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 맞춤 · 신소재 도입이 비결
대량 맞춤 · 신소재 도입이 비결
한샘은 외환위기와 경기침체로 주 소비자인 중산층의 구매력이 붕괴되자 중저가 시장에 승부를 걸었다. 생산과 물류 시스템을 혁신하고 신소재를 도입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 한샘은 보급형 제품의 성공에 힘입어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한샘은 고급 ·고가 부엌가구의 대명사였다. 40평대 이상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 ·상류층을 타깃으로 삼은 한샘의 전략은 한동안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한샘은 지난 86년 이후 10년 가까이 연평균 25%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며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80~90년대 소득수준 향상과 생활패턴의 서구화에 따른 소비자들의 욕구 변화를 읽어낸 덕분이다.
하지만 외환위기에 이어진 내수침체로 시장 규모가 30% 이상 줄어들자 한샘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한샘은 성장전략으로 중저가 시장 공략을 통한 몸집불리기를 택했다. 부엌가구 시장에서 고가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중간 가격대와 ‘비메이커’ 저가 제품시장이 각각 50%와 30%를 차지한다. 매출을 끌어올리려면 중저가 시장 장악이 반드시 필요했다.
중저가 전략은 한샘의 브랜드 정체성을 흔들 수도 있는 모험이었다. 더구나 한샘은 과거 한 차례 중저가 시장에 진출했다가 곤욕을 치렀던 경험도 갖고 있었다. 90년대 초 처음 출시한 한샘의 보급형 제품은 젊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제품이 인기를 누리자 영세업체들의 디자인 베끼기가 극성을 부렸다. 외관과 기능을 흉내낸 영세업체 제품은 저가를 무기로 한샘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했다. 한샘의 첫 번째 중저가 전략은 영세업체들의 점유율만 높여주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최양하(54) 사장은 “유사품에 주의하라고 광고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2000년 중저가 시장에 재진출한 한샘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시장조사부터 다시 했다. 소비자 조사결과 한샘 브랜드의 선호도는 여전히 높았다. 경쟁업체나 영세업체 제품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한샘 제품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역시 가격 때문이었다. 영세업체 제품 수요를 흡수할 수준으로 가격을 끌어내리면서도 흉내낼 수 없는 디자인과 품질을 갖출 묘안이 필요했다.
최 사장은 “당시 회사는 30%에 이르던 영세업체 제품과의 가격차를 좁히는 데 사운을 걸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샘의 경영진은 ‘대량맞춤’ 생산방식에서 해답을 찾았다. 대량맞춤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원가절감 효과를 추구하는 전략이다. 나이키 ·모토롤라 ·델 컴퓨터 등이 채택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한샘은 대량맞춤 전략을 구사하기 위해 전사적자원관리(ERP)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3분 CAD’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개발했다. 3분 CAD는 평형별 ·길이별로 다른 2,000여 개의 설계도를 미리 만들어 고객의 집을 방문하지 않고도 즉석에서 집 구조에 맞는 부엌 설계와 가격을 도출해내는 시스템이다. 또 옵션에 따라 설계를 변경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가격이 계산되기 때문에 견적 가격을 바로 알 수 있다. 매장에서 설계가 끝나면 주문서가 실시간으로 본사에 보내져 3일 정도면 설치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했다. 한샘은 이 시스템을 통해 서비스 수준을 높이면서도 영업비용의 상당 부분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항공기 좌석 예약제도를 응용한 ‘시공 좌석제’라는 독특한 물류 프로세스도 도입했다. 고객이 원하는 날짜를 직접 선택하도록 하되 인력문제 등을 감안해 주문과 동시에 시공가능 시간대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전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제도를 통해 물류와 인력을 효율적으로 분산할 수 있게 됐다. 또 생산물량과 인력소요를 평준화하고 사전에 파악된 출고일에 맞춰 생산계획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박영재 생산 및 구매담당 전무는 “물류 속도는 높이되, 비용을 줄이고 재고 부담도 현격히 낮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생산과 물류 시스템 개혁이 완성될 즈음인 2001년 봄, 한샘의 ‘밀란 프로젝트팀’이 고무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신소재인 투명 코팅제(CPL)를 사용하면 100만원대에 고급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보고였다. CPL은 고품질의 광택을 내고 습기와 흠집에 강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한샘은 대량 수입을 통해 CPL의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하지만 영세업체들은 엄두를 못냈다. 복제품 방지과 원가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손에 넣은 한샘은 신소재를 새로운 시스템에 적용해 ‘밀란’ 시리즈를 내놨다.
2001년 가을 혼수시장을 겨낭해 출시한 밀란은 만루 홈런을 날렸다. 출시 5개월 만에 2만5,000세트, 2002년에는 4만2,000세트가 팔려나갔다. 가구 시장 전체에서 단일품목 판매량이 5만 세트를 넘기기는 밀란이 처음이었다. 2003년에도 월평균 4,000세트가 판매되며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밀란은 2003년 9월 기준으로 한샘 부엌가구 부문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밀란의 성공에 힘입어 한샘은 중저가 부엌가구 시장 점유율을 2001년 5%, 2003년에는 16%까지 늘렸다. 이에 힘입어 회사 전체 매출도 매년 20%씩 성장하는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성공의 주인공에게는 걸맞은 보상이 뒤따랐다. 밀란 프로젝트를 주도한 이소영 팀장에게는 특진과 함께 1억원의 파격적인 포상금이 지급됐다.
한샘은 2002년에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지난 5월에는 주가가 1만4,000원 선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9,000원대에서 주춤하고 있다. 내수악화에 대한 우려로 주가 전망은 엇갈리지만 한샘의 중저가 전략은 상찬을 받고 있다. 대신경제연구소 한태욱 연구원은 “최근 소비패턴의 양극화 현상을 고려할 때 고가와 저가로 나뉜 한샘의 정책은 긍정적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대우증권 이승주 애널리스트도 “새해에 경기회복이 본격화하면 기존 고가 가구 매출도 회복돼 매출 성장 폭이 더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샘은 최근 중국 공장 건립에 나서며 해외시장 개척에도 시동을 걸었다. 베이징(北京)에 건립하는 7,800평 규모의 공장은 중국 소비자를 직접 공략하는 역할 외에 다른 지역으로의 수출 생산기지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최 사장은 “미국 ·일본 ·동북아 지역 부엌가구 시장을 적극 공략해 오는 2005년까지 한샘을 매출 1조원 규모의 회사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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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까지 한샘은 고급 ·고가 부엌가구의 대명사였다. 40평대 이상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 ·상류층을 타깃으로 삼은 한샘의 전략은 한동안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한샘은 지난 86년 이후 10년 가까이 연평균 25%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며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80~90년대 소득수준 향상과 생활패턴의 서구화에 따른 소비자들의 욕구 변화를 읽어낸 덕분이다.
하지만 외환위기에 이어진 내수침체로 시장 규모가 30% 이상 줄어들자 한샘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한샘은 성장전략으로 중저가 시장 공략을 통한 몸집불리기를 택했다. 부엌가구 시장에서 고가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중간 가격대와 ‘비메이커’ 저가 제품시장이 각각 50%와 30%를 차지한다. 매출을 끌어올리려면 중저가 시장 장악이 반드시 필요했다.
중저가 전략은 한샘의 브랜드 정체성을 흔들 수도 있는 모험이었다. 더구나 한샘은 과거 한 차례 중저가 시장에 진출했다가 곤욕을 치렀던 경험도 갖고 있었다. 90년대 초 처음 출시한 한샘의 보급형 제품은 젊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제품이 인기를 누리자 영세업체들의 디자인 베끼기가 극성을 부렸다. 외관과 기능을 흉내낸 영세업체 제품은 저가를 무기로 한샘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했다. 한샘의 첫 번째 중저가 전략은 영세업체들의 점유율만 높여주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최양하(54) 사장은 “유사품에 주의하라고 광고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2000년 중저가 시장에 재진출한 한샘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시장조사부터 다시 했다. 소비자 조사결과 한샘 브랜드의 선호도는 여전히 높았다. 경쟁업체나 영세업체 제품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한샘 제품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역시 가격 때문이었다. 영세업체 제품 수요를 흡수할 수준으로 가격을 끌어내리면서도 흉내낼 수 없는 디자인과 품질을 갖출 묘안이 필요했다.
최 사장은 “당시 회사는 30%에 이르던 영세업체 제품과의 가격차를 좁히는 데 사운을 걸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샘의 경영진은 ‘대량맞춤’ 생산방식에서 해답을 찾았다. 대량맞춤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원가절감 효과를 추구하는 전략이다. 나이키 ·모토롤라 ·델 컴퓨터 등이 채택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숫자로 본 한샘 |
0 최근 3년간 한샘은 기업어음이나 사채를 한 번도 발행하지 않았다.자금조달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아 부채비율을 2002년 말 95.7%에서 2003년 9월 말에는 70.6%로 낮췄다. |
7 설립 7년만인 지난 77년7월 국내 가구업체로는 처음으로 미국 수출길을 열었다.2002년 7월에는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
8 사외이사를 제외한 임원 14명 중 8명이 외부 출신이다.최양하 사장은 대우중공업 출신이다.노무섭 부사장은 현대건설,박석준 전무는 외환은행을 거쳐 한샘에 합류했다.LG종금에서 온 최동수 전부사장은 2003년8월 조흥은행장에 전격 선임됐다. |
19 한샘 매출액은 최근 3년간 평균 19%씩 증가하고 있다.지난 2001년 처음 매출 3,000억원을 돌파한 뒤 2002년 4,700억원,2003년 3분기까지 3,7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
항공기 좌석 예약제도를 응용한 ‘시공 좌석제’라는 독특한 물류 프로세스도 도입했다. 고객이 원하는 날짜를 직접 선택하도록 하되 인력문제 등을 감안해 주문과 동시에 시공가능 시간대를 파악할 수 있도록 전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제도를 통해 물류와 인력을 효율적으로 분산할 수 있게 됐다. 또 생산물량과 인력소요를 평준화하고 사전에 파악된 출고일에 맞춰 생산계획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박영재 생산 및 구매담당 전무는 “물류 속도는 높이되, 비용을 줄이고 재고 부담도 현격히 낮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생산과 물류 시스템 개혁이 완성될 즈음인 2001년 봄, 한샘의 ‘밀란 프로젝트팀’이 고무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신소재인 투명 코팅제(CPL)를 사용하면 100만원대에 고급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보고였다. CPL은 고품질의 광택을 내고 습기와 흠집에 강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한샘은 대량 수입을 통해 CPL의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하지만 영세업체들은 엄두를 못냈다. 복제품 방지과 원가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손에 넣은 한샘은 신소재를 새로운 시스템에 적용해 ‘밀란’ 시리즈를 내놨다.
2001년 가을 혼수시장을 겨낭해 출시한 밀란은 만루 홈런을 날렸다. 출시 5개월 만에 2만5,000세트, 2002년에는 4만2,000세트가 팔려나갔다. 가구 시장 전체에서 단일품목 판매량이 5만 세트를 넘기기는 밀란이 처음이었다. 2003년에도 월평균 4,000세트가 판매되며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밀란은 2003년 9월 기준으로 한샘 부엌가구 부문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밀란의 성공에 힘입어 한샘은 중저가 부엌가구 시장 점유율을 2001년 5%, 2003년에는 16%까지 늘렸다. 이에 힘입어 회사 전체 매출도 매년 20%씩 성장하는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성공의 주인공에게는 걸맞은 보상이 뒤따랐다. 밀란 프로젝트를 주도한 이소영 팀장에게는 특진과 함께 1억원의 파격적인 포상금이 지급됐다.
한샘은 2002년에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지난 5월에는 주가가 1만4,000원 선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9,000원대에서 주춤하고 있다. 내수악화에 대한 우려로 주가 전망은 엇갈리지만 한샘의 중저가 전략은 상찬을 받고 있다. 대신경제연구소 한태욱 연구원은 “최근 소비패턴의 양극화 현상을 고려할 때 고가와 저가로 나뉜 한샘의 정책은 긍정적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대우증권 이승주 애널리스트도 “새해에 경기회복이 본격화하면 기존 고가 가구 매출도 회복돼 매출 성장 폭이 더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샘은 최근 중국 공장 건립에 나서며 해외시장 개척에도 시동을 걸었다. 베이징(北京)에 건립하는 7,800평 규모의 공장은 중국 소비자를 직접 공략하는 역할 외에 다른 지역으로의 수출 생산기지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최 사장은 “미국 ·일본 ·동북아 지역 부엌가구 시장을 적극 공략해 오는 2005년까지 한샘을 매출 1조원 규모의 회사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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