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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투자 나서는 중국 기업들

해외투자 나서는 중국 기업들


Going Global


홍콩의 공장지대인 관탕(觀塘) 깊숙이 자리잡은 중국 제일의 휴대폰 제조업체는 지금 세계 정복을 꿈꾼다. 무선호출기 제조로 출발한 닝보 버드는 지난해 중국에서 노키아와 모토롤라를 제치고 거의 1천1백만개의 휴대폰을 팔았다. 이제는 그것도 이미 옛날 이야기다. 버드 인터내셔널의 왕잔핑 이사는 앞으로 3∼5년 후를 내다보며 베트남·인도·아프리카 시장에 주목한다. 그는 “이제 3년만 지나면 중국은 기본적 안정권에 접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휴대폰 시장이 완전히 성숙해 신규사업 기회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성장하려면 해외 진출이 필연적이다.”

중국의 경제발전 속도는 여전히 다른 나라를 앞서지만 중국은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의 경제개혁은, 아니 따지고 보면 이 나라의 지난 5천년 역사는 주로 중세 왕국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왔다. 중국인 가정의 등잔에 쓸 기름을 수출하겠다는 꿈에 도취된 외국인들은 투자를 허락받는 대가로 중국 정부를 칭송해 왔다. 중국 기업들은 경영을 개선하고 노동쟁의를 저지하는 데 골몰해 왔다. 중국 경제의 힘은 무엇보다도 인민을 바탕으로 한다. 인민은 값싼 노동력의 원천일 뿐 아니라, 중국이 수많은 구애자들 중에서 입맛대로 고를 권한을 갖게 된 것도 인민들로 형성된 거대한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를 향해 구애의 손길을 뻗는 것은 바로 중국이다. 4천30억달러라는 엄청난 외환 보유고에 고무된 중국 기업들은 유수 브랜드들이 해외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등 한창 흥청거린다. 잘 나가는 국영기업들은 기술·원자재·신규시장 진출을 보장하는 해외 파트너나 인수 대상 기업을 물색한다. 자본은 기록적 수준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중국은 2002년 말 현재 해외자산이 3백50억달러라고 주장했다.
이미 성사됐거나 성사를 앞둔 일련의 계약들 때문에 “중국은 올해 장난감과 TV 시장만이 아닌 세계 각국의 인수·합병 분야에서도 두드러지게 활약할 것”이라고 크레디트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홍콩)의 선임연구원 타오둥(陶冬)은 말했다.

올 2월 상하이 바오스틸 그룹은 1979년 중국이 경제개혁을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의 단일 해외투자를 발표했다. 브라질에서 14억달러 규모의 합작 제철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국의 석유화학 회사 란싱(藍星) 그룹은 한국 쌍용 자동차의 지배적 지분을 사들이기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으며 기업 회생자금으로 10억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계약을 합치면 1990년대 중국의 연평균 해외 직접투자 규모 23억달러를 초과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치 1980년대의 일본을 연상시키는 투자 잔치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투자가 부동산과 할리우드 영화사에 치중됐던 반면 중국의 투자는 아주 현명하게 이뤄진다. 중국의 해외투자는 곤경에 처한 회사를 인수해 기술과 브랜드나 시장을 넘겨받는 한편 신흥시장들을 한데 규합해 일종의 세계적 공급체인으로 엮는 것이다.

중국의 시장 석권에 대한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중국 정부는 소위 ‘평화적 부상(浮上)’론을 부르짖는다. 중국이 수면으로 떠오르면 다른 배들도 함께 뜬다는 주장이다. 최근 들어 중국은 개별 국가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같은 지역 블록과 1백개 이상의 무역·세금·투자 조약 협상을 벌여 왔으며, 신흥시장에 저가 수입품을 소개하는 한편 그들로부터 호감을 사왔다. 선진국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미국이나 유럽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괴물로 인식되지만 빈국들은 중국을 석유·목재·면화 등 1차 상품의 큰 손님이자 서구 국가들에 맞서는 균형추로 본다.

그런 이미지 덕분에 중국은 자동차 공장·정제소·항만시설·원격통신망 등을 사들이거나 원자재 독점계약을 맺으면서도 잡음 없이 일처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중국의 궁극적 목적은 내수산업의 강화다. 중국은 쓸 돈이 많지만 지도자들은 국내 소비를 너무 진작하면 경제가 과열되고 위안화의 가치상승 압력이 커지며 값싼 노동력의 천국인 자국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점을 잘 안다. 한가지 해법은 조립라인·제조업체·주물업체·정제소 등을 돌리는 데 필요한 원자재 생산업체를 인수하는 것이다.

브라질에 대한 바오스틸의 막대한 투자는 미래지향적이다. 중국 제일의 철강 생산업체인 바오스틸은 국내 철강 생산량을 1995년의 8천만t에서 현재의 2억5천만t으로 올리는 데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철강 수입국이다. 그러니 바오스틸로서는 확장만이 살 길이다. 그러나 그 방식은? 강철의 주원료인 철광석의 수입에는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바오스틸은 세계 최대의 철광석 생산업체인 콤파니아 발레 두 리우 도체와 함께 그린필드형(기반시설이 없는 곳에 직접 공장을 설립하는 투자방식) 제강소를 설립키로 했다.

한편 닝보 버드처럼 한창 잘 나가는 제조업체들의 경우 외부 팽창은 급속한 국내성장을 뒷받침하는 한 방편이다. 소자본으로 출범해 무선호출기를 만들던 버드는 중국 시장에 진입하는 외국 다국적기업들을 위해 무선전화를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단 요령을 터득한 뒤 가난한 내륙지방을 겨냥한 자체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버드는 지리적 팽창과 더불어 좀더 세련된 제품을 생산하면서 2003년 창립 12년 만에 중국의 선두주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 회사의 국제적 라이벌들은 중국에서 해마다 수백만개 이상의 전화를 더 많이 생산하며 그 대다수가 수출시장으로 나간다. 버드는 그것을 본받아 세계적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장기 전략을 수립했다. “노키아가 내수시장에만 전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라고 홍콩에서 근무하는 버드의 고위간부 앨버트 선은 말했다.

INSEAD 경영대학원의 연구자 쩡밍(曾明)과 피터 J. 윌리엄슨은 선진국들이 중국에서 강력한 라이벌들이 부상하고 있는 사실을 경시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2003년 10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보고서에서 자체 상표를 내걸고 세계적 냉장고·전자레인지·TV 메이커가 된 중국 기업들을 검토했다. 대다수 다국적기업은 중국의 어마어마한 시장을 활용한다는 아찔한 전망에 취해 “중국 기업들이 국내에서뿐 아니라 국제시장에서도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하고 있는 현실에 눈이 멀었다”고 두 학자는 말했다. 그들은 광둥 갈란즈를 예로 들었는데, 이 회사는 2002년 10억달러의 수입을 올렸으며 그해 유럽에서 팔린 전자레인지 열개 가운데 네개를 만들었다.

이들 중국 기업이 아직 손대지 못한 일 한가지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브랜드의 개발이다. 가전제품의 거인 하이얼의 경우를 보자. 연안도시 칭다오(靑島)에 자리잡은 이 국영기업은 1990년대 국내 백색 가전제품 시장을 석권하다가 본토가 가전제품 포화상태에 이르자 사업모델을 확충했다. 유럽과 미국에 공장을 짓고 수백개의 소매점을 통해 와인 쿨러·냉장고·식기세척기·평면 TV를 팔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새 북미법인 본사건물 옥상에는 이 회사 깃발이 나부끼며, 이 회사 광고로 도배한 밴들이 뉴욕의 도로를 질주한다. 그러나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하이얼은 “제조면에서는 세계화를 이룩했지만 브랜드로서는 아직 그러지 못했다”고 액세스 아시아(상하이)에서 소비자 제품 컨설턴트로 일하는 폴 프렌치는 말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로는 여전히 비싼 값을 부르기 어렵다.”

소수의 중국 업체들은 해외 브랜드를 사들이는 길을 택했다. 예컨대 광둥(廣東)성 후이저우(惠州)에 있는 세계 최대의 TV 메이커 TCL은 지난해 11월 프랑스 톰슨의 TV 메이커와 합병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TCL은 새 벤처의 지배 지분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톰슨으로, 미국에서는 RCA로 통하게 됐다. 그로부터 몇주 후 란싱그룹은 쌍용 자동차를 사들이기로 했다. 인민해방군에 지프를 납품하는 자회사를 이미 소유하고 있는 란싱은 쌍용 자동차의 기술과 노하우를 이용해 중국의 스포츠레저차량 시장에 진출함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한 쌍용 브랜드를 활용할 계획이다.

아직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거래로 한국에서는 중국이 머지않아 기회보다는 위협으로 등장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촉발됐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 정부는 1990년대 말 대륙의 강대국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조정작업을 거쳤다. 최근의 경제자료를 보면 그같은 전략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결실을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일 큰 수출시장이 됐다. 대중(對中) 수출은 지난 2년 연속 배증해 이제는 3백60억달러에 육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쌍용 자동차 매각 문제를 계기로 중국의 대외투자 덕분에 현재 한국이 앞서 있는 하이테크 분야에서 중국이 경쟁자로 대두하는 날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우려가 일었다. 삼성경제연구소 해외경제실의 정상은 수석연구원은 한국이 “머리 구실을 하고 중국이 손발을 맡던 시절은 곧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산업자원부는 최근 한국의 기술적 우위가 신속히 사라지는 중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에 대한 휴대폰 기술의 우위는 2007년께 사라지고, 평면 TV 기술의 우위는 2010년이면 사라진다. 대중 무역흑자 1백35억달러는 2008~2011년 사이에 만성적자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산자부는 예측했다.

혹자는 중국 기업들이 한국의 다른 하이테크 기업들을 선별적으로 인수할 경우 그같은 추세에 불이 붙을 것이라고 걱정한다. 중국은 비록 한국이 내수가 지지부진하던 시절을 견뎌내도록 도움을 줬지만 한국이 중국 경제에 의존하다 보면 의존도가 위험 수준으로 심화될지도 모른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기술 향상이나 미래의 틈새시장 발굴을 게을리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중국 경제가 뜻밖의 암초를 만나지 않는 한 중국의 대외투자는 결국 앞으로도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 개발은행의 선임 연구원 장-피에르 베르비에는 “소득이 아마도 두배 이상으로 늘어나 있을, 앞으로 10년 뒤를 예측할 때 우리가 보게 될 변화를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좀더 대담한 자원·기술의 가로채기와 차세대 삼성·필립스·포드가 되기 위한 중국 일류기업들의 원대한 청사진이 예상된다. 닝보 버드가 그런 고지에 도달할 것인가? 중국도 그렇지만 이 휴대폰 회사도 한번 해보는 도리밖에 없다.

With ALEXANDRA A. SENO in Hong Kong and B. J. LEE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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