 무엇보다 올 초부터 본격적으로 밀어붙인 지식 검색 서비스가 본궤도에 올랐다. 그 덕택에 검색 페이지뷰가 급증했고, 프리미엄 검색광고 매출로도 이어졌다. NHN의 프리미엄 검색광고 매출은 올 1분기 79억원에서 2분기 103억원, 3분기 116억원 등으로 계속 증가세다.

NHN의 히트작인 지식 검색 서비스의 원조는 인터넷한겨레의 ‘디비딕’이었다. 2000년 10월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지식 검색은 지난해 10월 NHN의 네이버가 ‘지식IN’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지난해 초 야후와 차별화 방안을 고심하던 이 사장이 마니아들만의 공간에 머물러 대중화에 실패한 디비딕을 철저히 분석해 ‘원조’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버전을 내놓은 것. 당시 그는 어느 포털 사이트나 똑같이 검색할 수 있는 웹페이지나 사전, 뉴스가 아닌 뭔가 획기적인 검색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숫자로 본 이해진 사장


22 : 이 사장의 생일은 1967년 6월 22일이다. 지난해 10월 코스닥 등록 당시 최초 공모가는 2만2,000원. 2001년 9월 22일에 사명이 네이버컴에서 NHN으로 변경됐다.



78 : 대주주지분 평가업체인 미디어 에퀴터블이 발표한 한국의 100대 부호 순위에서 이 사장은 78위다. 이 사장이 보유한 주식 평가 금액은 780억원.



86 : 이 사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6학번이다. 닷컴 기업들엔 유난히 86학번이 많다. 김범수 NHN 공동대표를 비롯해 다음의 이재웅 사장, 국내 최대 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 넥슨 창업주였던 모바일핸즈의 김정주 사장, 인터넷 폴더서비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래텍의 배인식 사장 등이 모두 86학번이다.
‘웹사이트에 널려 있는 지식을 모으는 데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끄집어 낼 수 있는 방안이 뭘까’를 고민했고 그 결과물이 지식 검색이었다. 이 사장은 디비딕이 별도 사이트에서 운영됐기 때문에 네티즌들로부터 외면받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네이버 검색엔진에서 바로 키워드를 입력하고 답을 구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서비스가 시작되자 네티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물질적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열성 회원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답을 올려주기도 했다.

이 사장의 승부사 기질은 지난 8월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른바 ‘1인 미디어’로 각광받고 있는 ‘블로그’ 기반의 엔터테인먼트 커뮤니티 ‘엔토이(www.entoi.com)’를 선보인 것. 블로그란 인터넷을 의미하는 ‘웹(Web)’과 항해일지를 뜻하는 ‘로그(logs)’가 합쳐진 신조어로 인터넷 일기, 또는 인터넷 항해일지란 뜻이다. 네티즌들이 칼럼 · 일기 · 기사등을 올려 여론을 형성하는 일종의 온라인 뉴스 사이트로 이라크전쟁 당시에도 화제를 모았다. 엔토이에서는 블로그를 비롯해 음악방송 ·미팅채널 등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도 가미해 네티즌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엔토이는 선보인 지 두 달 만에 40만 명의 가입자를 기록했다.

이 사장은 새로운 서비스 개발과 더불어 인수 ·합병(M&A)에도 적극성을 보였다. 이 사장은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에 이어 솔루션 회사 원큐 등을 자회사로 인수하는 과정에서 M&A의 생리와 노하우를 일찌감치 터득했다. 올해 솔루션홀딩스 ·쿠쿠커뮤니케이션 등을 잇달아 인수한 이 사장은 “인터넷 사업은 결국 사람 장사”라며 “우수한 인재와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인수해 성장해 나가는 것은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말한다. 잘 알려진대로 NHN도 네이버와 한게임의 결합으로 탄생했다. 지난 98년 삼성SDS에 근무할 당시 사내 벤처로 네이버를 만들었던 이 사장은 역시 삼성SDS 출신의 김범수 한게임 사장과 의기투합, 한 살림을 냈다. 두 사람은 검색과 게임을 각각 나눠 맡는 투톱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네이버와 한게임은 각각 국내 1위의 검색 사이트와 게임 사이트로 평가받고 있다. 두 사이트의 인기 덕에 NHN은 지난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 1,206억원을 기록, 순수 닷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매출 1,000억원 시대를 열었다. 누적 영업이익도 518억원으로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무려 43%에 이른다.
이 사장은 주식시장에서도 닷컴 기업의 부활을 널리 알렸다. 그는 닷컴주 거품 논란이 분분하던 지난해 10월 말 코스닥에 입성했다. 청약 경쟁률은 평균 505대 1이었고 청약에만 1조7,000억원의 뭉칫돈이 몰렸다. 4만원대로 출발한 주가는 올해 20만원까지 올랐다가 현재 14만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NNH 주가에 거품이 낀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이 사장은 이익 규모나 외국 동종업체의 주가수익비율(PER)을 감안하면 여전히 상승 여력이 크다고 주장한다. 그는 요즘 눈을 돌려 해외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NHN을 글로벌 닷컴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얼마 전 홍콩 ·싱가포르 등으로 해외 기업설명회(IR)를 다녀온 이 사장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아바타 ·게임 아이템 ·블로그 커뮤니티 등 한국식 닷컴 비즈니스에 대해 해외 투자자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얼마 전 베이징가화문화경제유한공사를 파트너로 중국 문화 포털 구축 사업에 뛰어들었다. 30억원 규모의 합작법인을 교두보로 온라인 공연 티켓 발매와 문화 콘텐츠 정보를 아우르는 문화 포털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 사장은 “중국은 공연 문화가 발달한 나라인 만큼 이번 합작 법인 설립을 계기로 인터넷 기반의 선진 문화예술 사업을 펼쳐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게임시장에도 발을 디뎠다. 홍콩에서 가장 큰 정보기술(IT) 업체인 PCCW사의 자회사인 PCCS사와 합작 법인을 만들기로 한 것. 모두 700만 달러를 들여 세울 이 회사에선 국내에서 개발한 인터넷 게임들을 선보인다.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중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한게임재팬과 네이버재팬이 합친 NHN재팬이 이미 안정 궤도에 올랐다.

올 초 1만 명이었던 동시접속자가 10월 말 현재 3만5,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익도 낼 전망이다. 이 사장은 “국내 인터넷 기업들이 미국 ·일본 ·중국 등지의 닷컴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것은 좁은 내수시장 때문”이라며 “내년에는 미국과 유럽에도 NHN의 이름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성공신화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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