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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돈줄로 무차별 ‘고래 사냥’

오너 돈줄로 무차별 ‘고래 사냥’

매출액 500억원 규모인 삼영은 지난해 매출 2,000억원이 넘는 통일중공업을 인수했다. 올해에는 매출 2조3,000억원인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STX 지분경쟁에도 나섰다. 삼영의 엄청난 식욕은 최평규 회장의 개인자금을 등에 업고 있다.
삼영은 2002년까지만 해도 경남 창원에서 열교환기와 발전설비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극히 적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기업’이라는 경영이념에 걸맞게 발전설비 부품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에 25년간 무차입경영을 해왔고, 2002년에는 상장사 가운데 영업이익률 1위를 기록한 알짜 기업이다. 현금 유보도 400억원대에 달한다.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우량기업 대접을 받던 삼영은 2002년 코스닥에서 거래소로 이전한 뒤부터 기업사냥에 나섰다. 주가가 한창 상승세에 있던 시기에 50%가 넘는 지분을 팔아 실탄 확보를 끝낸 최평규(52) 회장이 앞장섰다.
2002년 8월 최 회장은 16억원을 투입해 본사가 있는 창원의 경우상호저축은행을 인수했다. 금융사를 먼저 인수함으로써 자금운용의 물꼬부터 튼 셈이다.

2003년부터는 대형 인수 ·합병(M&A)이 이어졌다. 먼저 3월에 법정관리 중인 통일중공업을 277억원에 인수했다. 삼영의 자본금은 불과 37억원. 통일중공업의 자본금은 1,000억원 수준이다.
새우가 고래를 삼킨 격인 삼영의 통일중공업 인수는 상당한 후유증을 낳았다. 장기 파업과 이에 맞선 사측의 직장폐쇄로 홍역을 앓았다. 최 회장은 직접 통일중공업 직원들을 설득해 파업을 끝냈다. 그는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통일중공업으로부터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금도 임직원들 회식 때면 법인카드가 아닌 개인카드로 결제하고 있다. 여기에다 그는 사재 4억원을 털어 생산장려금을 지급했다.

파업을 끝낸 통일중공업은 놀라운 실적을 냈다. 지난해 통일중공업은 4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영업손실은 상반기에 발생한 것으로 파업을 끝낸 하반기에는 영업이익과 경상이익이 모두 흑자로 돌아섰다.
사실 삼영의 통일중공업 인수도 최 회장의 개인 자금이 상당 부분 동원됐다. 99년부터 삼영 지분 55%를 내다 판 최 회장은 수백억 원의 현금 동원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중공업이 정상화된 9월에는 호텔 설악파크를 인수했다. 설악파크는 동아건설 계열이었던 호텔로 120개의 객실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갖추고 있다. 애초 이 호텔은 지난 2002년 공개입찰을 통해 명덕기업이라는 소규모 건설사로 넘어갔었다. 최종 입찰에는 삼영도 참가했지만 명덕기업이 더 높은 가격을 써내 인수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최 회장은 1년 만에 명덕기업이 가져갔던 지분 93%를 재인수해 끝내 설악파크를 손에 넣었다. 이 역시 대부분 최 회장이 개인자금을 투입해 성사시킨 일이다.

숫자로 본 삼영
4 통일중공업 ·경우상호저축은행 ·호텔 설악파크 ·대화브레이크 등 삼영의 4개 계열사는 모두 M&A를 통해 계열로 편입됐다. 평균 400억원이 넘는 삼영의 현금보유액과 주당 4만원까지 올라간 주식을 4년간 꾸준히 팔아온 최 회장 개인의 자금력이 합쳐진 결과다.
삼영의 영업이익률은 평균 25%에 이른다. 2002년에는 상장사들 가운데 영업이익률 1위를 차지했다. 삼영은 25년간 무차입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90 발전소 등의 냉각 시스템인 삼영의 공랭식 열교환기는 90% 가량이 해외로 수출된다. LG건설과 현대건설 등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수주한 해외 프로젝트에서도 열교환기 90%가 삼영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최 회장의 식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매각작업이 진행 중인 대우종합기계 방산부문을 인수하기 위해 삼영과 통일중공업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다. 삼영 측은 “통일중공업의 방산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대우종합기계 방산부문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해 입찰하게 됐다”고 밝혔다.
자본금 8,300억원의 대우종합기계는 지난해 방산부문에서만 4,17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우종합기계는 자금 부담 때문에 대기업들도 입맛만 다실 뿐 쉽사리 인수전에 뛰어들지 못한 초대형 매물이다. 통일중공업 인수 때와는 차원이 다른 셈이다.

최 회장은 최근 STX그룹의 지주회사인 STX 지분 매집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올해 들어 13차례에 걸쳐 STX 지분 10% 가량을 사들였다. 삼영 측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STX는 이미 삼영 외에도 12%의 지분을 사모은 두산 계열 HSD엔진의 M&A 시도에 노출된 상태다. 지주회사인 STX를 인수하면 STX조선 ·STX 조선·STX에너지 등의 경영권을 한꺼번에 확보할 수 있다. 더구나 STX엔진은 방산업체여서 삼영 입장에서는 통일중공업에 대우종합기계와 STX를 더하면 상당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STX 지분 매집을 대우종합기계 인수를 위한 포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최 회장이 아무리 자금력이 풍부하다지만 한꺼번에 두 회사를 인수할 여력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대신증권 전용범 연구원은 “같은 업종인 STX엔진을 자회사로 둔 STX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STX 지분구조 등을 감안하면 최 회장 단독으로 STX를 인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증권 전문가들은 최 회장이 M&A 가능성이 희박한 STX 지분을 대량 매집한 이유를 두산과의 ‘빅딜’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두산은 일괄인수 방식으로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 참가해 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산도 대우종합기계와 STX를 동시에 인수하기는 버거운 형편”이라며 “최 회장은 이번에 확보한 STX 지분을 두산에 넘긴 뒤 대우종기 방산부문을 따내고, 두산은 대우종기 민수부문과 STX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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