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동양경제]다임러는 왜 미츠비시를 버렸나

[동양경제]다임러는 왜 미츠비시를 버렸나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미츠비시(三菱)자동차공업에 대한 ‘지원철회’ 의사를 통보한 것은 4월23일 이른 아침. 취임한 지 얼마 안 되는 미츠비시상사의 고지마 요리히코(小島順彦) 사장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의 통보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미츠비시 상사의 한 OB는 “다임러가 도망갈 가능성이 반쯤 있어 보였는데 너무 방심했던 것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임러 경영진 내부의 불협화음. 4월9일의 주총에서 주주들은 소리 높여 CEO인 위르겐 슈렘프 회장의 사임을 요구했다. 다임러의 ‘세계기업’ 전략에도 균열이 생겼다. 이 모든 시그널을 미츠비시는 놓쳤다. 지난 4월18일, 슈렘프 회장은 극비리에 일본을 방문해 미츠비시중공업·미츠비시상사·도쿄미츠비시은행에 대해 다급하게 ‘추가담보’를 요청했다. 그 이후 중공업·상사·은행 등 핵심 3사와 미츠비시자동차공업은 ‘자주재건계획’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자주재건계획’에는 투자펀드인 페닉스 캐피탈이 소요자금 4,500억엔 중 2,000억엔을 출자하고, 나머지 2,500억엔을 미츠비시그룹이 부담하는 것으로 돼 있다. 펀드를 불러들인 것은 핵심 3사가 꼬리를 뺐기 때문이다. 미츠비시자동차공업의 과거 모회사였던 미츠비시중공업은 다임러에서 파견된 에크로트 사장이 사임하는 바람에 신임 사장을 파견하게 됐지만, 자금 투입은 제한하고픈 심정이다. 지난 회기 사상 최고의 결산실적을 올린 미츠비시상사는 기계부문 순이익 422억엔의 절반을 자동차에서 벌었다. 예컨대 계산상으로는 1,000억엔을 투입해도 5년이면 회수할 수 있지만 “자동차 부문의 이익은 아시아·유럽의 독자적인 판매망·판매금융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라며 “판매망에 올리는 자동차 브랜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자금 투입에 소극적이다.

관계사끼리 ‘돌봐주기’ 관행 여전 다른 그룹 계열회사는 더욱 현실적이다. 한 그룹 수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하겠다. 그러나 그룹 이름만으로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란 점을 분명히 말해 둔다”고 했다. 핵심 3사를 제외한 그룹 각 사의 미츠비시자동차공업에 대한 출자비율은 대부분 0.5% 이하. 어쩌면 그룹에서 자체 조달하기로 한 재건 소요자금 2,500억엔을 채우기조차 힘들어질지 모른다. ‘금요회.’ 매주 두번째 금요일에 미츠비시그룹 내 주요 29사 사장단과 회장단이 카레라이스를 먹으면서 강연을 듣는 자리다. 20년 전부터 그룹의 지배구조는 사실상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금요회’의 숨은 기능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상호 ‘돌봐주기’다. 첫째는 주식의 상호출자다. 이질적인 주식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둘째는 미츠비시 가족 ‘돌봐주기’다. 그룹 간부들은 서로 그들의 혈육을 회사끼리 돌봐주고 있다. 셋째는 장사에서 ‘돌봐주기’다. 같은 조건이라면 그룹사의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한다. 이는 ‘서로 의지하며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미츠비시의 관행을 낳았다. 그러나 ‘미츠비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화 때문에 은행의 모니터 기능이 약해졌다. 지난 1996년 미츠비시자동차공업은 미국에서 직장 내 성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4년 뒤에는 30년간에 걸친 리콜 은폐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 사망 사고를 일으킨 트럭 부품 결함 은폐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금요회’는 미츠비시자동차공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흔적도 없다. 간섭하지 않는 것이 그룹 풍토였기 때문에 중공업·상사에서 파견된 사외이사도 말 그대로 ‘손님’에 불과했다. ‘미츠비시’라는 최후의 일본형 시스템의 실패는 결국 다임러의 ‘지원철회’ 통보로 이어졌다.

“‘라인형 시스템’을 지켜야 한다” 주주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다임러 감사위원회는 CEO 슈렘프와 감사위원회 힐마 코퍼 의장의 임기를 모두 3년씩 연장했다. 슈렘프를 자르면 그를 선임한 코퍼 의장까지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라인형(독일식) 시스템’이 위험하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도이츠AG’라는 금융자본을 정점으로 노사 동수로 구성된 감사위원회가 이사회 위에 군림하는 기업통치의 이중구조. 도이츠은행장 출신의 코퍼 의장은 이 라인형 시스템의 수호신인 셈이다. 슈렘프를 지키고, 라인형 시스템을 지키려면 미츠비시자동차공업을 버리고 주주들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위기감을 부추긴 것은 독일 금융계를 주도하는 도이츠은행이 ‘앵글로색슨(영국식)형 시스템’으로 기울었기 때문. 도이츠은행은 뱅커스 트러스트를 흡수한 투자은행 부문이 이익의 3분의 2를 벌어들이고 있다. 투자은행 부문의 본점은 프랑크푸르트가 아니라 런던이다. ‘앵글로색슨화=투자은행화’를 추진하는 요셉 액커먼 회장은 크레디스위스 출신의 스위스인이다. 지난 1월 액커먼 총재는 세계 최대 금융 그룹인 시티 수뇌와 합병 교섭을 시작했다. 폭스바겐·지멘스·SAP가 총리에게 직소해 합병은 무산됐지만 액커먼의 의욕은 여전하다. 그는 다임러 감사위원회를 무력화하는 구조개혁을 단행하고, ‘가격이 맞다면’ 다임러 주식을 매각하겠다고 공언했다. 필두 주주인 도이츠은행이 다임러의 주식을 판다면 라인형 시스템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액커먼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다임러가 미츠비시자동차공업을 버린 것은 라인형 시스템의 수호신인 코퍼의 반격인 셈이다. 이웃 한국에서는 최대 석유회사인 SK의 최대주주로 나선 모나코의 투자회사 소버린이 지난 3월 주가조작으로 체포된 최태원 회장의 해임을 요구했으나 주총은 소버린의 제안을 부결시켰다. “소버린은 투명성을 요구하지만 그들의 정체도 불명하다. 자금의 출처도, 규모도 명확하지 않다”는 게 주주들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독일이나 한국에서 부는 이러한 바람도 미츠비시의 시스템 위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츠비시자동차공업의 결함 감추기로 미츠비시에 대한 여론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미츠비시’의 약화는 시작됐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대우건설, 임직원·가족이 함께하는 점자 촉각 도서 만들기 진행

2서울-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 진행

3김철주 생명보험협회장, 본업·신성장 ‘두 마리 토끼’ 잡는다

4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헤라클레스랩 온라인 판매

5토스증권, 1분기 순익 119억원…출범 이후 최대 분기 실적

6‘긴축 시대’ 준비한 강석훈 에이블리 대표…“흑자 전환, 다음은 세계 진출”

7정은보 KRX 이사장, 한국판 밸류업 글로벌 확장 잰걸음

8롯데웰푸드, 사랑의열매에 1억5000여만원 ‘해피박스’ 기부

9한투운용 ACE 미국배당다우존스, 개인 매수세에 순자산액 3000억 돌파

실시간 뉴스

1대우건설, 임직원·가족이 함께하는 점자 촉각 도서 만들기 진행

2서울-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 진행

3김철주 생명보험협회장, 본업·신성장 ‘두 마리 토끼’ 잡는다

4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헤라클레스랩 온라인 판매

5토스증권, 1분기 순익 119억원…출범 이후 최대 분기 실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