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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전략 차별화로 승부

지역별 전략 차별화로 승부

‘월드카’를 꿈꾸는 현대자동차가 해외에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시장이 현대차의 질주를 그냥 놔두지는 않고 있다. 현대차가 브레이크를 풀고 가속페달을 밟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3~4년 전 만해도 미국에서 현대차는 ‘싸구려’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개선된 것 같다. 미국의 자동차 소비자의 만족도를 조사하는 품질평가기관 JD 파워(J. D. Power)가 지난 10월 실시한 상품성 만족도 조사(Appeal Study)에서 현대차의 EF쏘나타와 싼타페가 승용 ·승합차 부문에서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의 회사별 순위에서도 현대차는 포드 ·다임크라이슬러 ·GM 등 이른바 미국 ‘빅3’를 제치고 15개사 중 7위에 랭크됐다. 브랜드별 평가 역시 지난해 28위에서 21위로 뛰었다.

로버트 코스마이(Robert Cosmai) 현대모터아메리카(HMA) 사장은 “이제 미국에서 현대차의 위상은 다른 어떤 차량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라며 “이것은 세계 자동차 5위 진입의 청신호”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인정받는 차는 세계 어디서도 인정받는다’는 세계 자동차 업계의 법칙대로라면, 현대차는 소원대로 2010년 안에 세계 자동차 메이커 ‘톱5’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실제로 현대차는 최근 수년간 미국뿐 아니라 유럽 ·인도 ·중국 등지에서도 적잖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계속되는 국내 경기 침체에도 올해 1~3분기 경영실적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도 바로 수출(9조6,661억원) 증가 때문이다. 3분기 중 국내에선 전년 동기 대비 19.2% 줄어든 48만4,615대를 파는 데 그쳤지만 수출 물량은 69만266대로 6.8% 늘었다.

이런 외형적 성장 속도만 보면 현대차의 ‘월드카’ 꿈이 실현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그러나 현대차가 진출한 해외 시장 곳곳에는 적잖은 ‘과속 방지턱’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가끔 급브레이크를 밟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대차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미 부분적이긴 하지만,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미국
미 ·일 메이커의 드센 가격 공세

미국은 현대차 수출물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 시장이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 진입을 위해 처음부터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야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지금도 강행하는 ‘10년 ·10만 마일’ 보증은 당장 실적을 올려줄 수는 있지만 품질이 받쳐주지 못할 경우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빅3의 견제도 만만찮다. 이들은 홈그라운드를 잠식해오는 현대차에 맞서 최근 공격적인 판매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현대차의 파격적인 보증 프로그램에 대응해 ‘안전하고, 오래 탈 수 있는 전통있는 차’임을 강조하며 공격적인 홍보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요즘 현대차엔 도요타 등 일본 메이커들이 더 두려운 존재다. 그 동안 가격경쟁력으로 판매를 늘려왔지만, 일본업체들이 가격을 대폭 낮추며 ‘품질 대비 가격경쟁력’에서 미국차들을 훨씬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요즘 현지 기자들을 대상으로 시승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면서 홍보마케팅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곱지 않은 미 언론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취지에서다.

최대 30%까지 할인정책을 펴고 있는 일본업체들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차도 현재의 할부판매 금리를 낮춰 일본업체들 수준에 맞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기에 ‘딜러캐시제도’까지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이 제도는 월 15~30대 이상 파는 딜러들에게 대당 300달러나 차 값을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현대차 미국법인 관계자는 “기준판매대수는 내리고 가격인하 폭은 더 넓게 적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시장 점유율은 현대차의 전체 수출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미국 빅3와 일본업체들에 맞서 현대차가 지난해 미국 시장 점유율 4%를 올해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대차는 2005년 완공되는 앨라배마 공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를 통해 가격경쟁력과 품질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코스마이 사장은 “이곳에서 완벽한 테스트까지 마쳐 품질경쟁력을 확보하고, 물류·임금등 비용을 절감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중국
딜러망 확충, 인지도 제고 급선무

지난해 말 현대차가 베이징기차와 합자 ·설립한 베이징현대기차에서 쏘나타가 첫선을 보인 이래 올 상반기에만 2만1,000대를 판매해 중국 자동차 판매량의 2.6%를 차지하는 급신장을 보였다. 현대차 베이징법인장인 노재만 전무는 “경쟁 차종인 혼다(本田)의 어코드와 폴크스바겐의 파사트는 클래식한 디자인인 반면, 현대의 EF쏘나타는 부드러운 곡선 위주여서 구매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의 중국 비즈니스엔 몇 가지 난제가 있다. 현재 중국에서 현대차가 진출한 곳은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두 곳뿐이다. 이곳에서조차 현대차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딜러망을 갖추지 못했다. 칭다오(靑島)에 사는 한 중국인 사업가는 “쏘나타를 사기 위해 베이징에 오는 데만 하루가 넘게 걸렸다”며, “다시 직접 운전을 해서 돌아가야 한다니 현대차는 중국에서 가장 타기 힘든 차 같다”고 불평했다는 얘기도 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른 관세인하 조치가 수입자동차 가격을 계속 떨어뜨리는 것도 후발주자인 현대차엔 반가운 일이 아니다. 선발 업체들이 신제품을 쏟아내며 경쟁이 치열해지는데다 중국산 차의 가격경쟁력을 뚫는 것도 쉽지 않다. 여기에 중국정부가 나서 자국 업체들의 구조조정과 대형화를 추진하는 등 중국의 견제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시장점유율을 계속 높이려면 무엇보다 딜러망 확장과 인지도 제고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현대차는 우선 대(對)중국 주력모델인 쏘나타 판매확장을 위해 대리점 마진을 경쟁사보다 대폭 인상해 단기간에 딜러망을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시장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쪽으로 판매전략의 가닥을 잡고, 쏘나타에 ‘고급차’ 이미지를 불어넣기 위해 미국에서와는 달리 할인정책은 자제한다는 전략이다.

아직까지 쏘나타는 먼저 중국에 진입한 타사 차량에 비해 상대적 브랜드 이미지가 약하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차가 집중 공략하는 곳이 바로 택시 시장이다. 현재 중국 택시는 폴크스바겐이 장악하고 있다. 중국 현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폴크스바겐 택시는 중국에서도 가장 값싼 차로 통한다. 베이징시의 지원 아래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베이징시내 택시 6만7,000여 대 전량을 쏘나타로 교체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제품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쏘나타의 보증기간 ·주행거리도 최고 10년 ·10만 마일까지 상향조정해 고객 불만을 줄이고, 부품 공급 ·정비 시스템을 확충하기로 했다.
노 전무는 “딜러 확충 ·교육에도 박차를 가할 참이다. 전국 대리점 사장 ·판매관리자 대상으로 지속적인 현대차의 중국 내 장기계획에 대해 교육하고, 실습을 통한 제품 이해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쏘나타를 시작으로 2004년 아반떼XD 등 승용 전 차종에 걸쳐 중국 실정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고 향후 합자기업이 자체 개발한 승용차를 생산겿퓔탭?계획이다. 올해 5만 대 규모에서 2010년까지 50만 대 생산체제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유럽
환경기준 부합 차량 개발 시급

현대차는 유럽에서도 바짝 열을 올리고 있다. 현대차는 북미 지역에 편중된 수출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서유럽 판매목표를 지난해보다 20% 증가한 28만 대로 잡았다. 유럽 시장의 디젤 차량 판매증가 추이에 따라 디젤 모델을 전체 수출량의 40% 정도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유럽에선 시장논리보다 현지 환경정책에 밀릴 공산이 크다. 유럽 국가들이 들이대는 환경기준에 부합하는 차를 현대차가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현대차가 커먼레일 디젤엔진을 개발한 것은 유럽 수출 전략의 일환이었다. 유럽연합(EU)이 요구하는 CO2 협약 기준을 만족시키는 디젤엔진을 개발해야만 했다. 이를 지키려면 내년까지 유럽에 수출하는 차량의 CO2 배출량을 주행거리 1㎞당 165~170g으로, 2009년까지는 140g으로 낮춰야 한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그러기엔 너무 시간이 빠듯하다”고 우려한다.

현대차는 지난 9월 600억원을 투자해 현대 ·기아차 유럽 연구 ·개발(R&D)센터를 준공했다. 1만 평이 넘는 대지 위에 세워진 첨단 다기능 복합건물이다. 준공식에 참석한 정몽구 회장은 “이곳은 유럽 현지화 전략의 중심이 될 것”이라며 “유럽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디젤차 시장을 겨냥, 환경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엔진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이곳 관계자도 “미국과 유럽의 환경규제 강화에 대비한 하이브리드카와 3ℓ카의 개발이 완료단계이며 IFC ·발라드 등과 공동개발 중인 연료전지차 개발에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은 미국과 달리 소형차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돼 있다.

현대차는 중형차와 SUV차로 시장을 뚫으려 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실적을 못 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현대차는 유럽 R&D센터에서 유럽인의 스타일과 취향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해 유럽에서 잘 팔릴 수 있는 신모델을 선보인다는 전략이다.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인도에서도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98년에 완공한 현대차 인도 공장은 65만 평의 대지에 단독투자로 설립한 자족형 종합자동차공장이다. 지난해 11만1,045대를 판매해 인도 전체 자동차 수요의 20%에 해당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인도에서 기대했던 수요는 현대차 생산능력을 따라와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현대차 측의 판단이다. 현대모터 인도 공장은 서남아시아 ·유럽 시장을 겨냥한 수출전진기지로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차는 현재 해외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우리의 생존전략은 오직 해외시장으로 판로를 확대하는 길뿐이라는 판단하에 세계 최고의 품질 확보에 기업의 사활을 걸었다”며 “글로벌 비즈니스는 반드시 현장 경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현대차는 해외 현지 판매활동을 책임 관리하는 지역본부제를 도입,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수출업무에 정통한 직원을 주재원으로 파견, 장기간 상주하도록 정비했다. 해외 품질상황실도 풀가동 중이다.

현대차의 대응전략이 구체화되지 않는 한 세계 시장이 현대차의 질주를 무사통과시키진 않을 것이다. 현대차가 브레이크를 풀고 가속페달을 계속 밟을 수 있을까. 현대차는 해외 진출 초기에 감수해야 했던 ‘값싼’ 이미지와 ‘낮은’ 인지도를 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대차 리더들은 월드카가 되기 위한 키워드로 ‘신뢰 구축’을 꼽는다. 성병호 해외영업본부장(부사장)은 “현지화된 해외 네트워크에서 딜러와 고객들에게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진정한 글로벌 브랜드를 만드는 원동력”임을 강조한다.
11월 초 정몽구 회장도 한 공식석상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자동차는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 마음과 마음, 문화와 문화를 연결해 상호 신뢰를 증진시키는 메신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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