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명품 벽지에 도전한다”
디아이디는 출범 3년 만에 고급 벽지시장을 평정했다. 타워팰리스 등 고급 주택은 대부분 이 회사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허 사장은 상식을 깨는 소재와 디자인으로 승부해 성공을 거뒀다.
"5년 내에 업계 1위를 차지하겠다." 지난 2000년 9월 벽지업체 디아이디의 경영을 맡게 된 허훈종(49)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이렇게 장담했다. 갓 출범한 디아이디의 임직원들은 대부분 ‘불가능한 약속’이라고 치부했다. 벽지시장은 대기업을 포함해 60여 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 유통망의 우위를 바탕으로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 사장의 목표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3년여가 흐른 지금 디아이디는 시장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18%의 점유율로 업계 1위인 LG화학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디아이디가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허 사장의 명품 전략 덕분이다. 그는 유럽의 한물간 유행을 뒤따르는 데 안주하고 있던 벽지 업계의 관행부터 깨뜨렸다.
국내 벽지시장은 경쟁은 치열하지만 의외로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가 느리다. 연구겙낱?투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수입 명품들이 새로운 제품으로 시장을 선도해나가면 나중에 유사한 제품으로 뒤따라가는 경향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허 사장은 우선 글로벌 업체에 뒤지지 않는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 전문화된 체제를 구축했다. 디자인 업무를 기획 디자이너 ·컬러 리스트 ·CAD 디자이너 ·비주얼 패키지 디자이너 등으로 세분화했다. 디아이디의 디자인 조직은 회사를 단숨에 시장 지배기업으로 끌어올린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허 사장은 유통구조 혁신에도 사활을 걸었다. 기존 벽지 유통시장은 대기업이 높은 진입장벽을 쌓아두고 있었지만 낡은 방식에 의존하고 있었다. 벽지업체에서 생산한 물건을 대리점에 보낸 뒤 주택가의 인테리어점에서 들어오는 주문량을 대주는 형태였다. 하지만 대리점의 한정된 물류 공간에 수백 종류의 벽지 재고를 쌓아둘 수 없어 주문부터 받은 뒤 생산업체에 재고를 확인해야 했다. 이러다보니 막상 주문받은 제품이 재고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고객은 한 번 실망한 브랜드를 다시 찾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인테리어점이나 대리점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물류센터에서 고객이 원하는 장소까지 직접 배달하도록 했죠. 이를 위해 경기도 오산 ·서울 영등포 ·장안동 ·강남 등 네 군데에 대형 물류센터를 구축했습니다. 대신 대리점과 인테리어점은 영업과 고객서비스에만 전념하도록 했습니다.”
생산 부문에서는 고가의 첨단기기를 도입하고 전문인력을 투입해 품질관리 시스템을 운용하도록 했다. 물류기지가 있는 오산에는 총 9개의 생산라인을 설치했다. 연간 2,000만 평에 이르는 벽지 생산능력은 국내 최대 규모다.
허 사장은 디아이디에 오기 전 대원화성의 생산 담당 전무를 지냈다. 상장사인 대원화성은 PVC소재로 만든 인공피혁사업을 주력으로 삼는 회사다. 그는 지난 93년 이곳에서 같은 원료를 발포 상태의 벽지로 만들면서 벽지사업을 맡았다. 밋밋한 종이 일색이던 벽지시장에 처음 등장한 오톨도톨한 발포 벽지는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사업 초기 허 사장은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직접 대리점에 공급하는 대신 대형 벽지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공급하는 방법을 택했다. “OEM을 하니 소비자들은 우리의 존재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벗어난 디자인과 소재는 큰 화제였습니다. 업계에 소문이 나면서 대기업들이 먼저 손을 내밀더군요”
대기업들의 주문은 점차 벽지사업의 몸집을 불려 나가는 자양분이 됐다. 그는 경기도 오산에 세계 최대 규모의 벽지 자동화창고를 세우고 국내 벽지 생산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기술 연구소도 설립했다. 8년간 현장에서 뛴 허 사장은 벽지 부문이 주력사업 못지않은 고수익 사업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2000년 9월 직원 120명을 데리고 벽지사업을 떼내 별도 법인으로 독립했다.
“시장을 오랫동안 탐색한 결과 유통망만 확보할 수 있다면 굳이 OEM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디자인과 품질은 이미 시장에서 검증을 받았기 때문이죠.”
독자사업을 시작한 허 사장은 매출증가를 위해서라면 고정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시설투자비와 인건비 ·연구 개발비를 해마다 2배 이상으로 늘렸다. 과감한 투자에 힘입어 독립 첫 해 85억원이던 매출은 2001년 272억원, 2002년 413억원으로 급증했다. 손실은 2000년 22억원에서 2001년 19억원으로 줄었고, 2002년에는 10억원의 이익을 내며 흑자로 전환했다. 2003년에는 20억원의 이익을 전망한다.
“물류센터 확충과 인력 보강, 첨단설비 도입 등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다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사업 확대도 좋지만 기업 규모에 비해 투자 규모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었죠. 하지만 고수익을 원한다면 위험을 감수하는 게 투자의 기본원칙 아닌가요”
허 사장의 이런 전략에 따라 디아이디는 수입품에 집중됐던 고급 벽지 수요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수입 명품도 알고 보면 상당수가 디아이디 제품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이 흉내냈던 한 이탈리아 브랜드는 디아이디가 명품업체 랄프로렌에 파견한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이다. 디자인을 수출하면서 동시에 생산주문을 받는 방식으로 이탈리아 상표만 부착했을 뿐이다.
“고급 주택을 짓는 건설사들의 모델하우스가 홍보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타워팰리스 등 최고급 자재를 사용한 주택에 벽지는 디아이디 제품이 채택됐기 때문이죠. 모델하우스 방문객 중에 처음에는 수입품인 줄 알았다가 디아이디 제품이라는 걸 알고 실망하는 분들도 물론 있었죠. 하지만 건설사 직원들이 수입 명품이 결국 디아이디 제품이라는 점을 설명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2003년 벽지시장은 경기침체에다 해외 명품들의 공세까지 겹쳐 업계 전체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디아이디는 전년 대비 20%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허 사장은 만족을 표시했다. “2003년에 500억원 매출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선전했다고 봐야죠. 특히 2003년에는 매출보다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높인 게 더 큰 소득입니다.”
그는 디아이디를 업계 1위에 올려 놓겠다던 회사 출범 당시의 약속을 새해에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2004년에는 국내 1위를 달성한 뒤 세계 명품에 도전하자는 새 목표를 제시할 생각입니다. 무모하다던 5년 전의 비판이 또 일겠지만 사내에서는 의심하는 임직원이 없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5년 내에 업계 1위를 차지하겠다." 지난 2000년 9월 벽지업체 디아이디의 경영을 맡게 된 허훈종(49) 사장은 취임 일성으로 이렇게 장담했다. 갓 출범한 디아이디의 임직원들은 대부분 ‘불가능한 약속’이라고 치부했다. 벽지시장은 대기업을 포함해 60여 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 유통망의 우위를 바탕으로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 사장의 목표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3년여가 흐른 지금 디아이디는 시장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18%의 점유율로 업계 1위인 LG화학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디아이디가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허 사장의 명품 전략 덕분이다. 그는 유럽의 한물간 유행을 뒤따르는 데 안주하고 있던 벽지 업계의 관행부터 깨뜨렸다.
국내 벽지시장은 경쟁은 치열하지만 의외로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가 느리다. 연구겙낱?투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수입 명품들이 새로운 제품으로 시장을 선도해나가면 나중에 유사한 제품으로 뒤따라가는 경향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허 사장은 우선 글로벌 업체에 뒤지지 않는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 전문화된 체제를 구축했다. 디자인 업무를 기획 디자이너 ·컬러 리스트 ·CAD 디자이너 ·비주얼 패키지 디자이너 등으로 세분화했다. 디아이디의 디자인 조직은 회사를 단숨에 시장 지배기업으로 끌어올린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허 사장은 유통구조 혁신에도 사활을 걸었다. 기존 벽지 유통시장은 대기업이 높은 진입장벽을 쌓아두고 있었지만 낡은 방식에 의존하고 있었다. 벽지업체에서 생산한 물건을 대리점에 보낸 뒤 주택가의 인테리어점에서 들어오는 주문량을 대주는 형태였다. 하지만 대리점의 한정된 물류 공간에 수백 종류의 벽지 재고를 쌓아둘 수 없어 주문부터 받은 뒤 생산업체에 재고를 확인해야 했다. 이러다보니 막상 주문받은 제품이 재고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고객은 한 번 실망한 브랜드를 다시 찾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인테리어점이나 대리점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물류센터에서 고객이 원하는 장소까지 직접 배달하도록 했죠. 이를 위해 경기도 오산 ·서울 영등포 ·장안동 ·강남 등 네 군데에 대형 물류센터를 구축했습니다. 대신 대리점과 인테리어점은 영업과 고객서비스에만 전념하도록 했습니다.”
생산 부문에서는 고가의 첨단기기를 도입하고 전문인력을 투입해 품질관리 시스템을 운용하도록 했다. 물류기지가 있는 오산에는 총 9개의 생산라인을 설치했다. 연간 2,000만 평에 이르는 벽지 생산능력은 국내 최대 규모다.
허 사장은 디아이디에 오기 전 대원화성의 생산 담당 전무를 지냈다. 상장사인 대원화성은 PVC소재로 만든 인공피혁사업을 주력으로 삼는 회사다. 그는 지난 93년 이곳에서 같은 원료를 발포 상태의 벽지로 만들면서 벽지사업을 맡았다. 밋밋한 종이 일색이던 벽지시장에 처음 등장한 오톨도톨한 발포 벽지는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사업 초기 허 사장은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직접 대리점에 공급하는 대신 대형 벽지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공급하는 방법을 택했다. “OEM을 하니 소비자들은 우리의 존재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벗어난 디자인과 소재는 큰 화제였습니다. 업계에 소문이 나면서 대기업들이 먼저 손을 내밀더군요”
대기업들의 주문은 점차 벽지사업의 몸집을 불려 나가는 자양분이 됐다. 그는 경기도 오산에 세계 최대 규모의 벽지 자동화창고를 세우고 국내 벽지 생산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기술 연구소도 설립했다. 8년간 현장에서 뛴 허 사장은 벽지 부문이 주력사업 못지않은 고수익 사업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2000년 9월 직원 120명을 데리고 벽지사업을 떼내 별도 법인으로 독립했다.
“시장을 오랫동안 탐색한 결과 유통망만 확보할 수 있다면 굳이 OEM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디자인과 품질은 이미 시장에서 검증을 받았기 때문이죠.”
독자사업을 시작한 허 사장은 매출증가를 위해서라면 고정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시설투자비와 인건비 ·연구 개발비를 해마다 2배 이상으로 늘렸다. 과감한 투자에 힘입어 독립 첫 해 85억원이던 매출은 2001년 272억원, 2002년 413억원으로 급증했다. 손실은 2000년 22억원에서 2001년 19억원으로 줄었고, 2002년에는 10억원의 이익을 내며 흑자로 전환했다. 2003년에는 20억원의 이익을 전망한다.
“물류센터 확충과 인력 보강, 첨단설비 도입 등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다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사업 확대도 좋지만 기업 규모에 비해 투자 규모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었죠. 하지만 고수익을 원한다면 위험을 감수하는 게 투자의 기본원칙 아닌가요”
허 사장의 이런 전략에 따라 디아이디는 수입품에 집중됐던 고급 벽지 수요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수입 명품도 알고 보면 상당수가 디아이디 제품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이 흉내냈던 한 이탈리아 브랜드는 디아이디가 명품업체 랄프로렌에 파견한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이다. 디자인을 수출하면서 동시에 생산주문을 받는 방식으로 이탈리아 상표만 부착했을 뿐이다.
“고급 주택을 짓는 건설사들의 모델하우스가 홍보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타워팰리스 등 최고급 자재를 사용한 주택에 벽지는 디아이디 제품이 채택됐기 때문이죠. 모델하우스 방문객 중에 처음에는 수입품인 줄 알았다가 디아이디 제품이라는 걸 알고 실망하는 분들도 물론 있었죠. 하지만 건설사 직원들이 수입 명품이 결국 디아이디 제품이라는 점을 설명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2003년 벽지시장은 경기침체에다 해외 명품들의 공세까지 겹쳐 업계 전체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디아이디는 전년 대비 20%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허 사장은 만족을 표시했다. “2003년에 500억원 매출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선전했다고 봐야죠. 특히 2003년에는 매출보다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높인 게 더 큰 소득입니다.”
그는 디아이디를 업계 1위에 올려 놓겠다던 회사 출범 당시의 약속을 새해에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2004년에는 국내 1위를 달성한 뒤 세계 명품에 도전하자는 새 목표를 제시할 생각입니다. 무모하다던 5년 전의 비판이 또 일겠지만 사내에서는 의심하는 임직원이 없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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