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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환경 개선에 초점을

투자환경 개선에 초점을

올해 경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내수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그동안 경제를 지탱해 왔던 수출 증가율은 둔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정부가 재정수단을 동원해 총수요를 늘려보겠다고 나섰다. 첫 번째 절차로 국내총생산(GDP) 1% 수준의 적자 예산을 짰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재정 확대는 경기 침체로 인해 세금이 안 걷히고 복지지출이 늘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자연적 적자 요인을 수용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도 이를 인식해 올해 예산의 상당 부분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기로 했다. 재정지출 효과는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 때문에 어차피 경기 목적으로 쓸 예산이라면 서둘러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문제는 하반기로 가면 예산이 모자라 추경을 편성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어차피 그래야할 상황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본예산 상의 국채 발행을 늘려 잡는 것이 경기대응이나 재정규율의 측면에서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론 경제가 예상보다 일찍 회복되고 국민연금기금 등을 재원으로 하는 종합투자계획이 제대로 집행된다면 하반기의 재정 압박이 완화될 수도 있다. 반대로 경기가 살아나지 못하고 추경 편성이 불가피해지는 상황이 온다면 정부와 여당은 정책실패와 예산낭비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재정수단 중심의 경기부양책이 얼마나 내수 진작에 도움을 주느냐다. 세수기반이 받쳐주지 않는 재정지출 확대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어 이것이 투자와 소비 증가를 유도하지 못한다면 잠시 시간을 버는 반짝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총수요 증가 효과는 있겠지만 재정 확대 자체만으로 내수 기반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가계나 기업으로 하여금 지갑을 열고 생산설비를 늘리게 하려면 이들을 위축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선 가계의 경우 가계부채로 소비여력이 많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자리와 미래 소득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보수적인 행태를 보이는 측면이 강하다.

당장 소비여력이 없어 소비를 줄인다기보다는 잠시 소비를 미뤄두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소비심리 저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기업투자의 위축이다. 생산설비를 늘리지 않는 기업은 채용이나 월급 인상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다양한 각도에서 진단할 수 있지만 그 핵심은 역시 기업 투자의 부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내수 침체의 근본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성장잠재력을 잠식하는 요인이기도 한다. 설비투자를 꺼리는 기업들이 성장잠재력의 다른 축인 인적자본이나 기술개발에 눈을 돌리기는 어렵다.

기업들이 움츠리고 있는 일차적 원인은 금리나 세금이 높아서가 아니라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래 수익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국내외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손쉬운 투자처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여기에 정책의 일관성 부족과 정파적 대립에서 비롯된 정책환경의 불확실성까지 겹치게 되니 투자할 맛이 사라지는 것이다.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미래 수익에 대해 기업가가 느끼는 위험은 늘어났지만 투자 위험을 흡수해줄 사회적 장치는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었다. 차입이 주 투자재원이었던 외환위기 이전의 경우 대기업은 정부나 계열사 보증을 통해 투자위험의 상당 부분을 흡수했고 중소기업의 경우는 대기업이 방패막이가 돼 주었다. 지금은 이러한 경로가 사라진 반면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의 자본조달 및 위험흡수 기능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한마디로 투자처를 찾기도 힘들고, 설사 찾았다 하더라도 과감한 위험부담을 택할 만한 여건이 조성돼 있지도 않다는 얘기다.

결국 정부가 할 일은 재정 확대를 통해 벌 수 있는 다소의 시간적 여유를 낭비하지 말고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해나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금융시장 개혁을 가속화해 부동자금을 생산적인 투자로 전환해야 한다.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와 기관투자가의 육성이 필수적이다. 또한 방치돼온 중소기업과 제2금융권의 구조조정을 추진해 기술혁신형 기업들의 고수익·고위험 투자에 대한 재원 조달 창구를 마련해줘야 한다. 금융시장이 성숙하는 동안 재정에서 투자의 사회적 위험을 흡수해 줄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이렇게 뭔가 하나라도 초점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면 다른 분야도 합리적인 대안이 따라올 것이다. 백화점식 나열의 관료적 방식으로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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