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포티즘의 함정
| 이임택 한국남부발전 사장 | 로마 교황은 10∼11세기 무렵부터 자신의 사생아를 ‘네포스’(nepos·영어로는 nephew)라 칭하여 요직에 등용했다. 이런 악습은 1692년 법으로 금지될 때까지 계속됐는데, 친족이나 연고자를 주요 관직에 등용하거나 특전을 부여하는 것을 네포티즘(Nepotism·연고주의)이라일컫는다. 동서를 막론하고 ‘인맥 인사’의 폐해가 컸던 것이 사실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그 피해가 심각하다. 외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말할 때 ‘네포티즘 성향이 짙다’는 표현을 빼먹지 않는다. 특히 관료나 대기업 문화에서 이런 경향이 짙다. 새로 고위직 관리나 기업체 임원에 등용되면 출신 지역부터 출신 대학, 출신 선배 등 ‘출신’을 따지는 것이 보통이다. 전 세계 면적의 1천3백분의 1에 해당하는 22만㎢ 정도의 좁은 땅덩이에서 살고 있으면서, 그것도 남북이 갈라져 있으니 10만㎢밖에 안 되는 좁디좁은 땅덩이에서 연고를 찾다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몽골을 방문한 후에 지인들과 몽골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이 자리에서 나는 “(남의 나라가 아닌) 고향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이 몽골계통이기 때문에 난생 처음 방문했어도 사람들이 하나같이 고향사람 같아서다. 생김새며, 말투며, 행동거지들이 완전히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몽골 사람들에게 한국은 ‘솔롱고스’(무지개라는 뜻의 ‘솔롱고’에서 유추해 ‘무지개의 나라’일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불린다. 덕분에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서울링 보담쥐’(서울의 거리)로 이름 붙여진 한 블록 정도 길이의 거리가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반가운 한국어 간판을 단 음식점과 상가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몽골의 문화 교류를 이해할 때, 적어도 13세기의 ‘몽고풍’이나 ‘고려양’ 같은 경우를 뺀다면 ‘영향’이나 ‘전파’보다는 ‘공유’(sharing)에 비중을 두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실뜨기·공기놀이·자치기처럼 아이들이 즐기는 놀이까지 닮았다. 몽골인들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신선로, 여인네들이 즐겨 쓰는 머리수건 역시 한국의 것과 쏙 닮았다. 직접 가서 피부로 느끼는 문화도 가깝지만 물리적인 거리로도 가깝다. 울란바토르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로 3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는다. 서울로 돌아오는 ‘짧은’ 비행시간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고향에 다녀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비단 몽골만이 아니다. 시야를 조금 더 넓히고, 언어 구사력을 조금 더 키우면 우리의 고향은 한없이 넓어질 수 있다. 고향이 넓어지면 경제·문화적 교류의 폭도 넓어지게 마련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와 몽골의 교류는 미미한 수준이다. 의류업체들이 봉제공장을 짓는다거나, 광물자원공사에서 소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정도며 본격적인 투자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몽골이 내 고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학자라면 더 애정 어린 연구를, 기업인이라면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될 것이다. 세계는 품에 안는 순간 고향이 된다. 단지 고향을 세계로 넓히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고향을 지구 방방곡곡으로 넓히는 대신 우리 또한 외국인에게 고향을 나눠줘야 한다. 세계인이 우리나라를 마음 편히 방문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한국은 당연히 ‘세계인의 고향’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 네포티즘의 함정에 갇혀 있을 것인가.
이 임 택 한국남부발전 사장 1940년 전남 장흥 生 광주고·서울대 전기공학과 卒 9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공학박사 65년 한국비료 69년 호남전력 76년 현대엔지니어링 91년 현대엔지니어링 전무 99년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2001년∼現 한국남부발전 대표이사 사장 2003년∼現 한국전기학회 부회장 99년∼現 한·페루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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