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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되면 뭐든 인수한다”

“돈 되면 뭐든 인수한다”

요즘 인수 ·합병(M&A)이 있는 곳에 공제회가 있다. 인수 대상도 제조업부터 금융 ·건설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이다. 군인 ·교직원 ·경찰 등 100만 명에 이르는 회원에게 끌어모은 자금이 이들의 무기고. 돈 되는 사업에 직접 몸을 던지는 이유는 간접투자만으로는 약속한 이자를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승광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요즘 대기업 오너들이나 경제 5단체장과 함께하는 자리가 부쩍 늘었다. 11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 CEO’로서 재계의 돌아가는 사정을 듣기 위해서다. 부동산뿐 아니라 각종 개발사업과 기업 구조조정 영역으로까지 사업을 확대하면서 그를 만나려는 사람들도 줄을 서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수조원대의 자금력이 있어 대형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파트너다. 지난해 금호타이어 인수전에서 JP모건-칼라일 컨소시엄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M&A시장에서의 몸값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계열사 11곳 가운데 7개사를 M&A로 끌어들였다. 금호타이어 ·대한토지신탁 ·대신기업 등이 여기에 속한다. 군인공제회 자산 규모는 약 4조원. 지난 1984년 2월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설립돼 현역 군인들이 1계좌에 5,000원씩 내는 ‘회원급여저축’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20여 년간 흑자행진을 벌여온 덕에 즉시 조달 가능한 현금만도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인공제회가 M&A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지는 꽤 오래 됐다. 지난 87년 덕평CC 운영업체인 덕평관광개발을 인수한 것이 시초다. 덕평CC를 운영한 경험 덕에 국방부로부터 태릉 ·남성대 ·남수원CC의 경영을 위탁받았다. 외환위기 때는 냉장 및 물류창고업체인 고려물류사업소를 인수했다. 학사장교 출신인 채기문 사장이 이 회사를 맡고 있다. 경리담당 대령으로 예편한 그는 금융전문가가 거의 없었던 군인공제회에서 사업관리본부장을 맡아 초기의 기업 인수 작업을 이끌었다.

지난 2001년 군인공제회를 대주주로 맞은 한국캐피탈(옛 중부리스)의 유인완 사장은 군인공제회의 M&A시장 진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민간기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시기는 저금리 기조가 시작되던 2001년부터다. 회원들에게 연 8%대의 복리이자를 주기로 약정을 맺어 은행이자만으로는 역마진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주던 군납사업의 경쟁이 격화돼 다른 수익원을 찾아나서야 했다.”

군인공제회는 워크아웃 중이던 중부리스의 지분 83%를 2,500억원에 인수한 뒤 상호를 한국캐피탈로 바꿨다. 그리고 한일투신 사장을 지낸 유 사장을 불러 경영을 맡겼다. 순수 금융인인 유 사장은 군인공제회 계열사 사장 가운데 세 사람뿐인 ‘민간인’ 출신이다. 유 사장은 한국캐피탈을 맡은 뒤 군인공제회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우선 경남리스를 흡수합병해 몸집을 불린 뒤 M&A와 벤처투자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부동산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2001년에 180억원을 들여 인수한 대한토지신탁은 장병선 사장이 지휘한다. 한국토지공사 사장을 지낸 장 사장은 30여 년간 부동산 사업에서 한 우물을 팠다. 부동산 투자의 주요 결정은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가들이 한다. 필요할 경우에는 전문가 집단에게서 자문을 받기도 한다. 부동산컨설팅 업체 LMS컨설팅 이문숙 대표는 “군인공제회와 대한토지신탁의 투자대상 선정과 마케팅은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국가기관에서 유력 인사들을 영입해 정보와 인맥을 활용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군인공제회의 자금운용은 금융과 건설로 나뉜다. 기업 인수 등은 금융투자본부에서, 아파트 건설 등은 건설사업본부가 각각 나눠맡는다. 두 사업부문의 수장들은 전직 군인들이다. 다소 폐쇄적인 조직인 탓인지 외부전문가들을 영입하는 대신 군에서 유사한 업무를 맡았던 인물들이 이끌고 있다. 최정락 전 육군 대령이 본부장을 맡은 금융투자본부에는 12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중 5명이 투자상담사 또는 자산관리사 자격증을 갖춘 준전문가들이다. 최 본부장은 지난 98년 경리담당 대령으로 예편한 뒤 99년 7월부터 금융투자본부장을 맡고 있다. 건설사업본부장은 공병 출신인 황진업 전 육군 대령이 이끈다. 이들은 기획과 경리, 법무 등 엘리트 장교로 복무했던 전직 군인들의 보좌를 받는다. 해외 유학 등으로 쌓은 전문지식과 한국 사회 곳곳에 뿌리 내린 ‘군인 네트워크’가 이들의 최대무기다.

유 사장은 액수가 크거나 중요한 투자건의 경우 김성중 이사와 협의를 거친다. 비상근인 김 이사는 미 플로리다 공과대학원 출신의 유학파로 군인공제회에서 최정락 본부장을 보좌하고 있다. 유 사장은 취임 1년 만에 중부리스를 234억원의 흑자회사로 바꿔놨다. 그는 “현재 금융기관은 고유 업무라는 말이 무의미할 정도로 영역구분이 없어졌다”며 “투자 영역을 더 넓혀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물론 투자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권은 군인공제회 이사회가 갖고 있다. 금호타이어 인수 등 규모가 큰 사업은 국방부 장관의 동의를 받는 절차도 거친다. 하지만 군인공제회는 일단 인수한 회사의 경영권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한두 명을 경영진에 참여시켜 감사 업무만 하는 정도다.
군인공제회가 드러난 큰손이라면 회원 수 65만 명, 자산 규모 10조원의 한국교직원공제회는 ‘보이지 않는 큰손’이다. 아직 언론의 조명을 덜 받았을 뿐 교직원공제회는 주식시장에서만 1조원을 운용해 지난해 29.2%의 수익률을 올렸다. 채권시장에서도 3조5,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굴리고 있다. 최근에는 민간사업 투자도 활성화하고 있다.

교직원공제회는 자회사와 출자회사를 합해 모두 8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기존 사업체들은 서울교육문화회관과 제주라마다프라자 호텔 등 대부분이 회원들을 위한 레저 ·숙박업에 치중돼 있었다.
교직원공제회는 자산을 여러 개의 투자자문사에 분배해 운용을 맡긴다. 이 업무는 배재환 교직원공제회 자산운용 팀장이 총괄한다. 그는 10년 넘게 교직원공제회에서 이 업무를 담당해온 베테랑이다. 배 팀장의 주요 임무는 실력있는 자산운용사들을 선택해 공제회기금을 나눠주는 일이다.

그는 코스모투자자문 최권욱 사장을 최고의 파트너로 꼽았다. 코스모는 교직원공제회뿐 아니라 군인공제회 ·국민연금 ·사학연금 등의 대형 자금 운용을 맡고 있는 업체다. 4,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굴리는 인력은 최 사장까지 포함해 모두 5명. ‘한국의 피델리티’를 표방하는 그는 “소수정예인 인력이 운용할 수 있는 규모가 넘어섰다고 판단되면 더이상 자금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업 인수는 저금리시대의 수익원 발굴 차원”

코스모 등을 통해 간접투자에 치중하던 교직원공제회가 최근에는 금융업에 직접 뛰어들었다. 교원나라상호저축은행 ·교원나라벤처투자 ·교원나라자동차보험 등이 대표적이다. 회원들에게 고금리 혜택도 주고 직접 자산운용에도 나서기 위해서다. 94년 ㈜전방으로부터 인수한 뒤 2001년 이름을 바꾼 교원나라저축은행은 교직원공제회를 통해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한 뒤 그 차이만큼을 예금이자로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회원을 끌어들이고 있다.

덕분에 매년 예수금이 1,000억원 가까이 증가하고 50억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내는 등 어려운 업계 상황에도 선전하고 있다. 온라인자동차보험사인 교원나라자동차보험은 지난해 12월 공식출범, ‘에듀카’라는 브랜드 아래 기존 오프라인 보험사보다 25% 정도 싼 보험상품을 선보이며 고객 유치에 나섰다. 교원나라자보는 현재 차량을 소유한 45만 명의 교원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금융 외에도 교직원공제회의 손길은 건설 ·종합레저 ·제조업 등 미치지 않은 영역이 없다. 인천 철마산터널 공사와 신공항 하이웨이 ·서울시 신교통시스템 시행업체로 선정된 LGCNS 지분 인수 등에도 교직원공제회의 이름이 빠짐없이 올라갔다. M&A시장에도 진출해 법정관리 중인 뉴코아 인수를 위한 ‘2001아울렛 컨소시엄’에 참가했다. 교직원공제회는 “2010년에 26조원의 자산과 다수의 계열사를 보유한 초일류 그룹으로 성장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양대 산맥인 두 공제회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경찰공제회와 지방행정공제회도 사업영역을 꾸준히 넓히며 손을 키워가는 중이다. 지방행정공제회는 최근 도용환 스틱아이티투자 사장과 손잡고 벤처투자펀드 조성에 나섰다. 8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해 디지털 관련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스타기업을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경찰공제회는 자회사를 두지 않고 있지만 120%가 넘는 지급준비율로 공제회 가운데 재무구조가 가장 안정적이다. 경찰공제회의 주된 수익사업은 운전면허 신체검사와 골프장 사업 등으로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부동산 경기 이끄는 공제회
대형 공제회들이 예정 중인 부동산 사업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앞으로 어떤 부동산 상품이 뜨게 될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공제회들은 자금력과 인적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지난 몇 년간 전국을 달궜던 부동산 열기를 한 발 앞서 주도해왔다.

군인공제회는 주상복합아파트 열기에 불을 지핀 주인공이다. 4조원의 자산 중 45% 가량인 1조8,000억원을 부동산 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주상복합 붐의 효시 격인 ‘경희궁의 아침’을 비롯해 ‘마포 한화 오벨리스크’, ‘여의도 리첸시아’, ‘대우 그랜드 월드’ 등 귀에 익은 이름만도 일일이 거론하기 어렵다.

주상복합 열기가 꺾이고, 신도시 개발이 본격화 될 것을 예측이라도 한듯 군인공제회는 지난해부터 경기도 일대의 아파트 건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공을 민간 건설사에 맡겨 이름이 드러나지 않을 뿐 용인 ·김포 ·화성 등의 신도시 개발은 군인공제회가 없었다면 가능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용인에서만 마북리 현대 홈타운 ·신봉리 동부 센트레빌 ·성복리 경남 ·동백리 동원 등이 군인공제회가 시행사로 나선 아파트들이다. 이 밖에도 고양 풍동 성원 ·김포 사우동 대림 ·화성 동탄(시공사 미정) 등 군인공제회는 신도시 예정 지역에서만 3,000가구가 넘는 아파트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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