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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예술의 글라스노스트

중국 예술의 글라스노스트

China's Glasnost

10년 전 중국의 전위예술 사진가 룽룽(榮榮·36)은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살면서 생계 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는 “아무도 내 작품을 사려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벌거벗은 몸에 꿀을 바른 채 베이징의 한 공중 화장실에서 한시간 동안 앉아 있는 행위예술가 장환의 몸에 파리들이 달라붙은 모습을 찍고 있는 룽을 우연히 목격한 마을사람이 당국에 신고하는 일도 있었다.

오늘날 룽과, 역시 사진작가인 그의 일본인 부인 잉리(映里)가 찍은 특이한 사진들은 과거보다 훨씬 나은 대접을 받는다. 한장에 1만달러 이상을 호가하며 그중 스무 작품이 뉴욕 국제사진센터(ICP)의 ‘과거와 미래 사이: 중국의 새로운 사진과 비디오’전에서 선보이고 있다.

그밖에 수십장의 사진(상당수는 누드)이 지난해 겨울 베이징에서 전시됐다. 룽은 당국이 ‘첫날’ 전시회를 폐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시회는 아무 문제 없이 두달이나 계속됐다. 염소수염을 기른 룽은 “1990년대에 이런 일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베이징의 일류 건축가가 설계한 2층짜리 집에서 살고 있다.
문화혁명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예술의 자유는 정부 검열에 크게 제약받았다.

누드·추상미술·로큰롤·에로문학은 모두 금기였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한 민간 전시회에서는 온갖 충격적 영상들을 볼 수 있었다. 스무명의 창녀와 동침하는 한 예술가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 후지(富士)산 근처에서 벌거벗고 서 있는 룽과 잉리의 사진들, 산 누에들이 뿜어내는 실에 친친 감기고 있는 두 사람의 나체, 공산당 깃발을 찢는 행위예술, 여덟마리의 도사견을 각각 러닝머신에 묶어 서로 마주보고 으르렁대며 달리게 해놓은 펑위(彭禹)와 쑨위안(孫原)의 충격적인 설치미술 등이 그것이었다.

이제 그 전시회의 후원자였던 부동산 업계 거물 장바오취안(張寶全)은 예술적 진보성보다는 가난으로 더 알려진 외딴 서부 도시 인촨(銀川)에서 열릴 우드스톡 스타일의 야외 로큰롤 콘서트로 또 한번의 성공을 꿈꾼다. 수도 베이징에서 오지까지 중국의 도처에서 현대문화가 활짝 피어나고 있다. 25년에 걸친 자본주의식 개혁에 의해 촉발된 자유화는 미술뿐 아니라 음악·연극·패션 디자인·건축·문학도 변화시킨다. 현대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서양과 중국의 수집상들에게 판다. 그리고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이런 대안예술의 후원세력으로 떠올랐다.

물론 검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해마다 국제영화제를 개최해 본토의 언더그라운드 예술가들에게 통로를 제공하는 홍콩예술발전국의 왕춘제(王純杰) 시각예술소조위원회 주임은 “예술에 대한 관심의 정도가 국내총생산(GDP)처럼 한 도시의 성공을 측량하는 지수라는 사실을 일부 정부 기관들이 깨달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목적을 위해 정부는 전에는 금지했던 일부 예술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신세대 최고 지도자들이 등장하면서 일각에서는 중국의 예술적 백화제방(百花齊放) 을 옛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 시대에 비교하기도 한다. 지난해 후진타오(胡錦濤·61)가 국가주석이 된 이후 정부는 예술가들의 창조적 표현에 대해 보다 더 유연한 자세를 취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예술가들이 툭하면 체포되고 수시로 전시회가 폐쇄되던 1980년대에 중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전위예술가 단체 성성주회(星星晝會)의 황루이(黃銳)는 “정부가 통제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전보다는 많이 완화됐다. 어쩌면 후진타오는 중국의 고르바초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정치에 관한 한 후진타오는 고르바초프와 다르다. 중국이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그리고 지금은 문화적으로 깨어나고 있지만 아직 완고한 정치체제의 근본적 변화는 멀었다. 공공연히 정치성을 드러내는 예술작품은 지금도 금지 대상이다. 대만의 독립, 민족 갈등, 1989년의 천안문 사태,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 제기 등과 같은 전통적 금기 주제들은 여전히 제재를 받는다.

그러나 당국은 창의성을 통제하는 데 따르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베이징의 미술 전문 출판사인 타임존 8의 운영자 로버트 버넬은 “당국은 전시회를 폐쇄하거나 예술가를 체포하면 국제 언론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인터넷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블로그들은 실험적 성격의 글이 실리는 새로운 창구를 제공한다. 온라인 게시판들은 신진 작가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세계 문화 뉴스를 접하며 서로 비평하는 장이 되었다.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에 있는, ‘798 공창’으로 알려진 옛 무기공장보다 더 중국 전위예술의 역동성을 분명히 보여주는 곳은 없다.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이 높은 건축물은 현재 중국에서 가장 많은 개인 갤러리와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다. 2년 전 독특하고 임대료가 저렴한 풀뿌리 예술의 보루로 시작된 이곳은 이제 해마다 수십차례의 최첨단 전시회를 열고, 런던·싱가포르·도쿄·베를린의 수집가들이 운영하는 국제적 갤러리들이 들어선 명소로 자리잡았다. 차오양구의 천강(陳剛) 구장(區長)은 “이런 유형의 지역사회는 중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사람들은 이곳을 뉴욕의 소호에 비교한다”고 말했다.

실험적 작품들을 위한 시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커지고 있다. 서예가이며 현대 미술가인 왕둥링(王冬齡)은 본토의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과열 현상에 대해 잘 아는 중국의 신흥 부호들이 “미술품을 투자 대상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현대미술 갤러리와 경매장에서는 그런 작품이 점당 2천∼10만달러에 팔려나간다.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 개인적으로 전시하지만 정부에서도 장소를 대주며 창의력의 한계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중순 상하이의 둬룬(多倫) 현대미술관에는 벌거벗은 몸에 아슬아슬하게 흰색 마스킹 테이프를 감은 예술가 허청야오(何成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지식인·예술가·사진기자들이 모였다. 정부가 공공장소에서 알몸 행위예술을 허가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정부는 최근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혁명 기간이었다면 모두 금지대상이었을 피카소 작품 몇점과 앤디 워홀, 그리고 재스퍼 존스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국립미술관의 수리를 위해 1천8백만달러를 지원했다.

작은 도시에서의 전위예술 전시회와 행위예술 공연도 늘고 있다. 당나라 수도였으며 지금도 전통색이 강한 내륙도시 시안(西安)에서는 7월 초 ‘이것은 예술인가’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웃통 벗은 남자가 마치 인간 기중기처럼 높이 매달려 시멘트 포대를 나르는 작품이었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관심을 끌기 위해 만들어진 그 작품은 동시에 중국의 극심한 건축 열풍을 비판했다.

예술 개방에 대한 압력이 강해지면서 사람들의 기대치도 점점 높아진다. 최근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웹사이트를 개설한 복합 미디어 예술가 추즈제(邱志傑)는 “과거에는 전시회가 금지되지 않고 제대로 열리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우리의 욕구도 커졌다. 많은 관객이 들기를 바란다. 국내 민간 재단들의 지원을 기대한다.”

예술적 표현의 여러 형태 가운데는 다른 것보다 여전히 제약이 심한 것이 있다. 본토에는 록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국이 한개도 없다고 한 중국인 DJ는 말했다. 록음악은 대체로 권위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검열관들은 중국인 록음악가들에서부터 롤링스톤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개 공연에 앞서 가사를 심의할 권리를 주장하며 인디록을 여전히 제약한다. 그러나 일부 지하 밴드들은 공개의 장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해 관영 중앙텔레비전방송은 헤비메탈 밴드 흑표(黑豹)를 초빙했다. 중국인 록밴드가 본토 텔레비전에 생방송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또다른 베이징 악단인 세컨핸드 로즈의 리드싱어 량룽(梁龍·27)은 말했다. “80년대와 90년대에 정부는 로큰롤을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 지도자들은 좀더 젊고 개방적”이라고 그는 말했다.

문학과 드라마, 그리고 특히 주류 미디어는 여전히 통제가 심하다. 최고 지도자들은 예기치 못한 대중적 호응이 일어날 가능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의 불만은 쌓여 간다. 최근 당국이 베이징에서 인기리에 공연되는 연극 ‘측소’(厠所·화장실)를 각 언론매체가 일절 취재하지 못하도록 막으려 하자 많은 매체들이 반발했다. 상당수는 금지령을 무시하고 그 연극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그 연극은 공중화장실의 관리인과 손님들의 삶을 통해 30년의 중국 역사를 추적한다.

베이징에서 제재를 당하더라도 생계에 지장이 없는 사례도 늘어간다. 실은 오히려 한 예술가가 서구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마약중독자였던 상하이 작가 미엔미엔(棉棉)은 섹스와 마약, 그리고 절망을 소재로 한 소설 두권이 중국에서 판금 대상이 되는 바람에 해외에서 이름을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캔디’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출간됐고 마침내 중국에서도 지하 베스트셀러가 됐다. 미엔은 올해 출간 예정인 세번째 소설 ‘판다 섹스’는 “마약이나 섹스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검열을 통과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과거에 자유와 폭 넓은 관객을 찾아 서구로 망명했던 중국 예술가들은 이제 고국으로 돌아간다. “일류 작가들은 서구 독자들을 겨냥한 중국 소설을 전처럼 많이 쓰지 않는다”고 중국인 소설가 10여명을 관리하는 런던의 문학 에이전트 토비 이디는 말했다. “중국인들을 위한 순수 중국 소설을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요즘 고위층의 부패·에이즈·도시 범죄·빈부격차 등의 현대 금기를 다루는 데 더 관심이 있다. 텔레비전 대본작가 출신인 루톈밍(陸天明)은 부패한 공직자들과 하급관리들에 관한 소설로 중국에서 일대 선풍을 일으켰다.

최근작 ‘대설무흔’(大雪無痕)은 동북부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실제 내부 고발자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쓴 작품이다. 그 책은 채워지지 않는 중국인들의 반부패 갈증이라는 주제를 다룸으로써 18만5천부가 팔렸다. 헤이룽장성 출신의 미술가 천샤오민(沈少民·48)은 천안문 사태 이후 전시장이 폐쇄되는 바람에 1990년 호주로 떠났다. 그러나 이제는 “작품을 위해서 내가 중국에 가는 것이 더 낫다. 중국에서는 워낙 변화가 급격하기 때문에 좀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창의력을 얻기 위해 긴장을 필요로 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사실 고국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서구 사회에는 충분한 갈등이 없다”고 황루이는 말했다. “중국은 도처에서 갈등이 빚어진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등, 전통과 현대화의 갈등, 농촌생활과 도시생활의 갈등.” 큰 의문은 중국의 문화적 백화제방이 근본적 정치개혁이 없으면 결국 시들거나 또는 말살당하지 않겠느냐는 점이다.

“예술가들은 인민을 똑똑하게 만든다”고 록음악의 기수 최건(崔健)은 말했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똑똑한 인민은 다스리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펄펄 끓는 마찰과 갈등이 창의적 에너지의 창출에 도움이 되며,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점으로, 그것을 지원할 시장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With CRAIG SIMONS and JEN LIN-L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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