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지방의 절름발이 경제
도시와 지방의 절름발이 경제
The Two Koreas
지난주 한국 최초의 ‘총알 열차’가 시험운행을 위해 서울을 빠져나가자 이내 스모그와 수많은 인파 대신 탁트인 들판과 논, 그리고 작은 농촌마을들의 한산한 거리들이 펼쳐졌다. 시속 3백㎞로 달리는 한국고속철도(KTX) 열차는 한국의 가난했던 과거로 달려가는 타임머신처럼 느껴진다. 이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불균형한 발전을 이룩한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주요 국가의 수도 중 서울만큼 인구(한국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서울에서 산다)와 산업이 밀집된 도시는 없다. 그리고 KTX의 주요 목적은 그같은 밀집현상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김세호 철도청장은 “새로운 고속철도는 지역 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이며 한국의 지방 분권화 시대를 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새로운 시대의 기획자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는 경남 출신으로 기존 서울 엘리트층의 일원이 결코 아니다. 그는 행정수도를 서울에서 한국의 지리적 중심지인 충청권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 등을 내세워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올해 그는 4백억달러의 건설 비용이 들어가는 행정수도 건설 후보지를 지정할 것이다.
2007년부터 건설될 새 수도에는 고속철도가 지나갈 예정이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대해 서울 사람들은 대체로 반대 입장(부동산 가격 하락과 일자리 유출을 두려워하는 탓)인 반면 남부지방 사람들은 지지 입장을 보인다. 수도권은 현재 한국 영토의 12%에 불과하지만 한국 경제 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김영집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홍보팀장은 “지방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고, 서울 사람들에게는 높은 물가·교통 체증 등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정치적 운송수단’으로서의 KTX의 문제점은 그것이 양방향으로 운행된다는 점이다. 1백20억달러의 비용이 투입되고 프랑스 테제베(TGV) 모델을 도입한 KTX는 4월 정규운행을 시작할 예정이며 서울∼부산 간 운행시간은 현재의 절반 수준인 2시간 30분으로 단축될 것이다. 이 대계획에는 KTX와의 연결 노선인 지선(支線) 망을 구축해 국내 어떤 두역 간의 운행시간도 최장 3시간으로 단축시키고, (이론상으로는) 자주 마찰을 빚는 지방들을 전례없는 수준으로 통합시키는 방안이 포함된다.
확실치 않은 점은 KTX가 수도 서울로 ‘발전’을 실어오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발전’을 실어가도록 정부가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에서 불편할 정도로 발전이 편중됐다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한국전쟁 이후 40여년간 숨가쁠 정도로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역대 정권들은 수도 서울을 선호하고 지방을 외면했다.
일자리가 많은 서울로 학생들이 빠져나가면서 이제 지방대학들은 파산에 직면해 있다. 재능있는 인재들을 찾는 기업들 역시 서울로 몰려들다 보니 지방에서 할 일이라고는 농사밖에 없게 됐다. 교통체증으로 인한 근로시간 손실은 돈으로 환산할 경우 연간 2백억달러[국내총생산(GDP)의 3.7%]나 된다. 한국군 고위장교들은 북한과의 무력충돌 발생시 2천2백만 국민이 북한측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들어간다고 우려한다.
인구도 적고 재정도 훨씬 부족한 지방들은 급속도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농촌지역에는 빈집들이 수두룩하다. 청년들이 대거 서울로 몰려가면서 농촌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다. 극장·쇼핑몰·병원들은 구경하기도 힘들다. 서울의 아파트 값은 이제 도쿄나 뉴욕의 아파트 수준으로 뛴 반면 지방의 부동산 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제자리 걸음이다. 사실상 한반도만 두개로 쪼개진 것이 아니라 남한도 두개로 쪼개진 것 같다. 김팀장은 “국민화합에 위협이 될 정도로 지방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세 때부터 시작된 서울과 지방 간의 경쟁의식은 아직도 한국 정치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수도 이전 공약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승리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그는 대선에서 고작 2%포인트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새로운 수도가 들어서게 될 충청도 지방에서 11%포인트 차이로 승리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KTX가 노대통령의 지방분권화 계획이 가속화되는 시기이자 총선 2주 전인 4월 1일에 개통되는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세제 및 기타 혜택들을 통해 수도 이전을 가속화시키고 지방 학교 및 산업을 활성화시킬 3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수도 서울의 자연스런 흡인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회의론자들은 새로운 총알 열차가 사람들로 하여금 서울 주변 1백50km 이내에 거주하면서 극장이나 병원을 찾아 서울에 들락거리는 것을 더 쉽게 만듦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각종 서비스의 집중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일부 분석가들은 KTX가 서울과 새 행정수도 사이에 있는 중소도시들의 크기를 확대시켜 결국에는 하나의 거대도시권을 형성함으로써 인구밀집을 완화하기보다는 심화시킬 것으로 믿는다. 협성대 이상문 교수(도시계획)는 “현재 둥그런 모양의 수도권이 길다란 계란형 모양을 갖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현상은 이미 진행 중인지도 모른다. 서울 주변의 지자체들은 약 20개의 신도시를 만들거나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어 수도권 인구 유입이 확대될 전망이다. 이런 계획들은 대부분 중앙정부의 관할권을 벗어나 있다. 가장 야심찬 계획은 서울 서쪽 30km 지점에 있는 송도에 2백억달러를 투입해 국제회의장·무역센터·호텔·병원·대학 등을 지어 ‘보스턴보다 더 큰 규모의’ 비즈니스 허브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기업들은 서울 인근에서의 비즈니스 활동에 관한 법규를 완화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은 서울 인근 남쪽에 있는 한 대형 공장의 확장을 추진중이다. 그 계획은 더 이상의 경제력 집중을 막으려는 당국에 의해 오랫동안 거부돼 왔었다.
신 행정수도와 관련해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은 남북 분단 상황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둘러싼 긴장상태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궁극적으로 통일이 평화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는 희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행정수도 건설 계획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서울이 통일된 한반도의 잠재적 수도로 가장 이상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북한측이 새 수도에 대해 좀더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 간단한 방법이 있기는 하다. 총알 열차를 평양으로까지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까지는 ‘미래로의 시간여행’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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