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립선암 퇴치 희망의 '불빛'
전립선암 퇴치 희망의 '불빛'
전립선암은 오랫동안 남성들을 알게 모르게 괴롭혀 온 질병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이제 가히 혁명적이랄 수 있는 연구가 속속 진행되면서 전립선암을 퇴치할 강력한 신무기들이 개발되고 있다.
남성의 경우 장수하면 할수록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여기 반가운 소식 한 가지가 있다. 과학자들과 제약업계가 전립선암 정복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는 것이다.
전립선암이 통제가능한 일개 만성질환으로 바뀔 것이라는 얘기 다. 상당히 진행된 전립선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조악한 호르몬 요법 외에는 거의 없었다. 1940년대 선보인 호르몬 요법은 사실 일종의 ‘화학적인 거세’다. 이제 전문가들은 전립선암 치료의 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년 전이라면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신무기들을 전진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신약 후보 100여 종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에 들어갔다. 일부 종양을 확산시켜 환자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주요 ‘살상’ 유전자가 표적이다. 첨단 로봇수술로 성기능과 관련된 미세한 신경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전립선을 제거할 수 있다. 신형 컴퓨터 유도 시스템은 종전보다 강한 방사선을 정밀하게 조사(照射)해 건강한 조직은 그대로 두고 종양만 공격한다. 미래형 유전자 테스트로 악성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남성을 가려낼 수도 있다. 암이 치명적인 상태로 진행되기 수년 전 미리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13개 대학으로 구성된 한 컨소시엄이 새로운 전립선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컨소시엄을 이끌고 있는 에모리대학의 종양학자 조너선 사이먼스는 “과학이 서로 연계되기 시작했다”며 “전문가들은 거대한 회로기판 같은 과학에서 주요 회로를 탐색 중”이라고 표현했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병원의 종양 전문의 하워드 셔는 몇 년 전만 해도 종양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는 손 쓸 도리가 별로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8~10가지 치료법을 처방해준다”고 전한다.
치료법이 많아지면서 의사들의 처방도 제각각이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환자들은 당혹스러울 정도다. 치료법을 서로 비교해 놓은 믿을 만한 연구결과도 아직 없다. 유명한 의사들 사이에 선택안의 상대적 효과를 둘러싸고 논란이 치열하다. 하지만 모든 치료법에는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일례로 요실금이나 직장 출혈을 꼽을 수 있고, 가장 심각한 것이 발기부전이다.
15년 전 전립선암은 남성들이 대놓고 얘기하기를 꺼리는 모호한 질환이었다. 그러던 중 정크본드 업계의 황제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 인텔의 창업자 앤드루 그로브(Andrew Grove), 뉴스코프(News Corp.)의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회장 등 유명 인사들이 전립선암에서 벗어나 이를 공론화하면서 연구에 한층 박차가 가해졌다. 밀켄은 93년 전립선암재단을 설립했다.
밀켄은 “전립선암 재단이 연구자금 지원 구도에 총체적 변화를 몰고 왔다”며 “연구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 현재 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밀켄의 재단 설립 이래 미 정부의 연구자금 지원 규모도 연간 6,000만 달러에서 5억 달러로 확대됐다.
문제는 시간이다. 미국의 경우 해마다 23만 명이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있다. 그들 가운데 86%가 초기 단계다. 전립선 제거 수술을 받는 환자가 연간 7만 명, 전립선암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3만 명이다. 관련 의료비만 46억 달러에 이른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할 나이에 접어드는 오는 2015년 전립선암 진단건수는 연간 30만 건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전립선암은 무차별적이다. 다른 원인으로 사망한 남성들을 검시해본 결과 그 가운데 60대의 66%, 40대의 33%에게서 전립선암 초기 흔적이 발견됐다. 심지어 20대에서도 전립선암 세포의 작은 침착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기 종양으로 진행되는 사례가 남성 6명 가운데 한 명,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35명 가운데 한 명꼴이다. 희소식도 있다. 전립선암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 수가 10년 사이 14% 감소한 것이다. 다시 말해 연간 5,000명 정도가 목숨을 구하는 셈이다.
크기나 모양이 호두와 비슷한 전립선은 방광과 직장 사이에 있다. 전립선은 유용성보다 문제를 더 많이 안고 있을지 모른다. 발기나 성적 쾌감과 전혀 상관없는 기관이다. 전립선은 정자 운반체인 정액의 한 성분을 생산하는 주된 역할을 한다. 전립선암에 걸려도 환자는 이를 모를 수 있다. 그만큼 진행 속도가 느리다.
시간이 지나면 인체에 무해했던 전립선암의 일부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공격적으로 변한다. 이때 급성장하기 때문에 생체조직 검사로 발견할 수 있다. 발병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악성 유전자, 고지방 육류를 과다 섭취하고 채소는 적게 먹는 잘못된 식습관, 세포 분열시 일어나는 유전적 복제 오류가 어우러진 결과일 수도 있다. 급성장한 종양이 전립선 안에 머물러 있는 한 치명적이진 않다. 그러나 다른 부위로 전이돼 뼈에 침투할 경우 환자는 매우 고통스러운 소모성 질환과 맞닥뜨리게 된다.
해마다 수만 명의 남성이 서둘러 치료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치료받을 필요가 없는 경우에 속한다. 전립선암 조기 진단에 활용되는 혈액 검사, 다시 말해 ‘전립선 특이 항원(PSA)’ 검사는 10년 전 확고히 뿌리내렸지만 암으로 잘못 판정하는 이른바 ‘위양성(僞陽性)’ 비율이 높다. 이로써 해마다 불필요한 생체 조직검사가 수천 건이나 시행되고 있다. PSA 검사의 ‘위음성(僞陰性)’ 비율도 높다. 오진율이 15%다. 스탠퍼드대학의 비뇨기학자 토머스 스테이미는 PSA 검사를 통해 양성으로 판명된 사례 가운데 최고 75%는 즉각적인 위협과 거리가 먼 매우 경미한 경우라고 밝혔다.
임상진단 시스템 개발업체인 메릴랜드주 베세즈다 소재 코럴로직 시스템스(Correlogic Systems)와 매사추세츠주 뉴턴 소재 매트리테크(Matritech)의 연구진은 몇 년 안에 PSA 검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진단법 연구로 분주하다. 연구진은 새로운 징후 단백질, 즉 단백질 조각의 새로운 구조들을 발견했다. 치명적인 종양과 느리게 성장해 아무 해도 끼치지 못할 종양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유전학적 예후(豫後) 검사법 개발 역시 현재 진행되고 있다. 검사법이 개발되면 수천 명의 환자는 전립선암 치료를 받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맞춤 의약품
63년 전 시카고대학의 비뇨기학자 찰스 허긴스는 전립선암 치료가 가능함을 증명했다.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거세해 얻은 결과다.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테스토스테론 등 호르몬을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지금은 수술 대신 약물로 호르몬을 차단한다. 대다수 호르몬 요법은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의심쩍은 유전자만 겨냥하는 기술이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신약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현재 임상실험 중간?최종 단계에 있는 신약 후보는 100여 종이다. 97년의 3배에 이르는 수치다. 신약 후보 가운데 암을 뼈로 전이시키는 악성 유전자 차단제, 전립선암 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는 화학물질, 인체의 킬러 T세포로 하여금 종양세포를 찾아내 파괴토록 훈련시키는 백신도 있다.
사노피 아벤티스(Sanofi-Aventis)의 항암제 탁소텔(Taxotere)이 전립선암 환자 수명을 16개월에서 18개월로 연장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지난 봄 발표되자 신약에 대한 기대도 증폭됐다. 화학물질이 전립선암 환자의 수명을 연장시킨 첫 사례다. 다른 업체들도 면역체계로 하여금 전립선 암세포 공격에 나서도록 자극하는 여러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백신으로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 들어간 업체는 워싱턴주 시애틀의 덴드리온(Dendreon), 캘리포니아주 사우스샌프란시스코의 셀 진시스(Cell Genesys),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인근의 세리언 바이올로직스(Therion Biologics), 영국의 오니백스(Onyvax) 등이다.
현재 임상실험 최종 단계에 접어든 셀 진시스와 덴드리온이 선두를 지키고 있다. 덴드리온은 자사의 백신 프로벤지(Provenge)가 환자 수명을 8개월 늘려 총 31개월로 연장시킨다고 주장했다. 호르몬 요법에 실패한 환자 127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얻은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프로벤지가 환자들 가운데 일부에만 먹혀들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환자 275명을 대상으로 한 최종 임상실험 결과는 내년 발표될 예정이다.
유전자를 겨냥한 새로운 치료법 가운데 가장 진척된 것이 애봇 래버러터리스(Abbott Laboratories)의 신레이(Xinlay)일 듯 싶다. 전립선 종양에서 다량 분비되는 물질로 종양 전이에 한몫하는 단백질 엔도텔린을 차단하는 의약품이다. 신레이는 뼈세포의 엔도텔린 수용체를 무력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립선 암세포에도 직접 작용해 성장을 억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환자 1,100명에게 실시한 두 차례 실험 결과에 따르면 신레이는 상당히 진전된 암환자의 경우 참기 어려운 뼈 속 통증 발현을 3개월 더 늦추는 데다 부작용도 적다.
애봇은 올해 안에 신레이의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은 신레이가 출시될 경우 매출 10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엔도텔린과 전립선의 상관관계를 처음 발견한 피츠버그대학 소속 비뇨기학자 조엘 넬슨은 “부작용 없는 의약품이 암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환자들 삶은 질적으로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이는 엄청난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밀레니엄 파머수티컬스(Millennium Pharmaceuticals)와 메다렉스(Medarex)가 각각 실험하고 있는 또 다른 접근법은 전립선 암세포 파괴에 도움이 되는 ‘똑똑한’ 항체를 개발하는 것이다. 밀레니엄의 신약 후보는 임상실험 초기 단계에 있다. 정량의 독성 화학물질로 주변 조직은 건드리지 않는 가운데 전립선 암세포만 죽이는 게 목표다. 동물 실험 결과 상당히 진행된 종양도 90%가 줄었다. 이는 독성 화학요법과 관련해 생명공학 기술로 만든 항체다. 항체는 전립선암에서만 볼 수 있는 단백질인 ‘전립선 특이 세포막 항원’을 겨냥한다. 인체에 주입된 항체는 암세포 표면을 뒤덮는다. 이어 독성이 암세포에 스며들면서 암세포를 죽인다.
메다렉스의 제품도 원리는 비슷하지만 독성이 없다. 대신 전립선 암세포를 붙잡아 인체의 면역체계로 하여금 공격하도록 자극한다. 인체를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실험 결과는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
로봇수술
지난 25년 동안 초기 전립선암의 가장 보편적인 치료법은 수술로 전립선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전립선 절제술로 종양의 80%를 제거한다. 그러나 복부에 13cm 정도의 수술 자국이 남는 데다 요실금·발기부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수술 후 발기부전 사례가 60%에 이르렀다.
새로운 수술 과정은 복부를 절개할 필요가 없는 데다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목표는 환자를 1주일 만에 치료해 정상생활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성기능에도 별문제가 없다. 20여 년 만에 이뤄진 대변화 가운데 하나다. 현재 수십 개의 병원들은 새로운 시술법을 도입했다. 열쇠 구멍만한 5, 6개의 작은 절개 부위로 수술 도구와 소형 카메라를 삽입하기 때문에 수술 후 상처가 상대적으로 작다.
많은 의사가 새로운 수술법을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 있는 인튜이티브 서지컬(Intuitive Surgical)에서 제작한 130만 달러짜리 로봇 덕이다. 외과의는 수술실 맞은편 방의 3차원 모니터 앞에 앉아 메스 대신 조이스틱 2개로 로봇 팔 3개를 조종한다. 시티 오브 호프 암센터의 비뇨기과 전문의 마크 가와치는 “전립선암 치료에서 로봇수술이 획기적인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라며 “시술만 제대로 하면 환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와치는 로봇으로 수술한 환자 175명 가운데 80%가 성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올해 실시된 7만 건의 전립선 제거 수술 가운데 새로운 로봇기술을 이용한 것은 6,000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튜이티브에 따르면 1년 사이 3배 증가한 셈이다. 지난 1년 사이 로봇 매출이 급증하면서 인튜이티브 주가도 60% 올라 26달러에 이르렀다. 로봇수술이 별 이점 없이 비싸기만한 일시 유행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성기능 유지 차원에서 신경을 살리는 전립선 절제술 개발로 유명한 존스 홉킨스 의대의 비뇨기학자 패트릭 월시는 “로봇 제조업체들이 과대 선전하고 있다”며 “로봇수술로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확증은 없다”고 주장했다.
전립선 절제술 이후 성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주변 신경을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전립선 바로 옆에 발기 유지와 관련된 신경다발과 혈관이 자리 잡고 있다. 더 복잡한 것은 요도가 전립선 중앙을 지나고 있다는 점이다. 전립선이 제거되면 요도와 방광을 다시 연결해야 한다. 수술자국을 최소로 줄인 이른바 ‘최소 침습(侵襲) 수술’과 기존 ‘개복 수술’에 대한 비교자료는 아직까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방사선 치료
외과수술의 발전으로 또 다른 주요 치료법인 방사선 치료가 빛을 잃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 영역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 과거 방사선은 세련되지 못한 무차별적인 무기였다. 암세포뿐 아니라 건강한 세포도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새로운 컴퓨터 유도 시스템으로 방사선을 전립선에만 정확히 쪼여 부작용이 줄고 치유율은 높아졌다. 뉴욕 소재 베스 이스라엘 메디컬 센터의 방사선 종양 전문의 대니얼 샤샤는 “방사선 치료가 외과수술 못지않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며 “15년 전과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외부 방사선 치료란 선형 가속기가 방출하는 고선량(高線量)의 X선을 환자에게 조사하는 것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건강한 조직을 가능한 한 방사선에 최소한 노출시키고 암세포만 파괴하는 것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방사선 종양 전문의들은 2차원 X선으로 나타난 주변 뼈의 위치에 따라 조사 부위를 어림잡았다. 그러던 중 80년대 후반 컴퓨터 단층촬영(CT) 데이터를 활용해 전립선의 모양대로 조사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고선량이 필요했다. 하지만 심각한 직장 손상은 여전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의료장비 제조업체들은 강도변조방사선요법(IMRT)이라는 기술로 방사선 치료를 한층 개선했다. IMRT 시스템에는 컴퓨터 제어 조절기가 있어 치료 중 방사선의 세기·모양이 변한다. 종양 중심부에 조사하는 선량을 늘리고 가장자리는 줄여 건강한 조직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병원 가운데 40%가 베어리언 메디컬 시스템스(Varian Medical Systems)·지멘스·엘렉타(Elekta)에서 판매하는 150만 달러짜리 IMRT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병원의 연구진은 2002년 IMRT로 치료받은 전립선암 환자 698명 가운데 심각한 직장 출혈을 경험한 사례가 4%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연구결과에 따르면 IMRT 시스템의 고선량 덕에 초기 암환자 가운데 90%가 5년 동안 재발 없이 생존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시스템의 경우 77%였다.
최근 몇 년 사이 뿌리내린 또 다른 치료법이 ‘방사선 씨앗’이다. 부작용 최소화 차원에서 방사선원(放射線源)을 전립선 안에 직접 이식하는 방법이다. 간단한 시술로 100개 정도의 방사성 알갱이를 전립선에 심는다. 알갱이가 암으로 전이된 부분을 모두 망라할 수 있도록 고르게 심어야 한다. 애초 의사들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씨앗을 제대로 심었는지 잘못 심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실수를 바로잡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몇몇 연구소에서 시험해본 소프트웨어로 적당한 곳을 미리 들여다볼 수 있다. 씨앗 이식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 초음파 데이터로 방사선의 적정 조사량과 적절한 이식 부위를 확인하는 것이다. 필요할 경우 시술 중 조절할 수도 있다. 웨스트버지니아주 소재 시플러 암센터의 방사선 종양 전문의 그레고리 메리크는 소프트웨어가 방사선 씨앗 요법에 혁명을 불러올 것으로 내다봤다.
킬러 유전자
일부 의사는 가만히 놔둬도 별 탈 없을 수천 명을 불필요하게 치료한다고 한탄했다. 한 연구에서는 치료를 거부한 노년층 전립선암 환자들 가운데 진단 이후 20년 안에 전립선암으로 사망한 경우는 겨우 16%였음이 밝혀졌다. 당시 연구는 환자 223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는 ‘치료’가 얼마나 힘든 선택인지 잘 보여주는 연구결과다. 사실 의사는 어떤 경우가 양성인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치료하다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전립선암의 미래를 엿보고 있다. 종양에 숨어 있는 작은 DNA 가닥이 단서를 제공한다. 이들 단서는 DNA 칩 등 기발한 신기술을 통해 연구된다. 목표는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예후 검사다. 다시 말해 어떤 종양이 전이돼 생명을 앗아갈지 수년 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테스트다. 하버드대학의 병리학자 마크 루빈은 그런 유전학적 지문이 현 방법보다 훨씬 뛰어난 예측력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오늘날 이용가능한 그렇고 그런 예후 시스템은 혈중 PSA의 수치 변화와 글리슨 점수(Gleason Score)가 주종을 이룬다. 글리슨 점수란 전립선암 조직의 분화도를 0~10점으로 구분한 것이다. 점수가 높을수록 예후가 좋지 않다.
루빈이 이끄는 하버드대학의 연구팀은 미시간대학의 연구진과 손잡고 지금까지 유전자 3개를 확인했다. 예후와 관련이 있을지 모를 세 유전자 가운데 하나는 세포성장 억제 시스템을 제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전립선 세포가 들불처럼 번질 수 있는 것이다. 한편 MIT대와 하버드대학이 공동 설립한 브로드연구소는 전립선암 진행에 관여하는 유전자 5개를 발견했다. MIT대와 하버드대학은 12개 이상의 유전자 표지(gene marker)를 동일한 테스트로 통합할 계획이다. 게다가 전립선암에 걸린 의사 2,000명을 대상으로 결과까지 확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셀레라 다이아그노스틱스(Celera Diagnostics)·애봇·지노믹 헬스(Genomic Health)도 전립선암 등 몇몇 암의 예후 유전자 검사법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아무리 진행속도가 느린 암이라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치유할 수 없다는 의학의 평범한 진리를 새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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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경우 장수하면 할수록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여기 반가운 소식 한 가지가 있다. 과학자들과 제약업계가 전립선암 정복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는 것이다.
전립선암이 통제가능한 일개 만성질환으로 바뀔 것이라는 얘기 다. 상당히 진행된 전립선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조악한 호르몬 요법 외에는 거의 없었다. 1940년대 선보인 호르몬 요법은 사실 일종의 ‘화학적인 거세’다. 이제 전문가들은 전립선암 치료의 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년 전이라면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신무기들을 전진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신약 후보 100여 종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에 들어갔다. 일부 종양을 확산시켜 환자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주요 ‘살상’ 유전자가 표적이다. 첨단 로봇수술로 성기능과 관련된 미세한 신경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전립선을 제거할 수 있다. 신형 컴퓨터 유도 시스템은 종전보다 강한 방사선을 정밀하게 조사(照射)해 건강한 조직은 그대로 두고 종양만 공격한다. 미래형 유전자 테스트로 악성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남성을 가려낼 수도 있다. 암이 치명적인 상태로 진행되기 수년 전 미리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13개 대학으로 구성된 한 컨소시엄이 새로운 전립선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컨소시엄을 이끌고 있는 에모리대학의 종양학자 조너선 사이먼스는 “과학이 서로 연계되기 시작했다”며 “전문가들은 거대한 회로기판 같은 과학에서 주요 회로를 탐색 중”이라고 표현했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병원의 종양 전문의 하워드 셔는 몇 년 전만 해도 종양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는 손 쓸 도리가 별로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8~10가지 치료법을 처방해준다”고 전한다.
치료법이 많아지면서 의사들의 처방도 제각각이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환자들은 당혹스러울 정도다. 치료법을 서로 비교해 놓은 믿을 만한 연구결과도 아직 없다. 유명한 의사들 사이에 선택안의 상대적 효과를 둘러싸고 논란이 치열하다. 하지만 모든 치료법에는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일례로 요실금이나 직장 출혈을 꼽을 수 있고, 가장 심각한 것이 발기부전이다.
15년 전 전립선암은 남성들이 대놓고 얘기하기를 꺼리는 모호한 질환이었다. 그러던 중 정크본드 업계의 황제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 인텔의 창업자 앤드루 그로브(Andrew Grove), 뉴스코프(News Corp.)의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회장 등 유명 인사들이 전립선암에서 벗어나 이를 공론화하면서 연구에 한층 박차가 가해졌다. 밀켄은 93년 전립선암재단을 설립했다.
밀켄은 “전립선암 재단이 연구자금 지원 구도에 총체적 변화를 몰고 왔다”며 “연구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 현재 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밀켄의 재단 설립 이래 미 정부의 연구자금 지원 규모도 연간 6,000만 달러에서 5억 달러로 확대됐다.
문제는 시간이다. 미국의 경우 해마다 23만 명이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있다. 그들 가운데 86%가 초기 단계다. 전립선 제거 수술을 받는 환자가 연간 7만 명, 전립선암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3만 명이다. 관련 의료비만 46억 달러에 이른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할 나이에 접어드는 오는 2015년 전립선암 진단건수는 연간 30만 건으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전립선암은 무차별적이다. 다른 원인으로 사망한 남성들을 검시해본 결과 그 가운데 60대의 66%, 40대의 33%에게서 전립선암 초기 흔적이 발견됐다. 심지어 20대에서도 전립선암 세포의 작은 침착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기 종양으로 진행되는 사례가 남성 6명 가운데 한 명,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35명 가운데 한 명꼴이다. 희소식도 있다. 전립선암으로 인한 연간 사망자 수가 10년 사이 14% 감소한 것이다. 다시 말해 연간 5,000명 정도가 목숨을 구하는 셈이다.
크기나 모양이 호두와 비슷한 전립선은 방광과 직장 사이에 있다. 전립선은 유용성보다 문제를 더 많이 안고 있을지 모른다. 발기나 성적 쾌감과 전혀 상관없는 기관이다. 전립선은 정자 운반체인 정액의 한 성분을 생산하는 주된 역할을 한다. 전립선암에 걸려도 환자는 이를 모를 수 있다. 그만큼 진행 속도가 느리다.
시간이 지나면 인체에 무해했던 전립선암의 일부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공격적으로 변한다. 이때 급성장하기 때문에 생체조직 검사로 발견할 수 있다. 발병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악성 유전자, 고지방 육류를 과다 섭취하고 채소는 적게 먹는 잘못된 식습관, 세포 분열시 일어나는 유전적 복제 오류가 어우러진 결과일 수도 있다. 급성장한 종양이 전립선 안에 머물러 있는 한 치명적이진 않다. 그러나 다른 부위로 전이돼 뼈에 침투할 경우 환자는 매우 고통스러운 소모성 질환과 맞닥뜨리게 된다.
해마다 수만 명의 남성이 서둘러 치료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치료받을 필요가 없는 경우에 속한다. 전립선암 조기 진단에 활용되는 혈액 검사, 다시 말해 ‘전립선 특이 항원(PSA)’ 검사는 10년 전 확고히 뿌리내렸지만 암으로 잘못 판정하는 이른바 ‘위양성(僞陽性)’ 비율이 높다. 이로써 해마다 불필요한 생체 조직검사가 수천 건이나 시행되고 있다. PSA 검사의 ‘위음성(僞陰性)’ 비율도 높다. 오진율이 15%다. 스탠퍼드대학의 비뇨기학자 토머스 스테이미는 PSA 검사를 통해 양성으로 판명된 사례 가운데 최고 75%는 즉각적인 위협과 거리가 먼 매우 경미한 경우라고 밝혔다.
임상진단 시스템 개발업체인 메릴랜드주 베세즈다 소재 코럴로직 시스템스(Correlogic Systems)와 매사추세츠주 뉴턴 소재 매트리테크(Matritech)의 연구진은 몇 년 안에 PSA 검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진단법 연구로 분주하다. 연구진은 새로운 징후 단백질, 즉 단백질 조각의 새로운 구조들을 발견했다. 치명적인 종양과 느리게 성장해 아무 해도 끼치지 못할 종양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유전학적 예후(豫後) 검사법 개발 역시 현재 진행되고 있다. 검사법이 개발되면 수천 명의 환자는 전립선암 치료를 받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맞춤 의약품
63년 전 시카고대학의 비뇨기학자 찰스 허긴스는 전립선암 치료가 가능함을 증명했다.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거세해 얻은 결과다.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테스토스테론 등 호르몬을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지금은 수술 대신 약물로 호르몬을 차단한다. 대다수 호르몬 요법은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의심쩍은 유전자만 겨냥하는 기술이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신약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현재 임상실험 중간?최종 단계에 있는 신약 후보는 100여 종이다. 97년의 3배에 이르는 수치다. 신약 후보 가운데 암을 뼈로 전이시키는 악성 유전자 차단제, 전립선암 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는 화학물질, 인체의 킬러 T세포로 하여금 종양세포를 찾아내 파괴토록 훈련시키는 백신도 있다.
사노피 아벤티스(Sanofi-Aventis)의 항암제 탁소텔(Taxotere)이 전립선암 환자 수명을 16개월에서 18개월로 연장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지난 봄 발표되자 신약에 대한 기대도 증폭됐다. 화학물질이 전립선암 환자의 수명을 연장시킨 첫 사례다. 다른 업체들도 면역체계로 하여금 전립선 암세포 공격에 나서도록 자극하는 여러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백신으로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 들어간 업체는 워싱턴주 시애틀의 덴드리온(Dendreon), 캘리포니아주 사우스샌프란시스코의 셀 진시스(Cell Genesys),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인근의 세리언 바이올로직스(Therion Biologics), 영국의 오니백스(Onyvax) 등이다.
현재 임상실험 최종 단계에 접어든 셀 진시스와 덴드리온이 선두를 지키고 있다. 덴드리온은 자사의 백신 프로벤지(Provenge)가 환자 수명을 8개월 늘려 총 31개월로 연장시킨다고 주장했다. 호르몬 요법에 실패한 환자 127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얻은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프로벤지가 환자들 가운데 일부에만 먹혀들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환자 275명을 대상으로 한 최종 임상실험 결과는 내년 발표될 예정이다.
유전자를 겨냥한 새로운 치료법 가운데 가장 진척된 것이 애봇 래버러터리스(Abbott Laboratories)의 신레이(Xinlay)일 듯 싶다. 전립선 종양에서 다량 분비되는 물질로 종양 전이에 한몫하는 단백질 엔도텔린을 차단하는 의약품이다. 신레이는 뼈세포의 엔도텔린 수용체를 무력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립선 암세포에도 직접 작용해 성장을 억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환자 1,100명에게 실시한 두 차례 실험 결과에 따르면 신레이는 상당히 진전된 암환자의 경우 참기 어려운 뼈 속 통증 발현을 3개월 더 늦추는 데다 부작용도 적다.
애봇은 올해 안에 신레이의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은 신레이가 출시될 경우 매출 10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엔도텔린과 전립선의 상관관계를 처음 발견한 피츠버그대학 소속 비뇨기학자 조엘 넬슨은 “부작용 없는 의약품이 암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환자들 삶은 질적으로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이는 엄청난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밀레니엄 파머수티컬스(Millennium Pharmaceuticals)와 메다렉스(Medarex)가 각각 실험하고 있는 또 다른 접근법은 전립선 암세포 파괴에 도움이 되는 ‘똑똑한’ 항체를 개발하는 것이다. 밀레니엄의 신약 후보는 임상실험 초기 단계에 있다. 정량의 독성 화학물질로 주변 조직은 건드리지 않는 가운데 전립선 암세포만 죽이는 게 목표다. 동물 실험 결과 상당히 진행된 종양도 90%가 줄었다. 이는 독성 화학요법과 관련해 생명공학 기술로 만든 항체다. 항체는 전립선암에서만 볼 수 있는 단백질인 ‘전립선 특이 세포막 항원’을 겨냥한다. 인체에 주입된 항체는 암세포 표면을 뒤덮는다. 이어 독성이 암세포에 스며들면서 암세포를 죽인다.
메다렉스의 제품도 원리는 비슷하지만 독성이 없다. 대신 전립선 암세포를 붙잡아 인체의 면역체계로 하여금 공격하도록 자극한다. 인체를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실험 결과는 내년에 나올 예정이다.
로봇수술
지난 25년 동안 초기 전립선암의 가장 보편적인 치료법은 수술로 전립선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전립선 절제술로 종양의 80%를 제거한다. 그러나 복부에 13cm 정도의 수술 자국이 남는 데다 요실금·발기부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수술 후 발기부전 사례가 60%에 이르렀다.
새로운 수술 과정은 복부를 절개할 필요가 없는 데다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목표는 환자를 1주일 만에 치료해 정상생활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성기능에도 별문제가 없다. 20여 년 만에 이뤄진 대변화 가운데 하나다. 현재 수십 개의 병원들은 새로운 시술법을 도입했다. 열쇠 구멍만한 5, 6개의 작은 절개 부위로 수술 도구와 소형 카메라를 삽입하기 때문에 수술 후 상처가 상대적으로 작다.
많은 의사가 새로운 수술법을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 있는 인튜이티브 서지컬(Intuitive Surgical)에서 제작한 130만 달러짜리 로봇 덕이다. 외과의는 수술실 맞은편 방의 3차원 모니터 앞에 앉아 메스 대신 조이스틱 2개로 로봇 팔 3개를 조종한다. 시티 오브 호프 암센터의 비뇨기과 전문의 마크 가와치는 “전립선암 치료에서 로봇수술이 획기적인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라며 “시술만 제대로 하면 환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와치는 로봇으로 수술한 환자 175명 가운데 80%가 성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올해 실시된 7만 건의 전립선 제거 수술 가운데 새로운 로봇기술을 이용한 것은 6,000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튜이티브에 따르면 1년 사이 3배 증가한 셈이다. 지난 1년 사이 로봇 매출이 급증하면서 인튜이티브 주가도 60% 올라 26달러에 이르렀다. 로봇수술이 별 이점 없이 비싸기만한 일시 유행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성기능 유지 차원에서 신경을 살리는 전립선 절제술 개발로 유명한 존스 홉킨스 의대의 비뇨기학자 패트릭 월시는 “로봇 제조업체들이 과대 선전하고 있다”며 “로봇수술로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확증은 없다”고 주장했다.
전립선 절제술 이후 성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주변 신경을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전립선 바로 옆에 발기 유지와 관련된 신경다발과 혈관이 자리 잡고 있다. 더 복잡한 것은 요도가 전립선 중앙을 지나고 있다는 점이다. 전립선이 제거되면 요도와 방광을 다시 연결해야 한다. 수술자국을 최소로 줄인 이른바 ‘최소 침습(侵襲) 수술’과 기존 ‘개복 수술’에 대한 비교자료는 아직까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방사선 치료
외과수술의 발전으로 또 다른 주요 치료법인 방사선 치료가 빛을 잃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 영역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 과거 방사선은 세련되지 못한 무차별적인 무기였다. 암세포뿐 아니라 건강한 세포도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새로운 컴퓨터 유도 시스템으로 방사선을 전립선에만 정확히 쪼여 부작용이 줄고 치유율은 높아졌다. 뉴욕 소재 베스 이스라엘 메디컬 센터의 방사선 종양 전문의 대니얼 샤샤는 “방사선 치료가 외과수술 못지않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며 “15년 전과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외부 방사선 치료란 선형 가속기가 방출하는 고선량(高線量)의 X선을 환자에게 조사하는 것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건강한 조직을 가능한 한 방사선에 최소한 노출시키고 암세포만 파괴하는 것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방사선 종양 전문의들은 2차원 X선으로 나타난 주변 뼈의 위치에 따라 조사 부위를 어림잡았다. 그러던 중 80년대 후반 컴퓨터 단층촬영(CT) 데이터를 활용해 전립선의 모양대로 조사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고선량이 필요했다. 하지만 심각한 직장 손상은 여전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의료장비 제조업체들은 강도변조방사선요법(IMRT)이라는 기술로 방사선 치료를 한층 개선했다. IMRT 시스템에는 컴퓨터 제어 조절기가 있어 치료 중 방사선의 세기·모양이 변한다. 종양 중심부에 조사하는 선량을 늘리고 가장자리는 줄여 건강한 조직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병원 가운데 40%가 베어리언 메디컬 시스템스(Varian Medical Systems)·지멘스·엘렉타(Elekta)에서 판매하는 150만 달러짜리 IMRT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병원의 연구진은 2002년 IMRT로 치료받은 전립선암 환자 698명 가운데 심각한 직장 출혈을 경험한 사례가 4%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연구결과에 따르면 IMRT 시스템의 고선량 덕에 초기 암환자 가운데 90%가 5년 동안 재발 없이 생존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시스템의 경우 77%였다.
최근 몇 년 사이 뿌리내린 또 다른 치료법이 ‘방사선 씨앗’이다. 부작용 최소화 차원에서 방사선원(放射線源)을 전립선 안에 직접 이식하는 방법이다. 간단한 시술로 100개 정도의 방사성 알갱이를 전립선에 심는다. 알갱이가 암으로 전이된 부분을 모두 망라할 수 있도록 고르게 심어야 한다. 애초 의사들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씨앗을 제대로 심었는지 잘못 심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실수를 바로잡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몇몇 연구소에서 시험해본 소프트웨어로 적당한 곳을 미리 들여다볼 수 있다. 씨앗 이식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 초음파 데이터로 방사선의 적정 조사량과 적절한 이식 부위를 확인하는 것이다. 필요할 경우 시술 중 조절할 수도 있다. 웨스트버지니아주 소재 시플러 암센터의 방사선 종양 전문의 그레고리 메리크는 소프트웨어가 방사선 씨앗 요법에 혁명을 불러올 것으로 내다봤다.
킬러 유전자
일부 의사는 가만히 놔둬도 별 탈 없을 수천 명을 불필요하게 치료한다고 한탄했다. 한 연구에서는 치료를 거부한 노년층 전립선암 환자들 가운데 진단 이후 20년 안에 전립선암으로 사망한 경우는 겨우 16%였음이 밝혀졌다. 당시 연구는 환자 223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는 ‘치료’가 얼마나 힘든 선택인지 잘 보여주는 연구결과다. 사실 의사는 어떤 경우가 양성인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치료하다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전립선암의 미래를 엿보고 있다. 종양에 숨어 있는 작은 DNA 가닥이 단서를 제공한다. 이들 단서는 DNA 칩 등 기발한 신기술을 통해 연구된다. 목표는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예후 검사다. 다시 말해 어떤 종양이 전이돼 생명을 앗아갈지 수년 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테스트다. 하버드대학의 병리학자 마크 루빈은 그런 유전학적 지문이 현 방법보다 훨씬 뛰어난 예측력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오늘날 이용가능한 그렇고 그런 예후 시스템은 혈중 PSA의 수치 변화와 글리슨 점수(Gleason Score)가 주종을 이룬다. 글리슨 점수란 전립선암 조직의 분화도를 0~10점으로 구분한 것이다. 점수가 높을수록 예후가 좋지 않다.
루빈이 이끄는 하버드대학의 연구팀은 미시간대학의 연구진과 손잡고 지금까지 유전자 3개를 확인했다. 예후와 관련이 있을지 모를 세 유전자 가운데 하나는 세포성장 억제 시스템을 제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전립선 세포가 들불처럼 번질 수 있는 것이다. 한편 MIT대와 하버드대학이 공동 설립한 브로드연구소는 전립선암 진행에 관여하는 유전자 5개를 발견했다. MIT대와 하버드대학은 12개 이상의 유전자 표지(gene marker)를 동일한 테스트로 통합할 계획이다. 게다가 전립선암에 걸린 의사 2,000명을 대상으로 결과까지 확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셀레라 다이아그노스틱스(Celera Diagnostics)·애봇·지노믹 헬스(Genomic Health)도 전립선암 등 몇몇 암의 예후 유전자 검사법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아무리 진행속도가 느린 암이라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치유할 수 없다는 의학의 평범한 진리를 새삼 보여주고 있다.
환자에서 연구 후원자로 전립선암 분야는 한때 연구 불모지였다. 그러다 갑자기 세인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어느 환자 덕분이다. 1980년대 후반 증권사기 혐의로 복역한 뒤 출소했다 전립선암 판정을 받은 정크본드의 귀재 마이클 밀켄이 바로 그다. 밀켄은 93년 초반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담당의는 1년도 못 살 것이라고 말했다. 밀켄은 호르몬 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식습관까지 바꿨다. 같은 해 전립선암 재단을 설립해 2,500만 달러나 기탁했다. 연구에 새로운 수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단은 벤처캐피털 업체를 방불케 했다. 연방 당국으로부터 지원받기 어려운 리스크 높은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고 젊은 연구원들도 끌어들인 것이다. 밀켄은 청년 과학자들이 연구의 틀을 잡을 수 있도록 보조금도 약간 지급했다. 그러면 젊은 과학자들은 예비 연구결과를 들고 보조금 지급에 신중한 당국으로부터 훨씬 많은 지원금까지 얻어낼 수 있다. 재단은 5쪽짜리 신청서만 내면 검토 후 90일 안에 수표를 끊어준다. 반면 정부 보조금의 경우 신청서가 수십 쪽인데다 절차도 최장 1년이 걸리곤 한다. 재단이 내건 조건은 한 가지다. 연구의 결과를 매년 열리는 컨퍼런스에서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 국립 암연구소(NCI) 소장 출신으로 현재 셀레라 지노믹스에 몸담고 있는 새뮤얼 브로더(Samuel Broder)는 “밀켄이야말로 가장 효과 있게 암 연구를 지원하는 유일한 민간인”이라고 평했다. 브로더는 “밀켄이 젊은 과학자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하자 신청서의 질도 갑자기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밀켄은 96년 전미 전립선암 연합(NPCC)도 공동 창립했다. NPCC는 의회를 상대로 로비에 나섰다. 그 결과 미 국방부가 전립선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현재 국방부는 전립선 프로그램에 연간 8,500만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재단은 현재 임상실험 최종 단계에 있는 많은 전립선 치료제 개발에서 산파역을 담당했다. 95년 존스 홉킨스 의대의 한 젊은 연구원에게 자금을 지원한 것이 좋은 예다. 환자 20명에게 새로운 개념의 전립선암 백신을 테스트하는 연구였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GVAX라는 그 백신은 생명공학업체 셀 진시스에서 환자 600명을 대상으로 임상실험 최종 단계에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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