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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도 돈맛을 알았다

리눅스도 돈맛을 알았다

무료 운영체계 리눅스는 히피족과 해커들의 취미활동으로부터 탄생했다. 그러나 지금 리눅스를 주도해나가는 것은 돈이다.
트론트 미클레부스트(Trond Myklebust ·35)는 데이터 저장장치 설계 경험이 전무한 데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적도 없다. 미클레부스트는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입자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그는 지난해 데이터 저장장치 제작업체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네트워크 어플라이언스(Network Appliance ·이하 넷어프)로부터 매달 적지 않은 장학금을 받기 시작했다.

넷어프는 미클레부스트를 미국으로 초대했다. 그가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은 물론 여행경비, 아파트, 미시간대학 내의 사무실 제공 등 온갖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본사로 미클레부스트를 초청해 융숭하게 대접하고 수석 엔지니어의 자택에서 머물게도 했다. 그렇다면 미클레부스트를 VIP로 대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리눅스(Linux) 운영체계(OS)를 창시한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의 최측근이다.

그가 맡은 일은 리눅스 기반 컴퓨터와 다른 컴퓨터의 파일 공유 방법을 제어하는 핵심 부호비트 개발에 대한 감독이다. 넷어프의 박스가 리눅스 컴퓨터와 서로 작용하는 데 코드 3만5,000라인이 필요하다. 넷어프로서는 미클레부스트에게 환심만 살 수 있다면 이런 대접은 아무것도 아니다.

넷어프는 미클레부스트와 미시간대학의 정보기술통합연구소(CITI)에 대한 자금지원을 통해 리눅스 개발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넷어프가 제작하는 저장장치, 다시 말해 파일러(filer)들이 리눅스 컴퓨터와 원활하게 맞물리며 돌아가게 할 수도 있다. 넷어프의 CEO 대니얼 워먼호벤(Daniel Warmenhoven)은 이렇게 설명했다.

“토발즈는 넷어프가 리눅스에 여러 기능을 추가한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미클레부스트를 넷어프로 끌어들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미클레부스트는 넷어프가 리눅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교다.”“모든 것이 매출과 연관돼 있다. 넷어프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리눅스 시장이다. 자선사업을 펼치려는 게 아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으면 되는 것 아닌가.” CITI에서 리눅스의 범위성(範圍性)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피터 허니맨(Peter Honeyman)이 한 말이다. 범위성이란 컴퓨터 응용프로그램이나 제품의 크기 ·용량을 변경해도 계속 잘 작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CITI는 넷어프로부터 연간 19만2,000달러를 지원받고 있다.

기업이 지원하고 학교가 연구하는 이런 방식은 흔히 볼 수 있는 산 ·학 협력 사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리눅스에는 큰 변화를 의미한다. 리눅스는 히피족 같은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먼저 호평을 얻었다. 그들은 매출 ·순이익을 경멸했다. ‘평화, 사랑 그리고 소프트웨어’라는 정신에 따라 기업의 이익과 무관하게 개발된 무료 OS가 리눅스라는 주장이다. 리눅스를 한 기업이 개발한 것은 아니다. 토발즈는 세계 전역의 프로그래머 수천 명이 지닌 창의성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개발된 리눅스를 무료로 보급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리눅스는 컴퓨터 애호가들 사이에서 처음 사용됐다. 그러나 지금 온라인 증권사 찰스 슈왑(Charles Schwab), 여행 관련 솔루션 제공업체 세이버 홀딩스(Sabre Holdings) 같은 대기업 데이터 센터에서도 리눅스가 사용되고 있다. 일부 리눅스광들은 여전히 리눅스를 일종의 종교운동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 리눅스는 여느 기술 제품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리눅스 예찬론자들이 가장 혐오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 제품과도 매우 유사하다.

미클레부스트의 말을 들어보자. “리눅스는 변했다. 리눅스 공동체의 핵심 인물 가운데 대다수가 리눅스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업체에 고용되거나 그들 업체로부터 후원받고 있다. 요즘 이런 추세가 대체로 용인되고 있다.”
미클레부스트는 자신이 넷어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넷어프에 특혜가 제공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주장했다. 넷어프가 제시하는 어느 코드든 여전히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넷어프와 협력해 리눅스의 검열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제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클레부스트는 넷어프가 여러 방안으로 그의 의중을 떠보곤 한다고 말했다.

91년 핀란드의 젊은 프로그래머 토발즈는 대학 기숙사에서 리눅스를 만들었다. 토발즈도 지금은 휼렛패커드(HP) ·IBM 등이 지원하는 오리건주 비버턴 소재의 한 연구소로부터 보수를 받고 있다. 리눅스의 제2인자 앤드루 모턴(Andrew Morton)도 같은 연구소에서 일한다. 리눅스의 각기 다른 부분을 책임진 ‘보수요원’이나 개발자는 HP ·IBM ·레드헷(Red Hat)에서 근무한다. 이에 대해 토발즈는 훈련 ·경기 비용을 기업으로부터 지원받는 미국의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토발즈의 말처럼 “리눅스 개발자들이 후원자를 선택한 것”이다.

대기업들은 리눅스 개발비를 지원한다. 개발된 시스템이 하드웨어 및 컨설팅 서비스 판매에 한몫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HP가 리눅스와 관련해 올린 매출은 25억 달러였다. IBM의 경우 20억 달러였다. 리눅스 OS를 배포하는 레드햇은 2003 회계연도에 매출 1억2,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현재 레드햇의 시장가치는 23억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리눅스 서버 매출은 48% 늘어 33억 달러에 달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오는 2008년 리눅스 서버 매출이 1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넷어프는 리눅스와 관련해 수백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넷어프는 고객들이 리눅스를 사용하다 여러 문제에 봉착하자 리눅스 개발로 눈을 돌리게 됐다. 리눅스 구동 컴퓨터와 넷어프 파일러 사이에 파일 이동이 느리고 어려웠다. 문제는 넷어프 장비가 아니라 리눅스에 있었다. 리눅스는 선 마이크로시스템스(Sun Microsystems)가 80년대 개발한 파일 이동 기술인 ‘네트워크 파일 시스템(NFS)’을 사용하고 있었다.
도움이 절실한 고객들은 토발즈를 욕하지 않고 넷어프에 전화했다. 넷어프의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 브라이언 폴로스키(Brian Pawlowski)는 “98~99년 지원 문의전화가 폭주했다”고 떠올렸다.

다행히 폴로스키는 20년 전 선에서 NFS를 만든 팀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NFS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90년대 후반 넷어프의 공동 창업자이자 엔지니어링 책임자인 데이비드 히츠(David Hitz)가 토발즈와 점심을 함께했다. 그는 리눅스에서 NFS 구현기능을 기꺼이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토발즈가 거부했다. 토발즈는 “안 된다. 난 사람을 믿지, 기업을 믿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미클레부스트”라고 말했다. 토발즈와 만나고 돌아온 히츠에게 워먼호벤은 이렇게 말했다. “와, 거참 고집도 세네. 어떻게 하지? 근데 이상하네. 도대체 세계 최고 전문가들을 왜 거부하는 거야.”
폴로스키는 미클레부스트에게 ‘제안서’를 제출해야 했다. 미클레부스트는 세계 전역의 해커들로부터 날아온 제안을 수용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넷어프는 이미 검증된 실리콘밸리의 분산투자 방식으로 장애물을 비켜갔다. 넷어프는 99년 CITI에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CITI에서는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 NFS 개발이 여럿 진행되고 있었다. 2001년 넷어프는 CITI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찰스 레버(Charles Lever)를 영입했다. 그리고 2002년 미클레부스트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어 CITI에 그의 사무실을 마련해주고 아파트도 얻어줬다. 지난해 미클레부스트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노르웨이로 돌아갔지만 곧 넷어프로 돌아왔다.

미클레부스트 같은 리눅스의 거물을 맞이한다는 것은 넷어프와 CITI에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허니맨은 이렇게 설명했다. “미클레부스트는 토발즈의 오른팔이다. 미클레부스트가 허락하지 않으면 리눅스에 어떤 기능도 추가할 수 없다. 그는 리눅스의 채널이며 수문장이다. 그에게는 요술지팡이도 있다. 그런 그가 지금 넷어프갅ITI와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넷어프는 미클레부스트의 장학금과 경비 말고 CITI에도 월 1만6,000달러를 지원한다. 1만6,000달러 가운데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허니맨의 한 학생에 대한 지원도 포함된다. 폴로스키는 “연간 수십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회계연도에 매출 12억 달러, 순이익 1억5,200만 달러를 기록한 넷어프로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다. 효과는 이미 나타났다. 현재 리눅스에 넷어프 프로그래머들이 작성한 부호비트가 포함돼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CITI 소속 개발자들이 넷어프 파일러를 소프트웨어 설계의 기초로 사용하는 가운데 파일러용 코드까지 최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넷어프는 리눅스 설치에서 한 가지 이점을 이미 갖게 됐는지 모른다. 파일러용 코드의 최적화 덕에 오라클(Oracle), 애니메이션 영화사 픽사(Pixar), 사우스웨스트항공(Southwest Airlines), 정유업체 코노코필립스(ConocoPhilips), 웨타 디지털(Weta Digital)로부터 수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웨타는 영화 <반지의 제왕> (Lord of the Rings)에서 특수 효과를 담당했던 프로덕션이다.

미클레부스트는 입자물리학 박사과정을 포기했다. 리눅스 개발이 더 재미있는 데다 미국에서 사는 것도 즐겁다. 더욱이 멋진 일자리까지 잡았다. 이민 전문 변호사들이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취업비자(HIB)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덕이다. 이민 당국은 애초 미클레부스트가 컴퓨터 정식 교육 이력이 없다며 비자를 내주지 않으려 했다. 미클레부스트는 10월부터 넷어프에서 상근한다.

한 발짝? 두 발짝?

넷어프 같은 일류 기술전문 업체들은 리눅스 프로그래머들을 낚아채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리눅스의 향후 진화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기 때문이다. 비법은 리눅스 창시자 리누스 토발즈의 최측근을 고용하는 것이다. 리눅스 개발을 총괄하는 인물이 토발즈다. 하지만 시스템의 각기 다른 부분은 넷어프의 트론트 미클레부스트 같은 보수요원 25명이 맡고 있다.

보수요원들은 각자 맡은 프로젝트를 더 세분화해 2차 보수요원들에게 일임한다.
두 보수요원과 100명의 리눅스 개발자를 두고 있는 HP는 토발즈의 측근들만 고용하려 든다. HP의 리눅스 담당 부사장 마틴 핑크(Martin Fink)는 이렇게 들려줬다. “특정 인물이 토발즈로부터 몇 발짝 떨어져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두 발짝 안쪽을 원한다. 리눅스 공동체에서 제대로 일하려면 그 정도 단계에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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