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vs안 왔다” “온다vs안 온다”…스태그플레이션 논쟁 가열
“왔다vs안 왔다” “온다vs안 온다”…스태그플레이션 논쟁 가열
물가·성장률 예측치 모두 4.8% 올 초와 대비했을 때 물가와 성장을 나타내주는 두 지표는 이처럼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였다. 물가는 오르고 성장률 예측치는 떨어졌다. 그러던 것이 8, 9월 들어 마침내 4.8이라는 수치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지금 추세라면 서로를 관통하며 반대 방향으로 치닫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물가는 오르고 성장률은 떨어진다…. 이 같은 현상은 경제학 용어사전에 나와 있다. ‘경기침체 상태에서의 물가상승’이라는 뜻, 바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다. 경기침체를 뜻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에 물가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것이다. ‘현상’만 본다면 우리나라의 최근 경제는 분명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만하다. 관계자들은 그 ‘주장’의 진원지를 증권사, 그것도 외국계 증권사를 꼽는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가 선두다. 지난 7월 이후 10차례 가까운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와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최근 내놓은 두개의 보고서에서도 확실히 이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8월30일 스티븐 로치 이코노미스트는 “생산·투자 감소, 물가 상승으로 한국 경제는 ‘위험지역’에 진입했다”는 진단을 내놓았고, 샤론 램 연구원은 아예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우려’는 비단 몇몇 증권사 애널리스트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최근 국내 한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경제학자 10명 중 8명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또 10명 중 3명은 그 가능성을 “아주 높다”고 진단했다. “내년에 세계 경제, 특히 아시아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AWSJ) 최근 호 보도 역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 불안의 배경에는 유가가 있다. 유가가 상승하면 기업들의 생산비용이 증가하고 그로 인해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유가는 많이 올랐다. 지난 7월부터 뛰기 시작해 한때 두바이유 기준으로 40달러를 넘나들며 ‘제3차 오일 쇼크’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물가 상승은 상당 부분 유가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가 극도의 내수부진에 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400만 신용불량자, 400조원의 가계부채와 부동자금은 우리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지난해 말부터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끌어왔던 수출이 꺾이고 있다. 올 초 높으면 6%대까지 이르던 GDP성장률 예측치가 시간이 가면서 5%대로, 또 4%대로 낮아지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유가가 결정적 요인” 하지만 모든 전문가들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협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적잖은 이들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杞憂)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반(反)스태그플레이션 논지를 펴는 대표적인 ‘논객’이 바로 정부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경제 위기론은 잘못됐다”고 지적한 지도 이미 몇달이 지났다. 노대통령은 “자꾸 위기가 온다고 하면 진짜 위기가 온다”며 한국 경제 위기론 불식에 앞장섰다. ‘스태그플레이션 반대론’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 입장은 “위기도 스태그플레이션도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이헌재 경제부총리 역시 한 토론회에서 “일본식 복합불황이나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내 대표적인 민간경제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최근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의견을 담은 연구서를 발표했다. 결론은 비슷하다. “현 경제 상황은 외형상 스태그플레이션의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속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지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지만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를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결국 “우려할 만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는 않을 전망”이라는 것이다. 한국은행도 마찬가지다. 최근 스태그플레이션을 다룬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경제성장률이 잠재 수준을 밑돌고 있지만 통화·재정·환율정책 등 거시정책을 조화롭게 운영함으로써 고유가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는 얘기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우리 경제는 과연 ‘지금’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일단 그 ‘징후’에는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 ‘지금’ 현 시점에서 봤을 때 성장세는 둔화되고 물가는 오르고 있는 탓이다. 용어를 사전적으로만 해석한다면,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대로 “현재 우리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향후 심각한 수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인가. 이 부분에는 상당한 이견이 있다. 일단 경제성장세 둔화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는 큰 견해차가 없다. 내수부진에서 탈출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태인데 수출마저 조금씩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물가다.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물가가, 그것도 가파르게 오른다면 결과는 뻔하다. 스태그플레이션의 ‘덫’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만일 성장 둔화가 심해진다면, 그때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덫에 점점 깊이 빨려들어갈 것이 뻔하다. 경기냐, 물가냐. 전문가나 정책 당국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가파른 물가 상승과 급속한 성장 둔화라는, 이 최악의 시나리오는 가능한 것일까? 답은 ‘그렇다’일 수도, ‘그렇지 않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입장이라도 시선은 한 곳으로 쏠린다. 유가다. 만일 유가가 계속 오른다면,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낮게 본 한국은행이나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 모두 유가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유가는 상승 추세를 이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경제동향실장 역시 “스태그플레이션의 결정적 요인은 유가”라고 결론내렸다. 장민 한국은행 조사총괄팀 차장은 “만일 유가가 50달러(북해 브렌트유 기준)를 넘을 경우 성장률은 3%대로, 물가는 5%대로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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