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맥주회사, 개도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대형 맥주회사, 개도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Where the Glass Is Full
보드카. 그것은 크렘린이나 끝없는 스텝(대초원)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상징이다. 다만 변덕스러운 대중의 입맛을 추적하는 시장 전문가들에게는 예외다. 요즘 러시아인들은 스톨리(보드카)보다 스텔라(맥주)를 더 마신다. 맥주 소비량은 1998년 이후 두배로 늘었다. 모스크바의 국회 의사당은 골든 배럴 맥주의 광고판들에 둘러싸여 있다. 식당에서 ‘비즈니스 런치’를 주문하면 공짜 맥주가 딸려 나온다.
멋쟁이 젊은이들은 외국산 맥주 칵테일을 들이킨다. 10대 청소년들은 맥주를 마신 뒤 빈 병을 공원 벤치에 버리고 간다. 보드카의 우군이 전통이라면 맥주의 우군은 청춘의 멋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7%가 가장 좋아하는 술로 맥주를 꼽았다. 국민술 보드카보다 14%포인트나 앞섰다. 9월 초 정부가 과음을 막기 위해 텔레비전 황금시간대에 맥주 광고를 금지한 것은 맥주의 인기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이같은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러시아 법률은 맥주를 비알콜성 음료로 분류해 어린이도 구멍가게에서 살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맹물 같은 국내 브랜드를 놓고 골라야 했던 옛 소련 시절에 비해 맥주의 품질이 크게 향상됐다. 값도 싸졌다. 러시아산 맥주는 한병에 1달러도 안되며, 맥주를 마시면 보드카처럼 금세 취하지 않는다. 모스크바의 경영 컨설턴트 키릴 불가코프(31)는 “스물다섯살에는 맥주 6ℓ를 마셔도 끄떡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행을 예의 주시하는 전문가들은 진짜 원인을 찾는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맥주 마시고 취하는 것 같은 호사를 누릴 가욋돈이 생긴다. “풍요와 음주는 항상 동행하게 마련”이라고 스톡홀름대 부설 알콜과 마약에 대한 사회연구센터의 로빈 룸은 말했다. 신흥 부자들이 부모의 음주 취향을 물려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준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찾으며 약간의 멋이 있으면 더 좋다. 유럽의 일류 맥주 브랜드들이 그 갈증을 채우면서 미국·독일·영국 같은 좀더 잘사는 서구 시장의 판매 부진을 만회하려 든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입맛도 발전하고, 중진급 부국을 열망하는 러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서민 중산층의 술인 맥주가 인기를 얻어간다.
그동안 열심히 러시아 시장을 두드려온, 세계 맥주 생산의 25%를 담당하는 유럽의 대형 양조업체들로선 희소식이다. “맥주 소비와 국내총생산(GDP) 간에는 뚜렷한 관계가 있다”고 영국의 양조회사 스코티시&뉴캐슬의 제레미 블러드는 말했다. 이 회사는 덴마크의 칼스버그와 함께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발티카 브랜드를 공동으로 지배한다.
“맥주는 보통사람의 입맛에 맞는 민주적 제품”이라고 블러드는 말했다. 팽창의 여지도 여전히 많다. 러시아인들의 맥주 소비량은 1인당 연평균 51ℓ로 유럽 평균 62ℓ에 한참 뒤진다. 투자자들이 계속 몰려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이네켄은 지난 8월 러시아에 양조장 두개를 신설했으며, 세계 최대 맥주 양조사인 벨기에의 인베브는 러시아의 합작 투자 파트너인 선브루잉의 지분을 완전 취득해 러시아 맥주시장의 2인자로 떠올랐다.
문제는 경제 호전과 맥주 생산 간의 함수관계가 일정 지점까지만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 지점을 넘어서면 약해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세계 20대 부국들 중 아홉개 국가에서 맥주 소비가 떨어지고 있으며, 나머지 열한개 국가에서는 신흥시장들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대형 양조회사들이 러시아뿐 아니라 신흥시장에 적극적으로 덤벼드는 것은 내수가 시원찮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맥주 소비량이 많으며, 중국·이집트·태국 같은 시장에서는 맥주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맥주를 많이 마시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장기적으로 맥주 판매량이 줄어온 유력한 이유는 2차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 번영이 지속됐다는 점이다. 잘사는 유럽 소비자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술의 종류에 유혹받아 변덕을 일으켰다. 런던 소호의 술집에 들어가는 20대 젊은이는 맥주 못지않게 칵테일이나 핀란드산 보드카를 고를 공산이 크다. 아일랜드에서는 80년대 후반 이후 알콜 소비량이 50% 늘었지만 유서 깊은 국민술은 급속히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8월 기네스사는 국내 시장에서 흑맥주의 수요가 6%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해외 여행을 하는 사람이 늘면서 경험도 늘고, 국내에서도 전에 없이 선택의 문이 넓어졌다”고 진 도일 기네스 대변인은 말했다.
심지어 맥주가 국민술인 독일에서도 맥주의 인기는 예전같지 않다. “맥주는 이제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독일양조협회의 비르테 클레피엔은 말했다. “젊은이들은 아버지가 마시던 것은 마시지 않으려 한다.” 사실 독일인들의 연평균 맥주 소비량은 1백17ℓ로 91년의 1백40ℓ에 비해 줄었다. 비어가든과 10월 축제의 나라에서 올해에는 생수 판매량이 맥주를 제칠 전망이다. 베를린에서 대외업무 대행업체를 운영하는 랄프 무스찰리크는 “맥주는 너무 보수적인 것 같다. 난 차라리 진토닉을 마시겠다”고 말했다.
양조업체들은 이제 자기네 나라와 가까운 곳에서 새 시장을 찾는다. 포도주를 애용하는 남유럽은 점점 맥주를 애용하는 북유럽과 취향을 맞바꾼다. 이탈리아는 지금 독일 수출 맥주의 최고 고객이며, 해가 진 뒤 시내 광장에 모인 스페인의 10대들은 맥주를 나눠 마실 가능성이 높다.
한편 에일 맥주에 절어 사는 영국인들은 포도주로 눈길을 돌린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맥주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
선술집이 매주 스무개꼴로 문 닫는 상황에서 포도주 판매량은 무려 17%나 급증했다. “포도주는 좀더 세련미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브뤼셀에 있는 유럽양조인협회의 로돌페 데 루즈-코르스바렘 사무총장은 말했다.
양조업체들의 진짜 보배는 멀리 미개척 시장에 있다. “서유럽은 양조업체가 기댈 곳이 못된다”고 인베스텍 브로커스(런던)의 술시장 분석가 앤서니 기어드는 말했다. 동쪽으로 멀리 갈수록 유리하다.
중국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맥주 소비량이 두배로 늘었지만 그 소비량이라는 게 고작 1인당 평균 20ℓ에 불과하다. 좀더 잘사는 해안 지방에서는 소비량이 더 많겠지만 중국은 전체적으로 아직 기회가 무한한 시장이다. 안호이저-부시와 샙밀러 등 업계 선두주자들은 이미 현지 업체들을 낚아채고 있다. 지난 8월 칼스버그는 티베트에서 첫 합작투자사를 출범시켰다. 맥주를 처음 마시는 소비자들의 잠재시장이 눈에 보이는 만큼 높은 봉우리라고 못갈 이유가 없다.
With ANNA KUCHMENT in Moscow,
JOHN SPARKS in New York and
STEFAN THEIL in Berlin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드카. 그것은 크렘린이나 끝없는 스텝(대초원)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상징이다. 다만 변덕스러운 대중의 입맛을 추적하는 시장 전문가들에게는 예외다. 요즘 러시아인들은 스톨리(보드카)보다 스텔라(맥주)를 더 마신다. 맥주 소비량은 1998년 이후 두배로 늘었다. 모스크바의 국회 의사당은 골든 배럴 맥주의 광고판들에 둘러싸여 있다. 식당에서 ‘비즈니스 런치’를 주문하면 공짜 맥주가 딸려 나온다.
멋쟁이 젊은이들은 외국산 맥주 칵테일을 들이킨다. 10대 청소년들은 맥주를 마신 뒤 빈 병을 공원 벤치에 버리고 간다. 보드카의 우군이 전통이라면 맥주의 우군은 청춘의 멋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7%가 가장 좋아하는 술로 맥주를 꼽았다. 국민술 보드카보다 14%포인트나 앞섰다. 9월 초 정부가 과음을 막기 위해 텔레비전 황금시간대에 맥주 광고를 금지한 것은 맥주의 인기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이같은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러시아 법률은 맥주를 비알콜성 음료로 분류해 어린이도 구멍가게에서 살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맹물 같은 국내 브랜드를 놓고 골라야 했던 옛 소련 시절에 비해 맥주의 품질이 크게 향상됐다. 값도 싸졌다. 러시아산 맥주는 한병에 1달러도 안되며, 맥주를 마시면 보드카처럼 금세 취하지 않는다. 모스크바의 경영 컨설턴트 키릴 불가코프(31)는 “스물다섯살에는 맥주 6ℓ를 마셔도 끄떡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행을 예의 주시하는 전문가들은 진짜 원인을 찾는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맥주 마시고 취하는 것 같은 호사를 누릴 가욋돈이 생긴다. “풍요와 음주는 항상 동행하게 마련”이라고 스톡홀름대 부설 알콜과 마약에 대한 사회연구센터의 로빈 룸은 말했다. 신흥 부자들이 부모의 음주 취향을 물려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준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찾으며 약간의 멋이 있으면 더 좋다. 유럽의 일류 맥주 브랜드들이 그 갈증을 채우면서 미국·독일·영국 같은 좀더 잘사는 서구 시장의 판매 부진을 만회하려 든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입맛도 발전하고, 중진급 부국을 열망하는 러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서민 중산층의 술인 맥주가 인기를 얻어간다.
그동안 열심히 러시아 시장을 두드려온, 세계 맥주 생산의 25%를 담당하는 유럽의 대형 양조업체들로선 희소식이다. “맥주 소비와 국내총생산(GDP) 간에는 뚜렷한 관계가 있다”고 영국의 양조회사 스코티시&뉴캐슬의 제레미 블러드는 말했다. 이 회사는 덴마크의 칼스버그와 함께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발티카 브랜드를 공동으로 지배한다.
“맥주는 보통사람의 입맛에 맞는 민주적 제품”이라고 블러드는 말했다. 팽창의 여지도 여전히 많다. 러시아인들의 맥주 소비량은 1인당 연평균 51ℓ로 유럽 평균 62ℓ에 한참 뒤진다. 투자자들이 계속 몰려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이네켄은 지난 8월 러시아에 양조장 두개를 신설했으며, 세계 최대 맥주 양조사인 벨기에의 인베브는 러시아의 합작 투자 파트너인 선브루잉의 지분을 완전 취득해 러시아 맥주시장의 2인자로 떠올랐다.
문제는 경제 호전과 맥주 생산 간의 함수관계가 일정 지점까지만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 지점을 넘어서면 약해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세계 20대 부국들 중 아홉개 국가에서 맥주 소비가 떨어지고 있으며, 나머지 열한개 국가에서는 신흥시장들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대형 양조회사들이 러시아뿐 아니라 신흥시장에 적극적으로 덤벼드는 것은 내수가 시원찮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맥주 소비량이 많으며, 중국·이집트·태국 같은 시장에서는 맥주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맥주를 많이 마시는 북유럽 국가들에서 장기적으로 맥주 판매량이 줄어온 유력한 이유는 2차대전 이후 수십년 동안 번영이 지속됐다는 점이다. 잘사는 유럽 소비자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술의 종류에 유혹받아 변덕을 일으켰다. 런던 소호의 술집에 들어가는 20대 젊은이는 맥주 못지않게 칵테일이나 핀란드산 보드카를 고를 공산이 크다. 아일랜드에서는 80년대 후반 이후 알콜 소비량이 50% 늘었지만 유서 깊은 국민술은 급속히 인기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8월 기네스사는 국내 시장에서 흑맥주의 수요가 6%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해외 여행을 하는 사람이 늘면서 경험도 늘고, 국내에서도 전에 없이 선택의 문이 넓어졌다”고 진 도일 기네스 대변인은 말했다.
심지어 맥주가 국민술인 독일에서도 맥주의 인기는 예전같지 않다. “맥주는 이제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독일양조협회의 비르테 클레피엔은 말했다. “젊은이들은 아버지가 마시던 것은 마시지 않으려 한다.” 사실 독일인들의 연평균 맥주 소비량은 1백17ℓ로 91년의 1백40ℓ에 비해 줄었다. 비어가든과 10월 축제의 나라에서 올해에는 생수 판매량이 맥주를 제칠 전망이다. 베를린에서 대외업무 대행업체를 운영하는 랄프 무스찰리크는 “맥주는 너무 보수적인 것 같다. 난 차라리 진토닉을 마시겠다”고 말했다.
양조업체들은 이제 자기네 나라와 가까운 곳에서 새 시장을 찾는다. 포도주를 애용하는 남유럽은 점점 맥주를 애용하는 북유럽과 취향을 맞바꾼다. 이탈리아는 지금 독일 수출 맥주의 최고 고객이며, 해가 진 뒤 시내 광장에 모인 스페인의 10대들은 맥주를 나눠 마실 가능성이 높다.
한편 에일 맥주에 절어 사는 영국인들은 포도주로 눈길을 돌린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맥주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
선술집이 매주 스무개꼴로 문 닫는 상황에서 포도주 판매량은 무려 17%나 급증했다. “포도주는 좀더 세련미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브뤼셀에 있는 유럽양조인협회의 로돌페 데 루즈-코르스바렘 사무총장은 말했다.
양조업체들의 진짜 보배는 멀리 미개척 시장에 있다. “서유럽은 양조업체가 기댈 곳이 못된다”고 인베스텍 브로커스(런던)의 술시장 분석가 앤서니 기어드는 말했다. 동쪽으로 멀리 갈수록 유리하다.
중국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맥주 소비량이 두배로 늘었지만 그 소비량이라는 게 고작 1인당 평균 20ℓ에 불과하다. 좀더 잘사는 해안 지방에서는 소비량이 더 많겠지만 중국은 전체적으로 아직 기회가 무한한 시장이다. 안호이저-부시와 샙밀러 등 업계 선두주자들은 이미 현지 업체들을 낚아채고 있다. 지난 8월 칼스버그는 티베트에서 첫 합작투자사를 출범시켰다. 맥주를 처음 마시는 소비자들의 잠재시장이 눈에 보이는 만큼 높은 봉우리라고 못갈 이유가 없다.
With ANNA KUCHMENT in Moscow,
JOHN SPARKS in New York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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