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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김광수의 한국 경제 진단③ 투자 부진 원인… “기업 설비투자 내년부터 회복”

특별기획 |김광수의 한국 경제 진단③ 투자 부진 원인… “기업 설비투자 내년부터 회복”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2005년 새해 처음으로 유럽으로 수출될 자동차들. 자동차의 내수 회복은 2007년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안산 반월 공단. 불황이 지속되면서 문을 닫는 공장들이 속출하고 공장을 임대하거나 매매를 원하는 현수막이 늘어나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지나친 심리위축으로 전략적인 투자를 소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진은 구미공단.
한국의 기업 부문 설비투자는 지난 1999∼2000년 발생한 IT(정보기술) 버블 이후 최근까지 침체를 지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설비투자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저하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기업투자 부진의 원인을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나 참여정부의 분배 위주 경제정책 탓으로 몰아세우는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조장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기업들은 국민들의 반기업적 정서나 참여정부의 분배 위주 정책 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한국의 기업 경영자들은 대국민 자선사업이나 개인적인 정치적 편향성을 기준으로 설비투자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주장이 되는 셈이다. 유치한 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새해에는 이러한 저차원적이고 소모적인 싸움이 사라지고 보다 논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쟁이 활성화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이제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관점에서 한국 경제와 기업투자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말하면 2001년 이후 국내 기업의 설비투자 침체는 IT 버블이 발생한 99∼2000년의 과잉 설비투자에 주로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도표1> 에서 볼 수 있듯 99∼2000년의 2년 간 기업 설비투자는 실질GDP성장률을 4%가량 끌어올리는 과잉투자 양상을 보였다. 이것은 지난 90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반도체 특수 등으로 기업 설비투자가 절정에 달했던 94∼95년의 실질GDP성장률 기여도 3.3%와 2.7%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94∼95년의 과잉투자가 결국 97년의 IMF 사태를 초래한 한 원인이 됐다는 점은 다 아는 사실이다.

신용카드 버블의 아이러니 미국과 일본의 경우 90년 이후 기업 설비투자가 매우 활발했던 해에도 실질GDP성장률 기여도는 1.5%를 넘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99∼2000년 기업의 설비투자는 97년 IMF 사태로 인한 기술적 반등을 감안하더라도 가히 폭발적인 과잉투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2001년 이후 이들 과잉 설비투자가 부실화되지 않고 전체적으로 비교적 순조롭게 상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1년에는 IT 버블 붕괴로 수출이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신용카드 버블로 인해 내수가 호조를 보였고, 2002년 하반기부터는 중국특수와 세계 경제 회복세로 인해 수출이 호조를 보여 과잉 설비투자 상각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신용카드 버블이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지만 부분적으로는 기업의 과잉 설비투자 상각이 부실화되지 않도록 기여했다는 점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2005년에도 중국 경제는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보여 국내 기업의 수출 증가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99∼2000년에 발생한 과잉 설비투자 상각이 완료되기 시작하는 2006년부터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회복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지난 2000년 이후 제조업 업종별 수급 갭(=공급-수요) 동향을 살펴보자. 99∼2000년 IT 버블기에 음·식료품·고무·플라스틱·조립금속·기계장비·컴퓨터·사무용기기·자동차·부품, 운송장비 업종을 중심으로 대규모 과잉 설비투자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내수업종인 음·식료품, 비금속광물, 조립금속, 전기기계장비 업종과 수출 경쟁력을 상실해가는 섬유제품·컴퓨터·사무용기기 업종은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반면, 수출업종인 화학제품·고무·플라스틱·1차 금속·기계장비·전자부품·통신장비·자동차(내수는 침체)·조선 등은 수출 호조에 힘입어 호황을 지속하고 있다.

반도체 비관적이지 않다. 이를 전체적으로 보면 2003년부터 본격화된 내수침체가 제조업에는 부분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제조업 전반으로는 수출 호조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5년에도 대중국 수출 호조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반도체·LCD·휴대폰 등 가장 경쟁력이 있는 첨단업종의 수출 호조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내수침체가 국내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은 한정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어 가장 경쟁력이 있는 전자부품·영상·통신장비 제조업은 2000년부터 대규모 설비증설 투자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출이 잘 되고 있어 올해에도 대규모 설비 증설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해외기관의 전망에 의하면 LCD 세계 수요는 2005년부터 증가세가 둔화될 것이며 아시아지역이 수요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북미지역과 유럽지역의 LCD TV 수요를 다소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2007년 세계 LCD 시장 규모는 70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돼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국내 LCD 업계의 호조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PDP는 40인치 이상 대화면 시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40인치 이상 LCD 제품 개발이 매우 빠르게 이뤄지고 있으며 용도의 다양성 등에서 이미 LCD에 밀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휴대폰 수요는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카메라폰 교체 수요가 빠르게 발생하고 있는 데 힘입어 2008년까지 지속적인 증가를 보일 것이다. 반도체는 올해 들어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대만·중국 등 아·태지역 수요를 중심으로 다시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에서 지나치게 비관적 전망을 하고 있는데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반도체 시장 수요 전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MOS 로직 제품과 MOS 마이크로 제품 수요는 2007년까지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이는 반면 메모리 제품 수요는 다소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은 2003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자동차 내수침체에도 불구하고 수출 호조에 힘입어 비교적 안정적인 추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 자동차 업계 전체로는 평균 가동률이 80%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여전히 과잉설비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업체별 수출 실적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내 자동차 내수는 전적으로 내수경기 회복 여하에 달려 있다. 경기상황이나 신모델 출시 영향에 관계없이 단순히 소비자들의 자동차 평균 교체 기간을 5년으로 간주할 경우 내수회복은 2007년 무렵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내수 위주 업체에는 당분간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 같다.

중소기업 창업 왜 감소할까 다음으로 중소기업 투자 활성화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이를 위해 중소기업 창업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표2> 에서 볼 수 있듯 2002년 초 월 4,000개 수준에 달했던 신설법인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4년 말 현재 월 2,500개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04년 말 현재 서비스업 분야의 신설법인 수는 월 평균 1,850개가량이며 제조업 분야의 신설법인 수는 2002년 초 월 1,000개가량에서 2004년 말 340개 정도로 급감하고 있다. 왜 이렇게 제조업 분야의 창업이 현저하게 줄어드는가. 제조업 창업의 감소는 단순히 경기침체에 기인하는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한국 중소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반영하고 있는 현상으로 보인다. 국내 중소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은 국내 제조기업의 해외 이전이 원인으로 부가되고 있으나 이는 부분적이다. 그보다는 제조업 분야의 절대적인 창업 급감에 원인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매우 크다. 특히 서울지역의 창업이 격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서울 1극 집중의 불균형 발전에 기인한다. 제조업 창업은 전 업종에 걸쳐 크게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섬유·가죽 업종과 IT 버블 붕괴의 영향으로 전기·전자·정밀기기 등 IT 업종의 창업 위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반면 IT 서비스업·연예·인력 알선·경비·청소 등 이른바 생계형 사업 서비스업의 창업만이 유일하게 늘어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중소기업 창업 경향은 양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이유가 뭘까? 무슨 이유로 전통업종뿐 아니라 첨단 IT 업종의 창업까지 빠르게 위축되는 것일까. 원인은 중소기업 분야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 연구소의 분석에 의하면 코스닥 상장기업의 50∼60대 CEO들은 60~70년대에 전통업종 중심의 창업을 한 사람들인 반면 30∼40대 CEO들은 90년대 이후 첨단업종 중심의 창업을 한 사람들로 나타나고 있다.이는 연령대별 CEO 구성비율을 봐도 알 수 있다. <도표3> 을 보자. 40대 이하는 첨단업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50대 이상은 전통업종의 비중이 높다. 특히 60대 이상인 경우 전통업종이 70%를 넘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전체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CEO의 세대교체라고 할 수 있다.60∼70년대 전통업종을 중심으로 창업했던 CEO들이 은퇴하고 90년대 첨단업종을 중심으로 창업한 CEO들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세대교체’가 가져올 영향이다. 전통업종 CEO들은 중소기업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로서 투자 여력은 있지만 은퇴 시점에 있는 이들이다. 이들은 사양화되고 있는 기존 전통업종 사업에 신규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거의 경험이 없다시피 한 고성장·고위험 첨단업종 신규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심각한 기업가정신 쇠퇴 그렇다면 첨단업종 중소기업 창업자들은 어떨까. 이들은 과거 전통업종 중소기업 창업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섯살 정도 늦은 나이에 창업을 시작하고 있다. 한마디로 과거에 비해 첨단업종 중소기업 분야의 기업가정신이 크게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 첨단업종 창업자들은 투자 의욕은 있지만 투자 여력은 별로 없다. 결과적으로 한국 중소기업은 세대교체에 따른 투자 부진 내지는 투자 단절 현상이 발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한국 경제는 제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안정적인 부가가치 창출 없이는 서비스업의 성장이나 고용안정, 나아가 한국 경제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국내 제조분야에 대한 적정 규모의 투자 활성화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첫째 중소기업 분야의 세대교체가 원활히 이뤄지고 조기 창업이 활성화되는 경제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둘째 최근 내수침체의 최대 원인은 가계 부문의 서비스 소비지출 감소에 기인한 것이므로 내수침체가 수출 위주의 국내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은 한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내 제조업체들은 지나친 심리위축으로 전략적인 투자를 소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칫 경쟁력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셋째 정책당국은 슬로건식의 정책 나열로는 결코 투자 활성화를 꾀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제 전체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구조적 변화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 대안의 마련과 실천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김광수 소장은…
1959년 生. 서울대 경영학 석사. 일본 도쿄대 경제학부 박사과정 수료. 2000년 5월 ‘김광수경제연구소’ 설립. 각종 정책평가와 기업 컨설팅을 주로 하고 있다. 2주마다 발행하는 보고서는 관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분석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저서로는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Ⅰ·Ⅱ」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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