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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의 경제학

아줌마의 경제학

봉제공장에서 근무하는 기혼 여성 근로자가 옷을 가봉하기 위해 자로 밑작업을 하고 있다.


‘주부 경제력’ 입체분석… GDP의 22% 차지, 보험·유통 등은 기혼 여성 천국 기혼 여성, ‘아줌마’ 사원들이 사회 곳곳에서 뛰고 있다. 중소기업 생산직 현장은 물론, 유통업·음식점·도소매판매점 등은 이미 기혼 여성들이 없으면 가동이 되지 않을 정도로 기혼 여성 사원들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보험설계사 같은 특정 분야는 기혼 여성들이 대부분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혼 여성 노동력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추정치 약 5백22조원 가운데 22%(약 1백15조원)는 아줌마의 힘으로 이뤄낸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황수경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취업자 수 약 2천2백만명 가운데 42%가 여성이고, 이 중 약 80%가 기혼 여성”이라며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65% 수준임을 감안할 때 국내총생산의 약 22%는 기혼 여성들이 만들어낸다고 추정해도 틀리지 않다”고 말했다. 기혼 여성들의 경제활동은 특히 최근 10년간 엄청나게 활발해졌다. 40·50대 기혼 여성 중에서 취업을 원하는 노동력은 이미 다 노동시장으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전문가 지적이 있을 정도다.

소프트한 여성 일거리 급증 기혼 여성의 활발한 경제활동 진출은 통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참가율(전체 여성 중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비율)은 1992년 47.1%에서 2002년 49.8%로 증가했다. 증가율로만 보면 크지 않아 보이지만, 속내용을 들여다보면 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92년 전체 여성 1천6백57만명 중 경제활동인구는 7백80만명(47.1%)이며, 이 중 취업자 수는 7백64만명이고, 실업자 수는 16만명이다. 그런데 2002년의 경우 전체 여성 1천9백4만명 중 경제활동인구는 9백48만명(49.8%)이고, 취업자는 9백24만명, 실업자 수는 24만명이다. 따라서 10년 동안 늘어난 여성 취업자 수는 1백60만명이나 된다. 반면 같은 기간 중 여성 실업자 수는 사실상 제자리걸음(8만명 증가)을 했다. 이 기간 중 일어난 신규 여성취업은 대부분 30대 말, 40·50대 기혼 여성의 재취업이란 전문가 진단이다. 또한 이 기간 중에 기혼 여성들이 중소기업·유통업 분야로 특히 빠르게 진출했는데, 이는 서비스와 단순직에 종사하는 여성취업자 수가 93년 3백37만명에서 2001년 4백53만명으로 1백16만명이나 급증한 데서도 알 수 있다. 90년대 이후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이 급증한 이유는 뭘까? 황수경 박사는 “이 시기에 한국 사회의 인구 구성이 점차 고령화되면서 남성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저렴한 기혼 여성 노동력이 노동시장으로 빠르게 편입됐고, 또한 경제발전에 따라 소프트한 기혼 여성용 일거리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다 보니 이젠 기혼 여성 노동력이 이미 국내 노동시장에서 중요한 요소로 부각됐다고 덧붙인다.

사장·수위 빼면 몽땅 아줌마 실제로 기혼 여성들의 취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웬만한 업종들은 아줌마 차지가 됐고, 그들이 없으면 돌아가질 않는다. 박노섭 중소기업진흥공단 실장은 “잡화·봉제·가죽·종이·식품 같은 전국 중소기업의 생산직은 물론이고, 이젠 기존 남성들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볼트나 너트 생산현장이나 도금 분야까지 나이든 기혼 여성들이 파고들어 가는 현상까지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 지방공장 어디를 가봐도 사장·수위·공장장·기술자 등 남자 4명을 빼면 아줌마 직원들만 있는 이색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면서 “이는 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 같은 유통 할인점의 경우 점포당 약 4백명이 근무하는데, 이 중 파트타임사원, 협력업체사원 등 주부사원이 40∼50%를 차지하고 있다. 주부가 없으면 할인점이 돌아가지 않는다. 보험업계도 마찬가지. 삼성생명의 보험설계사 수는 현재 약 2만9천3백명인데, 기혼 여성의 비중이 95.3%나 된다. 20년간 지방 중소기업을 돌며 지원업무를 한 경험이 있는 박노섭 실장은 “국내 중소기업에서 기혼 여성 생산인력이 빠진다면 대부분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까지 진단한다. 특히 지방에서 기혼 여성들이 공장으로 달려가는 건 농업소득의 약세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박실장은 “기혼 여성이 중소기업 생산직으로 근무하며 한달에 1백만원 정도 벌 경우 농업소득보다 많은 게 농촌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아줌마 취업’ 현상의 장래는 어떤 것일까? 또 문제점은 없을까? 김종숙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여성취업률은 대개 M자형 쌍봉구조를 이루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20대 때는 취업률이 높지만 출산과 육아 때문에 사표를 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다음 아이들을 초등학생 정도까지 키워놓을 무렵인 30대 말∼40대 초반이 되면 다시 취업률이 높아지는 게 바로 쌍봉구조다.

선진국 되면 역U자형 예상 “나이든 기혼 여성의 재취업 이유는 가계지출과 밀접합니다. 40대 초반이 되면 교육비·주택비 등으로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직장을 10년 이상 안 다니다 다시 다니려면 하향 취업이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김종숙 박사의 진단이다. 따라서 40대에 재취업을 하려면 임금수준이 낮은 단순노무직·서비스직·생산직·판매직에 만족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학력이 낮은 기혼 여성들의 경우 이같은 저임금 업종에 만족하며 현재 재취업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전망이다. 그렇지만 학력이 높은 30대 초반의 기혼 여성들(평균 학력 초대졸)은 현재의 재취업 업종과 임금 수준에 만족을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재취업보다는 ‘취업 포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황인영 아줌마닷컴(www.azoomma. com) 대표는 고학력 30대 전업주부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현실적으로 찾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들 30대 초반 미취업 기혼 여성의 경우 M자형 쌍봉구조 취업 패턴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이는 10년 정도 지나면 중소기업들이 심각한 ‘아줌마 인력난’을 겪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이와 관련 김영옥 여성부 장관정책보좌관은 “정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현재 참여정부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선진국을 벤처마킹해서 공공 부문 서비스 인력으로 전문직 기혼 여성들을 많이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한다. 여름철에 살모넬라균 때문에 음식점 위생단속을 정부에서 일회성으로 진행하곤 하지만 흐지부지되는 게 관례다. 그러나 선진국처럼 전문지식을 갖춘 기혼 여성들을 활용해 상시단속으로 전환하면 기혼 여성 고용을 대폭 늘릴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김보좌관은 또한 전국 50여개 여성인력개발센터를 통해 기혼 여성 재취업을 위한 다양한 직업훈련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소개한다. 한국 경제가 선진화될수록 기혼 여성의 취업 패턴도 급격히 달라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정진화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은 여성들의 취업률 패턴 그래프가 M자형이지만, 선진국으로 다가갈수록 역U자형 그래프를 그릴 것”으로 내다본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접어들면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20대에 취업을 한 다음, 중간에 경력단절 없이 계속 일을 하다가 60세 정도 되면 은퇴하는 것이 보편화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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