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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話 현대그룹]현정은의 첫 시험대 ‘가신그룹 청산’ ‘소폭 쇄신’
- [秘話 현대그룹]현정은의 첫 시험대 ‘가신그룹 청산’ ‘소폭 쇄신’
“정몽헌은 人事를 모르는 회장” 이들과 함께 퇴진을 요구받은 사람은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 등이다. 정몽헌 회장의 상중에 이사회를 열어 스톡옵션을 나눠가져 사회적 지탄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회장의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은 생전에 핵심 경영진 인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인사를 할 줄 모르는 회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정회장의 경우 어떻게든 한번 임명하면 자신의 의지로 이들을 갈아치우지 못했다는 게 현대그룹 인사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현대그룹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정몽헌 회장의 심성이 너무 곱고 착해서 남을 자를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정회장의 생전에 가장 큰 인사는 박세용 그룹 구조본부장을 경질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정회장이 아니라 이익치 회장의 작품이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특히나 이익치 회장은 정부·채권단의 ‘반강제적인 협박’에 의해 물러난 사람이다. 지난 2002년 물러난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도 정회장이 ‘독한 마음’을 품고 경질한 게 아니다. 그는 강명구 회장 등 가신의 전횡에 반발해 돌연 사표를 냈었다. 현대그룹은 항상 인적 쇄신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인적 쇄신은 현대그룹의 아킬레스건이었다. 따라서 현대그룹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감초 같은 해결책은 ‘인적 쇄신’‘가신그룹 청산’이었다. 현회장이 정회장 타계로 현대그룹을 이어받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현회장이 취임해 안팎에서 주문받은 첫번째 일이 바로 인적 쇄신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가신그룹(강명구 현대택배 회장·김재수 현대그룹 경영기획팀 사장·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모럴 헤저드 그룹(노정익 현대상선 사장 등)에 대한 청산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현회장은 취임 전후 한 달가량을 이 문제와 씨름했다.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당사자들과 대화도 했다. 친분이 있는 ‘비밀 조언 그룹 인사들’의 말도 들었다. 현회장은 이런 과정을 거친 뒤 내부적으로 우선 강명구 회장과 김재수 사장을 이날 퇴진시키기로 결론지었다. 대신 젊고 참신한 인물들을 몇명 발탁해 그룹을 쇄신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려고 했다. 부회장급 인사를 영입한다는 방침도 굳혔다. 이는 정상영 명예회장이 현대그룹 경영권 확보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공격의 빌미로 삼은 ‘현대그룹 인적 쇄신’에 대한 대응책이기도 했다. 그런데 김윤규 사장은 대북사업의 지속성으로,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은 회계사라는 전문성을 평가해 외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인적 쇄신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렇게 해서 이날 사장단 회의 날짜가 잡힌 것이다. 현회장은 대국민 감사문과 함께 현대그룹이 인적 쇄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선언할 참이었다. 그런데 김윤규 사장이 예정에도 없이 당일 아침에 찾아와 현회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현회장은 김윤규 사장의 말을 받아들였다. 김윤규 사장이 내민 조간신문이 사장단 회의를 취소시키고 인적 쇄신을 지연시킨 셈이 됐다. 현회장 취임 이후 의욕을 보였던 첫 사장단 회의는 이렇게 해서 무산됐다. 현회장은 대신 이날 대국민 감사문만 발표했다. 당초 계획됐던 대국민 성명서의 ‘첫번째’만 그대로 발표되고 가장 중요한 두번째의 인적 쇄신 부분 등이 빠졌다. “그 밥에 그 나물” 현대그룹의 일부 쇄신파 경영진들은 크게 반발했다. 적전분열을 막으려다 적전분열을 불러온 꼴이 됐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군. 그 밥에 그 나물이지.” ‘그 밥’은 정몽헌 전 회장을, ‘그 나물’은 현회장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정몽헌 회장 시절에도 이 같은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정몽헌 회장은 결재를 하고 난 뒤에도 가신들이 다시 들어가 몇마디 하면 뒤집어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현대그룹 안팎에서 가신그룹이 빈축을 산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현회장이 취임하고 결심한 첫 일이 정몽헌 회장 때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 뒤집혔던 것이다. 현회장에게 이 같은 조치를 건의하고 조언했던 현대그룹 내 쇄신파 경영진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정몽헌 회장 생전에 하던 가신그룹의 행태가 똑같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가신그룹의 행태란 무엇일까?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본다. “정몽헌 회장은 생각보다 악의가 없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경영인이었습니다. 현대상선이 대북사업을 시작했다가 포기하는 과정에서 정몽헌 회장을 여러 차례 찾아갔습니다. 현대상선이 대북사업을 계속 하게 되면 다 함께 넘어진다고 설명드렸죠. 그런데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게 뭔지 아십니까? 가신그룹들의 방해공작이었습니다. 우선 김윤규 사장 말을 하죠. 정회장이 제 말을 다 듣고 대북사업 포기를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회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쪼르르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윤규 사장이었습니다. 가신그룹이라고 비난받던 이익치 회장, 김재수 사장도 비슷한 일이 많았습니다. 결국 정회장이 ‘오전에 결재해 줬다가 오후에 뒤집어지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물론 정회장이 합리적인 생각은 많이 하셨지만 우유부단한 일면도 작용했죠. 그리고 정회장은 가신그룹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싸고 돌았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가신들을 비난했죠. 그랬더니 그들이 나를 공격하면서 하는 말이 기가 막혔습니다. ‘김충식이는 저 혼자 살려고 한다’느니, ‘현대상선을 계열분리해서 오너 노릇을 하려고 한다’느니…. 기가 막혀서 말을 못하고 나왔습니다.” 현대그룹에 매우 비판적인 전직 임원의 설명도 비슷한 맥락이다. “엉터리 약사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감기 걸린 환자가 약방에 들어와 얘기를 했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편도선도 섰고, 기침도 하고, 가래도 나오고…. 그런데 약사는 환자가 어디가 아프다고 하는 말의 횟수대로 약을 집어넣습니다. 어디가 아프다는 소리를 열번 하면 약이 열 가지, 백번 말하면 백 가지를 집어넣는 겁니다. 현대의 가신그룹은 정회장을 그런 식으로 호도했습니다. 가신그룹은 환자였고, 정회장은 엉터리 약사였죠. 2000년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던 왕자의 난 당시 현대그룹은 마치 ‘사오정’ 같았습니다. 정부·채권단·시장의 쏟아지는 경영 쇄신 요구와는 딴판으로 움직인 겁니다. 모두 이런 경영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재계 1위 그룹이었던 현대가 미니그룹으로 전락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몽헌 회장의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거지요.” 정회장 시절 현대그룹의 이런 악몽이 현정은 체제에서 다시 되살아났던 것이다. 새 바람이 불 것으로 크게 기대했던 일부 쇄신그룹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정상영 명예회장과 경영권 다툼도 가신그룹으로 인해 확대 재생산됐다는 비난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가신그룹들이 뒤에서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몽헌 회장이 가신그룹에 발목 잡혀 인적 쇄신을 하지 못한 딜레마를 현회장도 똑같이 겪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일부에서는 남편이 빠진 수렁에 똑같이 빠진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결국 현회장은 김윤규 사장의 조언대로 적전분열을 막으려다 가신그룹과 쇄신그룹 간 내분에 휘말릴 처지에 놓였다. 특히 강명구 회장과 김재수 사장이 사표를 내겠다고 공언한 뒤 계속 버티는 것에 대해 그룹 내부에서조차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강명구 회장은 정몽헌 회장 투신자살 때 상가에서 ‘주군을 모신 사람’이라고 빗대면서 즉각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강회장은 모든 뒷수습을 하고 정회장의 49재(齋) 때 물러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김재수 사장은 정회장과 함께 대북송금·비자금 문제로 검찰수사를 받을 때부터 “나는 이미 마음을 비웠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를 만나 “나는 요즘 괴로와서 ×도 안 선다. 회사를 그만둬야겠는데 뭐를 했으면 좋겠느냐? 인터넷 분야에서 뭐를 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농담을 했다. 자신은 이미 현대그룹을 떠났으니 가신그룹이니 뭐니 하면서 괴롭히지 말아달라는 주문이었다. 김사장은 정회장 타계 이후에는 외부와 접촉을 끊고 공개적인 장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한 측근은 “자신이 정회장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 자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무척 괴로워했다”며 “하루 빨리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2003년 9월 하순 정회장의 49재가 예정된 며칠 전. 김재수 사장은 강명구 회장을 찾았다. 김사장은 정회장의 49재에 맞춰 사표를 내는 문제를 상의하러 갔다. 그런데 강회장은 할 일이 남았으니 한달만 더 기다리자고 했다는 것이다. 강회장은 이후에도 또 다시 한달만 더 있다가 사표를 내자고 말을 자꾸 번복했다는 게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의 귀띔이다. 현정은 체제의 이 같은 자중지란 분위기는 한동안 계속됐다. 더구나 정상영 명예회장이 개인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모으면서 우호지분을 포함해 절반 가까이 확보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침체됐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현회장과 현대그룹 경영진에게 ‘백기투항’을 하도록 직·간접적인 압력을 넣고 있었던 때다. 그런데 이 같은 경영진간의 혼란스런 내부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은 지난해 11월17일이었다. 현회장은 현대그룹을 국민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1천만 국민주를 통한 유상증자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표 내겠다던 가신들 “한달만 더” 현대엘리베이터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유상증자를 통한 신주를 발행하되 정상영 명예회장 측은 사실상 참여를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신주 1천만주를 발행하되 20%를 우리사주로 배정하고 나머지는 일반 공모방식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추가 지분을 매입하는 방법을 막아 지분을 뚝 떨어뜨려 1대 주주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방안이었다. 현대그룹은 이를 끝내 실현시키지 못했지만 분위기를 일신하는 데는 주효했다. 현대 내에서는 ‘가신그룹’ ‘쇄신그룹’ 할 것 없이 모두 박수를 쳤다. 현회장의 배포 큰 결단력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동안 일부 분열 조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던 가신그룹이 국민기업화 선언을 계기로 자신감을 다시 얻어 ‘현회장 체제 지키기’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회장은 다음날인 18일 계열사 임직원들을 대거 동행하고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선영을 찾을 정도로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한달 뒤인 지난해 12월18일. 현회장이 내건 국민기업화 추진은 무산됐다. 하지만 국면 돌파에 자신감을 얻어 경영진 퇴진 요구를 일부 스스로 수용하기도 했다. 현회장은 남편 때부터 아킬레스건이었던 ‘가신그룹 책임론’을 불식하고, 친정 체제를 굳히겠다는 계산이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정명예회장 측은 ‘정몽헌 회장의 현대그룹을 위기로 몰아넣은 주범들이 책임은 지지 않고 자리에만 연연한다’ ‘경영 경험이 없는 현회장을 옹립, 수렴청정하려 한다’는 공격을 해왔다. 현회장은 마침내 핵심 사장단 8명의 사표를 일괄 제출받았다. 그런 뒤 마침내 강명구 회장과 김재수 사장을 경질했다. 그러나 이들은 고문이라는 직함으로 현회장의 지근거리에 남아 경영상 조언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이제 현회장은 정몽헌 회장이 경영하던 현대그룹의 전권을 잡았다. 현회장은 경영권 다툼에서 승리한 뒤 자신감을 얻어 이제는 전문경영인 영입 없이 단독회장 체제로 갈 계획도 세웠다. 그의 향후 경영 행보는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 때와 비교되면서 계속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계속>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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