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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파리는 ‘리모델링’ 중

지금 파리는 ‘리모델링’ 중

Paris Rising

처음 건설될 당시 ‘레 알’은 우주 시대에 걸맞은 모더니즘의 경이이자 건축학의 아이콘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 파리 시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방대한 쇼핑 센터인 그곳을 ‘레 알의 구멍’이라고 부른다. 외부 공간에서는 지린내가 진동하고, 으슥한 곳에서는 마약 밀매상들이 숨어서 마리화나와 코카인을 파는 더러운 1970년대식 ‘지하 괴물’에 대한 비난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파리는 유서깊은 건물들이 곳곳에서 기하학적인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여전히 혁신적인 첨탑인 에펠탑, 지그재그식 모퉁이와 고대의 석조 부벽(扶壁)들이 있는 고딕 교회들, 트윈 윙을 가진 루브르와 녹색의 튈레리 정원, 게다가 파리의 언덕에 세워진 로만-비잔틴 양식의 사크레 쾨르 성당 등.

그 모두 파리가 투쟁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거의 잊도록 만들어주는 옛 파리의 아름다움이다.
튈레리 정원은 1871년 폭도들에 의해 튈레리 궁이 불타고 남은 잔해다. 넓은 대로들은 나폴레옹 3세가 군대를 도시의 이곳저곳으로 좀더 신속히 배치할 수 있도록 하려고 만든 것이다. 에펠탑은 한때 흉물스럽다고 여겨져 1889년 세계박람회 후에 해체될 예정이었다.

파리는 그 자체가 박물관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다. 관광객들에게는 사랑받지만 런던이나 뉴욕 같은 진정한 세계적 도시들을 변형시킨 세계화의 힘이자 모더니티의 기념비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70년대 이후 파리를 변형시키기 위한 노력은 참담하게도 모두 실패했다. 다만 I. M. 페이가 설계한 루브르 피라미드는 예외일 수도 있다. 레 알을 비롯해 창자를 연상시키는 퐁피두 센터, 음침한 기둥인 몽파르나스 탑, 도시 외곽의 어울리지 않는 고층건물들 같은 근래의 다른 대형 도시개발 프로젝트들도 모두 실패작이다. 그러나 신세대 도시 낙관주의자들을 믿는다면 상황은 변할 것이다.

파리는 수십년의 망설임 끝에 도시 리모델링에 나서고 있다. 파리의 과거 활력을 되찾아 학술·비즈니스·예술 분야의 현대적인 최첨단 글로벌 센터로 탈바꿈하는 게 희망이다. 건축가 장-파트릭 포르탱은 “파리는 더 많은 역동성이 필요하다. 목표는 처음 건설될 당시의 에펠탑만큼이나 파리를 혁신적으로 만드는 것, 다시 말해 진정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꿈을 뒷받침해주는 사람이 바로 야심적인 파리 시장 베르트랑 들라노에다.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회주의 정치인에 속하는 그는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파리가 그 역사에 걸맞은 책임감을 갖기를 원하며 이는 도시를 더 잘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파리가 혁신적이기를 원하며 21세기에 걸맞은 도시가 되기를 원한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파리 시민들은(아직은 깨닫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생활과 도시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칠 경쟁을 펼치고 있다.

파리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기업과 문화의 에너지를 유치하기 위한 전쟁에서 유럽의 다른 수도들과 경쟁하고 있다. 다른 곳의 경우 그런 종류의 에너지는 도시 재개발(바르셀로나), 경제 성장(금융허브 ‘더 시티’를 가진 런던), 첨단기술의 메카(샌프란시스코), 예술의 중심지(2차대전 이전 수년간의 파리)를 낳았다. “시장은 파리가 파리답기 위해서 역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방부 처리된 도시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포르탱은 말한다.

그렇다면 파리가 박물관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들라노에는 고유의 장점을 살리는 것에서 시작할 예정이다. 설문에 응답한 재계 지도자들의 47%는 프랑스의 최대 매력은 삶의 질이라고 말한다. 90% 이상은 파리의 교통 및 현대화의 또다른 주요 지표로 꼽히는 텔레콤 인프라에 만족을 표시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와 세금을 단점으로 들었다. 재계 지도자들이 파리에 거주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의 회사도 뒤따를 것이다.

물론 최고의 기업과 사람들을 유치하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최첨단 회사들을 유치하고 보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번창하는 대도시들은 일할 수 있는 젊은이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포르탱이 “부유하고 역동적인 사회 계층”이라고 부르는 가정, 젊은 독신자, 전문직 종사자들은 파리의 경우 다른 나라들과 달리 교외로 이주하지 않았다. 그들을 계속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좋은 보육시설, 학교, 공원, 깨끗한 거리, 혼란스럽지 않은 교통이라는 탄탄한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또한 그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들라노에가 취임한 후로 파리는 도시에서 자유분방함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들라노에의 대표적인 초창기 혁신으로는 센 강변의 제방을 따라서 설치한 “파리 플라지”라는 임시 모래사장을 들 수 있다. 올해로 3년째를 맞는 모래사장에는 이번 여름 개장 10일간 2백만명이 찾아와 일광욕을 즐겼다. 그리고 베를린과 뉴욕 등 많은 도시들이 그곳을 모방하고 있다. 들라노에의 집무실 앞에는 정사각형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배구장도 있다. 파리는 또한 보행자 전용 도로, 자전거 및 버스 전용차로를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그리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경찰 호위를 받으며 떠나는, 인기있는 자전거 여행을 만들었다. 그같은 창의적인 계획들은 박물관 이미지를 벗는데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제 시민들은 시내 공원의 잔디밭에 들어가 앉거나 거닐 수도 있다.

시빅 다이내미즘(도시에 활력 불어넣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이다. 다시 말해 저렴한 부동산이다. 들라노에의 진정한 도전은 거기에 있다. 지나치게 혼잡하고 경제적으로 침체된 파리는 최근 자금과 부동산 그 어느 것도 찾기 힘든 곳이다. 파리의 공식적인 경계는 페리페리크라고 알려진 도로를 경계로 하는데 브뤼셀보다 작으며 런던의 15분의 1에 불과하다. 따라서 부동산을 좀더 많이 창출하기 위해서는 고층으로 높이 건설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파리는 지난 25년간 도심에서는 최고 8층, 외곽에서는 12층까지로 건물의 높이를 제한하는 등 고층 건물의 신축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같은 고도제한법으로 파리는 1차대전 이전의 조용한 매력을 간직할 수 있었지만 그로인해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대기업들은 적당한 사무실 공간을 찾지 못해 교외로 이전했다. 파리의 집세는 급등했다. 도시에서 일자리가 줄어들자 근로 계층은 외곽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도쿄와 뉴욕의 두배가 넘는 파리의 인구밀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속한다. 1천2백만명의 인구가 레 알 지하의 초대형 지하철 역에서 1시간도 안 걸리는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그 결과 통근자들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방대한 쇼핑센터의 지하에 위치한 샤틀레-레-알-메트로 역은 매일 80만명이 그곳을 통과할 것을 염두에 두고 건설되지는 않았다. 그 역의 통로는 쇼핑을 하고, 사교생활을 하거나, 뜨거운 여름날 그 지역에서 그저 어슬렁거리는 수십만명의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따라서 들라노에가 악명높은 그곳을 ‘리모델링’하기 위한 계획을 조용히 모색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파리 시민들은 관심을 기울였다.

장 누벨 같은 유명 건축가들이 제안한 설계안에는 정원과 지하철을 실용적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에서부터 공중정원을 추가한다거나 아니면 20개의 다채로운 탑들을 건설해 상점·예술 및 기타 용도로 사용하게 하는 계획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들라노에가 거창한 프로젝트를 시민의 동의도 받지 않고 슬며시 추진하려 한다는 비난이 일었다. 그러자 그는 파리 시민들에게 설문지를 뿌렸다. 파리 인구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18만명 이상이 응답을 하거나, 다양한 계획안들을 보기 위해 방문했다. 들라노에는 시민들의 동의를 얻은 셈이었다. “사람들은 레 알이 대도시 전체가 만나는 곳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어느 면에서 그곳은 프랑스의 중심”이라고 그 프로젝트의 착수를 도왔던 포르탱은 말한다.

들라노에 시장의 민주적인 접근은 마술을 부리고 있다. 레 알은 시작일 뿐이다. 관리들은 주요 대로의 교통량을 분담하기 위해 도시 전역에 트램웨이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센 강변에서는 노동자들이 대학교 신설 부지를 다듬고 있다. 또한 현대음악·신기술·생명공학을 위한 새로운 센터들과, 예술가들의 주거 공간 등이 설계됐다. 센 강가에 연중 개장이 가능하도록 개폐식 지붕을 가진 수영장의 건설 계획도 있다. 들라노에는 ‘탑의 금기’를 깨뜨렸으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하늘로 솟아 오르는 권리를 얻었다. 예술 또한 들라노에의 계획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건축가와 설계사들에게 파리의 도시 경관을 재구성하는 데 창의성·세련미·스타일을 추구하겠다고 서약했다.

들라노에는 후세의 평가 이상을 노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파리는 오랫동안 더 큰 야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출발점이었다. 1977년까지 파리에는 시장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 정부가 그같은 인물이 휘두르게 될 권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물론 초대 파리 시장을 역임한 자크 시라크는 현재 프랑스 대통령이 돼 있다. 재임 3년째인 들라노에의 국민적인 지지율은 현재 프랑스의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과 같은 수준이다. 프랑스 정가에서는 들라노에가 빠르면 2007년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는데, 그보다는 그가 파리 시장을 연임한 후인 2012년에 출마할 가능성이 좀더 높다.

들라노에는 그같은 이야기를 일축한다. 프랑스 정계에게 노골적인 야심은 항상 꼴사납게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같은 야심을 갖고 있다면 달력은 그의 편에 설 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2012년 올림픽의 개최지 최종 후보에 들어 있고, 올림픽 몇달 후 프랑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바르셀로나·아테네 및 다른 올림픽 개최지에서처럼 올림픽은 항상 도시를 탈바꿈하는 강력한 수단이었으며 그것은 파리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도시 계획가는 다소 냉소적으로 “우리의 모든 도시 프로젝트들은 정치적인 달력과 연결돼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들라노에 시장으로서는 2012년 새롭게 탄생할 파리에서 올림픽 개막식 연설을 하는 대통령 후보가 된 자신을 상상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리의 정치는 다루기 힘들고 예측불가능한 사업이다. 보수주의자와 보존주의자가 도시 몽상가들과 대결하고, 기업인들과 그들에게 우호적인 정치인들이 사회운동가들과 대결한다. 게다가 어떤 경제적 충격이나, 테러의 쇼크가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파리의 야망은 그 자체로도 다양한 방면으로 궤도를 이탈할지도 모른다. 반면 기적을 낳을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 들라노에는 어떤 경우에도 정적(靜的)이기보다는 역동성을 추구하겠지만 그로 인해 파리 시민들이 “6개월 후 우리들에게 토마토 세례를 퍼부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실은 더 나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들라노에가 ‘레 알’을 어떻게든 개선할 수 있다면 영원히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비록 더 큰 야망에서는 좌절감을 맞볼지라도 말이다.

With MARIE VALLA and TRACY MCNIC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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