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헐버트’가 뛰고 있다
‘제2의 헐버트’가 뛰고 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의 한 묘비에는 그런 글귀가 적혀 있다. 그 묘비의 주인공은 호머 베잘릴 헐버트(1863∼1949). 미국 선교사로 한국에 건너와 1905년 을사보호조약 직후 고종의 밀사로 조선의 독립과 국권회복운동을 벌인 사람이다.
그로부터 1백년이 지난 오날 한국 정부에서 헐버트의 ‘후예’들이 활동 중이다. 중앙 및 지방 정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시대 배경과 구체적 역할은 달라도 한국 정부를 위해 봉사한다는 점에선 큰 차이가 없다. 이들 외국인 공무원은 한국인이 하기 힘들거나 전문성을 요하는 통역·번역·해외 홍보활동 등에 투입돼 한국의 국익을 위해 일한다.
파란 눈의 미국인 데이비드 굿은 재정경제부 공무원이다. 경제홍보기획단 해외홍보과에 소속돼 재경부의 영문 홈페이지 관리와 부서내 각 실·국에서 쏟아낸 해외 홍보용 영문자료 대부분을 편집한다(그는 지난해 10월 재경부와 2년 근무계약을 맺었다). 1992년 한국에 첫발을 디딘 그는 어느새 한국적 사고에 익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나이를 묻자 대뜸 “한국 나이로는 46세이고, 미국 나이로는 44세”라고 ‘친절히’ 대답한다. 92년부터 연세대 외국어학당 강사와 주미 한국대사관 직원, 외교통상부 직원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그는 “한국의 정서와 풍습을 몸에 익혀둔 게 채용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굿은 재경부 정책을 영어권 인사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솔직히 말해 내가 오기 전에 나간 영문 홍보물들은 잉글리시가 아니라 콩글리시였다. 외국인들은 조악한 영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는 “외교부에 근무하던 94년 당시 한승주 장관이 동료 직원들에게 나를 칭찬해줬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회상한다. 굿과 한 부서에서 근무하는 이용재 서기관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해외로 나가는 재경부의 각종 문서나 자료는 토씨 하나로도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외교적 파장이 초래될 수도 있다”며 “영문 번역의 오류는 반드시 그의 손을 거치게 된다”며 굿의 업무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다.
굿이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미국 미시간주의 한 대학에서 심리학 및 미국 문학을 전공한 그는 그저 여행삼아 한국에 왔다가 한국의 매력에 이끌려 눌러앉았다. 지난해에는 때늦은 결혼에도 성공했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필리핀 출신 여성과 2년 전 결혼에 골인한 것. 무려 24세 연하의 부인과 함께 이제 막 9개월을 넘긴 아들이 걷기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로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굿은 한국에 대해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한 인종차별의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정서로 인해 상처도 입었고 득도 봤다고 한다. 결혼을 약속한 한국 여성의 부모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력히 반대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가장 가슴아팠다고 한다. 하지만 연세대 외국어학당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실력도 자기보다 월등한 흑인이 어학당 강사직에 지원했지만 자신은 합격하고 그 흑인은 떨어졌다는 것. 굿은 “이때는 한국인의 인종차별로 반사이익을 얻은 꼴”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현재 굿과 같은 외국인 공무원들은 국정홍보처·재경부·행정자치부·외교통상부·서울시·부산시·인천시·경기도청 등에서 활동 중이다. 이들 기관은 무역법률 지원·번역·공무원 교육 등의 분야에서 외국인을 한두명씩 채용하고 있다.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에서 근무하는 윤델라로사 로웨나도 그런 경우다. 필리핀 출신인 그녀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영문으로 대외에 알리는 홈페이지인 코리아넷(www.KOREA.net) 팀에서 근무 중이다. 코리아넷을 통해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고 정부의 정책을 제대로 알리는 게 그녀의 주요 임무다. 이를 테면 동해가 일본해라는 일본의 주장이나,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의도를 반박하는 영문자료를 한국정부가 작성하면 최종 단계에서 이를 검토한 뒤 코리아넷에 띄우게 된다.
95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자마자 한국에 온 그녀는 필리핀에서 일간지 기자로, 필리핀 정부의 홍보담당 요원으로도 근무했다(그녀는 결혼 직후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로 일했다). 로웨나도 굿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직업에 크게 만족한다. 그녀는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인 이 일을 앞으로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매우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나 한국에서나 하는 일이 비슷해 별로 힘든 줄 모른다”는 그녀는 “고국에서 매일 오후 5시까지 3꼭지의 기사를 쓰는 등 강도높은 업무에 이미 단련돼 있다”며 자랑도 곁들였다.
그녀는 한국이 매우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사회라고 지적한다. “10년 전 한국에 왔을 때는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버스 운전사도 영어로 말을 건네올 정도”라며 웃었다. 상냥하고 사교적인 성격의 그녀는 ‘한국인 남편을 둔 외국인 여성들의 모임’도 주도하고 있다. 현재 40여개국 1백여명의 외국인 여성들이 정례 모임을 갖고 한국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거나 이국에서의 향수를 달랜다.
사실 2002년 이전까지만 해도 외국인 공무원 채용은 매우 드물었다. 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 어디에도 공무원의 국적 요건이 명문화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각급 지방자치단체들의 적극적인 해외 투자유치 활동을 계기로 외국인을 계약직 공무원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면서 공무원의 국적 문제에 대해서도 유연한 접근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사회 일각에서 외국인의 공무원 채용이 국민의 헌법상 권리인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됐지만 결국 정부는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을 개정해 정책 결정이나 국가보안·기밀 등과 관련되지 않은 특정 분야에 한해 일정 기간 외국인 공무원 채용을 허용했다.
무엇보다 국제화·세계화 시대를 맞아 연구·기술·교육 등 외국인 임용이 필요한 분야가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행정의 전문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법 개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재 외국인을 공무원으로 임용하는 국가는 독일·영국·프랑스·일본·싱가포르 등이며 한국의 경우 외국인 임용은 해당 업무에 적합한 대한민국 국민이 없을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경기도청에서 근무 중인 캐나다 국적의 도널드 발리안트가 바로 그런 사례다. 국제통상과 전문위원인 그는 매우 활발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해외 20여개 지방자치단체의 창구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경기도가 해외 투자유치 설명회를 개최할 때면 유치단의 일원으로 움직인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윤영경 전문위원은 “영미권 국가에 나가 보면 외국인 공무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며 “해외 현지에서 투자유치 설명회를 열 경우 한국인이 설명하는 것보다 그가 나설 때 훨씬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에서 아시아학을 전공한 발리안트가 한국행을 택한 계기는 좀 엉뚱하다. 그는 캐나다에서 중국·일본에 대해선 자세히 공부할 수 있었으나 한국에 대해선 접근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학사 커리큘럼의 60~70%가 중국 관련 내용이고, 나머지도 대개 일본·동남아 관련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대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가 궁금해 96년 한국을 찾게 됐고, 그 길로 “거의 한국사람이 다 됐다”고 그는 웃으며 말한다(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
현재 수원시청 공무원으로 일하는 부인과 장인·장모는 모두 독실한 불교 신자다. 그 때문에 “처가의 결혼 승낙을 얻기 전에 처가 어른들이 각별하게 믿고 따르는 스님의 허락까지 받아야 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 스님은 결국 흔쾌히 결혼에 동의하면서 그에게 ‘한국인의 진정한 친구’라는 뜻의 한진우란 이름까지 지어줬다(지금도 그의 명함에는 한진우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지난 3월 10일 1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시 첫 외국인 공무원으로 출근한 레슬리 밴필드는 이제 유명인사가 됐다. 각종 언론에 수차례 소개되면서부터 얻은 영예다. 그녀는 “서울시청의 외국인 공무원 1호라는데 언론이 너무 큰 관심을 보여 사실 부담이 된다”며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어 채용된지 1주일 동안은 제대로 일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국제협력과에서 일하는 그녀도 다른 외국인 공무원들처럼 영문서류 및 영문간행물 감수·국제교류협력 지원을 주로 담당한다. 그녀는 “사기업과 달리 서울시라는 공공기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모든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근무하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겪은 듯하다. 특히 그녀의 뇌리에 남은 한국 남성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다. 그녀는 “몇몇 한국 남자들은 외국 여성이니까 만만하게 봤는지 내 몸에 손을 대거나, 한국 여성들에겐 하지 못할 민망할 말을 늘어놓는 때도 있었다”며 불쾌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서인지 밴필드는 첫 출근하던 날 “서울에서 사는 수만명의 외국인 중 상당수가 나처럼 아픈 추억이나 경험을 갖고 있다”며 “이들을 만나 문제점을 파악한 뒤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일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다.
외국인 공무원들은 업무 성격상 한국 공무원 조직에 유기적으로 통합되기보다 영문 교정·교육·해외홍보 등 특정 분야에서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들 외국인이 공무원 사회에 주는 자극이 미미한 것도 이같은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채용 범위를 신중히 넓혀나가는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이들이 한국 공무원 사회에 미치는 직·간접적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외국인 공무원들과 함께 일해본 한국인 공무원들은 일에 대한 책임감도 남다르고 사고방식도 합리적이어서 교훈을 얻을 때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외국인 공무원들의 눈에 비친 한국 공무원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공무원들이 매우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실과 시간 외 근무만이 한국 공무원 사회의 건전함을 보여주는 징표라면 아쉬운 점이 많다. 발리안트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한국 공무원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한국의 행정조직은 너무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단계별로 책임자의 승인을 얻지 못하면 업무가 올스톱되다시피 한다”고 꼬집었다.
그 외에 외국인 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한국 공무원 사회의 보수적 속성과 무사안일에 빠지기 쉬운 현실에 대해서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디어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할 기회를 잡게 된 외국인 공무원들 중 앞으로 ‘제2의 헐버트’가 몇명이나 탄생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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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백년이 지난 오날 한국 정부에서 헐버트의 ‘후예’들이 활동 중이다. 중앙 및 지방 정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시대 배경과 구체적 역할은 달라도 한국 정부를 위해 봉사한다는 점에선 큰 차이가 없다. 이들 외국인 공무원은 한국인이 하기 힘들거나 전문성을 요하는 통역·번역·해외 홍보활동 등에 투입돼 한국의 국익을 위해 일한다.
파란 눈의 미국인 데이비드 굿은 재정경제부 공무원이다. 경제홍보기획단 해외홍보과에 소속돼 재경부의 영문 홈페이지 관리와 부서내 각 실·국에서 쏟아낸 해외 홍보용 영문자료 대부분을 편집한다(그는 지난해 10월 재경부와 2년 근무계약을 맺었다). 1992년 한국에 첫발을 디딘 그는 어느새 한국적 사고에 익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나이를 묻자 대뜸 “한국 나이로는 46세이고, 미국 나이로는 44세”라고 ‘친절히’ 대답한다. 92년부터 연세대 외국어학당 강사와 주미 한국대사관 직원, 외교통상부 직원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그는 “한국의 정서와 풍습을 몸에 익혀둔 게 채용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굿은 재경부 정책을 영어권 인사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솔직히 말해 내가 오기 전에 나간 영문 홍보물들은 잉글리시가 아니라 콩글리시였다. 외국인들은 조악한 영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는 “외교부에 근무하던 94년 당시 한승주 장관이 동료 직원들에게 나를 칭찬해줬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다”고 회상한다. 굿과 한 부서에서 근무하는 이용재 서기관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해외로 나가는 재경부의 각종 문서나 자료는 토씨 하나로도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외교적 파장이 초래될 수도 있다”며 “영문 번역의 오류는 반드시 그의 손을 거치게 된다”며 굿의 업무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다.
굿이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미국 미시간주의 한 대학에서 심리학 및 미국 문학을 전공한 그는 그저 여행삼아 한국에 왔다가 한국의 매력에 이끌려 눌러앉았다. 지난해에는 때늦은 결혼에도 성공했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필리핀 출신 여성과 2년 전 결혼에 골인한 것. 무려 24세 연하의 부인과 함께 이제 막 9개월을 넘긴 아들이 걷기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로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굿은 한국에 대해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한 인종차별의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정서로 인해 상처도 입었고 득도 봤다고 한다. 결혼을 약속한 한국 여성의 부모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력히 반대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가장 가슴아팠다고 한다. 하지만 연세대 외국어학당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실력도 자기보다 월등한 흑인이 어학당 강사직에 지원했지만 자신은 합격하고 그 흑인은 떨어졌다는 것. 굿은 “이때는 한국인의 인종차별로 반사이익을 얻은 꼴”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현재 굿과 같은 외국인 공무원들은 국정홍보처·재경부·행정자치부·외교통상부·서울시·부산시·인천시·경기도청 등에서 활동 중이다. 이들 기관은 무역법률 지원·번역·공무원 교육 등의 분야에서 외국인을 한두명씩 채용하고 있다.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에서 근무하는 윤델라로사 로웨나도 그런 경우다. 필리핀 출신인 그녀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영문으로 대외에 알리는 홈페이지인 코리아넷(www.KOREA.net) 팀에서 근무 중이다. 코리아넷을 통해 한국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고 정부의 정책을 제대로 알리는 게 그녀의 주요 임무다. 이를 테면 동해가 일본해라는 일본의 주장이나,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의도를 반박하는 영문자료를 한국정부가 작성하면 최종 단계에서 이를 검토한 뒤 코리아넷에 띄우게 된다.
95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자마자 한국에 온 그녀는 필리핀에서 일간지 기자로, 필리핀 정부의 홍보담당 요원으로도 근무했다(그녀는 결혼 직후 코리아헤럴드에서 기자로 일했다). 로웨나도 굿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직업에 크게 만족한다. 그녀는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인 이 일을 앞으로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매우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나 한국에서나 하는 일이 비슷해 별로 힘든 줄 모른다”는 그녀는 “고국에서 매일 오후 5시까지 3꼭지의 기사를 쓰는 등 강도높은 업무에 이미 단련돼 있다”며 자랑도 곁들였다.
그녀는 한국이 매우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사회라고 지적한다. “10년 전 한국에 왔을 때는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버스 운전사도 영어로 말을 건네올 정도”라며 웃었다. 상냥하고 사교적인 성격의 그녀는 ‘한국인 남편을 둔 외국인 여성들의 모임’도 주도하고 있다. 현재 40여개국 1백여명의 외국인 여성들이 정례 모임을 갖고 한국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거나 이국에서의 향수를 달랜다.
사실 2002년 이전까지만 해도 외국인 공무원 채용은 매우 드물었다. 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 어디에도 공무원의 국적 요건이 명문화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각급 지방자치단체들의 적극적인 해외 투자유치 활동을 계기로 외국인을 계약직 공무원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면서 공무원의 국적 문제에 대해서도 유연한 접근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사회 일각에서 외국인의 공무원 채용이 국민의 헌법상 권리인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게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됐지만 결국 정부는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을 개정해 정책 결정이나 국가보안·기밀 등과 관련되지 않은 특정 분야에 한해 일정 기간 외국인 공무원 채용을 허용했다.
무엇보다 국제화·세계화 시대를 맞아 연구·기술·교육 등 외국인 임용이 필요한 분야가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행정의 전문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법 개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현재 외국인을 공무원으로 임용하는 국가는 독일·영국·프랑스·일본·싱가포르 등이며 한국의 경우 외국인 임용은 해당 업무에 적합한 대한민국 국민이 없을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경기도청에서 근무 중인 캐나다 국적의 도널드 발리안트가 바로 그런 사례다. 국제통상과 전문위원인 그는 매우 활발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해외 20여개 지방자치단체의 창구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경기도가 해외 투자유치 설명회를 개최할 때면 유치단의 일원으로 움직인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윤영경 전문위원은 “영미권 국가에 나가 보면 외국인 공무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며 “해외 현지에서 투자유치 설명회를 열 경우 한국인이 설명하는 것보다 그가 나설 때 훨씬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에서 아시아학을 전공한 발리안트가 한국행을 택한 계기는 좀 엉뚱하다. 그는 캐나다에서 중국·일본에 대해선 자세히 공부할 수 있었으나 한국에 대해선 접근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학사 커리큘럼의 60~70%가 중국 관련 내용이고, 나머지도 대개 일본·동남아 관련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대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가 궁금해 96년 한국을 찾게 됐고, 그 길로 “거의 한국사람이 다 됐다”고 그는 웃으며 말한다(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
현재 수원시청 공무원으로 일하는 부인과 장인·장모는 모두 독실한 불교 신자다. 그 때문에 “처가의 결혼 승낙을 얻기 전에 처가 어른들이 각별하게 믿고 따르는 스님의 허락까지 받아야 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 스님은 결국 흔쾌히 결혼에 동의하면서 그에게 ‘한국인의 진정한 친구’라는 뜻의 한진우란 이름까지 지어줬다(지금도 그의 명함에는 한진우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지난 3월 10일 1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시 첫 외국인 공무원으로 출근한 레슬리 밴필드는 이제 유명인사가 됐다. 각종 언론에 수차례 소개되면서부터 얻은 영예다. 그녀는 “서울시청의 외국인 공무원 1호라는데 언론이 너무 큰 관심을 보여 사실 부담이 된다”며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어 채용된지 1주일 동안은 제대로 일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국제협력과에서 일하는 그녀도 다른 외국인 공무원들처럼 영문서류 및 영문간행물 감수·국제교류협력 지원을 주로 담당한다. 그녀는 “사기업과 달리 서울시라는 공공기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모든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자세로 근무하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겪은 듯하다. 특히 그녀의 뇌리에 남은 한국 남성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다. 그녀는 “몇몇 한국 남자들은 외국 여성이니까 만만하게 봤는지 내 몸에 손을 대거나, 한국 여성들에겐 하지 못할 민망할 말을 늘어놓는 때도 있었다”며 불쾌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서인지 밴필드는 첫 출근하던 날 “서울에서 사는 수만명의 외국인 중 상당수가 나처럼 아픈 추억이나 경험을 갖고 있다”며 “이들을 만나 문제점을 파악한 뒤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일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다.
외국인 공무원들은 업무 성격상 한국 공무원 조직에 유기적으로 통합되기보다 영문 교정·교육·해외홍보 등 특정 분야에서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들 외국인이 공무원 사회에 주는 자극이 미미한 것도 이같은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채용 범위를 신중히 넓혀나가는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이들이 한국 공무원 사회에 미치는 직·간접적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외국인 공무원들과 함께 일해본 한국인 공무원들은 일에 대한 책임감도 남다르고 사고방식도 합리적이어서 교훈을 얻을 때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외국인 공무원들의 눈에 비친 한국 공무원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공무원들이 매우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실과 시간 외 근무만이 한국 공무원 사회의 건전함을 보여주는 징표라면 아쉬운 점이 많다. 발리안트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한국 공무원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한국의 행정조직은 너무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단계별로 책임자의 승인을 얻지 못하면 업무가 올스톱되다시피 한다”고 꼬집었다.
그 외에 외국인 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한국 공무원 사회의 보수적 속성과 무사안일에 빠지기 쉬운 현실에 대해서도 아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디어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할 기회를 잡게 된 외국인 공무원들 중 앞으로 ‘제2의 헐버트’가 몇명이나 탄생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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