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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눈치 안 볼 절호의 기회

정치 눈치 안 볼 절호의 기회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자 무엇보다 경제가 불안해질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러나 증시를 비롯, 경제상황은 의외로 빨리 안정을 되찾았다. 각계 원로와 전문가들은 정부에 대해 정책의 일관성을 요구하고 공직사회가 동요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런 충고에 대해 장관들은 기존의 정책을 빈틈없이 실천하겠다고 말했는데, 반갑기보다는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든다.

지난 1년간 경제정책에는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신용불량자 대책, 강남의 집값, 부동산 투기대책, 교육문제 등 무엇하나 속시원히 해결된 게 없다.
물론 정책당국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신용불량자나 실업자 대책의 경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다. 당연히 정치권의 압력도 드세다. LG카드 사태나 기업의 정리해고, 비정규직문제 등도 정치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돌이켜보면 위기상황이나 돌발변수에 대해 정책적 오판이나 실수가 많았다. 우선 환율정책부터 그렇다. 연초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당분간 달러 약세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과묵하기로 유명한 그가 이 정도 말했으면 그것은 우리 힘으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수출이 타격을 받는다고 기업들이 아우성을 치자 정책당국은 원화강세를 막아보려고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을 과도하게 매입해 결국 수천억원의 평가손실을 입고 말았다.

정부의 엇박자 행보 사례는 또 있다. 정책당국은 불법 정치자금 때문에 기업의 투자의욕이 꺾이고 있다며 ‘기업인 기(氣) 살리기’ 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정책으로 말해야지 누구의 기를 살리는 일에는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일도 따지고 보면 정치권이나 대통령 눈치보기다. 부동산 정책이나 집값 대책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토지공급의 확대나 주택건설의 촉진보다 분양가 규제·세금중과 등 엄포로 시장가격 묶기에 급급했다. 대통령 눈치를 보고 단기간에 효과를 낼 처방을 구하다 보니 세금중과 같은 무리수를 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헌정의 위기이긴 하나 상당 기간 정치적 논리가 경제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됐다. 정책당국은 이런 기회를 잘 살려 경제논리에 충실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경제부총리는 사실상의 경제 대통령이다. 과거 5공화국 시절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경제에 관한 한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말한 상황과 비슷하다. 경제부총리가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소신껏 정책을 펼 수 있는 기회는 대통령의 탄핵처럼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번 기회에 경제정책은 시장원리와 경제논리에 따라 만들어지는 전통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그러자면 기존의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정치논리에 오염된 정책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시장 전체를 다시 흔들어야 한다. 예컨대 대기업의 정리해고 문제를 보자. 제품이나 서비스가 좋으면 매출이 늘어 일자리가 저절로 생긴다. 그런데 경쟁력을 잃어 자리를 줄여야 하는 기업에 대해 근로자들이 “내 자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이럴 때 정부가 노조의 압력에 못견뎌 기업 내부의 구조조정에 개입하는 일은 시장원리가 아니다. 실업자가 늘면 일시적으로 시장은 흔들리겠지만 원칙은 세워지고 원칙대로 가는 경제를 국제사회는 신뢰하게 된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투자를 확대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앞으로 해외투자를 할 때는 노조와 협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업의 해외투자를 단순히 국내 일자리 축소문제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기업들은 시장에서 일종의 먹이사슬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원가절감 등을 이유로 몇몇 기업이 중국이나 인도로 진출하면 이 기업과 관련 있는 협력업체·경쟁자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먹이사슬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기업들이 종업원 복지는 외면하고 이윤만 추구한다며 여론이 들끓게 되고 정부도 한마디쯤 거들게 된다.

이렇게 보면 지금까지 정치논리에 휘둘려 오염된 정책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 정책당국은 잘못된 정책에 안주해 업무에 ‘전념’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보여주려 해서는 안된다. 민간기업의 라인스톱제처럼 잘못된 정책은 과감히 스톱시키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바른경제연구회 회장·for N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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