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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르포 : 폭락하는 충청권 부동산 ··· “땅값 반토막 나봐야 누가 사겠나”

긴급르포 : 폭락하는 충청권 부동산 ··· “땅값 반토막 나봐야 누가 사겠나”

행정수도이전 위헌 판결로 충남 지역 주택시장이 서리를 맞고 있다. 사진은 대전 광역시 아파트 신축 현장.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진 지난 10월21일 저녁. 정부가 추진해온 수도이전 예정지였던 충남 연기군 일대는 뚝 떨어진 기온만큼이나 차가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거리는 불과 몇달 새 크게 늘어난 부동산 간판들로 빽빽했지만, 불이 켜진 곳은 거의 없었다. 셔터가 내려진 불 꺼진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서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대통령이 추진하는 일이 위헌이라뇨?” 연기군 남면 주민이라는 박모(52)씨가 씩씩거리며 내뱉었다. 곁에 서 있던 한모(44)씨는 곤두박질칠 땅값 걱정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평당 30만원까지 올라갔던 농지 시세가 당장 10만원 이하로 떨어지게 생겼다”면서 “이곳 사람들 중에 목매고 싶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며 울상을 지었다. 한씨는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외지에 살면서 고향인 남면 땅에 어렵게 투자했다는 최모(44)씨 또한 “행정수도 이전을 철썩같이 믿고 버려지다시피 한 땅을 평당 15만원에 매입했는데 다 망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기대감 속에 땅 팔 기회만 노리던 주민들도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김모(여·58)씨는 “올 초에 밭 850평을 팔 기회가 있었는데도 안 팔고 기다렸는데 이제 어떡하느냐”며 “그때 팔았으면 노후자금이라도 마련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하루 만에 30% 떨어져 이곳 주민들의 이야기는 괜한 엄살이 아니다. 실제 충청권 부동산값은 폭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내려진 직후 충남 연기·공주 지역을 중심으로 불과 하루 만에 시세가 최고 30% 떨어진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매수자가 없어 추가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중개업자들은 보고 있다. 연기군 조치원읍 대로변 관리지역(옛 준농림지) 논은 20일만 해도 평당 100만원을 호가했으나 헌재 결정 이후 70만원에 팔겠다는 매물이 나왔다. 수용 예정지인 서면 일대의 60평짜리 낡은 농가주택도 호가가 1억원에서 8000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평당 50만원을 호가하던 남면 대로변 관리지역도 35만원에 팔려는 사람이 있으나 매수세가 없다고 중개업자들은 전한다. 한 중개업자는 “헌재 결정 소식이 전해진 지 한시간 만에 10여개의 급매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충남 연기군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유모씨는 “이러다 충청권 부동산 시장이 하루아침에 다 무너지는 거 아니냐”고 했다. 공주시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부동산 업자는 물론 주민까지 다들 멍한 상태다. 공중에 붕 떴다가 떨어지는 격”이라며 심리적 공황상태를 표현했다. 연기군 남면 중촌리에서 중개업을 하는 배창무 학사공인 사장은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라며 “모든 상황이 끝났다. 막막하다. 먹고는 살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고 현재 분위기를 전했다. 이한철(38) 코리아부동산 대표는 “위헌 결정이 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이 지역엔 아무도 없었다”면서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크게 요동칠 것이 뻔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충남 연기·공주 지역은 지난 6월 새 수도 후보지 네 곳에 포함되면서부터 유력 후보지로 여겨져 아파트·농지·대지 등 부동산 값이 일제히 뛰었다. 공주·장기 지역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수도 이전지로 주목받아 최적지로 점쳐져 왔으나 연기 지역은 후보지 발표 뒤 각광받기 시작한 곳이라 파장이 컸다. 지난 6월 조치원읍에서 신규 분양에 들어간 한 아파트는 3순위 청약률이 100대 1이 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청약 자격을 갖춘 연기군 주민 중 3명 중 한명이 청약했다. 이를 신호탄으로 조치원의 모든 아파트 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15년 된 소형 아파트가 한달 새 3,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뛰기도 했다. 조치원의 한 부동산 업소 한모(43)씨는 “기존 아파트는 외지인 투기 바람이 불지 않아 호가만 높았지 실거래는 많지 않았으나 임대·농지 등은 외지인 중심으로 많은 거래가 있었다”면서 “행정수도가 안 오면 부동산 때문에 큰 손해를 볼 외지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충청권 토지 매입자 18만6,185명 가운데 대전·충북·충남 거주자는 12만191명으로 67%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서울(2만3,801명)·경기도(2만3,939명) 등 외지인이다.외지인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새 수도 후보지인 연기·공주 일대 땅값은 올 들어 2∼3배 뛰었다. 연기군 조치원읍 1번국도 주변 자연녹지는 평당 250만∼300만원을 호가한다. 연기군 남면의 한 중개업자는 “토지 매입자들의 70% 이상이 가수요인 것으로 보인다”며 “새 수도 수용지의 보상을 노리고 전 재산을 털어 땅을 산 사람도 있는데 ‘쪽박을 차게 됐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땅 산 외지인 5만여명 파장은 주택시장에도 미치고 있다. 지난 6월 신규 아파트 열풍에 조치원에 아파트 건설을 서두르던 건설업체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신안리에 아파트 분양을 추진하던 D업체는 지난 6월 부지를 평당 100만∼150만원에 매입, 다른 업체로부터 “싸게 샀다”는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D업체의 관계자는 “다음달 분양을 위해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아무래도 분양 일정을 연기하고 부동산 추이를 관망해야 할 것 같다”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22일 문을 연 충남 천안시 쌍용동 LG자이 아파트(33~54평형 564가구) 견본주택에는 하루 전에 있었던 위헌 결정 영향으로 수요자의 발길이 줄어드는 등 벌써부터 ‘위헌 효과’가 나오고 있다. LG건설은 시장 상황을 본 뒤 충청권에 대한 사업전략을 전면 수정한다는 계획이다. LG건설 관계자는 “고객들이 행정수도이전 무산에 대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며 “마케팅 전략을 바꿔 이 지역에 사는 실수요자들을 중심으로 공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신행정수도이전 위헌 결정의 불똥은 부동산 시장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금융권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시중은행과 상호저축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올 들어 충청지역에 대출을 대거 늘렸다가 이번 위헌 결정으로 인해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대출 부실이 초래될까봐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은행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은행권의 충청 지역 대출 잔액은 49조4,816억원으로, 2003년 말(46조6,200억원)보다 6.14%나 크게 늘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대출 증가율을 보였다. 또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서민 금융기관들의 이 지역 대출 역시 6월 말 현재 지난해보다 8.8%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0·29 부동산종합대책’ 이후 그나마 부동산 거래가 있었던 충청권에 대출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최근 충청 지역의 땅값 상승에 힘입어 담보가치도 덩달아 상승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위헌 결정에 따라 건설업과 부동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공산이 크다고 보고 관련업종 대출의 연체율 관리에 들어갔다.

은행도 부동산 대출 관리 비상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의 일시 하락에 따른 담보가치의 ‘동반’ 하락 가능성이 가장 우려된다”며 “충청 지역에 자금이 몰리면서 대출액도 자연스럽게 늘어난 만큼 일단 주택담보 대출의 담보비율부터 낮추는 위험 관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은행은 올해 충청 지역에 신규 점포를 개설하려던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는 등 발빠르게 위헌 결정에 따른 충격 줄이기에 들어갔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당초 이 지역에 올해 4곳의 신규 점포를 개설하려고 했으나, 이번 위헌 결정으로 서울본부의 승인을 받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충청 지역은 특히 상호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등의 대출도 크게 늘어난 만큼 자칫 서민금융기관들의 부실로 이어질까봐 해당 회사와 금융감독 당국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저축은행의 관계자는 “소액 대출에 대한 연체율이 은행보다 3~4%포인트 높아 걱정스러운데 위헌 파동까지 겹쳐 리스크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김희선 부동산114 상무는 “단기적인 문제는 거래시장의 마비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투자자금 회수도 어려운 상황이다. 매수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 가격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거래 시장이 형성되려면 정책 방향의 가닥이 잡혀야 할 것이다”며 당분간 충청 지역 부동산 시장 자체가 기능을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진명기 JMK플래닝 대표는 “충청권 토지 시장은 죽었다. 연기군 도로변 관리지역(건물을 지을 수 있는 곳) 땅값이 평당 100만원~120만원이었는데 평당 40만원으로 떨어질 것이다. 농업진흥지역 땅도 8만~15만원에서 3만원선으로 주저앉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김종호 부동산114 충청지사장은 “앞으로 충청권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상당 부분 빠지면서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투자 차원에서 부동산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의 경우 큰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헌재의 결정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좀 더 냉정하게 정부의 후속대책 등 부동산 시장 상황을 지켜본 뒤 투자 여부 등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돈은 돈대로 잃고 처벌은 처벌대로 받고” 안절부절 못하는 투기혐의자들 신행정수도이전 호재를 노리고 충청권에 땅을 사둔 투기꾼들이 철퇴를 맞게 됐다. 투기혐의자로 국세청에 통보돼 세금추징을 받게 되는 데다 땅값 급락으로 본전도 건질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행정수도이전 여부와 관계없이 투기혐의자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세금추징을 한다는 입장이다. 건교부에 따르면 올해 투기혐의자로 국세청에 통보된 거래자는 수도권과 충청권을 포함해 5만2,544명에 달한다. 이들은 △2번 이상 토지를 매입한 경우 △2000평 이상 되는 땅을 매입한 경우 △1번 이상 증여취득한 경우 △토지거래허가제를 위반한 경우 등이다. 이들 가운데 정상적인 거래 대신 불법 증여로 취득한 경우에는 탈루한 세금을 추징당하고, 토지거래허가제를 위반한 투기꾼은 사법당국에 고발당하게 된다. 이들 투기혐의자는 대부분 값이 오른 뒤에 땅을 매입했기 때문에 가격 폭락의 ‘후폭풍’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현지 중개업계에 따르면 충청권 땅값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집중적으로 올랐기 때문에 행정수도 예비후보지 발표(6월15일) 전후에 구입한 투자자들은 손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해 땅을 구입한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매물을 쏟아낼 경우 반토막 물건도 상당수가 될 것”이라며 “고속철도역이 생기는 오송리 등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손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돈은 돈대로 잃고 처벌은 처벌대로 받는 상황에 몰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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